철도:
노동자들의 조건을 악화시킬
8?18 노사합의를 거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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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노동자연대가 8월 27일 발간한 리플릿의 내용과 동일하다. 그리고 이 리플릿은 8월 21일 〈노동자 연대〉 온라인에 게재한 기사를 일부 수정 및 보완한 것이다.
불행히도 8월 18일 김명환 철도노조 위원장은 최연혜 철도공사 사장과 2013년 임금 동결, 주요 복지 후퇴를 담은 합의를 했다. 당연히 보수 언론들은 철도 노사가 ‘경영 정상화를 위한 파격적 합의’를 도출한 것이라며 환영했다.
공사 측 관계자도 합의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노조 집행부와의 지속적인 대화와 설득을 바탕으로 성실히 교섭해 지난해 파업의 후유증을 떨쳐내고, 노사간 신뢰를 회복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공사 측이 ‘노사 신뢰’를 말하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2백 명에 가까운 조합원들을 해고하고, 수백억 원대 손해 배상 청구와 노조 기금 가압류로 노조 숨통을 조이고, 잇단 열차 사고의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떠넘기기만 하는 냉혈한들이 말이다.
김명환 위원장 등 노조 중앙집행부는 이런 사측과의 ‘신뢰 회복’을 추구하느라 현장 조합원들의 기대와 신뢰는 완전히 저버렸다.
철도공사 임원들은 자신들의 봉급은 인상하고는 노동자 임금은 ‘방만 경영’ 개선을 명분으로 동결을 고수할 만큼 뻔뻔했다. 그들은 정부의 2013년 공공기관 임금인상 가이드라인 2.8퍼센트만큼도 올려 주지 않았다.
이런 사측의 임금 동결 요구에 김명환 위원장 등 노조 지도자들이 합의해 줬다.
김명환 위원장 등은 심지어 단체협약 11개 조항의 대폭 후퇴도 수용했다.(표 참조)
개악된 내용 | 구체 내용 및 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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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임금 동결 | 성과급 환수, 여비 세금 징수 등 고려하면 사실상 임금 삭감 |
업무상 재해 요양 기간 및 요양급여 삭감, 지원 축소[37조, 38조, 109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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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상 재해 사망 시 사망 장의비 평균임금 120일분 지원 중단[109조] | [2013년 기준 1인 당 2천만 원 지급] |
비업무상 재해 요양 기간 및 요양급여 삭감[37조1항, 38조 1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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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휴가 2일 삭제[79조] | |
육아휴직 급여 삭감[38조, 88조] | 기본급 1/2 지급에서 고용보험법에 따라 지급(통상임금의 40%, 최저 50만 원~1백만 원 상한) |
여성 조합원 복지 후퇴(2013년 기준 여성직원 2,547명)[85조, 86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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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조비 대폭 삭감[130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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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자녀 학비 지원 삭제[131조] | [2012년 609명 1인당 21만원 지원 2011년 2,578명 1인당 19만원 지원 2010년 4,235명 1인당 22만원 지원] |
의료비 지원 축소[130조] | 직원 가족 암 등 의료비 5백만 원 이상 시 3백만 원 지원 폐지 |
재해부조금 지원 액수 20퍼센트 가량 삭감과 지원 조건 축소[130조] | |
사택 무상 사용 조항 삭제[122조] |
합의된 단협안에는 산재를 당하거나 질병에 걸려 휴직해야 하는 노동자들의 임금 삭감, 휴직 기간 단축, 보상 등 지원을 축소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의료비 지원이 크게 축소됐고, 조합원 본인 사망 시 조의금을 1천만 원에서 1백만 원으로 낮추었다.
중학생 자녀 학비 지급도 중단하고, 육아휴직 비용 삭감, 선택휴가 2일 부여 조항도 삭제했다.
또, 생리휴가를 무급화하고 유·사산시 휴일을 축소해 2천 명이 넘는 여성 노동자들의 최소한의 복지조차 후퇴시켰다.
이것만 봐도 “누굴 위해 임금을 동결하고 단협을 후퇴시켰는가” 하고 조합원들이 묻는 것은 당연하다. 아직 단체협약 협상도 개시되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의 터무니없는 ‘정상화’ 이행 요구를 수용해 “실리도 자존심도 모두 잃었다”는 비판도 마찬가지다.
사측의 부당한 단협 개악 강요를 수용할 수 없다며 ‘7~8월 총파업 및 총력투쟁’을 선언해 놓고 투쟁 준비는커녕 노동자 조건 개악에 합의를 한 것에 조합원들이 커다란 배신감을 느끼는 것도 당연하다.
뿐만 아니라, 김명환 집행부가 이런 일을 저지른 건 박근혜 정부가 방만 경영 개선 ‘정상화’ 1단계 추진 후 하반기에 정상화 2단계인 민영화 추진을 벼르고 있는 상황에서다. 8월 말 공공부문 정상화 저지, 의료 민영화 저지 파업에 힘을 보태기는커녕 재만 뿌린 꼴이다. 철도노조를 고려해 공공부문 양대노총 투쟁 일정까지 8월 말로 앞당긴 전체 공공부문 노조들과의 연대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또한 그동안 철도 민영화 저지 운동과 철도노조 투쟁에 연대해 온 다른 노동단체들에게도 등을 돌린 행위다.
근시안
임금 동결과 단협 개악을 내주는 대신 강제 전출을 4~5개월 연기시키고 일부 해고가 철회됐다고 생색을 내도 이 합의가 정당화될 수는 없다.
강제 전출을 저지하고 해고자를 복직시키는 일은 결국엔 해결돼야 할 중요한 과제다. 그러나 이를 (모든)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악화와 맞바꾸는 것은 오히려 노동자들 사이에서 노조에 대한 실망과 사기 저하를 낳아 결국 노조 조직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이렇게 노조 조직력이 약화되면 남은 해고자들의 복직은 더 요원해질 수 있다.
강제 전출 대상자와 해고자는 대부분 좀 더 투쟁적인 노조 운동가들이다. 그러나 이들의 이익을 위해 훨씬 더 광범한 노동자들의 조건을 악화시키는 합의를 한다면, 그것은 소수 투사들과 나머지 노동자 대중을 이간시키는 사용자 측의 농간에 놀아나는 것일 뿐이다.
이번 합의는 앞으로 사용자 측이 더 많은 양보를 노조에 강요할 수 있는 불리한 세력관계를 자초하는 어리석을 만큼 근시안적인 행위다. 노조 지도자들이 그토록 보존하고자 하는 노조 조직은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필요한 것인가? 그것은 그 자체로 목적인가?
해고당한 조합원들이 어려움을 감내해야 하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지만, 전체 철도 노동자들(또한 다른 모든 노동자들!)의 중·장기적 이익을 위해 불가피하게 자신들의 중·단기적 희생을 감수해야 할 때도 있는 것이다.
해고된 조합원들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더 광범한 노동자들의 조건 악화를 수용한다면, 중·장기적으로는 모두의 이익이 위험에 처할 것이다. 이런 ‘책임감’은 미시적이고 근시안적이며 온정주의에 불과한 것이다.
합의안을 부결시키는 것이 중요한 이유
김명환 집행부는 잠정합의안을 공개한 지 15시간 만에 전국확대쟁대위 투표 결과 가결을 공표하고(재적 1백56명 중 사고지부 및 불참 32명 / 기권 12명/ 찬성 83명 / 반대 29명), 8월 18일 서둘러 사측과 임금협약 및 보충협약을 체결했다.
이 과정에 현장 조합원들의 의견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잠정합의안 도출 후, 지방본부장들 대부분과 전국 지부장들 절반가량은 조합원들의 의사를 묻지 않고 찬성표를 던졌다.
지금에라도 조합원들은 총투표에서 이번 합의에 대한 거부를 표시해야 한다. 이번 합의로 노동조합이라는 조직 자체에 대한 광범한 불신과 환멸이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해 투사들은 이번 합의에 반대하고 집행부 불신을 제기해야 한다.
물론 안타깝게도 조합원들에게는 이 합의를 부결시켜 파기할 권리가 없다. 철도노조 규약 제59조에 따르면, ‘잠정합의안에 대해 확대쟁대위 의결’만 거치면 단체협약 체결이 가능하도록 돼 있다. 조합원들은 협약이 이미 체결된 후 그저 찬반의 입장만 표명해 지도부 신임 또는 불신임 여부만 결정할 수 있을 뿐이다. (이런 비민주적인 규약은 개정해야 한다. 조합원들의 임금 등 노동조건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협약 체결을 조합원들의 동의도 묻지 않고 할 수 있도록 하는 규약은 민주노조의 규약답지 않다.)
그러나 이미 협약이 체결돼 그 효력이 발생한 지금이라도 합의안 인준을 부결시키고 지도부 불신임을 이끌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노동자들의 조건을 악화시킬 이번 합의를 조합원들이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 줄 수 있다. 노동자들의 조건을 악화시키는 합의를 ‘조합원의 이름으로’ 합리화하도록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런 의사를 분명히 해야 이후 개악된 조건을 되돌리기 위한 투쟁을 건설하는 데도 유리하다.
또, 조합원들의 이해를 제대로 대변하지 않은 지도부를 불신임하는 것은 노동조합 민주주의에서 매우 중요하다.
물론 지난 몇 달 동안 철도 노동자들이 지치고 일부 사기저하 돼 지금 합의안 인준이 부결된다 해도 당장 분위기가 반전되기는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노동조합 민주주의 강화는 현장 조합원들의 활동력과 자신감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합의 수용 외에 대안이 없다는 비관주의는 조합원들을 사기저하로 내몰 뿐이다. 지금은 후퇴를 멈추고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전열을 정비해 사측과 정부의 공격에 대비해야 할 때다. 당장 하반기에 사측이 강요할 근속승진제 폐지, 임금피크제 도입, 평균임금 기준 축소 등 굵직한 추가 단협 개악이 줄줄이 남아 있다. 자회사 분할 민영화도 성큼 다가오고 있다.
이를 위해 철도노조 투사들은 합의안 총투표 부결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서울지방본부, 그리고 서울·제천·영주 등의 여러 지부장들과 활동가들은 이 합의안에 반대표를 던지자고 호소하고 있다. 더 많은 투사들이 총투표 부결 선동에 나서야 한다.
물론 집행부를 불신임하고 노조 규약을 민주적으로 개정하는 것이 만능은 아니다. 현장 조합원들의 자력 투쟁과 조직화가 가장 중요하다. 그러므로 합의안 총투표 부결, 지도부 불신임, 노조 규약 개정 등은 노동자들 자신의 활동과 투쟁성, 자신감 강화 등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물론 이 모든 일은 노동자 계급 전체의 이익과 사회의 근본적 변화를 위한 노동계급 정치조직 건설이라는 더 큰 목적 속에 자리 잡아야 훨씬 더 효과적으로 수행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