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추진 중인 ‘노동자 정치 세력화’, 어떻게 볼 것인가?
〈노동자 연대〉 구독
정의당, 노동정치연대, 국민모임, 진보결집+ 등 4조직 대표자들이 올 11월에 새로운 대중적 진보 정당을 창당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를 위해 ‘진보혁신과 결집을 위한 연석회의’(이하 4자 연석회의)를 구성했다.
4자 연석회의는 “보수정치 독점 구조의 혁파”를 포부로 밝혔다. 대중적 불신과 혐오의 대상인 양당 체제의 혁파는 진보성을 띠는 정치 프로젝트다.
오랫동안 한국 정치 체제를 지배해 온 자본가 양당 체제를 무너뜨리는 것은 만만찮은 과제일 것이다. 그러나 새정치연합이 워낙 꾀죄죄해, 그 당 왼쪽에서 진보 정치 세력이 성장할 공간이 다소 형성될 수 있다. 그러므로 경제 위기 때문에 개혁의 여지가 남아 있지 않아 한국에서는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가능하지 않다는 주장은 참말이 아니다. 물론 자본주의 경제 상태는 사회민주주의 정당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경제 상태가 나빠, 집권한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개혁을 제공하지 못하거나(개혁 없는 개혁주의) 심지어 도로 빼앗으려 하면서(개혁을 빼앗는 개혁주의) 서구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은 노동계급의 충성심을 크게 잃었다. 청년들의 광장 점거 운동에서 “정당 반대”가 유력한 정서로 떠오른 배경 중에는 이러한 사회민주주의의 위기가 있었다.
그러나 노동자 운동의 유력한 이데올로기로서 개혁주의가 죽었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영국 노동당 내 좌파인 제러미 코빈이 긴축 반대 정서에 힘입어 결국 당수로 선출된 데서 보듯이, 심지어 서구에서도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생명력은 질기다. 개혁주의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겪는 노동계급의 모순된 일상 경험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투쟁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노동조합의 협상이나 “국회 대응”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이 때문에 정치 경향으로서 개혁주의는 계속 존속할 수 있다. 2000년에 작고한 팔레스타인 마르크스주의자 토니 클리프는 이렇게 말했다. “노동자들이 더 나은 세계를 만들고자 하는 한, 그러나 스스로 그렇게 할 수 있을 만한 자신감이 없을 때, 노동당은 결정적인 영향력을 계속 유지할 것이다.”
게다가 한국은 아직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집권을 경험하지 못했다. 시리자의 경우에서 보듯이, 개혁주의 정당의 모순은 집권 때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노동계급은 아직 집권한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배신 같은 것을 경험하지 못했다.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성장할 가능성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점진적 사회 개혁 전략과 달리, 그 당의 성장은 점진적이지 않을 수 있다. 민주노동당은 2008년에 분당했지만, 당 역사의 전반부는 눈부시게 성장했다. 창당 4년 만에 국회의원 10명을 보유한 제3당이 됐다. 군부독재가 몰락한 1974년에 창당한 그리스 사회당(PASOK)도 7년 만인 1981년에 집권했다.
물론 현재 많은 선진 노동자들이 진보 정당들의 지리멸렬한 상태에 실망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적·국제적·국내적 경험을 종합해 봤을 때, 이로부터 곧장 개혁주의 정당은 성장 가망이 없다고 전망해서는 안 된다. 그랬다가는 노동계급의 의식 흐름에 둔감해질 수 있다. 따라서 사회주의자들은 개혁주의 정당의 최신 상태와 계급투쟁 등을 예의 주시하며 설득력 있는 전술들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새 정당, 진전이지만 문제점도 발생시킬 것이다
노동자들은 노동조합 같은 경제적 기초뿐 아니라 정치적 기초 위에서도 스스로 조직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기존의 자본가 정당들에 맞서 대중적 진보 정당이 등장하는 것은 진전이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의 경험에서 봤듯이, 노동자 정당이 건설된다 해서 노동계급의 정치적 독립이 자동으로 확보되는 것은 아니다. 민주노동당은 강령에서 “사적 소유권 제한”, “생산수단 사회화”를 표방해 자본가 정당들과는 다른 좌파 개혁주의 정당임을 선언했다. 그러나 그 당의 지도부와 의원단은 노무현 정부/열린우리당과의 “개혁 공조”를 중시했다.
4자 연석회의가 추진하는 새 정당은 그나마 민주노동당보다 우경적인 개혁주의 정당이 될 것 같다. 정의당은 통합보다는 정의당으로의 “수혈”을 원한다. 반면, 나머지 단체들은 통합을 선호한다. 그래서 아직 당명, 지도 체제, 강령 등이 확정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새 정당은 정의당의 재창당 형식을 취할 것 같다. 4자 연석회의 내 저울추가 정의당으로 크게 기울어져 있기 때문이다.
정의당은 주류 사회민주주의 정당을 지향한다. 사회민주주의는 당의 사회적 구성, 재정, 투표 기반은 노동계급적인 반면, 당의 지도부와 정책들은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고자 하는 정당이다. 이를 두고 러시아의 혁명가 레닌은 “자본주의적 노동자 당”이라고 했다. 이와 비슷하게,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헌법 안의 진보”라고 불렀다.
이런 모순된 성격 때문에 노-자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문제들에서 정의당은 흔히 이율배반적 태도를 취한다. 예를 들어 심상정 대표는 공무원연금 “개혁”을 지지하면서도 일방적 추진은 반대했다. 확실하게 자본가 계급의 편을 든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확실하게 노동계급의 이익을 옹호하는 것도 아니었다. 이런 모순의 실천적 결론은 사회적 타협 — 계급 평화 — 을 옹호하는 것이다. 그래서 정의당은 공무원연금 개악을 여야 야합과 공무원노동조합 집행부의 배신이라고 비판하지 않고 “사회적 합의”라고 두둔했다.
좌파 포퓰리즘
한편, 김세균 국민모임 대표는 이런 사회민주주의 정당에 한국 상황을 가미한 개혁주의 정당을 만들고 싶어 한다. 그는 “기본 모순”(노-자 모순)보다 “주요 모순”(독점 재벌 대 압도적 다수의 국민 대중)을 우선 해결하는 반신자유주의 범진보연합전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진보정치의 과제와 방향’, 〈레디앙〉, 2015년 7월 21일) 기본 모순과 주요 모순의 (마오쩌둥식) 구분이 쓸데없는 현학일 뿐임에 대해서는 이 자리에서 논할 여유가 없다.
김 대표는 스탈린주의의 민중전선(“반파쇼 범민주연합전선”)을 논거로 댔다. 그가 정동영 등 부르주아 포퓰리스트 정치인들과 함께 국민모임을 만든 것은 이런 노선을 실천에 옮긴 것이라 할 수 있다.
주요 모순을 우선 해결하자는 주장의 실천적 함의는 “소수 독점 재벌”에 맞선 계급연합이다. 계급연합은 두 가지 형태를 취한다. 먼저, 사회적 리버럴(진보적 자유주의)까지 포함하는 계급연합 정당을 만든다. 그리고 부르주아 자유주의 정당인 새정치연합과 연립정부를 구성한다. 김세균 대표는 연립정부 참여 문제를 “전략적 원칙의 문제가 아니라 전술적 선택의 문제”라며 그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그러나 신자유주의를 극복하기 전에는 자본주의를 문제 삼지 말자는 단계론은 자본주의의 지배적 형태가 신자유주의인 오늘날 공상적이다.
무엇보다 이런 포퓰리즘(좌파적일지라도)은 계급을 가로지르는 계급 협력주의 전략이기 때문에 노-자 기본 모순에 의한 투쟁을 약화시킨다. 재벌은 공중에 붕 떠 있는 존재가 아니라 유기적인 한국 자본주의 구조의 정점일 뿐이다. 그러므로 재벌 문제를 해결하려면 현재의 경제적·정치적 지배 구조를 해체시켜야 한다. 이것은 “국민 대중”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자 계급과 자본가 계급의 계급투쟁 문제로서, 반자본주의 혁명의 성공에 조금 못 미치는 수위의 계급투쟁이 전개돼야만 가능하다.
그런데 그런 수위의 계급투쟁 속에서 왜 노동계급과 대중이 재벌 문제 해결에서 멈춰야 하는가? 이게 현학이 아니면 무엇인가.
계급투쟁보다 선거적 해법 중시하기
4자 연석회의의 기본 문제의식은 통합한 진보 정당이 주도력을 발휘할 때 노동계급의 현안과 사회·경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에게 계급투쟁은 문제 해결의 열쇠가 아니고, 기본 동력으로도 감안되지 않는다. 4자 연석회의의 진단은 투쟁과 ‘정치’를 분리시키고는 선거에서 답을 찾는 개혁주의 실천을 강화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정의당 지도부가 그 전형이다. 정의당 지도부는 “원내정당화 전략”(심상정), “진보의 세속화”(노회찬), “진보의 현대화”(천호선)라는 이름으로 운동과 정치를 날카롭게 분리시키고 있다.
그래서 “조직된 노동자들”의 “정치적 실천, 계급적 책무”가 “노동정치의 복원과 진보정치의 혁신과 결집”이라고 주장했다.(김영훈·신승철 민주노총 전 위원장 등, ‘노동정치의 복원과 진보정치의 결집에 함께할 것을 제안합니다’, 2015년 6월 25일) 나경채 전 노동당 대표도 세월호 참사 항의 운동의 “무기력”을 넘어서기 위해 “진보정치 결집 기획”이 필요하다고 말했다.(《오늘보다》, 제2호, 2015년 3월)
현재 노동자 투쟁은 결코 침체 상태가 아니지만, 충분히 강력하게 발전한 상태도 아니다. 대다수 노동자들은 지배자들의 노동자 조건 공격을 반대한다. 그중 전투적 부문은 투쟁하고 있지만 그 투쟁들은 곧잘 차질을 빚고 있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저항으로 박근혜도 정치적 타격을 받았었다.
이런 사태전개는 제도권 정치 내 진보 정당의 취약성 문제와 그다지 관계가 없다. 핵심 문제는 노동조합 상층 지도자들의 보수적이고 소심한 대응이었다. 세월호 참사 항의 운동이 더한층 전진하지 못한 진정한 이유도 노동계급이 자신의 경제적 힘을 사용하며 정치적 항의 운동에 동참하도록 소명하지 않은 노동조합 지도자들의 소심하고 지나치게 온건한 방침이었다.
나경채 전 대표는 정의당의 우경화를 막기 위해 진보 결집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 주장에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지난 6월 노동당 당대회를 앞두고, 천호선 전 정의당 대표는 2017년 대선에서 “정권 교체 후에는 연립정부를 구성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도 나 전 대표를 비롯한 진보결집+ 성원들은 정의당의 우경 노선에 대해 공개적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
통합 논의를 하는 마당에 공개적 비판이 공연히 긴장을 부를까 봐 꺼렸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진보결집+가 사회연대전략을 2016년 총선의 주요 공약으로 제안한 것을 보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닌 것 같다. 사회연대전략은 정규직 고소득 조직 노동자들이 국가와 기업주에 양보해 노동계급 내 격차를 완화하자는 정규직 양보론이자 노-자 간 사회적 타협론이다.
그래서 진보결집+의 진정한 동기는 노동당으로는 3년 연속 예정돼 있는 선거를 치를 수 없다는 초조감인 것 같다. 진보결집+ 리더들의 대부분은 과거 민주노동당 시절 사회주의 강령을 지지하고 “사회운동적 정당”을 주창했는데, 지난 10년 새 꽤 많이 오른쪽으로 이동한 듯하다.
사회주의자들이 새 정당에 참여해야 할까?
김세균 대표는 “진보좌파 세력”이 새 정당에 참여해 “전선운동의 급진화 등을 위해 노력”하라고 촉구했다. 이를 “거부하는 좌파에겐 희망이 없다”고도 했다. 과연 그럴까?
신자유주의 공세를 저지할 수 있는 기본적인 동력은 계급투쟁에 있다. 사회주의자들은 아래로부터의 계급투쟁을 고무하는 것을 크게 강조한다. 그것이 선거에도 더 도움이 된다. 1997년 12월 대선에서 일당국가가 완전히 무너진 것은 1996년 12월부터 1997년 1월까지 전개된 민주노총 파업(과 IMF 금융 공황)이 낳은 정치적 각성의 효과였다. 또, 2004년 3월 일어난 노무현 탄핵 반대 거리 항의 운동이 당시의 정치적 지형을 왼쪽으로 이동시킨 덕분에 그 직후 치른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은 일약 3당으로 부상했다.
계급투쟁의 중요성을 분명히 하는 것이 곧 개혁주의 정당을 종파적으로 대한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전투적이고 선진적인 노동자들에게 새 정당은 크게 미흡할 것 같다. 예를 들어, 정의당 의원들이 공무원연금 “개혁” 표결에서 반대표를 던지지 않은 것은 매우 실망스럽다.
현재 통합이 노동자 투쟁을 고무하는 방향도 아니다.(물론 개혁주의 정당은 지배계급과 노동계급의 이해 충돌을 ‘국민’의 이름으로 조화시키려 할 것이고, 그래서 개혁주의적 본질은 바뀌지 않은 채로 지그재그 할 수 있다.) 이 점은 노동정치연대 소속 공공부문 ‘중앙파’ 활동가들의 조직인 ‘공공운수현장조직(준)’이 다음과 같이 “대책 없는 투쟁 만능주의”를 비판하는 데서도 드러난다.
“당위적인 총파업을 외친다고 투쟁 전선이 회복되는 것은 아니다. … 노동자 대중의 ‘정치 투쟁 의식’을 높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사업장 담장을 넘는 의식화의 장이 필요하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진보정치의 공간이다.”(〈레디앙〉, 2015년 8월 28일자)
따라서 선진 노동자들이나 급진적 청년들이 투표를 넘어 새 정당에 입당하는 수준으로까지 지지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따라서 사회주의자들도 입당 전술을 취할 이유는 없다. 그보다는 특정 쟁점을 놓고 새 정당의 좌파 계열과 공동전선을 구축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물론 더 넓은 범위의 노동자들은 정치 대안 부재 때문에 선거에서 새 정당을 지지할 수 있다. 선거에서 더 좌파적인 대중 정당이 부재한 가운데 새 정당이 새누리당이나 새정치연합 등 부르주아 정당과 맞붙는다면 사회주의자들은 당연히 새 정당에 투표하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물론 환상을 경계하면서 말이다.
사회민주주의 정당에 대한 사회주의자들의 10가지 태도
① 사회민주주의 정당은 조직 노동자들과 연계돼 있으므로 조직된 자본과 연계된 순전한 부르주아 정당보다 어느 경우에든 더 낫다.
② 투쟁 없이 진보 없다. 노동자들과 천대받는 사람들이 획득할 가치가 있는 것은 무엇이든 투쟁으로 쟁취해야 한다.
③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부르주아 정당과 싸우려 하지 않을수록 사회민주주의 정당은 선거에서든 다른 어느 전선에서든 부르주아 정당을 이기기가 더 어려워진다.
④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타협하고 얼버무리고 발뺌할수록 사회민주주의 정당에 투표하는 사람들의 투지는 약화된다.
⑤ 사회민주주의 정당 지지자들의 투지가 약화될수록 사용자들, 국가 관료들, 우파들의 기가 살아나고 그 세력이 강화된다.
⑥ 선거로 선출된 의회의 권력은 선거로 선출되지 않은 기업주, 국가 관료, 경찰 수뇌부, 사법부, 주류 언론 등의 권력에 의해 줄곧 좌절을 맛보게 된다.
⑦ 사회민주주의 정당 정부가 기업주, 국가 관료, 경찰 수뇌부, 사법부, 주류 언론 등에게 ‘공정’하려 애쓰면 애쓸수록 사회민주주의 정당 정부는 그들의 포로가 된다.
⑧ 사회민주주의 정당 정부가 그런 권력자들의 포로가 되면 될수록 사회민주주의 정당 정부는 자신에게 투표한 사람들을 공격하게 되고, 그럼으로써 다음번 선거에서는 거의 패배하게 된다.
⑨ 이런 악순환은 20세기 서구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의 역사가 입증해 준다.
⑩ 결론을 맺자면 이렇다. 사회민주주의 정당에 투표하라. 그러나 투쟁 수위가 내려가지 않도록 아래로부터 저항을 건설해, 사회 상층부의 권력자들에게 이래라저래라 할 만큼 강력한 세력을 구축하라. 그리고 마침내 이 자들의 지긋지긋한 독재를 끝장낼 혁명을 위해 분투해야 한다.
민주노총의 정치/선거 방침에 대해
2012년 통합진보당이 분열하면서 특정 정당에 대한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 방침은 소멸됐다. 그 여파로 12월 대선에서도 민주노총은 선거 방침을 내놓지 못했다.
따라서 민주노총이 이 문제를 논의할 때 먼저, 정치 방침과 선거 방침을 구별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복수의 진보 정당들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특정 정당 지지 방침 문제는 까다롭고 분열적 긴장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옛 통진당 계열 노동조합 활동가들은 배타적 지지 방침을 부활시키자고 한다. 이를 통해 노동 중심 진보대통합을 하자는 것이다. 이들이 여전히 민중전선(전략적 야권연대)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에, 노동 중심 진보대통합은 노동자 정당을 만들어 부르주아 야당과 계급 협력을 하자는 노선이다. 현 시점에서 배타적 지지 방침 부활은 진보 정당들이 분화한 역사적 맥락을 무시하는 추상적인 입장이다. 그리고 선거 실리를 위해 노동조합을 분열시키고 투쟁을 약화시킬 수 있는 발상이다.
그렇다고 민주노총이 아무 정치 방침도 채택하지 않으면 자본가 정당들, 특히 새정치연합이 그 틈을 비집고 노동조합 속으로 파고들 수 있다. 그러므로 민주노총은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 같은 부르주아 정당을 배제한 진보 정치 세력들을 지지한다는 진보/좌파 다원주의 정치 방침을 채택할 필요가 있다.(민주노총은 2014년 지방선거 대응 방침으로 통합진보당, 정의당, 노동당, 노동자계급정당추진위, 노동정치연대, 녹색당을 “노동정치세력”으로 확정한 바 있다.)
한편, 시점상 선거를 앞둔 시기에는 노동자들을 최대한 정치적으로 단결시킬 수 있는 선거 방침이 더 중요한 문제일 수 있다. 민주노총은 같은 선거구에서 노동자 정당 후보들이 서로 경쟁하지 않도록 후보 단일화를 권유해야 한다. 경쟁은 노동자 유권자들에게 분열로 비쳐 실망과 환멸을 자아내 투표 동기를 부여하지 못할 것이다.
또, 민주노총은 노동자 밀집 지역이나 노동자 정치 활동이 활발했던 지역, 진보 정치에 정치적 상징성이 큰 지역(이른바 “전략 지역”)을 선정해 투표 지침을 제시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효과가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지지 후보에 대한 민주노총의 정치적 기준을 세워야 한다. 민주노총 조합원 출신이라는 이유가 유일하거나 가장 중요한 기준일 수는 없다. 배신의 전력을 공개 반성하지 않는 우파적 노동조합 관료도 그 조건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동조합과 유기적 연관을 맺고 있을 뿐 아니라, “노동개혁” 반대, 기성 자본가 정당으로부터의 독립성 유지 같은 정치적 기준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누구를 지지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야권연대 문제를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NL식 또는 정의당식 전략적 야권연대는 선거 실리는 줄지 몰라도 계급투쟁의 발목을 잡는 구실을 하기 때문에 반대해야 한다. 그러나 그 어떤 경우에도 야권연대를 해서는 안 된다고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예를 들어, “(1) 어쩔 수 없는 경우에, (2) 공동 집권을 목표로 하지 않고, (3) 그저 특정 선거구(들)에 한정해, (4) 후보 단일화 수준의 제휴를 하면서, (5) 정치적 비판을 삼가지 않는”(2014년 11월 6일 노동자연대 성명, https://ws.or.kr/article/15085) 야권연대는 정당한 전술이라 할 수 있다.
끝으로, 정당 투표 문제가 남아 있다. 진보 정당이 복수로 존재하기 때문에 정당 투표도 진보/좌파 다원주의에 근거해 그 정당들 중에서 투표하도록 하는 게 좋을 것이다.
4자 통합과 진보대통합
옛 통진당 세력은 진보대통합을 요구한다. 반면, 4자 연석회의는 이들을 배제했다. 두 가지 쟁점이 이들 사이에 놓여 있다 — 통합진보당 선거 부정 사태와 북한 문제.
통합진보당 선거 부정 사태 당시 NL계는 그 사실 자체를 부정하거나 자신들은 선거 부정을 하지 않았다며 아무런 정치적 책임을 지지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많은 언론이 지켜보는 중앙위원회 회의장에서 집단 폭력을 행사해 의사 진행을 가로막았다. 이 문제에 대한 반성적 성찰 없이 과연 진보대통합이 될 수 있을까.
북한 문제는 훨씬 더 근본적이다. 2000년대 동안 사회민주주의와 스탈린주의가 한 정당 안에서 동거했다. 민주노동당은 스탈린주의자들이 대거 입당한 2004년부터 스탈린주의자들이 주도하는 사회민주주의 정당이라는 모순이 있었다. 그만큼 동거는 불안정했다. 2005년 북한 핵실험 이후 북한 문제가 민주노동당 안에서 뜨거운 감자가 됐다. 민주노동당의 가장 주된 분당 이유 하나도 북한 문제였다.
그 뒤 통합진보당으로 재통합했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되고 그에 따라 남북 관계가 경색되면서 피할 수 없게 된 북한에 대한 태도 문제가 근저에 있었다. 분당 후 정의당의 행보가 이를 보여 준다. 지금 정의당은 냉전 시기 서구의 반공주의적 사회민주주의를 연상시키는 행보를 하고 있다. 지난 1월 정의당 지도부는 천안함 위령탑을 참배했고, 심상정 대표는 비무장지대 지뢰 폭발 사건을 두고 북한의 반인도적 전쟁범죄라고 규탄하는 한편 박근혜 정부의 안보 무능을 질타했다. 〈동아일보〉는 정의당 지도부의 천안함 위령탑 참배를 두고 “종북과 선 긋기”라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서 진보대통합이 가능한 유일한 방식은 (선거법 문제가 있으므로) 형식적으로는 하나의 정당을 만들되, 그 내부는 정치적·조직적으로(즉, 강령상으로나 규율상으로) 느슨한 공동전선적 운영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북한 문제에 대한 자신들의 강령을 연합 정당에 강요하지 말고, 각자의 강령으로 활동하는 모델이다.
이참에 옛 통진당 계열도 다른 세력을 끌어들여 정당을 만들려는 시도를 포기하고 자신들의 합법 정당을 만드는 게 좋을 것이다. ‘남들 끌어들여 정당 만들기’는 민주노동당과 통합진보당의 분당을 겪으며 파산했다. 많은 좌파들이 그 경험에 진저리를 쳤다. 국제적으로 스탈린주의 세력은 국가 탄압에 맞서 합법적인 정당과 전선체 두 날개로 대응해 왔는데, 옛 통진당 계열도 이 경험을 진지하게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