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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와 건설노동자

새벽 다섯 시. 어김없는 칼라 보노프의 애잔한 노래 ‘the water is wide’가 점점 더 크게 귓전을 두들기는 알람을 들으며 힘겨운 몸을 일으켜 아침 샤워를 하고 시동을 켜고 부지런히 액셀러레이터를 밟는다.

달리기를 30분. 전에는 현장이 가까울수록 재미있었는데 요즘은 현장이 가까울수록 마음이 무거워진다.

얼마 전 굿모닝병원에서 메르스 환자가 생겼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만 해도 누구도 사실이 아니기를 바랐다. 불안한 마음에 공사부장과 안전팀장한테 문제를 제기해서 아침 T.B.M(tool box meeting, 작업 개시 전 5~15분 정도 실시하는 소모임)을 분산해서 실시하도록 했는데 요 며칠 사이에 떠돌던 소문이 모두 사실로 드러났다.

며칠 전부터 현장(원청)측에서는 부산을 떨면서 단종(일부 혹은 전부의 공사를 직접 맡아 실행하는 건설업체)들에게 마스크를 지급하도록 했다. 마스크를 쓴 노동자들은 힘든 일을 하면서 숨이 막히니까 종종 마스크를 벗게 되고 안전 팀에서는 ‘마스크를 벗지 마라’ 며 지적을 한다.

일하던 노동자들은 ‘네가 한 번 쓰고 이 힘든 일을 해’보라며 실랑이가 일어나고 원청은 정해진 기일 안에 공사를 마치려 마구잡이로 밀어 붙인다.

2012년 9월 27일 구미에서 불산 사고가 일어났을 때도 구미 공단의 노동자들은 사측이 작업을 지속하라고 지시해 고스란히 불산에 노출되면서 사장들을 위한 이윤을 창출해야 했다.(당시 구미의 논밭은 향후 최소 3년간 경작이 불가능하게 타버렸었다. 심지어는 소나무 잎이 단풍나무처럼 빨갛게 변했고 콩잎은 만지면 부서지는 화석이 되었었다.)

이듬해 초 SK청주, 구미LG실트론, 상주 염화수소 누출사고, 화성 불산 누출사고, 이어서 수원 삼성반도체 불산 사고 등 전국에서 유사한 화학물질들이 누출됐을 때도 노동자들은 누출 사실도 모른 채 일만 해야 했다.

굿모닝병원에서 불과 3백미터 안에 있는 건설 현장의 노동자들은 ‘이대로 가다가는 누군가는 메르스에 노출되고 말 것’이라는 일상적인 불안감과 ‘그렇다고 일손을 놓으면 어떻게 먹고 살거냐’는 생계에 대한 답답함이 교차하는 속에서 하루하루를 막막하게 버텨가고 있다.

이윤이 우선인 이 사회는 늘 이랬다

사스, 신종인플루엔자가 터져도 사후 약방문이었고 성수대교가 무너지고 삼풍백화점이 주저앉을 때도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였다.

현대의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는 과학기술로 수시간, 길어야 수일이면 백신 개발이 충분히 가능한데도 제약 업자들은 여전히 ‘주판알 퉁기기에 여념이 없다.’ 이런 사실에서 노동자들의 좌절의 한숨은 더욱 깊어진다.

그래서 현장에서는 아침마다 체온을 측정하는 안전 팀과 현장 노동자들 사이에 크고 작은 실랑이가 끊이지를 않는다.

너도 나도 신경이 날카로워져서 목소리가 커지고 다툼이 잦아지며 작은 다툼이 커지기도 한다.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서 손에 들고 있던 갖가지 공구를 내던지기도 하고 일은 일대로 진행이 안 돼서 멍 하니 널브러져 있기 일쑤다. 어떤 노동자는 부분적으로 트라우마에 이르는 상황이 보이기도 한다.

사태가 이런데도 더 기가 막히는 것은 이런 것이다. 원청 소장 놈은, 메르스가 나타나기 전엔 하루도 빠짐없이 현장 구석구석을 쏘다니면서 온갖 것을 참견했다. 그래서 ‘게토레이(개또라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내가 붙였다). 이 원청 소장은 메르스 발표 이후로 현장에 코빼기도 안비치고 사무실에 쳐 박힌 채 무전기로만 ‘지랄’을 해대고 있다.

이처럼 건설노동자들은 사장들의 이윤만을 우선하는 퍼덕거림 속에 무방비로 내던져져 있다. 건설노동자들은 메르스에 노출되면 노동자의 부주의가 되며 요행수로 노출되지 않고 사장들의 ‘이윤 놀음’에 무사히 복무하면 사장들의 능력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건설노동자들의 일상을 ‘전쟁 상황’이라고 하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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