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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민영화, 저지와 허용의 대차대조표

박근혜 정부는 2013년 12월 4차 투자 활성화 대책, 2014년 2월 경제발전 3개년 계획, 8월 6차 투자 활성화 대책에서 의료 민영화 정책을 발표했다. 핵심 골자는 원격진료, 영리병원 설립과 기존병원의 영리화(영리자회사, 대학병원 기술지주회사, 부대사업 확대 등), 법인약국, 의료법인 인수합병으로 요약할 수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악명 높은 미국 의료 모델을 따르려 하는 것이다.

박근혜는 병원 노동자들의 사기와 자신감이 충분하지 않은 때에 의료 민영화를 신속하게 밀어붙이려 한다. 또 국회 통과 절차에 걸리는 시간과 논란을 줄이려고 현행 의료법에서 금지한 부대사업 확대 조처를 시행규칙 개정이라는 꼼수를 써가며 풀어 주기도 했다.

박근혜는 지난해에 이 중 일부 정책들을 강행했고 올해에 남은 과제들을 계속 추진하려 한다. 올해의 코드명은 ‘규제 단두대(기요틴)’이다. 박근혜가 여전히 의료 민영화에 열을 올리는 것은 자본가들의 이윤 추구에 장애가 되는 핵심 규제들이 남아 있다는 뜻이다.

박근혜 정부의 올해 코드명은 ‘규제 단두대’ 앞으로도 의료 민영화 반대 투쟁은 계속돼야 한다. 2014년 6월 보건의료노조 1차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들. ⓒ조승진

지난해, 보건의료노조와 의료연대본부의 네 차례 파업은 정부의 의료 민영화 정책을 일단 막거나 꼬이게 했다. 의료민영화저지범국본도 병원 노동자들의 자신감을 높이고 의료 민영화에 반대하는 여론을 확산시키는 데 일정한 구실을 했다. 병원 노동자들은 올해에도 의료 민영화에 맞서는 한편 공무원연금·사학연금 개악과 공공부문 2차 ‘정상화’에 맞선 투쟁을 예고하고 있다. 특히 서울대병원노조와 경북대병원노조가 민주노총의 4월 총파업에 동참하기로 했다.

한편, 박근혜가 국회의 핵심 기능인 입법 절차를 무시하고 보건복지부 가이드라인 제정 등으로 개악을 밀어붙이는데도 새정치연합은 제대로 된 항의 한번 못했다. 심지어 각종 규제를 풀어 서비스 산업을 민영화하는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상정에 동의해 주기도 했다. 따라서 앞으로도 새정치연합에 의존하지 말고 의료 민영화 반대 투쟁을 계속해야 한다.

의료 관광 ― 의료 민영화를 위한 시험대

의료 민영화는 이미 2000년대 중반 삼성경제연구소가 대략의 계획을 제시한 바 있고 노무현과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한결같이 추진돼 왔다. 박근혜 정부가 이전 정부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이런 정책을 ‘의료 관광 활성화’라는 명분을 내세워 추진한다는 점이다. 의료 민영화에 대한 대중의 저항이 만만치 않은 한편 자본가들도 경제 위기와 규제(건강보험 등) 때문에 투자를 망설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 성장 가능성이 엿보이는 의료 관광 분야에서 민영화를 적용해 장차 그 모델을 국내외로 확대해 나가려는 듯하다.

예컨대, 원격진료는 아직 세계적으로도 적용 사례가 없다. 그리고 여러 가지 한계 때문에 그 효용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그런데 안정성과 효과는 자본가들에게도 중요한 문제다.

그러나 성공 가능성이 보인다면 첨단 의료기기와 스마트 기기들, 통신망 등 제조업과 서비스업 등 다양한 산업에서 수출도 크게 늘릴 수 있다. 삼성전자가 이를 위한 준비를 해 온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의료 관광은 여행(진료) 기간이 제한돼 있다는 점 때문에 원격진료를 시험해 볼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니 영리병원을 운영하는 셈이기도 하고 민간보험도 새로운 시장을 확보하는 셈이다. 외국 병원이나 의료진이 내국인 혹은 국내 거주 외국인을 진료하는 체계로 확장할 수도 있다. 이는 여전히 실현되지 않고 있는 경제자유구역 내 외국인(영리) 병원의 운영 모델이 될 수도 있다.

이처럼 의료 관광은 그 자체로 성장 가능성이 보이는 데다 의료 민영화를 추진하는 데 그럴듯한 명분을 줄 수 있다. 특히 원격의료는 다른 부문의 자본가들에게도 투자 여부를 결정하는 중요한 시험대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박근혜 정부가 4차 투자활성화 대책을 발표한 뒤 가장 먼저 원격진료를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려 한 듯하다. 심지어 전통적으로 친여 성향인 의사협회와 충돌도 불사하면서 원격의료를 밀어붙였다.

원격진료 허용 ― 국회 계류 중, 시범사업 확대 진행

이 개정안은 아직 국회에 계류 중이다. 2014년 초에 정부는 노동자들이 투쟁 채비를 채 갖추기 전에 밀어붙이려 했지만, 의사협회와 특히 대형병원 전공의들의 반발에 밀려 시행 시기를 미뤄야 했다. 2014년 3월 이후 의사협회는 정부의 회유책에 휘둘려 우왕좌왕하고 분열했다. 그러나 의료민영화저지범국본이 이들과는 독립적으로 원격진료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며 법안 처리 시기를 계속 지연시켜 왔다.

정부는 최근 법안 처리를 서두르기보다는 시범사업을 계속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올해 4월 시범사업 기간이 끝난다). 여전히 의료 민영화 반대 여론이 크고 원격진료가 그 상징처럼 돼 있어 눈치를 보는 듯하다.

의사협회가 2014년 9월 이후 시작된 시범사업을 집단적으로 거부한 것 때문에 시범사업의 규모와 내용이 부족한 것도 문제가 됐을 것이다.

그러나 원격진료가 다른 의료 민영화 정책 추진에 끼칠 영향을 고려하면 정부는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를 관철하려 할 것이다. 따라서 원격진료 허용에 반대하는 운동은 계속돼야 한다.

경제자유구역 내 영리병원 허용 ― 여전히 성공 사례 없음

제주도에 싼얼병원을 유치하려던 계획은 완전히 엉터리였음이 폭로되며 무산됐다. 이는 의료 민영화 저지 투쟁이 거둔 중요한 성과 중 하나다.

여러 가지 특혜에도 자본가들이 경제자유구역 내 영리병원 투자에 뛰어들지 않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어 보인다.

핵심은 경제자유구역 자체가 활성화되지 않은 것이다. 경제자유구역에 거주하는 내국인들을 대상으로 하기에는 시장의 협소함과 건강보험제도 등 여전히 걸림돌이 남아 있다. 그 지역에 거주하거나 여행을 온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하기에는 진료 기간, 보험 등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과제들이 남아 있다. 정부는 의료 관광 활성화를 명분으로 이런 과제들을 해결해 나가려 하는 듯하다.

기존 병원들의 영리화 확대 ― 허용됐지만 다시 쟁점이 될 수 있음

영리 자회사는 가이드라인 제정으로 허용됐지만 아직 신청한 의료법인이 두 곳밖에 안 된다. 정부는 몇 가지 기준을 충족한 의료법인(성실공익법인)에만 영리 자회사 설립을 허용하기로 했는데, 이 규정도 완화하려 한다.

한편 여전히 병원 외부 투자자가 병원 자회사에 투자해 이윤을 가져가는 데는 법적인 제약이 남아 있는 듯하다. 〈한국경제〉 등은 정부가 이를 위해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제정을 서두르고 있다고 보도했다.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에는 정부가 서비스 산업 활성화에 필요한 민간 투자 ‘활성화’를 용이하게 해 주는 포괄적 조항이 담겨 있다. 따라서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제정을 막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특히 새정치민주연합이 이 법안 상정을 거들었고 몇 가지 단서를 달아 통과시키려 하는 만큼 경계해야 한다.

부대사업 범위 확대는 메디텔 등 의료 관광 관련 부대사업에서 규제가 많이 완화됐지만, 애초 계획 중 일부는 보류됐다. 부대사업 범위를 무한정 늘려 주려던 조처는 의료법 위반 논란 끝에 몇 가지로 제한됐다. 많은 병원들이 눈독을 들였을 건강기능식품 판매업도 빠졌다. 그럼에도 박근혜 정부는 이 항목을 건강기능식품 ‘개발’로 바꿔 의료법 개정안에 반영하려 한다.

대학병원 기술지주회사 설립 허용은 2014년 8월 6차 투자활성화 대책에서 발표됐는데 이는 의료 민영화 반대 운동이 정부의 영리 자회사 허용 논리에 효과적으로 대응한 결과이기도 했다. 서울대병원 노조의 파업으로 헬스커넥트 등 기존 대학병원들의 자회사 설립에 제동이 걸리고 국회입법조사처에서도 의료법 위반이라는 입장을 내놓자 정부는 산학협력법의 유권해석을 바꿔서라도 합법성을 부여하려 한다.

대학병원들의 기술지주회사 설립은 영리 자회사 설립의 교본이 될 공산이 크다. 특히 이 기술지주회사들이 의약품과 의료 기술에 특허를 내 수익을 얻으려 하는 만큼 전체 의료비 상승을 이끄는 주범이 될 것 같다.

신의료기술 평가 기준 완화와 임상시험 활성화 ― 현재 진행 중

식약처 고시 개정으로 규제를 완화한 경우다. 절차가 간단하다 보니 이미 많이 진행된 듯하다. 6차 투자활성화 대책에서 발표한 내용인데 지난해부터 지하철 광고판에 부쩍 늘어난 임상시험 광고가 이를 잘 보여 준다.

인수합병 허용 ― 국회 계류 중

2014년 10월에 입안돼 12월에 의원입법 형태로 발의됐는데 아직 보건복지위원회 소위원회에 상정되지 않은 상태다. 사실상 재벌 병원들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이 잘 드러나는 데다 노동자들의 일자리 문제와 직결돼 있어 이 조처가 국회에 상정될 경우 논란을 피하기가 쉽지 않다.

국내보험사의 외국인 환자 소개·유치·알선 ― 국회 계류 중

이 의료법 개정안은 2013년 5월 31일 정부가 국회에 회부했지만 아직 소위원회에 상정되지 않았다. 이 조처는 장차 병원들이 민간보험과 계약을 통해 거대 의료기업으로 나아가는 통로 구실을 할 수 있다. 정부는 이를 외국인 환자 유치를 위해 허용하겠다지만 한미FTA 등의 규제 완화 조처 때문에 내국인에게 확대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