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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 파괴자, 집단폭행 사주자:
이경훈 지부장은 노동계 지도자의 일원 자격 없다

이경훈 현대차지부 집행부가 백주대낮에 집회 연단에서 민주노총울산투쟁본부 총파업승리 지역실천단장에게 집단 린치를 가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4월 24일 울산 총파업 집회에서 허수영 지역실천단장은 이경훈 집행부의 파업 철회를 비판하며 “이경훈 지부장님, 노조 위원장 자격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고 연설했다.

이경훈 집행부는 연단을 향해 물병을 던지며 난동을 부렸다. 이경훈 지부장은 위협적으로 무대 앞까지 뛰어나왔고, 상집 간부 열댓 명은 무대 위로 뛰어올라가 허 단장의 마이크를 뺏고는 그를 밀치며 목을 가격했다. 결국 허 단장은 그 자리에 쓰러졌고, 구급차에 실려 가 병원에 입원했다.

그런데도 이경훈 지부장은 4월 28일 성명을 발표해, 이번 사건은 “현대차지부 비하 발언 속에서 발생된 사태”이며, 민주노총의 4·24 총파업 자체가 부당했다고 책임을 떠넘겼다. 사과는커녕 적반하장 격으로 폭행을 정당화하고, 민주노총 총파업을 다시금 비난한 것이다.

△집단 폭행으로 쓰러진 허수영 지역실천단장.

비판을 물리력으로 억압하는 권위주의자

이경훈 지부장은 ‘지역실천단장의 발언이 문제’였다는 식으로 사태의 책임을 떠넘겼다. 비판자는 맞아도 싸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잘못된 주장일지라도 말로 한 주장을 폭력으로 제압하려 해서는 안 된다. 이는 민주적 토론과 논쟁을 가로막는 반민주적 행위다.

그런데 허수영 지역실천단장의 발언은 잘못된 주장이기는커녕, 이경훈 지부장의 파업 파괴 행위에 대한 필요한 비판이었다.

민주노총 조합원들도 이경훈 지부장이 “억지 파업”이라며 4·24 총파업의 정당성을 깎아내린 것에 불만이 많았다. 그래서 허 단장이 ‘이경훈 지부장은 지부장 자격이 없다’고 말했을 때 집회 참가자들은 많은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사실 이경훈 지부장은 전에 그 자신이 사회단체 활동가를 폭행한 적이 있었다. 2010년 현대차 비정규직지회의 점거파업 당시, 연대한 활동가를 감금 폭행한 뒤 농성장에서 내쫓았다.

당시 피해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경훈 지부장이 단 둘이 있는 상태에서 문을 닫아 놓고 쌍욕을 하며 때리기 시작했다. 목을 누르고 뺨을 때리고 목이 제압된 상태에서 10여 분을 계속 맞았다. 한참 때리고 나서 ‘무릎 꿇어라 눈 깔아라. 니가 공장 생활 한 번이라도 해 봤냐? 너 어느 학교 나왔냐? 외부세력이, 공장 생활도 안 해 본 놈들이 지회 조합원들을 부추기느냐? 배후세력 때문에 지회가 자기 의견을 이야기 못 한다’고 말했다.”

당시 이경훈 지부장은 이런 무지막지한 폭행을 저지르고도 공개 사과도 하지 않았고, 아무런 징계도 받지 않았다. 바로 이렇게, 범행을 저지르고도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었기에 몇 년 뒤 버젓이 지부장에 다시 당선했고, 또 이번에 지역실천단장을 백주대낮에, 수천 노동자가 보는 앞에서, 노동운동의 공식 연단 위에서 부하들이 폭행하도록 교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번에는 이런 일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 민주노조 운동은 결코 이경훈 집행부의 집단 폭행을 묵과해서는 안 된다. 이경훈 지부장은 공개 사과하고, 이 사건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 금속노조는 폭행 교사자 이경훈 지부장과 폭행 당사자들을 징계해야 한다.

총파업 행동 통일을 거부한 무규율한 자

이경훈 지부장은 4·24 총파업이 “억지”였다고 주장한다. 민주노총 조합원 27만 명이 “억지”를 썼다는 얘기다. 노사정위 결렬로 박근혜 정부의 공격이 늦춰졌으므로 파업할 이유가 없었고, 따라서 민주노총·금속노조의 파업 지침을 따르지 않아도 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노사정위 결렬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노동자 공격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는 5~6월 중 임금체계 개악과 해고요건 완화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5월부터 본격화하는 임단협에 반영할 수 있도록 개악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는 현대차 노동자들의 임금·노동조건·고용에도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문제다. 이런 개악과 삭감이 이미 공식적으로 결정된 뒤에야 비로소 항의성 파업을 벌이는 것은 효과가 없거나 기껏해야 반감된다.

더욱이, 민주노총은 일찌감치 투쟁에 시동을 걸며 선제 파업 조직에 나선 덕분에 한국노총의 노사정위 협상 결렬 선언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또, 세월호 참사 진실규명 운동과 성완종 게이트 같은 정부의 위기에도 이럭저럭 대응할 수 있었다.

따라서 이경훈 집행부의 4·24 총파업 비난이야말로 정당화될 수 없다.

무엇보다 이경훈 지부장의 발언은 노동조합 민주주의의 전제인 행동 통일을 파괴한다는 점에서 초보적인 규율 위반이다. ‘노조가 파업을 결정하면, 그 전에 파업에 찬성했든 그렇지 않든 간에 모두 그 결정을 따른다’는 민주집중주의가 노동운동의 오랜 전통이다.

이경훈 지부장은 이런 전통을 깨고, 민주노총·금속노조 대의원대회와 조합원 투표까지 거쳐 결정한 단체행동에 동참하길 거부하며 “억지”라고 비난했다. ‘파업 파괴자(scab)’라는 말은 이런 자를 두고 하는 말이다.

민주집중주의

그는 ‘울산에선 전 조합원 대비 파업 지지율이 과반이 안 된다’는 이유를 들지만, 민주노총은 처음부터 지역별로 파업 가결 여부를 따지기로 한 게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치더라도 현대차지부 조합원의 과반이 파업을 지지했다는 점을 지적해야 한다. 이경훈 지부장은 이런 점은 말하지 않고, 자기 입맛에 맞는 수치만 들이대고 있는 것이다.

민주노총이나 금속노조는 현대차지부 같은 대규모 산하조직이 조합원들의 의사를 거슬러가며 제 멋대로 파업을 파괴하는 것을 그냥 묵인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앞으로도 유사한 일이 늘어날 것이고, 노동조합 조직의 결속력이 약해지고 단체행동이 무력화될 것이다.

이는 박근혜 정부와 사용자들이 바라는 바이기도 하다.

정부는 이미 2000년대 중반부터 노조의 권리와 “개인의 권리”를 대립시키며, “불법파업” 시 조합원 개인이 파업에 불참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혀 왔다. “개인의 권리”를 이유로 단체행동권을 무력화하려는 것이다. 이런 개인주의가 내부에서 강화되면 집단성만이 존재의 기반인 노동운동은 아예 존립 자체가 위태로워질 것이다.

따라서 이경훈 집행부의 파업 배반에 대한 비판은 노동자들의 단결과 단체행동권, 운동의 대의를 옹호하는 데에도 중요하다.

얼토당토않게 자신과 현대차지부를 동일시하기

이경훈 지부장은 허수영 지역실천단장이 “현대차지부를 비하·비난”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허 단장이 비판한 것은 현대차지부 자체나 그 조합원들이 아니다. 그는 이경훈 지부장을 정확히 꼬집어 비판했다. 이 비판은 집회에 참가한 현대차 조합원들의 지지를 받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경훈 집행부의 파업 거부는 현장조합원들의 의사가 아니었다. 현대차 조합원의 90퍼센트가 민주노총 총파업 투표에 참가했고, 과반이 파업에 찬성했다. 노조 확대운영위에서도 대의원대표, 위원회 의장 다수가 총파업에 동참하라고 촉구했다. 현장에선 대의원회·현장조직위원회 등이 4·24 총파업 동참 촉구 대자보를 연이어 발표했다.

이경훈 지부장이 파업 거부 입장을 밝힌 뒤에도 현대차 조합원들의 항의가 잇따랐다. 조합원 3백여 명이 4월 24일에도 현대차지부 사무실 앞에서 이경훈 집행부를 규탄하는 시위를 벌였다.

따라서 허 단장의 이경훈 집행부 비판은 현대차 조합원들에 대한 모욕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조합원들의 의사를 거슬러 파업을 철회하고 집단 폭행까지 저지른 이경훈 지부장이야말로 현대차지부 조합원들을 모욕(깔보고 욕되게)한 것이다.

노조/지부 집행부가 저지른 잘못이나 배신을 조합원들이 공동으로 책임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조합원들은 오히려 이런 집행부에 책임을 묻고 소환함으로써 조직의 기강을 바로 세워야 한다.

혹시나 노파심에서 하는 말이지만, 노조/지부 집행부가 잘못을 저질렀다 해서 노조/지부 전체를 도매금으로 매도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금속연맹은 2004년 비정규직 투쟁을 배신한 현대중공업 노조 지도부뿐 아니라, 아예 노조 전체를 민주노총에서 제명한 일이 있다. 이는 완전히 부적절한 결정이었다. 노조 전체를 민주노총에서 찍어냄으로써, 조합원들이 지도부를 교체하고 노조를 쇄신할 기회마저 빼앗은 것이다.

악질적인 성격의 파업 파괴 행위를 물타기하기

이경훈 집행부는 이번에 파업에 나서지 못한 노조들이 많다며 자신을 정당화했다. 물론 실제로 파업에 돌입하지 못한 노조들이 적지 않다. 그런 조직들이 이경훈 집행부처럼 노골적이고 뻔뻔스런 파업 파괴 행위를 한 건 아니다. 그래도 상당수가 총회, 간부 파업 등 다양한 방식으로 총파업 집회에 참가했다. 앞으로 이를 더 발전시켜 투쟁 수준을 높여 나아갈 숙제가 있다.

그러나 이경훈 집행부는 기층 조합원들이 싸울 의지를 보였는데도 이를 묵살하고 파업 거부 방침을 취했다.

현대차지부처럼 투쟁 전통이 있고 잘 조직된 노조는 전체 노동계급의 요구를 지지해 오히려 앞장서 싸워야 할 책무가 있다. 박근혜 정부가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결’을 말하며 대기업 정규직 노조와 비정규직·청년 사이를 이간질하는 상황에서, 현대차지부가 파업에 앞장서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경훈 같은 지도자들 때문에 부당하게도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이 청년들한테 욕을 먹는 것이다.

그 같은 투쟁은 현대차 노동자들의 임금·고용·노동조건을 지키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박근혜는 정몽구와 같은 재벌들의 노동 착취를 도우려고 노동시장 구조 개악을 밀어붙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경훈 지부장은 사용자들의 언론인 〈매일경제〉와 인터뷰까지 해 가며 민주노총 총파업을 “억지 파업”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아주 죄질이 나쁜 사보타지(파괴) 행위자인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4·24 총파업을 “불법파업”으로 규정하며 “엄벌”을 위협하고 사용자들의 언론이 파업의 정당성을 물어뜯고 있는 상황에서 민주노총의 오른팔이라는 조직의 ‘지도자’가 거의 구사대 비슷한 짓거리를 한 것이다.

단결을 비판 억압용 구호로 전락시키기

이경훈 지부장은 4월 28일 발표한 성명에서, “박근혜 정부에 대한 노동탄압 저지” 투쟁을 언급하며 “지금은 단결할 때”라고 말했다. 전체 파업 전선의 일각을 무너뜨리고도 모자라 그걸 공개 비난하고, 심지어 지역실천단장을 폭행한 그가 반성은커녕 “단결” 운운하며 자신에 대한 비판을 물리치려 하는 것이다.

그러나 “단결”을 말하는 바로 그 성명에서조차 4·24 총파업 거부가 정당했다고 강변하는 이경훈 집행부에게 도대체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바로 몇 달 전 현대차 불법파견에 면죄부를 준 8·18 신규채용 합의를 둘러싼 논란을 떠올려 보자. 당시 금속노조 중집은 이경훈 지부장에게 굴복해 8·18 합의를 사실상 인정해 주며, 투쟁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등에 비수를 꽂았다. 이에 대한 비판이 일자, 전규석 금속노조 위원장은 ‘더는 갈등을 지속하지 말고 박근혜 정부에 맞서 싸우자’고 호소했다. 금속노조의 많은 지도자들은 ‘미워도 현대차지부를 안고 갈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이런 배신을 보아넘겼다.

결국 이경훈 집행부는 힘을 합쳐 싸우기는커녕 4·24 총파업 전선을 크게 교란시키는 구실을 했다. 이경훈 집행부는 통상임금-임금체계 개악안을 제시한 현대차 사측에 맞서서도 당장 투쟁을 조직하기는커녕 협상장에 남아 거래를 저울질하고 있다. 당연히 많은 현장조합원들과 활동가들이 반발하고 있다.

이경훈 지부장은 당장 5~6월로 예고된 정부의 가이드라인 추진에 대해서도 “상위법을 넘을 수 없기에 [투쟁의] 시기를 재고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부 가이드라인·지침 공식 발표 시 총파업으로 이를 저지한다’는 금속노조 대의원대회 결의도 무시하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경훈 지부장의 잘못에 분명한 책임을 묻지 않고서는 앞으로 실질적인 투쟁은 기대하기 어렵다.

투쟁의 동력은 이경훈 지부장 같은 썩어빠진 관료가 아니라 현장조합원들한테서 나온다. 지금 현대차 조합원들은 총파업의 일각을 파괴하고, 사측과의 거래에 매달리며 통상임금-임금체계 개악 저지 투쟁을 회피하려 하고, 연대단체 활동가에 대한 폭행을 교사하기까지 한 이경훈 지부장에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조합원들의 불만을 모아 이경훈의 사퇴를 촉구하며, 독립적으로 투쟁을 할 준비를 해 나아가야만 향후 노동운동도 전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민주노총과 금속노조의 지도부들은 4월 24일 울산 집회에서 이경훈 집행부가 만행을 저질렀을 때 집회 참가자들이 일치단결해 이경훈 집행부에 항의하고 집회장 바깥으로 몰아낸 일의 정치적 의미를 알아야 한다. 그 자들이 민주노조 운동의 일부임을 부정한 것이다. 지도자들은 이러한 조합원 민주주의를 존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