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6 가족협의회 유경근 집행위원장:
“진상규명될 때까지, 부모의 마음으로 끝까지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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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4백 일입니다. 그동안 정부의 구조 방기, 특별법 누더기 통과, 최근 경찰의 물대포와 캡사이신 살포 등 참 많은 일을 겪으셨습니다.
참사 1주기 즈음 해서 최루액 대포나 차벽, 행진과 의사표현을 원천적으로 봉쇄 당하는 경험을 하면서 저희 가족들의 생각이 한 단계 변했어요. 이제 인권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그런 걸 전혀 모르고 살았던 사람들이에요.
그런데 1주기 때 워낙 말도 안 되는 상황들을 맞닥뜨리다 보니까 ‘과연 경찰이 저렇게 막을 만큼 우리가 잘못한 게 있나’, ‘이건 말도 안 되는 상황이다’ 하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어요. 최루액 대포와 관련해 헌법소원을 내고 교통용 CCTV로 집회를 감시한 서울지방경찰청장을 고발했어요. 앞으로도 부당한 공권력을 경험하면 유가족들은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 운동이 정치적이라 문제라는 식의 공격이 있습니다. 어떻게 보시나요?
우리가 진실 규명 운동을 정치적 투쟁에 활용하려는 사람들의 조종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저흰 이 점에서 아주 떳떳합니다. 그런데도 정부와 여당은 자신들이 짜 놓은 프레임에 저희를 억지로 끼워 놓고 비난하고 있죠.
생명과 안전에 관한 저희 요구들은 도덕적·상식적으로 우위에 있는 것들이거든요. 이걸 무마시키려면 다른 논리가 필요하겠죠.
세월호참사국민대책회의를 비롯해 저희를 도와주시고 계신 분들에 대한 조사와 수사가 집중적으로 진행되고 있는데, 이것도 그런 취지에서 의도적으로 진행하고 있다고 봅니다.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대책회의 공동운영위원장들을 비난했습니다.
그런 글을 쓴 사람들에게 정말 묻고 싶어요. 세월호 참사가 해결되길 원하고 유가족들을 정말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서 그런 글을 썼다고 하면 ‘대체 이 참사의 해결과 희생자와 실종자들을 위해서 유가족들을 위해서 무엇을 했느냐?’ 하고요. 그런 비난은 순수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싶어요.
4백 일 동안 유가족들이 한데 뭉쳐 싸워 온 것이 투쟁에 매우 중요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게 쉬운 과정은 아니었어요. 내부에서 싸움도 많이 했어요. 견해 차이와 방향에 대한 이견이 없을 수 없죠. 희생 학생 가족만 5백 명이고, 일반인 희생자, 생존 학생 가족, 화물 피해 기사들까지 하면 직계 가족들만 1천5백여 명이에요. 3백60가정이 넘고요.
그렇지만 그런 치열한 과정 속에서 결론을 내리면 흡족하지 않더라도 같이 협력하고, 논쟁할 때는 하고 그랬어요. 가족들이 서로 존중하며 지내 온 것이 자랑스럽고 감사합니다.
유가족들 중 희생학생 가족들이 대다수인데, 저희 아이들이 서로 친구였다는 것이 가장 큰 힘이었던 것 같아요. 다른 가족들도 그런 부분을 존중해주고요.
아이들이 희생당할 때 아무것도 하지 못한 부모로서 미안함이 있고, 혹시라도 우리가 잘못 행동해서 아이들의 죽음을 헛되게 만들지 않을지, 부끄러운 부모가 되지 않을지 하는 걱정을 모두 해요. 1년 동안 온갖 회유와 와해 시도가 많았음에도 단 한 명도 넘어가지 않았어요. 부모니까 그럴 수 있었어요. 어떻게 내 새끼한테 부끄러운 짓을 할 수 있겠어요.
올해를 잘 해내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봅니다. 매우 미흡할 것이라 예상되지만 올해부터 진상규명도 시작이 되고, 배상·보상도 진행이 될 거예요. 이 과정에서의 대응이 가족협의회의 앞으로의 방향과 미래에 중요하다고 보고 굉장히 많이 고민하고 있어요.
시행령이 통과되고 특조위 활동 기간 등에 대한 논란이 다시 벌어지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정부와 새누리당 등의 방해가 계속될 듯합니다.
정부와 여당의 움직임은 저희 예상을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어요. 양심이 있다면 저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유기준 해수부 장관은 “특조위 지원 위해 최대한 노력하겠다” 말하면서 “특조위 활동은 1월 1일부터 시작”이라고 한마디를 덧붙이더군요. 매우 이율배반적인 거죠. 이에 관해 여당 의원들이 하는 얘기도 가관이고요.
인양에 대해서도, 정부가 세월호를 인양하겠다고 공식 선언 했을 때 저희가 강조한 게 ‘결정은 환영하지만 실제로 인양이 돼야 우린 믿겠다’는 것이었어요. 누군가는 ‘왜 꼬투리를 잡냐’고 말할 수 있지만 저흰 알아요. 9월이면 한다더니 며칠 전에도 또 슬쩍 11월은 돼야 인양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잖아요? 이렇게 계속 다른 얘기를 흘리는 거죠.
최근 재판 결과가 나왔습니다. 감형을 둘러싸고 비판도 많았고요.
해경 재판은 문제가 있어요. 현장 책임자가 구조에 관련한 책임을 져야 하고 책임이 막중하죠. 목포해경123정장은 법리를 떠나서 저희가 보기에 결과적으로 살인 행위를 한 것이고 마땅히 처벌을 받아야 해요. 하지만 그 사람만 처벌받으면 되나요? 그 사람은 육지로 따지면 파출소장이고 현장 기동대 수준의 책임자일 뿐이에요. 대한민국 경찰이 현장 책임자가 모든 권한을 갖고 있는 게 아니잖아요? 이건 출발부터 잘못된 재판임이 분명합니다.
선원들에 대한 2심이 끝나고 상고를 한다던데, 형량이 줄어든 것은 감정적으로는 불쾌합니다. 그러나 2심 재판은 나름의 의미가 있어요. 검찰은 세월호 침몰 원인의 하나로 조타수의 조타 미숙으로 인한 급변침을 지적했는데, 1심 재판부는 이를 인정한 반면, 2심 재판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어요. 참사의 진상을 더 규명해야 한다는 당위성에 상당히 큰 힘을 부여해 준 부분이 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5·18광주항쟁을 맞이해 유가족들이 광주에 다녀 왔는데, 소감이 궁금합니다.
가기 전과 후가 완전히 달라요. 5·18 항쟁이 올해 35주년인데 여전히 루머도 있는 상황이잖아요. 저희 부모들은 항쟁 당시에 초등학생 혹은 중학생이었어요. 대부분 관제 언론이 말하는 것을 듣고 자랐죠. 그래서 출발 전엔 대규모 참가가 논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어요.
그럼에도 가족 1백여 명 간 이유는 딱 하나예요. 광주 시민들이 저희들을 정말 열성적으로 도와주셨어요. 세월호 참사 재판이 광주에서 열렸는데, 가족들이 내려 갈 때마다 저희를 맞이 해 주시고, 피켓팅도 같이 해 주시고, 기자회견 준비에 도시락 준비까지 1년 동안 변함없이 꾸준히 도와 주셨어요. ‘우리가 상주다’ 하면서 1천 일 순례도 하고 계시고요.
특히 ‘5월 어머니회’[광주항쟁 유가족 모임]분들을 몇 번 만났을 때 다른 어떤 분들이 주시는 힘보다 더 큰 힘을 얻었어요. 그 분들은 자식을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어이없게 잃었는데도 온갖 고초와 탄압, 오해를 받으며 살아 왔던 분들이에요. 저희가 말 꺼내지 않아도 무엇이 제일 억울하고 서러운지를 정말이지 잘 아세요. 두 말 필요 없이 눈물 흘리며 손 맞잡고 “어째쓰까잉” 이 한 마디에 모든 것이 담겨 있죠.
광주에서 ‘5월 어머니회’분들 만나자 마자 눈물을 터뜨렸어요. 동병상련이라고 할까요? 서로 교감이 되니까요. 5·18항쟁의 의미를 자세히는 모르더라도 저희와 같은 아픔을 훨씬 이전에 겪고, 아직도 그 아픔을 갖고 계신 분들을 만나는 순간 엄마로서 통한 거죠.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솔직히 고민이 많습니다. 1주년을 많은 시민들과 뜨겁게 보냈는데 그 결과가 시원치 않다는 점 때문에 ‘열심히 해도 뭔가 될까?’ 하는 생각이 들 수 있기 때문이죠.
지난해 여름에 특별법 하나만 두고 싸운 것과는 달리, 올해는 해야 할 일들이 단순하지 않아요.
진상 규명 싸움도 다각도로 해야 해요. 특조위가 조사를 제대로 할 수 있도록 힘도 실어 줘야 하고, 잘못하면 비판도 하고, 필요하면 특조위와도 싸워야 하고 이런 복잡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어요. 동시에 특조위가 온전히 기능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다른 대안이 필요한지도 고민이고요.
배상·보상의 입장과 방향 등에 대해서 우리 입으로 얘기하지 않을 수 없어요. 그런데 이것이 진상규명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하는 점이 가장 큰 딜레마에요.
그럼에도 4·16 이전과 이후가 달라져야 하는 점 중에 배상·보상도 중요한 부분이에요. 과거에는 참사 때마다 배상·보상은 문제를 덮어버리고 무마시키고 참사 피해자들을 흩어버리는 데에 활용돼 왔어요. 그렇게 되면 안 된다고 봐요.
셋째로 선체 인양하고 실종자들을 찾아야 해요. 이것 역시 주체가 정부예요. 비판도 하면서 제대로 할 수 있게 공무원들을 격려도 해야 하죠. 현장에서 뛰는 공무원 전체가 다 나쁜 분들은 아니거든요. 문제는 높은 데에 있는 분들, 최종 책임자들이죠. 선체 인양 문제를 정치적으로 판단할 가능성도 경계해야 하고요.
가족들 생계 문제도 있습니다. 맞벌이하면서 겨우겨우 하는 분들은 이미 한계가 지난 지가 오래됐어요. 이렇게 영원히 갈 수는 없어서 부모들이 고민하고 있어요.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전에도 그랬지만 지난 한 달 동안 민주노총을 비롯한 많은 노동자들이 굉장히 뜨겁게 연대해 주셨어요. 사회적으로 민주노총이 과격한 단체라는 둥, 정치 단체라는 둥 삐딱한 시선도 있지만 현장에서 저희가 만난 분들은 저희와 똑같은 엄마고 아빠였어요. 저희 유가족들도 월급 받으며 일하는 노동자였고, 비정규직도 많았죠. 이렇게 같은 부모로서 만나고 있다는 점에서 큰 감동을 받았어요. 노동자들이 조직적으로 함께해 주신 것은 감사해요. [세월호 참사 항의 운동 관련해] 수사 대상에 민주노총이 들어가 있을 걸요? 그런데 오히려 저희에게 그런 것은 신경 쓰지 않는다, 같이 극복하고 위축되지 말자고 말씀해 주시는 것이 감사하죠.
저희는 앞으로도 참사가 해결되고 진상이 규명되고 안전사회가 될 때까지 부모의 마음을 놓지 않고 끝까지 할 것입니다. 늘 함께해 주시길 다시 한 번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