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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지금 여기 페미니즘》:
여성 차별의 사회구조적 원인과 여성 노동자에 주목한 개론서

사회진보연대가 자신들의 여성주의를 쉽고 친절하게 설명하는 책을 출간했다. 사회진보연대 부설 노동자운동연구소에서 활동하는 이유미 씨는 노동자와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강의, 토론모임 등을 진행한 경험을 바탕으로 페미니즘을 친절하게 소개하려고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이 책은 노동시장에서의 여성 차별, 성폭력·성매매·낙태 등 섹슈얼리티 문제, 가족제도, 경제 위기와 여성 등 오늘날 여성들이 처한 중요한 문제들을 좌파적 관점에서 다루고 있다. 또, 여성해방 운동의 역사와 교훈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저자는 국공립보육시설의 대폭 확충과 보육노동자 조건 개선, 성매매 비범죄화, 여성의 낙태권 보장, 시간제 일자리 도입 반대 등을 주장한다. 이 글에서 각각의 쟁점들에 대한 사회진보연대의 견해를 세밀하게 다루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이 쟁점들에 대해서는 여성운동 내 좌파적 견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는 사회진보연대의 주장에 대체로 공감한다.

가족제도와 여성 차별

《지금 여기 페미니즘》 (이유미 지음, 사회운동, 194쪽, 10,000원)

무엇보다 이 책의 장점은 여성 차별의 “사회구조적 토대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는 점이다.

저자는 여성 차별에서 자본주의 가족제도가 하는 구실을 비중 있게 다룬다. 자본주의에서 가족은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구실을 하고, 특히 가족 내에서 여성이 무보수로 육아와 가사노동을 주로 담당하는 것은 자본가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주장한다. 또, 이에 대한 대안으로 재생산 노동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다.

이런 사회진보연대의 분석은 노동자연대가 표방해 온 마르크스주의 여성해방론과 공통점이 많다. 마르크스주의는 여성 차별이 남성의 권력욕이나 지배욕 같은 인간 본성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토대를 두고 있다고 본다. 엥겔스는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에서 인류 역사의 대부분의 기간에는 여성에 대한 체계적 차별이 존재하지 않았지만, 계급의 탄생과 더불어 “여성의 세계사적 패배”가 시작됐다는 점을 밝혔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자본주의에서 여성 차별이 지속되는 것 역시, 자본주의 체제가 운영되는 방식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본다. 자본가들은 여성들이 노동자로 대거 진출한 오늘날에도 자본주의 유지에 필수적인 노동력 재생산의 책임을 개별 가정의 여성들에게 전가함으로써 비용을 대폭 절감한다. 또, 이를 통해 노동시장에서도 여성에게 저임금과 불안정한 일자리를 강요할 수 있다. 따라서 여성 해방을 위해서는 그 물질적 토대인 자본주의에 근본적으로 도전해야 한다.

이런 관점은 여성의 육아와 가사노동이 자본가의 이익이기만 한 게 아니라, 노동계급 남성에게도 이익이라는 상당수 페미니스트들의 주장과는 차이가 있다. 상당수 페미니스트들은 결국 노동계급 남성도 여성 차별로부터 이득을 얻으므로 여성 차별을 유지하는 데 이해관계가 있다고 여긴다. 이것은 자본주의 체제에 맞선 노동계급의 단결보다는 노동계급 내 남성에게서 여성 억압의 원인을 찾는 태도로 이어진다.

그러나 육아와 가사노동이 개별 가정에게 떠맡겨져 있는 현실은 남성 노동자들에게도 고통스럽다. 남성 노동자들은 “가장”으로서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압박 때문에 긴 노동시간과 열악한 노동조건을 감수하며 일해야 하고, 가족과의 대화에서 단절되곤 한다. 집안일을 아내보다 덜 한다는 것은 여성에 비해 조금의 이익일 수는 있지만, 남성 노동자들이 지켜야 할 사활적 이익은 전혀 되지 못한다. 남성이건 여성이건 노동계급에게 진정한 이익은 자본가들의 이윤에 도전해 노동력 재생산을 사회가 책임지도록 하는 것이다.

이 책은 노동계급이 자본주의 가족제도를 수용하게 된 과정에 대해서도 균형 있게 다루고 있다. 일부 페미니스트들은 자본주의에서 여성 노동이 차별받게 된 것은 가족임금(남성 가장의 임금만으로 노동자 가족이 생활할 수 있는 임금) 도입과 관련 있고, 이것은 여성을 작업장에서 차별하고 집안에 묶어두려는 “노동계급 남성과 자본가의 공모”였다고 본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핵가족 제도의 확립에 대해 일면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아이와 어른을 가리지 않고 12시간이 넘는 중노동을 해도 입에 풀칠하기가 어렵고 실업이라도 당한다면 굶어 죽을지도 모르는 비참한 생활 속에서, 노동자 가족은 남성의 소득으로 안락한 가정을 이루고 여성과 아이가 일하지 않아도 되는 부르주아 가족을 선망”했다는 것이다. 영국의 사회주의자 린지 저먼은 일찍이 가족임금제 도입이 자본가의 선택이자, 당시 가족의 해체가 낳은 비참한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노동계급 여성과 남성의 소망이기도 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노동자연대는 이런 분석을 공유해 왔다.

여성운동의 역사에 대한 평가

저자는 부르주아 페미니즘과 급진주의 페미니즘 운동에 대한 비판적 평가 속에서 “사회구조의 변화를 위한 운동”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부르주아 페미니즘은 노동계급 여성 대중을 해방시키는 데는 무관심했고, 급진 페미니즘은 성적 자유를 허용하라는 의미 있는 요구를 내세웠지만 “경제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사회구조를 분석하지 못한 한계”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비판 속에서 저자는 여성 사회주의자 알렉산드라 콜론타이의 저작을 부각시키며 마르크스주의적 여성 해방 운동의 전통에 주목한다.

특히, 저자는 한국에서 1990년대 대학가에서 확산된 반성폭력 운동에 대해서도 비판적으로 돌아본다. 이 운동에 동참했던 사회진보연대는 그동안의 활동에 대한 진지한 재평가를 해 온 듯하다. 저자는 당시의 반성폭력 운동은 여성이 처한 현실을 드러내고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문화에 대한 성찰을 촉구하는 계기가 됐지만, “위험과 피해를 부각하는 운동방식은 여성이 성욕의 권리를 가진 주체라고 주장하기 어렵게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또, 이 운동은 ‘일상의 정치’를 강조하며 문화적 실천을 벌였지만, 사회구조의 변화를 위한 운동으로 나아가지 못한 한계가 있었다고 본다.

저자는 최근 사회진보연대의 기관지에서도 당시의 반성폭력 운동이 “여성들의 문제제기가 성폭력 사건화와 처벌화로 수렴”되게 만들었다고 비판한다. 다양한 반여성적 문화와 언행에 대한 문제제기를 다 “성폭력”이라고 규정해 버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공동체 구성원들 다수는 “금지 목록이 더 까다로워지고 넓어졌으며 그 기준조차 모호해졌다”고 받아들여, 여성 운동에 대한 사회적 반발심만 강화됐다는 것이다. 적극 공감한다.

노동자연대는 한국어 사용자의 대다수가 “성폭력”을 강간이나 그에 준하는 행위로 인식하고 있는 상황에서 ‘여성을 불쾌하게 한 행위’를 모두 성폭력으로 규정한다면 대부분의 남성들은(심지어 여성들조차) 반발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또, 이런 성폭력 개념이 거의 모든 남성을 “잠재적 성폭력범” 취급할 위험성이 있다는 점도 지적해 왔다. 그래서 성폭력, 성추행, 성희롱, 포르노, 성매매, 여성차별적 발언 등 각 행위의 특징과 수위에 걸맞는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대중과 오해의 소지 없이 소통하고 각 수위에 걸맞는 대처를 하는 데서 더 효과적이라고 주장해 왔다.

다만, 저자는 성폭력 개념 확장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도 이 책에서 여전히 성폭력을 “여성억압을 지속시키는 제도 및 관행, 실천들을 모두 포괄하는 개념”이라고 폭넓게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성폭력 개념 확장이 여러 문제들을 낳았다고 평가한다면, 폭넓은 성폭력 개념 규정 자체를 재고해 보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편, 저자가 여성 차별의 사회구조적 원인으로서 자본주의 가족제도에 주목하고 이런 제도가 “자본가의 이익”이라고 주장하면서도, 동시에 여성 차별의 현실을 설명하면서 종종 “남녀 권력관계”, “[남성] 권력의 우위” 등 급진주의 페미니즘의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다소간 혼란스럽다. 이런 용어에는 여성 억압의 원인을 “남성 권력”에서 찾는 급진주의 페미니즘의 고유한 문제의식이 반영돼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앞으로 토론의 기회가 있길 바란다.

여성 노동자에 대한 강조

저자가 여러 사회집단 중에서도 여성 노동자를 중시한다는 점, 여성 노동자가 직면한 문제들을 비중 있게 다룬다는 점, 노동자 운동이 여성 차별에 적극 반대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도 이 책의 장점이다. 저자는 성의 권리를 온전히 보장받기 위해서도 여성들의 경제적 권리(자립)가 보장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다만, 저자는 여성이 주로 종사하는 일은 집안에서 하는 일의 연장으로 취급받아 임금이 낮다는 점을 주되게 강조한다. 그러나 여성 노동자들은 여전히 차별받지만 자본주의에서 주변화된 존재가 아니라, 주요 산업과 서비스 직종에 종사하고 있기 때문에 사회변화의 중요한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점도 함께 보는 것이 중요하다.

저자는 여성 노동자가 경제적 독립을 해야만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 여성 노동자의 요구와 투쟁을 중시한다. 다만 저자는 노동계급의 투쟁이 자본주의 체제 변혁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다루지 않았는데, 나는 이 점을 덧붙이고 싶다.

자본가들이 노동자들의 노동에 의존해야만 이윤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점, 집단적인 투쟁을 통해 단지 개인적 해방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변혁을 이룰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노동계급은 자본주의 체제를 폐지할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바로 마르크스가 노동계급을 사회변화의 중심적인 주체로 본 이유다.

여성 노동자들이 자본주의에서 노동계급의 중요한 부분으로 진출한 오늘날, 여성 노동자들은 여성 차별을 낳는 토양인 자본주의 체제를 폐지하는 데서 중요한 구실을 할 수 있다. 여성 노동자들은 지루하고 고립된 집안일에서 벗어나, 집단적인 노동의 일부로 참가하면서 동료 노동자들과 함께 일하고 토론하고 투쟁할 수 있다. 이 점이 오늘날의 여성해방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이고, 마르크스주의가 여성 노동자에 주목하는 까닭이다.

여성 해방과 사회 변혁

저자는 러시아의 여성 사회주의자 알렉산드라 콜론타이가 여성해방을 사회변혁의 과정 속에 실현하고자 했다는 점을 소개하며 콜론타이의 전통을 지지한다. 나도 콜론타이의 마르크스주의 여성해방론은 우리가 계승해야 할 전통이라고 본다.

저자는 콜론타이의 《공산주의와 가족》을 적극 인용한다. 콜론타이는 “부자의 아내들은 오래 전부터 이 짜증나고 피곤한 가사의 의무로부터 자유로웠다. 왜 여성 노동자들은 그 부담을 계속 짊어져야 하는가?” 하고 계급 차별적 현실을 비판했다. 그러면서 여성 해방을 위해서는 여성 노동자를 가사노동과 육아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해야 하고 노동자 국가가 이것을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것은 자본주의 이윤체제에 대한 근본적 도전 속에서 가능한 일이다.

다만, 저자가 러시아혁명 정부가 여성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추진한 급진적 조처들이 콜론타이의 독창적 기여인 것처럼 묘사한 것은 정확한 서술은 아니다. 콜론타이가 볼셰비키의 여성 정책에서 적극적 구실을 했다는 점은 사실이다. 하지만 레닌을 비롯한 남성 혁명가들의 구실도 주요했음을 공정하게 봐야 한다. 혁명 전부터 레닌의 제안으로 여성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신문 발행이 이뤄졌고, 혁명 후에도 레닌과 볼셰비키당은 동일노동 동일임금·이혼의 완전한 자유·여성의 낙태권 등 여성 평등을 위한 법률 제정에 힘을 기울였고, 여성을 “가정의 노예”에서 해방시키기 위한 조처들에도 적극적이었다.

또한, 저자는 콜론타이의 주장이 실현되지 못한 이유가 당시 대다수 혁명가들이 기존 가족 제도의 유지를 옹호했기 때문인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레닌을 비롯한 볼셰비키의 주요 혁명가들은 여성 차별의 물적 토대로서 자본주의 가족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러시아혁명에 대한 트로츠키의 다음과 같은 회고는 볼셰비키의 진정한 정신을 보여 준다. “혁명은 소위 단란한 가족, 즉 일하는 계급들의 여성이 어려서부터 죽을 때까지 고된 노동을 수행하는 곳인 이 오래되고 케케묵고 정체된 제도를 타파하는 데 영웅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 모든 세대가 단결하고 서로 도와 사회주의 사회의 제도들이 가족의 가사 수행 기능을 완벽하게 흡수했고, 그리하여 여성뿐 아니라 사랑하는 부부들이 수천 년 동안 인간을 얽매온 족쇄에서 진정으로 해방될 수 있게 됐다.”

러시아혁명 초기의 여성에 대한 급진적 조처들이 왜 유지되지 못했는지는 러시아혁명의 성패와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 국제적 고립과 내전, 그리고 반혁명 때문에 혁명을 주도했던 선진 노동계급이 대부분이 죽고 산업이 파괴되는 처참한 지경에 이르렀다. 여성 해방을 위한 조처를 유지할 물질적 조건이 모두 파괴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반혁명을 주도한 스탈린은 1917년 혁명이 남긴 모든 여성 법령들을 폐기했다. 이제 스탈린주의 정권은 가족의 신성함을 떠벌렸다. 여성의 종속은 러시아 혁명을 이끈 남성 볼셰비키들의 정책 때문이 아니라, 정반대로 볼셰비키의 핵심 인물들을 숙청하고 혁명을 파괴한 스탈린주의 반혁명의 결과였던 것이다.

사회구조의 변화를 추구하는 여성운동

저자는 “이 책이 일상의 정치를 넘어 사회구조의 변화를 추구하는 여성운동, 여성노동자를 대변하고 그 힘을 모아나가는 혁신된 노동자운동에 힘을 보태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 지향에 공감한다.

다만, 이 책은 개론서라 저자가 지향하는 페미니즘의 이론적 쟁점들까지 깊이 있게 다루기는 어려웠던 듯하다. 가령 저자는 콜론타이의 견해를 소개하면서 이를 두고 “페미니즘과 마르크스주의의 결합”이라고 해석했는데, 저자가 지향하는 “결합”은 어떤 의미인지 등은 여전히 궁금하다. 이에 대해서는 더 깊이 토론해 볼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

비록 저자의 일부 견해에 대해 내가 의문을 제기하긴 했지만, 이 책은 많은 장점이 있고 특히 좌파적인 여성 운동을 지향하는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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