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파업을 지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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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31일 여의도에서 열린 ‘공공노동자 총력투쟁 결의대회’에 참가한 노동자들의 사기는 드높았다. 그 중에서도 특히 3천여 명의 공무원 노동자들은 정리집회 때까지 시종일관 전체 분위기를 주도했다.
공무원노조 김영길 위원장은 “노무현과의 전면전을 결코 피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고 노동자들은 열광적인 환호와 박수로 화답했다.
불과 한 달 전 이해찬이 공무원노조의 1백억 원 모금계획을 두고 “호응이 없을 것”이라며 비아냥거렸을 때 적잖은 공무원 노동자들이 모멸감과 분노를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10월 26일 공무원노조는 기자회견을 통해 1백억 원 모금계획을 3억 원 초과 달성했다고 발표했다.
물론 기금만으로 파업이 잘 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1백억 원 모금은 적어도 1만 명 이상의 조합원이 이 파업을 적극 지지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이 소식은 공무원 노동자들의 사기를 한층 더 높였고 모금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몇몇 지부는 모금 기간이 끝난 뒤에 오히려 모금 참여가 늘어나기도 했다.
‘공공노동자 총력투쟁 결의대회’에서 연대사를 한 민주노총 이수호 위원장은 “이제 말이 필요 없는 때가 된 것 같다. 민주노총도 15일부로 총파업에 돌입해 예전처럼 공무원노조만 외롭게 투쟁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큰 박수를 받았다.
공무원노조 지도부가 11월 1일로 예정된 파업을 11월 15일로 연기했을 때 소수의 전투적 노동자들이 불안감을 나타내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가장 좋은 시기에 파업에 들어가자는 의견을 지지했다.
1백억 원
공무원 노동자들의 투쟁은 이미 진행 중이다. 15일은 그 투쟁이 절정에 다다르는 시기가 될 것이다.
행자부는 주5일제 시행을 핑계로 동절기 평일 근무시간을 한 시간씩 연장시키는 지방공무원 복무규정 조례개정안을 지방정부에 보내 통과시키려 하고 있다. 공무원노조는 이에 맞서 각 지방본부별로 정부의 노동시간 연장 시도를 무력화하는 투쟁을 벌이고 있다.
서울시본부는 “50여 년 간 뺏겨 온” “점심시간 지키기” 투쟁을 벌이고 있다.
민원이 빗발칠 것이라는 구청장들의 협박이 무색하게도 점심시간 근무를 거부한 노동자들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은 생각보다 크지 않다. 구청뿐 아니라 동사무소에서도 대체로 “싸우는 곳마다 이기”고 있다.
청주시장을 개에 비유한 패러디 퍼포먼스를 했다는 이유로 터무니없이 공격을 받고 있는 청주시지부는 시청 측의 고소와 징계에 맞서 싸우고 있다.
하지만 이 퍼포먼스는 개에게는 모욕이 될지언정 청주시장이 길길이 뛸 만한 일은 아니었다. 개는 어지간해서는 신의를 저버리지 않는 충직한 동물이다.
청주시장 한대수는 지난 6월 공무원노조와의 교섭에서 동절기 연장근무를 하지 않기로 했던 약속을 손바닥 뒤집듯이 뒤집어버렸다. 이후 청주시는 면담도 거부하고 공무원노조 청주시지부장에게 “죽고 싶어서 그러냐”고 협박을 하기도 했다.
게다가 노조측의 사과에도 ‘개 모욕 사건’을 이유로 징계요구자를 2명에서 5명으로 늘리고 3명을 고소․고발했다. 이런 태도에 고무된 지역의 우익단체가 공무원노조 사무실에 오물을 투척하며 난동을 부리기도 했다.
울산본부와 청원군지부를 비롯해 전국적으로 40여 개 지부는 지방공무원 복무규정조례개정안 자체를 막아냈고 전남 여수․순천․나주․해남 지부 등 8개 지부는 조례를 무시하고 5시 퇴근을 강행하고 있다.
대구와 경북에서도 중식시간 지키기 투쟁이 벌어지고 있다.
제주대학교 공무원직장협의회는 대학노조와 공동으로 총장선출권 확보를 위한 투쟁을 벌이고 있다.
“왼쪽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하”던 노무현은 경제 위기로 압력이 심해질수록 더욱 우파들에 타협하고 있다. 특히 노동 문제에 관한 한 노무현은 더는 왼쪽 깜빡이도 켜지 않는다.
노무현은 국가보안법 등 껍데기뿐인 4대 개혁입법으로 온건 좌파의 발목을 잡는 한편 우파들에게 신뢰감을 주기 위해 공무원 파업에 강경책을 쓸 가능성이 높다.
국무총리 이해찬과 행자부장관 허성관은 거듭 강경대응 방침을 밝히고 있고 보수언론들은 공무원 노동자들의 중식투쟁을 비난하고 나섰다.
공무원노조는 정부가 파업찬반투표 자체를 가로막을 경우 투표를 중단하고 파업에 돌입할 예정이다.
점심시간
막상 파업이 시작되고 정부의 물리적 공격이 시작되면 상황은 숨가쁘게 전개될 것이고 효과적인 파업 전술이 무엇인가를 둘러싼 논란도 벌어질 것이다.
만일 정치적 판단보다 기술적 판단이 앞선다면 경찰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산개’ 방식에 끌리기 쉽다.
물론 파업이 완전히 불리한 정치적 상황에서 공격당할 위험이 있는 경우 불가피하게 ‘산개’ 전술을 채택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결코 이런 상황을 고려해야 할 만한 시기가 아니다. 공무원 노동자들이 맞서 싸워야 할 노무현 정부라는 적에 맞서기 위한 아군들이 여러 곳에서 집결할 수 있다.
비슷한 시기에 국회에 파병연장동의안이 제출될 것이고 대중적 반전운동도 다시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 국가보안법을 비롯한 4대 개혁입법을 누더기로 만들어버린 열린우리당에 대한 불만도 불거질 수 있다.
지난 몇 년 간 주요 산업투쟁에서 노조 지도자들이 ‘산개’ 전술을 채택했던 것은 대개 기껏해야 정부의 공격에 맞서 순전히 실용적인 전술로만 맞서려 한 것이었거나 최악의 경우 의도적으로 파업 유보 수순을 밟은 것이었다.
2000년 국민․주택은행 노조 파업, 2002년 발전노조 파업은 노동자들의 단결된 힘으로써 맞서지 않은 채로 정부의 공격을 피해서 도망치는 ‘산개’ 전술이 패배를 자초하는 전술임을 잘 보여 줬다.
물리적으로는 패배했지만 노무현 정부에 맞서 정치적으로는 승리를 거둔 파업이 될 수 있다.
파업에 참가한 노동자들의 계급 의식이 발전하고,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에 대한 노동계급의 반발과 반대 투쟁의 정당성을 보여 주고, 다른 부문의 노동자들에게 신자유주의와 노무현 정부에 맞서 싸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 줄 수 있다.
반면, 정부는 파업을 물리력으로 제압하긴 하지만 더는 마구잡이로 자신들의 계획을 밀어붙이지 못할 것이다. 정부는 어느 정도 노동자 달래는 태도를 보이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2만여 명의 공무원 노동자들이 서울에서 거점 사수 투쟁을 벌인다면 그 정치적 효과는 대단할 것이다.
무엇보다 한나라당과 열우당의 진흙탕 개싸움보다 훨씬 중요하고 거대한 투쟁, 계급투쟁이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음을 보여 줄 것이다. 노무현은 그의 오른쪽으로부터만이 아니라 왼쪽, 아래쪽으로부터 진정한 도전을 받고 있음을 보여 줄 수 있다.
그것은 하반기에 벌어질 다른 투쟁도 고무할 것이고 이런 분위기에서라면 실제로 노무현을 물러서게 만들고 더 많은 양보를 얻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앞으로 다가올 다른 많은 투쟁을 연결할 중요한 고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전쟁과 자본주의에 반대하고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이 아닌 새로운 대안을 원하는 모든 사람들은 공무원 노동자들의 파업을 지지하고 연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