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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퇴진 운동 2023~24년 팔레스타인 투쟁과 중동 트럼프 2기 이주민·난민 우크라이나 전쟁

상반기 파병 반대 운동 평가와 전망

김선일 씨 피살을 계기로 떠올랐던 파병 반대 운동이 잠시 소강 상태로 접어들고, 자이툰 부대 파병을 실제 저지하지 못한 점 때문에 반전 운동 일각에서는 사기 저하해 있는 듯하다.

그러나 한국 지배계급이 강력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이라크 파병을 비교적 소규모인 반전 운동이 단기간에 저지하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국의 반전 운동은 아직 유년기이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이미 1968년을 전후로 대중적인 베트남 반전 운동을 건설한 바 있다. 그러나 한국 반전 운동은 9·11 이후에 등장해 이제 고작 3년의 경험을 했을 뿐이다.

더 큰 그림으로 보자면, 지난 상반기 한국의 파병 반대 운동은 굴곡을 겪으면서도 대체로 성장해 왔다고 볼 수 있다.

3월 20일 국제반전공동행동 시위에 1만 명, 김선일 씨 피살 직후 6월 26일 시위에는 1만 5천 명 가량이 참가했다. 작년 2월 15일 시위에 비하면 1년 반 만에 3배 이상 규모가 늘어난 것이다.

한국의 파병 반대 운동이 대체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의 이라크 점령 상황 악화가 반전 운동에 지속적인 자양분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4월 말 팔루자 학살과 5월 초 아부 그라이브 감옥 고문·학대 폭로는 미국의 이라크 점령의 허구성을 낱낱이 드러냈다. 4월의 팔루자·나자프 저항을 비롯해 6월 말 기만적 ‘주권 이양’ 후에도 이라크인들의 저항은 전국적으로 더 확대됐다.

이 때문에 지난해 5월 1일 의기 양양하게 승전을 선포했던 조지 부시는 올해 5월 1일에는 “여전히 이라크에서 계속되는 도전에 직면해 있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라크 점령의 위기가 한국군 파병의 정당성 위기도 가져왔다. 이 때문에 한국에서도 높은 반전·반파병 여론이 지속될 수 있었다.

그러나 높은 반전 여론만큼 행동 규모가 뒷받침된 것은 아니다. 우선, 객관적 한계가 존재했다.

반전 운동 경험의 일천함, 노무현에 대한 대중의 혼란된 생각, 미국 압력론과 국익론, 이라크 저항 세력에 대한 양비론 등이 대중이 행동으로 나서는 것을 주저하게 만든 요인들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을 객관적 한계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파병 반대 운동 지도부가 반전 운동에 내재한 난점들을 극복하기에 적절한 방식으로 운동을 건설해 왔는지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파병반대국민행동(이하 국민행동)의 지도부인 주요 시민단체들은 그 동안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을 회피하고 좌파 민족주의 단체들은 이를 추수했다.

가령 지난 5월 아부 그라이브 고문·학대 사건이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을 때, 국민행동 지도부는 “국회의원 당선자 면담”, “범국민 청원 운동”, “[파병]정책 감사 요청” 등 정치권을 “설득”하는 데에 활동의 초점을 맞췄다. “[국회]내부에서 파병안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자는 것이었다(참여연대 이태호 정책실장).

소규모 농성을 하기는 했으나 대중 시위 조직을 부차적인 것으로 취급해, 심지어 국민행동 가입 단체 수보다도 적은 인원이 집회에 참가하는 민망한 경우도 있었다.

국민행동 지도부는 6월 13일 세계경제포럼 동아시아정상회의 항의 시위에 파병 반대 집회를 결합시키는 것도 회피했다. 이 날 행동은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저항하는 행동이었다.

파병 반대 행동을 반신자유주의 행동과 결합시킨다면, 한국에서도 반전 운동의 반제국주의적 성격을 강화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러나 국민행동 지도부는 6월 13일 행동에 결합해 정부와의 정면 충돌을 꺼린 나머지(반신자유주의는 소위 “국민적 쟁점”이 아니라는 논리), 13일 행동과 분리해 12일에 파병 반대 집회를 개최했다.

국민행동 지도부의 이와 같은 정치적 태도는 반전 운동의 대중성과 급진성을 강화하는 데에 주요한 약점으로 작용했다.

6월 중순 노무현과 정치권은 반전 운동 일각의 기대에도 불구하고 파병 강행 입장을 재확인했다. 파병 반대 운동은 뒤통수 맞은 격이었다.

이 와중에 그 동안 한국의 반전 운동이 경고했던 바가 현실로 나타났다. 6월 말 정부의 파병 방침 재확인 때문에 무고한 노동자 김선일 씨가 이라크 저항세력에 납치·살해됐다.

김선일 씨 피랍 직후, 순식간에 항의 시위가 분출했다. 시위에 참가한 대중은 상당히 격앙됐다. 첫날부터 노무현 퇴진 구호가 등장했다. ‘김선일 씨가 살해된다면 [노무현은] 정말로 국민에 의해 탄핵될 것’이라는 생각이 상당한 공감을 얻었다.

그러나, “한국군은 제발 나가라”는 김선일 씨의 절절한 호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노무현은 “파병 방침 변함 없을 것”이라는 냉혹한 태도를 취함으로써 김선일 씨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

김선일 씨 부모는 “정부가 내 아들을 죽였다”고 오열했다. “누가 이 정부를 믿고 따를 수 있겠는가” 하는 정서가 팽배했다. 당연히 파병 반대 운동은 노무현에게 비판의 과녁을 맞춰야 했다.

하지만 국민행동 지도부는 김선일 씨 피살 이후부터 시위를 급속히 읍소형 추모 집회로 변경했다. 6월 26일 집회 사회자는 김선일 씨를 죽음으로 몰고 간 장본인에게 “대통령님, 국민들의 목숨을 살려 주십시오.” 하고 읍소했고, 빗속에서 진행된 7월 3일 집회는 3분의 2 가량이 추모 공연이었다.

일부 연사들은 노무현 책임론을 물타기 위해 미국 책임론을 들고 나왔다. 최민희 민언련 사무총장은 “과연 지금 이 사안을 놓고 주된 타겟을 노무현 대통령에 두어야 하는가. … 정치적으로 미국의 책임이 가장 크다.”하고 말했다.

그는 “미국이 이번 사건을 몰랐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주로 미국의 진상 은폐 의혹을 제기했다.

노무현에게 분명한 책임을 묻지 않는 것은 선진 대중의 분노와 투지를 억눌렀다. 김선일 씨 장례식이 끝난 뒤 추모 위주의 집회는 더는 의미가 없어졌다. 당연히 투쟁은 급속히 사그라들었다.

7월과 8월에는 민주노동당을 중심으로 단식 투쟁이 전개됐고, 파병 부대 실제 출국을 막기 위한 투쟁이 있었다. 그러나 투쟁의 호기를 놓치고 난 뒤, 고립된 상태에서 소수가 벌이는 투쟁이 실제 파병을 저지할 리 만무했다.

하지만 파병 반대 운동은 끝나지 않았다. 한국군 파병과 그 근원인 이라크 점령 상황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 파병 한국군 철수를 요구하며 더욱 끈질기게 대중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그 동안 파병 반대 운동 지도부는 노무현과 정면으로 맞서는 것을 회피해 왔는데, 이 때문에 대중 행동보다는 소수 지도부의 행동 - 기자회견, 단식, 농성 등 - 을 선호해 왔다.

그러다 김선일 국면 같은 특정 계기가 발생하면 대중의 의식과 투지의 자생적 성장에 비해 지도력이 뒤처지는 현상이 벌어졌다. 이 때문에 파병 반대 운동이 힘차게 전진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그런데도 파병 반대 운동 내 주요 단체들은 파병 반대 운동을 근시안적으로 접근하다보니, 운동이 소강 상태에 접어들자 예전과 마찬가지로 운동의 방향을 다른 데로 돌리려 한다.

최근 반전 운동 일각에서 반전 운동의 관심을 이라크가 아니라 한반도로 전환해야 한다든가, 지금은 국가보안법 철폐 투쟁에 ‘올인’해야 하므로 반전 운동은 잠시 미뤄 두자는 분위기가 엿보인다.

그러나 이라크 점령 문제가 세계 정치의 핵심 고리이듯이, 마찬가지로 파병 문제는 한국 정치에서 당분간 핵심 쟁점이 될 것이다.

한국 정부가 이라크 점령에 협조하는 것 때문에 한국에서도 테러 위협이 높아지고 있다. 정부는 언론을 통제해 파병 부대 소식을 감추고 있지만, 만약 파병 부대에서 사상자가 발생해 그 소식이 알려질 경우 파병 반대 여론은 더욱 강화될 것이다.

게다가 노무현은 올해 말 파병연장동의안을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파병 반대 운동도 미리부터 전투 준비를 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연장안이 상정되기 전부터 능동적이고 계획적인 선동을 통해 반전 여론을 아래로부터 대중 행동으로 끌어 내야 한다.

베트남 전쟁을 종식시킨 미국의 반전 운동도 하루아침에 수십만 명 규모로 성장한 것이 아니다. 수백 명 규모에서 수십만 명 규모로 성장하기까지 미국이 베트남 전에서 겪은 군사적·정치적 위기뿐 아니라, 반전 활동가들의 의식적이고 능동적인 노력 - 캠페인, 토론회, 거리 시위, 대학 점거 등 - 이 중요한 구실을 했다.

우리의 경우도 마찬가지 교훈이 적용돼야 한다. 한국군 파병이 강행됐음에도 여전히 반전·반파병 여론이 높다는 점은 운동의 자양분이 여전히 풍부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럴 때 반전 운동은 대중 행동에 초점을 맞추면서 긴 안목으로 차근차근 운동을 건설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전 세계의 압도적인 반부시 정서를 결집할 10월 17일 국제공동반전행동은 국제 반전 운동이 다시 도약하는 중요한 디딤돌이 될 것이다. 한국의 반전 활동가들도 이 행동을 파병 반대 투쟁의 동력을 재결집하는 기회로 삼는다면, 향후 파병 반대 투쟁은 더 나은 조건에서 전진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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