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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 야합 항의 투쟁에 나선 집배원 노동자들:
“공공사업 적자를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토요 근무 부활 반대한다”

10월 3일 토요일 오후, 전국의 우편집배원 노동자 6백여 명이 서울 종각역 앞에 모여 토요일 근무 재개를 밀어붙인 사측과, 이를 직권조인한 우정노조 지도부 퇴진을 촉구하는 집회와 행진을 벌였다. 특히, 이날 집회는 사측과 노조 지도부의 온갖 방해 공작과 탄압을 뚫고 성공적으로 개최된 것이라 더욱 의미가 깊다. 제주도에서 비행기를 타고 참석한 조합원을 비롯해, 전국 곳곳의 집배원들이 의기투합했다.

"토요 근무 부활 반대한다" 노사 야합에 맞서 투쟁에 나선 집배원 노동자들, 10월 3일 서울 종각역 앞. ⓒ윤필언

지난 9월 1일 미래창조과학부 산하 우정사업본부와 한국노총 소속 전국우정노조 지도부는 우편 사업의 적자를 해소하겠다며 토요일 근무 재개를 야합했다. 집배원 토요일 휴무를 시행한 지 1년 2개월 만이다.

그러나 장시간-중노동에 시달리면서도 묵묵히 우편물을 배달해 온 집배원 노동자들에겐 적자의 책임이 없다.

“97년 외환위기 이후 비정규직, 정규직 3천 명이 집배실을 떠났습니다. 2000년대 초 핸드폰이 대중화되고, 길거리에서 카드 만들어 주고, 4대 보험이 의무화되면서 각종 우편물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습니다. 당시 우편 물량이 꽉 차서 밤새 구분하고 집에 가서 3~4시간 눈 붙이고 일하러 나왔습니다. 한 달에 잔업만 1백50시간이던 시절이었습니다. 머리는 멍하고, 달리는 오토바이에서 쏟아지는 졸음을 참아가며 일했습니다. ‘어지러워 쇼파에 가서 잠깐 눈 좀 붙이고 올게’ 이 말이 동료에게 한 마지막 말이 되기도 했습니다.”(최승묵 토요근무반대·우정노조지도부퇴진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 공동대표)

실제로 집배원 노동자들은 그간 상상을 초월하는 장시간-중노동에 시달려 왔다. 2014년 한국노동연구원에서 발표한 ‘우정종사원의 근로시간, 일, 생활균형 실태조사 및 균형방안’에 의하면, 노동자들의 연평균 근로시간은 2천9백52~3천2백16시간이다. 2013년 노동자운동연구소의 실태 조사를 보면, 집배원들의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64.6시간이었다. 이는 법정 근로시간을 무려 1백60일이나 초과하는 것이다.

이러한 장시간-중노동은 안타깝게도 산재사고로 이어졌다. 고용노동부 발표 자료에 따르더라도, 지난 10년간(2005-2014년) 집배원 노동자 75명이 산재로 사망했다. ‘산재사망대책 마련 공동 캠페인단’과 ‘세월호참사국민대책회의’가 가장 많은 노동자가 숨진 최악의 살인기업을 선정했는데, 1~3위가 건설업체였고 4위가 정부기관인 우정사업본부였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그동안 인력 충원을 줄기차게 요구했다. 우정사업본부는 중대 재해가 있을 때마다 집배원을 증원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이를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는 인력 1천 명 증원을 약속했지만 그의 노동-복지 공약이 그랬듯, 제대로 이행되고 있지 않다.

또한 노동자들은 연장 근로에 대한 정당한 대가도 온전히 받지 못했다. 연가를 통한 보상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는 청년 실업의 원인이 ‘고임금-철밥통’의 정규직 노동자들 때문이라며 노동시장 구조개악을 강행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정부기관인 우체국의 집배원 노동자들은 일이 너무 많아 못 살겠다며 비명을 지르고 있다. 박근혜의 청년 고용 대책은 희대의 사기극인 것이다.

OECD 주요국 인구 대비 우정인력 비교를 보면, 한국은 우정 종사원 1인당 담당인구가 1천 1백63명으로, 1위인 독일(1백95명)에 비해 6배나 많고, 일본(3백33명)에 비하면 4배나 많다. 따라서 진정한 해결책은 정부가 공공부문에서부터 (노동조건 하향 없는)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확대에 나서는 것이다. 그럴 때, 공공서비스도 훨씬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

책임 전가

토요 근무 재개는 노동자들에게 우편 업무 적자의 책임을 떠넘기는 공격의 일부이다. 행정자치부와 우정사업본부는 4월에 “경영 효율화를 위한 조직개편”을 단행하겠다고 발표했다. 1천23명을 감축하겠다는 방안으로, 우편 분야의 적자를 줄이기 위한 구조조정(인력 자연 감축 및 재배치)이 핵심이다.

당시 행자부 장관 정종섭은 “선제적으로 공무원 정원 감축 분야를 발굴하는 등 정부조직 효율화의 우수 사례”라고 칭찬했다. 그런데 당시 조직개편안에는 하위직에겐 인력 감축의 고통을 안기면서, 고위직은 승진 잔치를 벌이는 내용이 포함된 것이 폭로 돼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또한 최근 있었던 우정사업본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는, 정부가 우정사업 특별회계에서 6천6백41억 원을 전출(정부 일반회계 예산으로 사용)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심지어 우정사업본부가 최근 3년간 비정규직 8천5백 명에게 정액 급식비 33억 5천2백31만 원을 지급하지 않았다는 것도 국감에서 폭로됐다.

그간 정부와 우정사업본부는 우체국 노동자들의 고혈을 쥐어 짜내는 데만 혈안이었다. 10월 3일 집회에서 비대위 권삼현 공동대표는 이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토요 근무 할 때에도 [우편 업무는] 4년 동안 적자였습니다. 적자라면서 행자부는 6천억 원을 빼갔습니다. 그러면서 토요 근무 안 하는 집배원 때문에 적자라는 게 말이 됩니까?”

정부는 우편물량이 줄었다는 이유만으로 적자를 노동자에게 전가하지 말고, 국가 예산으로 책임져야 한다.

"비민주적 직권조인, 우정노조 지도부는 퇴진하라" 토요 근무 부활을 반대하는 집배원 노동자 집회. ⓒ윤필언

상황이 이런데도 투쟁에 나서야 할 우정노조 지도부는 9월 1일 사측과 토요 집배 재개에 직권조인을 했다.

이는 토요 근무 재개에 70퍼센트가 반대하며 압도적 반대 의사를 보여 준 전체 조합원들의 여론조사 결과를 거스른 반민주적 행위다.

현 우정노조 김명환 위원장은 6월 5일 발표한 성명에서 “조합원들의 의사에 반하는 어떠한 결정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천명했었음에도, 손바닥 뒤집듯 조합원들과 한 약속을 져버렸다. 지금 와서 김명환 위원장은 ‘악화해 가는 우정사업의 위기 속에서 조합원 고용을 지키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며 자신의 직권조인을 정당화하고 있다.

9월 1일 야합 이후 조합원들의 비판을 무마하려 방문한 시흥우체국에서 조합원들의 거센 항의에 직면하자, 김명환 위원장은 구호를 외치며 항의하는 조합원들을 향해 “토요일에 나와 일 하는 것이 낫습니까? 아님 일자리를 잃는 게 낫습니까?” 하고 협박하기도 했다.

토요 근무 재개와 비민주적 지도부에 반대하는 조합원들이 스스로 ‘토요근무반대·우정노조지도부퇴진 비상대책위원회’를 건설해 지도부와 독립적으로 투쟁을 조직해 나가기 시작한 것은 완전히 정당하다. 조합원들의 노동조건을 악화시키는 합의안에 직권조인한 김명환 위원장과 노사협의회 위원 14인 전원은 당장 사퇴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어처구니없게도, 사측과 노조 지도부는 10월 3일 집회를 방해하기 위해 온갖 탄압의 협공을 펼쳤다. 심지어 집회 참가자들에 대해 인사상 불이익 및 징계를 하겠다고 협박했다.

인간다운 삶

그러나 10월 3일 집회에서 연대 발언을 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강문대 노동위원장 지적처럼, 정작 처벌을 받아야 할 대상은 집배원 노동자들이 아니라 우정사업본부다. “수년간 재해가 반복되고 있는데도 방치하는 것은 외국법의 사례에 비춰 보면 처벌감입니다. …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만들어진다면 우정사업본부 먼저 처벌해야 합니다.” 강문대 노동위원장은 “공무원이 집단행동 하면 문제라고요? 사실상 노무에 종사하는 공무원들 이런 일[단체행동] 할 수 있는 겁니다. 죽이려고 달려드는데 가만있으면 그게 사람인가요? 품위유지 위반이요? 이 자리에서 인간다운 삶을 쟁취하기 위해서 나와 있는 것이 가장 품위 있는 행동입니다” 하고 말해 큰 박수를 받았다.

이 외에도 당일 집회에는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정규직 집배원 노동자들의 투쟁에 지지와 연대의 메시지를 전했다. 우체국 비정규직 노동조합인 공공운수노조 우편지부 이중원 지부장과 우편지부 재택위탁집배원 유아 지회장도 연단에 올라 함께 싸워나가 서로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노조 민주화 운동에도 연대해 나가자며 힘을 북돋웠다.

집회에서 만난 한 노동자는 오늘 집회에 대한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오늘 집회에 대한 현장 노동자들의 관심과 지지는 매우 큽니다. 사측의 악랄한 탄압이 없었다면 이 자리에 훨씬 더 많은 동료들이 참석했을 겁니다. 여기에 모인 사람들은 설혹 있을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얼굴과 이름 다 내놓고 나선 용감한 동지들입니다.”

10월 3일 비대위의 첫 집회는 집배원 노동자들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간절한 염원을 당당하게 알린 성공적인 출발이었다.

토요 근무 재개와 비민주적 노조 지도부에 맞선 집배원 노동자들의 투쟁이 꼭 승리할 수 있도록 많은 관심과 지지를 보내자. 이 투쟁이 경제 위기의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전가하려는 정부와 사용자들의 시도를 좌절시키고, 노조 지도부가 배신할 때 노동자들이 독립적으로 투쟁하며 민주적 노동조합 운동을 확산하는, 또 하나의 교두보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