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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70년 전 해방 정국에서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는가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1·2는 김덕련 〈프레시안〉 기자가 좌파 민족주의 성향의 서중석 성균관대 사학과 명예교수와 인터뷰한 것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인터뷰 내용 중 해방과 분단, 한국전쟁과 민간인 학살을 다룬 부분이 두 권의 책으로 먼저 나왔다.

이 책은 친일파·분단·독재를 미화하는 뉴라이트와 우파들의 억지 주장과 거짓 신화를 통쾌하게 반박한다.

우파들은 이승만과 박정희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켜냈다고 강변해 왔다. 그러나 서중석은 1925년 임시정부에서 탄핵돼 쫓겨난 일, 1948년 5·10 선거에서 동대문갑선거구로 출마하려던 상대 후보의 등록을 경찰력을 동원해 무효화한 것, 1956년 대선에서 자신의 경쟁자로 떠오른 조봉암을 사형시킨 것 등 이승만이 어떻게 자유와 민주주의를 짓밟았는지를 잘 보여 준다.

박정희의 친일 경력도 드러난다. 박정희는 1939년 만주국 군관으로 받아 달라며 “천황한테 진충보국하겠다”, “죽음으로써 충성하겠다”며 혈서를 썼다(〈만주신문〉, 1939년 3월 31일).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2권에서 민간인 학살을 다루는 대목을 읽으면 이승만과 남한 지배계급이 얼마나 야만적이고 반인륜적이었는지 알 수 있다. 남한 군대와 경찰은 미군의 묵인과 방조 하에 불법적으로 민간인 수십만 명을 학살했다. 제주 4·3 항쟁에 대한 야만적 진압, 보도연맹원 학살 등 여자, 노인네와 아이들 할 것 없이 무고한 민간인들이 무참히 죽어갔다. 1951년 초 거창 민간인 학살은 민간인 피해자 7백19명 중 40퍼센트가 10세 이하 어린이였을 정도다.

우파들이 치켜세우는 ‘이승만 건국’은 부패의 오물을 뒤집어쓴 채 학살과 탄압으로 온몸에 피를 질질 흘리며 탄생한 흉측한 반공 우파 정권의 탄생에 불과하다.

한국 전쟁은 냉전을 배경으로 양대 제국주의 세력의 대리전으로 전개된 끔찍한 비극이었다.

우파들은 김일성에게 전쟁의 책임을 모두 떠넘긴다. 그러나 냉전 상황에서 남과 북에서 적대적인 단독 정부의 수립은 피비린내 나는 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했다. 김일성과 이승만은 둘 다 무력통일을 외쳤다. 한국전쟁 전에 벌어진 많은 남북 간 무력충돌은 남한이 도발한 것이었다. 전쟁 책임은 미국과 소련, 그리고 남·북 정권들 모두에게 있는 것이다. 이승만은 1946년에 “남조선에 단독 정부를 세워 3·8선을 깨뜨리고 소련군을 내어쫓고 북조선을 차지할 것이다“며 살기 어린 주장을 했다. 김일성이 1946년에 주창한 ‘민주기지론’도 서중석의 주장대로 “분단 고착화로 귀결될 논리”였다. 1948년에 남한 헌법은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로 한다”고 규정했고, 곧이어 제정된 북한 헌법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도는 서울”이라고 규정했다.

모스크바3상회의에 대한 그릇된 환상

서중석은 신탁통치에는 반대하지만, 모스크바 3상회의를 활용하는 것만이 통일 국가를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미소공위가 성사되도록 혼신의 힘을 기울인 김규식과 여윤형으로 대표되는 중도 우파와 중도 좌파가 옳았다고 본다. 미소공위가 파탄난 것은 조선공산당의 ‘극좌’와 이승만의 ‘극우’가 협력하지 않은 책임도 적지 않다며 이 부분을 “반성해야 할 지점”이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이런 관점은 미소공위의 본질과 미국과 소련의 진정한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다.

서중석은 냉전이 본격화되기 전인 “1945년에서 1947년의 일정한 시기까지 미국과 소련이 협력해 한반도에 한국 정부를 세우자고 상당히 노력했다”고 했는데, 이는 정확한 평가가 아니다. 냉전은 1947년 상반기에 본격화됐지만, 2차대전 종전 직후부터 전후 세력권을 둘러싸고 미국과 소련의 이해관계는 충돌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미소공위에서 미국과 소련은 서로 자신에게 우호적인 정권을 세우는 데만 혈안이 돼 있었다. 또한 미국과 소련 모두 자신에게 우호적인 임시정부를 세우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분단을 고착화시키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미소공위는 임시정부에 어떤 단체를 참여시키고 배제시킬지 공방만 하다가 결국 파탄 났다.

미군정은 이승만과 김구 등 우파들이 주도한 반탁 운동이 대중적 지지를 얻자 소련과 공산당의 영향력을 약화시킬 수 있는 계기로 보고 반탁 운동을 묵인했다. 미국에게 중요한 것은 한반도를 대소 전초 기지로 만드는 것이었다. 소련도 패권 유지에 관심이 있었다. 1946년 3월 20일 미소공위가 서울에서 처음 개최될 때 소련 대표 슈띠꼬프는 “조선을 소련의 우호국으로서 장래 소련에 대한 공격 기지가 되지 않도록 하는 데 큰 관심을 갖고 있다”며 속내를 드러냈다. 1차 미소공위가 결렬되자 소련공산당은 1946년 7월 26일 중앙위원회를 열어 북한에 단독 정부를 수립하기로 의결했다.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을 지지해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임시정부가 신탁통치를 반대하면 미국, 소련도 우리 의견을 무시하지 못했을 거라는 판단은 냉혹한 제국주의 질서와 자본주의의 내재적 특징에서 비롯한 열강의 지정학적 경쟁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서중석은 최신 역사 자료를 자유자재로 활용하지만, 몇 가지 대목은 사실과 다르다. 서중석은 조선공산당이 모스크바3상회의의 결정 사항을 잘 몰랐을 것이라고 단정한다. 박헌영이 평양에 가 소련의 지령을 받은 후 모스크바3상회의 결정을 지지하기로 입장을 바꿨다는 ‘소련지령설’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자료가 있다. 《박헌영 평전》(안재성, 실천문화사, 2009)에도 박헌영이 평양에서 소련 지령을 받는 장면이 자세히 묘사돼 있다.

좌우합작이 아니라 계급투쟁이 대안

서중석은 좌우합작과 남북대화에 큰 의미를 부여한다.

그러나 냉전이 심화되고 정치적 양극화가 첨예화되는 상황에서 좌우합작은 애초에 실현 불가능한 전략이었다. 1948년에 평양에서 진행된 남북회담에서 결정된 내용도 공허한 수사에 불과한 것이었다. 여윤형의 실패는 ‘극좌’와 ‘극우’의 방해 때문이 아니다. 좌우합작위원회가 활동하는 기간(1946년 7월~10월)에 미군정은 본격적으로 좌파를 탄압했다. 1946년 9월 총파업과 10월 민중 봉기로 남한 전역은 투쟁의 소용돌이에 빠졌다. 계급 대립과 좌우 대립은 깊은 적대적 모순에서 비롯한 피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계급투쟁보다 민족국가 건설을 우선하는 관점에서는 계급투쟁이 민족 단결을 해치는 것으로 보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노동자들의 자주관리운동이 갖고 있던 잠재력에 대해서는 주목하지 않는다. 심지어 서중석은 북한의 토지개혁이 너무 “급진적”이어서 우파들의 반발을 불러와 통일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조선공산당은 너무 ‘극좌적’이어서 아니라 오히려 계급협력노선을 추구한 것이 문제였다. 조선공산당은 1935년 코민테른 7차 대회 이래 견지돼 온 스탈린의 민중전선 정책에 따라 당면 혁명을 부르주아 민주주의로 한정하고 노동자와 농민의 급진적 사회변혁 운동을 통제했다. 그래서 노동자들의 자주관리운동도 부정했다. 1946년에 7월에 전평 지도부는 “미군정과 협력하기 위해 긴급히 실행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항은 태업, 파업, 시위운동, 기타 정치운동은 직장 내에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라며 분출하는 노동자들의 파업을 자제시켰다. 이런 정책은 결과적으로 분단을 고착화시키려는 미군정과 우파들만 강화시켰을 뿐이다.

좌파와 중도파를 배제하고, 심지어 우파인 김구조차도 반대한 1948년 5·10 선거가 의미가 있다며 여기에 참여해야 했었다는 주장도 동의가 안 된다. 이 선거는 미국 주도 하에 남한에서 친미 우파 정권을 세우기 위한 겉치레에 불과했다.

무엇보다 21세기에도 지정학적 이점을 세워 남북대화를 통해 제국주의 열강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이라는 서중석의 주장은 해방 정국에서 제대로 된 교훈을 이끌어 낸 게 아니다. 해방 정국 초기에 좌파들은 열강의 대화와 타협에 의존하느라 제국주의에 반대할 수 있는 진정한 동력인 노동계급과 피억압 민중의 아래로부터의 저항을 발전시키지 못했다. 우리가 21세기 한반도에서 제국주의 열강의 치열한 경쟁과 군사적 긴장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해방 정국에서 제국주의 자체에 일관되게 반대해야 한다는 제대로 된 교훈을 이끌어 내야 한다. 아래로부터의 노동자 운동에 기반한 반자본주의적인 방향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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