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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편지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 투쟁을 보고 있을 학생들에게 부치는 편지

아래 글은 울산이 고향인 연세대 한 학생이 울산과학대에 다니는 자신의 친구들에게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 투쟁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려 쓴 편지글이다. 현재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들은 1년 가까이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끈질긴 투쟁을 벌이고 있다.

울산과학대 친구들에게.

며칠 동안 울산과학대 친구들에게 얘기를 꽤 많이 들었어. 청소노동자분들의 투쟁 과정에서, 너희가 겪었던 곤란함과 어려움들이 글을 통해서도 많이 느껴졌었다. 처음에 가지고 있던 호기심과 지지하는 마음과 안타까운 마음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피로감과 짜증, 무관심으로 많이 바뀌게 된 과정도, 너희들의 얘기를 들어보니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하지만 그래도 다시 한 번만 들어봐 줬으면 좋겠어.

청소노동자분들은 학생들하고 갈등을 빚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을거야. 왜 청소노동자분들이 일부러 학생들과 갈등을 빚고, 피해를 주고, 서로 얼굴 붉히고 싶어하겠어. 다만 학교에 정당한 요구를 주장하고 권리를 행사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이 겪게 될 불편과 피해에 대해 학생들에게 좀더 잘 설명했더라면, 그래서 불필요한 갈등을 만들지 않았더라면 하는 안타까움이 들어.

정당하고 절박한 요구

학생들과의 갈등에 대해 이야기하기 이전에, 우선 청소노동자분들의 요구가 매우 '정당한' 요구면서, '절박한' 요구라는 걸 말하고 싶어.

청소노동은 예전부터 우리 사회에서 가장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직업 중 하나였어. 그 노동의 중요성과 필요성에 비해 터무니 없이 적은 임금을 받고, 사회적 차별에 시달리는 직업이야. 오바마가 백악관 청소노동자와 주먹을 맞대는 사진에 희열을 느끼는 것도, 그 사진이 우리 사회에서 가장 귀하게 여겨지는 직업과 가장 천하게 여겨지는 직업이 똑같이 중요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여겨지는 것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겠지.

대학교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라고 처지가 다르지는 않았어. 10년 전만 해도, 청소노동자의 임금은 50만 원 수준에 그쳤고, 지금까지 거의 항상 법적인 최저수준만을 받아 왔어.

작년 파업을 시작하기 전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들의 임금도 2014년 최저시급인 5210원이었어. 월급으로는 약 1백8만 원. 그 돈으로 생계를 꾸려나가야 했지. 1백8만원으로는 혼자 살기도 벅찬데, 많은 청소노동자들은 부양해야 하는 가족이 있는 경우가 태반이야. 법적인 최저임금은 '인간다운 생활을 위한 임금'보다 한참 떨어지지.

이러한 청소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로조건을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들이 있어 왔고, 마침내 정부도 2012년 '용역근로자 근로조건 보호지침'이란 걸 발표해.

이 내용에 따르면, 학교가 노동자들에게 시중노임단가(그 업종의 평균임금. 올해는 시급 7910원)를 지급하도록 권고하고 있어. 청소노동자들에게 적어도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임금을 지급하도록 권고하는 거지.

청소노동자들은 현재 시중노임단가보다도 낮은 시급 6000원의 임금을 요구하고 있어. 그렇지만 학교는 이마저도 거부하고 있는 상황이야. 울산과학대 이사장은 다들 잘 알다시피, 우리 나라 최대 재벌 중 한 명인 정몽준 이사장이잖아? 울산과학대가 지금까지 쌓아둔 적립금도 몇백 억원은 된다고 알고 있는데… 그런 대학이, 청소노동자들에게 시급 6000원을 주는 것마저 거부하고 있는거야. 정부가 제시한 보호지침도 무시한 채로.

주는 돈 받기 싫으면 다른 데 가서 일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그런 질문을 한 친구가 있었어. 그런데 말이야, 만약 사용자가 제시하는 임금을 받아들일 수 없으면 아무 소리 없이 그 일터를 떠나야 한다면, 곧 어딜 가든, 노동자가 희소성을 가지는 전문직 분야 조금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직종은 최저임금에 가까워지지 않을까? 어딜 가든 사용자가 마음대로 임금을 정할 수 있다면, '최저임금 받기 싫어? 그럼 너 말고도 일할 사람 많으니까 나가'라고 하겠지. 우리가 그런 사회에서 살아야 한다면, 그건 너무 끔찍하지 않을까?

그래서 '노동조합'이란 게 있어. 우리 나라 헌법은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해서 자신의 노동조건의 개선을 위해, 침해받은 권리를 되찾기 위해, 권리를 확대시키기 위해 사용자의 일방적 결정에 맞서 싸울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고 있어. 그리고 지금 총학생회가 외부세력, 전문시위꾼이라고 말하고 있는 '민주노총'은, 원래 노동조합이 싸울 때 돕기 위해 있는 전문가들이야. 민주노총이 산하노조를 지원하는 건 당연한 거고, 당연히 법으로 보장하고 있는 권리야.

그러니까 지금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절박하고 또 정당한 싸움을 하고 있어.

청소노동자들과 현대중공업 노동자들, 그리고 우리

그럼에도 투쟁과정에서 학생들에게 많은 피해를 주게 되고, 마찰을 빚게 된 것은 정말로 안타깝게 생각해. 그리고 거기에 대한 반감이 드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하지만 '누가 서로에게 얼굴 붉혀야 하는 지금의 상황을 만들었는가?'라는 걸 한번 생각해 줬으면 좋겠어.

청소노동자들이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는 걸까? 정부가 인간답게 생활하기 위해 필요하다 정해 놓은 최소한의 돈을 달라는 건데...

학교는 돈이 없다고 하지만, 울산과학대는 무려 '현대중공업그룹'이 학교법인이잖아. 회계 자료를 살펴보니 울산과학대에 들어가는 법인전입금은 등록금 수입의 5퍼센트 정도밖에 안 되더라. 심지어 국가에서 정한 법정 기준에도 미달하고 있어. 법인전입금 비율이 오르면 그만큼 등록금 부담도 줄어들게 돼. 그런데 이렇듯 학교법인이 져야 할 책임은 안 지고 있으면서, '청소노동자들 임금 올라가면 등록금 올라간다'는 말을 할 자격이 있을까?

너희가 겪고 있을 불편함과 짜증을 충분히 이해해. 너희가 보내준 사진을 보고, 에피소드를 들으니 너희도 많이 힘든 상황일 거란 게 짐작이 가더라. 하지만 말야. 그 불편함과 짜증의 화살을 올바른 방향을 향해 겨누어 주길 간절하게 바라. 생존권을 위해 싸우고 있는 청소노동자들이 아니라, 노동자에게도 학생에게도 최대한 쥐어짜내려고만 하는 학교에게.

현대중공업에서 올해에만 사무직 1천5백 명이 명예퇴직을 당했다고 들었어.

갈수록 정규직 비중을 줄어들고, 사내하청 비중은 늘고 있어. 통계를 보니 벌써 조선산업 노동자 4명 중 3명은 사내하청이라고 하더라.

어느 사내하청 노동자가 일하다 산재를 당했는데, 앰뷸런스가 아니라 짐차에 실려나갔다는 기사를 보았어. 그리고 병원에 가선, 그 사람이 보는 앞에서 '집에서 넘어져 다쳤다'는 거짓말을 의사에게 해. 현대중공업은 그 사람을 치료하는 것보다 산재 사실을 숨기는 게 더 중요했던 거지.

현대중공업 그룹이 이런데, 청소노동자들에게 시급 6000원 주는 것도 아까워하는 건, 슬플 정도로 당연해 보여.

하지만, 이게 과연 옳은 걸까?

최근에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들도 노동조합 가입 운동을 하고 있다고 들었어.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사내하청 노동자의 75퍼센트가 '노조를 가입하고 싶은데', 75퍼센트가 '기업의 보복이 두려워 못한다'고 대답했어. 그렇지만 지금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그 두려움을 이겨내고 스스로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노동조합을 만들고 있는 중이야.

청소노동자들과 현대중공업의 노동자들, 그리고 우리는 어쩌면 처지가 별로 다르지 않을지 몰라.

우리의 권리는 우리가 스스로 그리고 함께 지키지 않으면 누구도 지켜주지 않으니까.

예전에 시험을 치르고 있는데 노조가 엠프를 써서 집회를 해서, 많은 불편을 준 일이 있었다고 들었어. 나중에 들어보니 노조는 시험기간 인지를 아예 몰랐었더라. 그리고 시험기간에 엠프를 틀었다는 것에 대해 정말 미안해하셨어.

학생들과 빚고 있는 많은 갈등들이 어쩌면 소통의 부재에서 나온 게 클지도 몰라. 지나가면서 인사 한 번 하고 가는 작은 것이라도, 말 한마디 잠깐 나눠보는 것이라도, 노동자분들에겐 큰 힘이 될 거야.

친구들아, 부디 청소노동자들을 이해해 주길 그리고 지지해 주길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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