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TO가 농민을 죽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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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TO가 농민을 죽이고 있다”
“WTO가 농민을 죽인다.” 지난해 멕시코 칸쿤에서 이경해 씨가 자결하며 한 말이다.
이경해 씨의 죽음은 전 세계 농민들의 멍든 마음을 상징했다. 그러나 WTO는 여전히 전 세계의 가난한 농민들을 체계적으로 고통스럽게 하고 있다.
WTO의 규정대로라면 농업 보조금을 더 줄이고 시장 규제 장치들을 계속 없애야 한다.
그 동안 WTO는 ‘자유로운 농산물의 교역’, ‘전 세계의 소비자들이 좀더 값싼 농산물을 먹을 수 있는 자유를 주겠다.’며 위의 두 가지를 강요했다.
그러나 여기에는 강대국들의 위선적인 이중잣대가 적용된다. 강대국들의 농업 보조금은 WTO가 출범한 1995년 1천8백20억 달러에서 1997년 2천8백억 달러, 1998년에는 3천6백20억 달러로 엄청나게 늘었다. 2002년 유럽연합의 농업 보조금은 부유한 나라 전체가 가난한 나라에 지원해 준 원조 총액의 6배에 이른다.
지난 7월 말 WTO 일반이사회에서도 미국과 유럽연합은 개도국들에게 보조금 감축을 요구하면서 자신들은 블루박스라는 항목의 농업 보조를 유지했다.
이런 강대국들의 횡포는 WTO라는 괴물의 탄생과도 관련 있다.
농업은 WTO가 생겨나기 전에는 WTO 전신인 GATT의 권한 밖이었다. 미국은 자국산 설탕과 유제품 및 기타 농산물을 계속 보호하는 게 허용되지 않으면 GATT를 탈퇴하겠다고 위협했다.
그러나 1970년대 들어서자 문제는 달라졌다. 유럽이 농산물 수출국이 됐기 때문이다. 유럽연합과 미국 사이의 경쟁이 격화됐다. 그러나 양측이 서로 으르렁거리면서도 합의했던 한 가지 돌파구가 있었다. 새로운 농산물 수출 시장을 뚫는 것이 하나였다. 그리고 미국과 유럽연합의 농업 보조금은 금지하지 않는다는 협정(일명 영빈관 협정)을 맺었다.
더 중요한 것은 농업 보조금으로 모든 농민이 혜택을 받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농업 보조금의 진정한 수혜자들은 전 세계 곡물 수출의 약 60퍼센트를 차지하는 카길, 컨티넨탈, 루이드레퓌스, 분게, 아드레 같은 곡물 다국적기업이었다. 카길이 WTO 농업 협상 막후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기 때문에 WTO를 카길 위원회라 부른다.
미국의 농업무역정책연구소에 따르면 북미 농민들은 특정 상품 가격 1달러당 겨우 4센트를 번다. 그러나 정부는 1달러당 20센트, 소매상은 21센트, 중개인과 거래업체, 선적회사 등이 29센트를 번다.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모두 단일한 이해 관계를 가진 것은 아니다. 농업에도 계급이 있다. 이것은 브라질과 인도 같은 G20 국가에서도 마찬가지다. 인도의 트리베니, 발람푸르, 치니 밀즈 같은 곡물 다국적기업들과 브라질의 1퍼센트도 안 되는 대농장주들은 관세 감축 같은 시장 규제 조치 해제 덕분에 더 많은 농산물들을 팔아 이득을 챙긴다. 그러나 대다수 가난한 농민들은 도산하고 파산한다.
WTO 폐지
그러나 정부가 협상력을 잘 발휘하고 WTO 내의 개도국 우대 같은 조항들을 잘 활용하면 어떨까?
실제 WTO 내에는 개도국을 위한 문구들이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을 제외한 농업 수출국들(캐나다·칠레·브라질·아르헨티나·타이·남아공 등 18개국으로 이뤄진)은 “세계 경제 시장에서 저개발 국가가 겪는 특별한 구조적 고충을 인정한다.”는 구절을 농업 협정 등에 넣었다. 그러나 여기에 구체적인 의무 조항은 없다!
때때로 WTO를 마비시킨 데는 WTO 내 강대국들간의 갈등도 한몫 했지만 회담장 바깥에서의 시위와 WTO를 반대하는 대중 운동도 결정적 구실을 했다.
세계 부자들의 협잡과 탐욕, 부패를 통쾌하게 폭로해서 다국적 기업 경영진들이 “세계에서 가장 악독한 자”로 지명한 〈가디언〉 기자 그레그 팔라스트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나는 스티글리츠와의 대화를 통해 세계의 빈곤과 위기에 대한 해결책이 비교적 간단하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 즉, 그 해결책은 피를 빠는 자들을 제거하는 것이다.”
전 세계에서 8억 명이 굶주리고 있고 해마다 3천6백만 명이 기아로 죽어가고 있으며 한 시간에 4천 명꼴로 굶고 있다. 반면, 선진국 내에서는 과잉생산된 농산물이 넘쳐 난다.
이 체계적인 낭비와 비효율을 어떻게 제거할 수 있을까? 다국적기업의 배 불리기에만 여념이 없는 WTO 같은 기구들을 폐지하는 것이 그 한 방법이다.
김어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