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1주기와 산재 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
노동자를 이윤을 위한 부속품 취급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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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세월호 참사 이후 “제2의 세월호를 막자”는 호소를 가장 많이, 가장 목소리 높여 한 사람들은 노동자들일 것이다. 세월호 참사와 똑같은 일들이 작업장에서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4월 3일 현대제철 인천 공장에서 40대 노동자가 쇳물이 섭씨 2천 도로 끓는 용광로에 떨어져 숨졌다. 한 가정의 가장이었을 이 노동자는 죽어서 시신으로도 가족 품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노조 조사 결과, 쇠볼·호스 등이 널려 있어 미끄러지기 쉬운 작업 공간에 안전 난간도 없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정규직이 이런 처지니, 하청 노동자는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국내에서는 포스코 다음이고, 이제는 현대하이스코와 합병해 자산 31조 원, 매출 20조 원으로 세계 철강업계 10위권에 든다는 기업에서 벌어진 일이다. 현대제철의 인천공장에서는 지난 3년간 18명이, 당진공장에서는 4년간 건설 노동자를 포함해 스무 명 남짓한 노동자들이 사망했다. 현대제철은 지난해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등이 선정한 ‘2014년 제조 부문 살인 기업’이었다.
그런데 더 어이 없는 사실은 ‘산재사망 대책 마련을 위한 공동 캠페인단’(민주노총, 한국노총, 노동건강연대, 매일노동뉴스, 세월호 국민대책위 존엄안전위원회로 구성)이 올해 선정한 ‘10년간 최악의 살인 기업’에 현대제철은 후보에도 끼지 못했다는 것이다. 뛰는 살인 기업 위에 나는 살인 기업이 있었던 것이다.
노동자 살인 기업
최악의 노동자 살인 기업 후보 5곳은 삼성전자, 현대중공업, 현대건설, 우정사업본부(우체국), 코레일이었다. 한국 최대 기업들과 정부기관, 대표 공기업이 망라돼 있다. 이 중 10년간 가장 많은 노동자를 현장에서 죽게 한 기업은 현대건설(1백10명)이고, 4월 14일 발표한 시민 투표 결과로는 삼성전자가 최악의 노동자 살인 기업으로 꼽혔다.
자기 몸이 왜 암 따위에 걸렸는지도 모르고 죽어 간 반도체 공장의 젊은 노동자들, 산재를 숨기려고 11톤 철판에 깔려도 119 구급차가 아니라 트럭으로 병원에 실려 간 현대중공업 노동자들, 심한 날은 하루 16시간을 배달하다 과로로 쓰러졌거나 지쳐서 부주의해지는 순간 일어난 교통사고로 죽고 다치는 우편 노동자들, 인력 감축으로 신호수가 없어서 철로 보수 중에 철도 차량에 치어 죽는 철도 노동자들 등등.(최근 나온 르포 《노동자, 쓰러지다》(희정, 오월의 봄)가 이런 사례와 문제점들을 잘 다루고 있다.)
돈도 많고 최신 설비를 갖춘 세계적 대기업들과 정부 기관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것은 돈이 없는 문제가 아니라 사회 운영의 문제라는 것을 보여 준다.
세계에서 작업장 사고, 과로 등 산재로 사망하는 노동자는 하루에 6천 명가량이다. 1년에 2백만 명이 넘는다. 한국은 해마다 평균 2천여 명이 산재로 죽는다. 4시간 20분마다 한 명 꼴이다.
이 섬찟한 사망 규모를 설명하려면 노동자를 이윤을 위한 수단(착취 대상)으로 여기는 자본주의 자체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밖에 없다. 앞서 든 사례들도 모두 이윤을 위해 비용을 최대한 줄여 노동자를 더 많이 쥐어짜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들이다. 어디에서나 자본은 ‘이윤보다 인간’이라는 가치에 코웃음을 친다.
국가라고 별반 다를 게 없다. 경제 규모가 세계 10위권인 한국의 정부 예산 중 안전 예산은 1퍼센트도 안 된다. 심지어 (다른 이도 아닌) 소방대원의 안전장갑 구입 예산이 1년에 1인당 한 켤레밖에 안 된다. 소방대원들이 자비로 장갑을 구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윤이 최우선인 체제에서 안전을 위한 비용은 줄이면 줄일수록 좋은 ‘기회비용’으로 간주된다. 노동자가 살아서나 죽어서나 부속품 취급을 받는 것은 이 미친 우선순위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가 그랬듯이 산재 사망도 단지 우연한 불행이 아니다.
결국 사고가 발생하면 노동자는 죽어 나가고 기업들은 사고를 은폐·축소하기에 바쁘다. 정부는 되도록 이런 은폐를 눈감아 준다.
육지의 세월호
예를 들어, 한국은 다른 나라와 비교해 부상 비율은 낮고 사망률은 훨씬 높다. 산재사망률이 OECD 1위다. 한국만 유별나게 목숨 걸고 위험하게 일하는 걸 즐기는 나라가 아닌 바에야 이런 통계는 의심스럽다. 진실은 이렇다. 부상 재해를 은폐하고 신고하지 않는 것이다.
2013년 국정감사에서 드러난 대기업들의 ‘산재 은폐 매뉴얼’에는 ‘경상자는 어떠한 경우라도 2일 이상 병원 처리 안 된다’, ‘회사가 지정한 특정 병원에서 치료받게 하고 업체 비용으로 처리할 것’ 등이 명시돼 있다. 이딴 식으로 삼성물산은 5년간 6백22억 원, 삼성전자는 5백97억 원, 현대중공업은 8백52억 원, 현대자동차는 5백40억 원의 산재보험료를 감면 받았다.(《노동자, 쓰러지다》)
4백10억 원을 감면받은 롯데건설은 지난해 서울 제2롯데월드 건설 현장에서 산재 신고를 피하려고 119 구급차를 거부하고 미리 입을 맞춘 특정 병원 구급차를 부르는 바람에 시간이 지연돼 ‘살릴 수도 있었던’ 노동자를 죽게 한 바 있다.
건설 노동자를 그토록 경시한 현대제철과 롯데건설이 그렇게 지어진 공장과 빌딩에서 노동자와 이용객들의 안전을 우선순위에 놓을 것이라 기대하기 어렵다. 실제로 ‘사고 월드’라는 별칭이 붙은 제2롯데월드에서는 싱크홀 의혹은 물론이고 건물 균열, 수족관 누수, 이용객이 문에 깔리는 사고 등 부실 시공 문제가 여전하다. 심지어 롯데 측은 출입문이 떨어져 깔린 이용객마저 119에 신고하지 않고 자체 지정 병원으로 데려갔다!
유독 가스 등 화학 제품을 취급하는 공장도 다르지 않다. 이런 공장은 노동자는 물론 인근 지역에도 얼마나 위험한 물품이 취급되는 곳인지 알려야 하고 사고 대비 매뉴얼이 실제로 적용 가능하도록 준비돼 있어야 한다.
경북 구미 불산가스 누출 때는 소방대가 단순 화재로 알아 물 뿌리며 대응하다가 막상 가스 밸브를 잠근 것은 사고 8시간이 지나서였다. 이웃한 다른 공장 노동자들은 대피보다 계속 일할 것을 강요 받았다. 이런 일들은 기업이 비용을 아끼려 위험과 사고를 은폐하기 때문에 더 빈번해진다. 삼성, 빙그레 같은 기업들은 노동자가 죽고 나서야 독성 화학 가스가 유출된 것을 당국에 신고했다.
이처럼 산재 사망은 기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으로 볼 수 있다. 기업살인법을 만들자는 노동운동의 요구는 정당하다. 세월호 참사 책임자들에게 살인죄를 적용하라는 것처럼 말이다. 이밖에도 공익 제보자 보호, 노동자들의 작업중지권 보장 등이 필요한 것들이다.
일하는 노동자에게 안전한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안전하다. 병원, 학교, 어린이집 등은 노동자 심신의 건강과 안전이 공공서비스 이용자의 안전과 직결된다. 버스와 지하철을 운전하는 노동자들도 마찬가지다. 일하는 시간이 줄어 충분히 쉴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임금이 충분해야 한다. 또한 인격적 대우가 보장돼야 한다. 노동자를 대놓고 부속품, 노예 취급하는 것은 금지돼야 한다.
그런데 박근혜는 안전 규제마저 “쳐부술 원수”로 보는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이나 노동자들이 일터에서의 위험에 더 노출되게 만들 ‘해고 요건 완화’, ‘임금 삭감’ 따위를 밀어붙이려 한다. 전경련, 경총 등은 이런 박근혜 정부를 지지한다.
결국 자본가들에게는 ‘우리 모두를 위한 안전 투자’ 같은 것은 안중에 없는 것이다. 그 대신 노동계급과 피억압 민중이 세월호를 포함해 곳곳에서 갖은 위험을 떠안도록 내몰고 있다. 그래서 사회 운영의 우선순위 문제('안전이냐 이윤이냐')는 계급 문제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진짜 안전 사회를 이루려면 자본의 이윤에 타격을 가할 수 있는 조직 노동계급이 앞장서야 한다. 그 힘만이 국가에게도 진정으로 도전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노동계급 대다수를 단결시킬 수 있다면, 이윤보다 인간을 위한 사회를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