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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편지 강남미디어고의 비민주적인 학교교육개편 반대 운동:
기업 맞춤형 게임마이스터고 추진을 막아내다

올해 박근혜 정부는 이명박 정부의 ‘마이스터 고등학교 육성사업’을 이어받아 ‘게임마이스터 고등학교’를 추진했다. 정부는 마이스터고를 “기업 맞춤 인재 양성”을 위한 것으로 “고졸 취업의 신화”를 만들겠다고 광고했다.

지난해에 내가 다니는 인천 강남미디어고도 이런 정부 정책에 호응해, 학생·학부모 몰래 게임마스터고를 추진하려 했다. 지난해에는 학교의 지리적 조건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마이스터고 선정이 유보됐었는데, 올해 교장·교감과 소수 교사들은 게임마이스터고 추진을 위한 TF팀까지 구성해서, 다시금 게임마스터고 추진에 적극 나섰다. 강남영상미디어고는 인천에서 유일하게 영상편집이나 촬영조명실무 등을 다루는 학교이다. 그런데 최근 영화 시장의 취업 전망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비민주적인 학교교육과정 개편을 강행하려 한 것이다.

학교 당국은 학생·학부모들의 의견 수렴은 고사하고, 게임마이스터고로 바뀐다는 공지조차 하지 않았다. 뒤늦게 이를 알게 된 많은 학생들이 “우리의 모교가 없어지는 것 아니냐”, “후배들이 없어질 것이다”, “앞으로 교육과정은 어떻게 되는가” 하는 등의 불만과 의구심을 토로했다.

학생들만이 아니라 대다수 전공 교사들도 마이스터고 추진에 반대했다. 게임마이스터고로 전환되면, 현재 전문 교과를 가르치는 교사들은 몇 년 후에 일자리를 잃게 되거나, 재교육을 받아 중학교에서 기술·가정과 같은 과목을 가르치게 된다. 또한, 교육과정 변경에 따른 시설 공사와 여타 준비가 단번에 되는 것이 아니다. 이로 인해 전공 교과 교사의 업무가 가중될 참이었다.

그럼에도 학교 당국은 학교 구성원들의 의견에 귀를 닫고, 비밀리에 마이스터고 추진을 강행하려 했다. 또한, 교육청에 학생·학부모·교사 모두의 의견을 반영했다는 거짓 보고서를 제출했다.

서명운동

학생인 나는 이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학생회에 “학생들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는 논의테이블을 구성하는 서명운동”을 하자고 제안했다. 그래서 학생회 임원들과 함께 서명을 진행했다. 마침 우리가 서명을 진행한 시기는, 학생들의 불만이 막 끓어오르고 있을 때였다. 각 반마다 돌면서 서명을 받으면, 90퍼센트 넘는 학생들이 동참했다. 특히 1·2학년 학생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결국 학내 여론에 압박을 느낀 학교는 학부모 설명회를 개최했다. 원래 학교당국은 학부모 설명회에 학생은 참가하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마이스터고 전환에 반대하는 한 교사가 설명회와 겹치는 수업 시간에 배려해 주어서, 나는 설명회에서 발언도 할 수 있었다.

설명회에 참가한 학부모 대다수는 마이스터고 추진에 반대했다. 한 교사가 설명회에서 나에게 “서명을 받은 주동자가 누구냐”고 추궁하자, 한 학부모는 “학생들이 오죽하면 서명을 받았겠냐”며, “주동자를 찾아서 책임을 물을 게 아니라 학생들의 의견을 학교에서 진작 들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학교 당국은 학생들의 의견을 묻는 설명회도 개최하겠다고 약속할 수밖에 없었다. 전문교육부장을 비롯한 전공 교과 교사들은 “너희(학생)들이 언제 이런 것을 준비했느냐. 내가 하지 못하는 말들을 네가 해줘서 속이 시원했다. 서명 받은 것을 잘 활용하라”며 학생들을 응원했다.

학생 설명회에서는 마이스터고 추진 TF팀의 한 교사가, 마이스터고 전환이 학생들에게 이득이 될 수도 있다며 학생들을 회유했다. 그럼에도 대다수 학생들은 마이스터고 전환에 반대했고, 학부모 설문조사에서도 반대 의견이 훨씬 많았다.

결국 인천 교육청은 학교가 미리 학생·교사·학부모의 의견을 제대로 수렴하지 않아 집단 항의가 일어날 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마이스터고 추진 입장을 철회했다.

마이스터고 추진에 반대하는 서명 운동을 하면서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 중·고등학교에서 서명 운동을 벌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비밀스럽게 서명운동을 해야 했음에도, 학생회라는 공식적인 기구를 통해 논의하고 진행한 덕분에 폭넓게 진행할 수 있었다. 또한, 학생뿐 아니라 교사·학부모들과 함께 싸울 수 있었다는 것도 이 운동의 성공 요인 중 하나였다.

운동의 중요한 성과 중 하나는, 학생들이 학교의 일방적인 마이스터고 추진을 막아냄으로써 자신감을 얻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서명운동 과정에서 더 많은 학생들과 이번 사안의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토론을 할 수 있었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이 운동은 우리에게 부당하고 비민주적인 교육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을 심어준 좋은 계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