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찬 동지 재판 방청기:
정부와 공권력은 '공공의 안녕'을 운운할 자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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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24일, 2009년 2월 용산철거민 제4차 추모대회, 2013년 2월 전국노동자대회, 2013년 12월 민주노총 사무실 진입 규탄 집회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교통 방해와 집시법 위반으로 기소된 최인찬 동지의 재판이 열렸다. 1심에서 재판부는 벌금 2백만 원을 선고했는데 검찰이 이에 항소해 이번 재판이 열렸다. 검찰은 역겹게도 “피고인이 자신의 범행의 잘못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반성의 기미조차 없는 바, 반드시 엄벌이 필요하다”며 1심 때와 마찬가지로 징역 1년 2월을 구형했다.
그러나 최인찬 동지가 참여했던 세 집회는 이명박과 박근혜 정권의 친기업·반노동·반민주주의 정책에 항의한 정당한 집회였다.
검찰이 강한 처벌을 요구한 이유는 박근혜 정부가 ‘노동개혁’을 밀어붙이려는 상황에서, 정부의 정책에 항의하는 목소리를 더욱 강하게 탄압하기 위함일 것이다. 박근혜는 11월 14일에 열렸던 ‘1차 민중총궐기’를 폭력 시위로 몰아가고, 심지어 집회에서 마스크 쓴 국민들을 ‘이라크·시리아 이슬람국가’(ISIS)에 비유하며 더욱 강경한 진압을 주문하고 있다.
검찰도 이에 부응하듯 이번 재판에서 항소이유서에 미국과 프랑스에서 시위를 강경하게 진압한 사례를 들었다. “불법 집회 시위가 근절되지 않고 선진적인 집회시위 문화가 정착되지 않고 있는 것은 그간 경찰, 검찰, 법원의 대응이 소극적이었기 때문이 아닌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며 집회 참가자에 대해 앞으로 더욱 강경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인찬 동지는 최후진술에서 검찰을 통쾌하게 비판했다.
“검사께서 한국의 실정을 잘 모르시는 것 같아 말씀드리자면, 우리나라의 권력기관의 대응은 어디에 내놔도 부족하지 않을 만큼 강경했습니다. 6명이 숨진 용산참사에 대해서는 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2009년 쌍용차 노동자들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르며 사용한 대테러 진압 무기인 테이저건과 다연발 발사기는 누구의 것입니까? 지난 14일 단 하루 동안 물대포로 난사한 물의 양은 지난해의 45.5배에 달하고 캡사이신도 3배가 넘는 양을 사용했습니다. 터키에 수출한 최루탄에 맞아 한 소녀의 두개골이 박살나서 큰 망신을 사기도 했습니다. 심지어는 한류의 범위를 넓힌다며 ‘치안 한류’를 표방하고 물대포를 중동에 수출하지 않았습니까?”
11월 14일의 민중총궐기를 돌아보기만 하더라도 한국 경찰이 얼마나 잔인한 행위들을 저질렀는지 알 수 있다. 지금도 민중총궐기에 참여했던 한 농민이 경찰이 직사로 조준한 물대포를 맞고 사경을 헤매고 있다.
최인찬 동지가 최후진술에서 얘기했듯이 진정으로 공공의 안녕을 해치는 것은 경제 위기의 고통을 노동자에게 전가하고, 다수의 항의 목소리를 잔인하게 탄압하는 정부와 공권력이다.
이에 맞서 정당한 목소리를 내고, 행동하는 것은 완전히 정당하다.
박근혜 정부는 저항을 강경하게 탄압하고 있지만 이것이 곧 박근혜 정부가 강력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정부가 무력과 탄압에 의존하는 것은 그들의 위기감과 두려움을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럴 때일수록 실질적이고 강력한 저항을 건설해야 한다.
최후진술문
진정한 '공공의 안녕'은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 지켜낼 것
최인찬(노동자연대 활동가)
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다시 무죄를 주장하고자 합니다.
12페이지 분량의 검찰의 항소이유서에는 기소한 사건에 대한 내용은 고작 열 한 줄 뿐이며, 이후 내용은 제가 비슷한 전력이 여러 개이고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반성을 하거나 자신의 범행의 잘못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반성의 기미조차 없기 때문에 반드시 엄벌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장황하게 채워져 있습니다.
재판장님, 먼저 2009년 2월 14일에 용산참사 범국민추모대회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용산참사는 건설사들의 이익만 보장하고 세입자들을 거리로 내모는 막가파식 개발이 빚은 참사로 당시 경찰의 살인 진압에 6명이 목숨을 잃고 말았던 비극으로 당시 국무총리도 사과를 했던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나 용산참사의 책임자 처벌과 진실은 아직 밝히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살인 진압의 책임자인 김석기 당시 경찰청장은 처벌이 아니라 한국공항공사 사장으로 임명됐지만, 망루에 오른 철거민들은 진압 작전에 투입된 경찰들도 보지 못했다고 증언한 ‘화염병 투척’을 이유로 구속됐습니다.
제가 참가한 2월 14일 용산참사 범국민 추모대회도 경찰은 집회와 시위의 자유라는 헌법에도 보장된 권리마저 침해해가며 청계광장과 용산역 앞 광장까지 불법적으로 집회 신고를 불허했던 것입니다.
2013년 12월 22일 집회는 사기업을 배를 불리기 위해 대형 사고, 요금 폭등과 대량 해고를 불러올 수 있는 철도 민영화에 반대해 파업을 이끌었던 철도노조 지도부를 잡겠다는 명분으로 영장도 없이 병력 5천여 명을 동원해 폭력적으로 민주노총을 침탈한 것에 대한 항의 집회였습니다.
2013년 2월 23일 열린 전국노동자대회도 박근혜가 공약으로 내세운 쌍용자동차 국정조사를 이행하고, 이미 불법으로 판명된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 등을 요구하는 집회와 행진이었습니다. 그런데 행진 마무리 장소인 시청 광장을 앞에 둔 을지로 1가 사거리에서 경찰이 느닷없이 행진로를 막아섰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 자리에 연좌를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용산 참사와 민주노총 침탈은 이명박근혜 정권의 친기업·반노동·반민주주의 정책을 보여 준 대표적 사례 중 하나입니다. 이에 대한 항의는 생명과 안전을 지키고자 하는 정당한 행동이며, 마땅히 나서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용산참사의 진실을 가리기 위해 3천여 페이지에 달하는 조사기록을 감추려했고, 간첩을 만들려고 증거 조작까지 서슴지 않았던 검찰이, 성완종 게이트를 덮고, 대선에 개입한 원세훈을 봐주고, 정윤회의 국정개입 등에 대해서는 함구하며 권력의 눈치나 보는 바로 그 검찰이 진정 국민의 공공 질서와 안녕을 운운하며 저를 이 자리에 세울 자격이 있는지 의문입니다.
박근혜 정부야말로 경제 위기의 책임을 평범한 노동 대중에게 전가하기 위해 노동법 개악을 강행하고, 의료 민영화,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며 공공의 안녕을 해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14일 한 농민이 경찰이 직사로 조준한 물대포를 맞고 사경을 헤매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어느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습니다.
검찰의 항소이유서는 최근 새누리당이 집회에 강경하게 대응하는 것과 그 궤를 같이 하고 있습니다. 새누리당 이완영은 미국에서 경찰이 시민을 쏴 죽여도 정당한 공무로 본다는 망발을 서슴지 않았고, 여당의 대표라는 자가 집회 참가자들이 마치 테러리스트인 것 양 호도하고 있습니다.
검찰은 ‘유럽 각국에서 우리나라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강력한 시위 진압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앞으로 정부 정책에 항의하는 대중에게 폭력적 진압, 무차별 연행과 기소 등 법적, 물리적 제재를 더욱 강화하려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검사가 좋아하는 영국에서 ‘심각한 부상이 계속되었다는 증거가 있다’는 이유로 물대포는 도입하고 있지 않습니다.
검사께서 한국의 실정을 잘 모르시는 거 같아 말씀드리자면, 우리나라의 권력기관의 대응은 어디에 내놔도 부족하지 않을 만큼 강경했습니다. 6명이 숨진 용산참사에 대해서는 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2009년 쌍용차 노동자들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르며 사용한 대테러 진압 무기인 테이저건과 다연발 발사기는 누구의 것입니까? 지난 14일 단 하루 동안 물대포로 난사한 물의 양은 지난해의 45.5배에 달하고 캡사이신도 3배가 넘는 양을 사용했습니다. 터키에 수출한 최루탄에 한 소녀의 두개골이 박살나서 큰 망신을 사기도 했습니다. 심지어는 한류의 범위를 넓힌다며 ‘치안 한류’를 표방하고 물대포를 중동에 수출하지 않았습니까?
또한 경찰은 채증 장비 구입을 위해 올해에만 5억 7천만 원, 내년에는 무려 22억 5천만 원을 사용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조차 경찰의 무분별한 채증이 헌법적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으니 그 사용을 엄격히 제한하라고 권고했는데도 말입니다.
경찰 차벽 설치 또한 위헌이라는 판결이 났음에도 일반 시민들의 통행을 가로막고 집회와 시위를 가로 막고 있습니다.
이제 마무리 하겠습니다. 검찰과 제가 생각하는 ‘공공의 이익’은 너무나도 거리가 먼 것 같습니다. 저는 기업주들의 재산을 늘리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폭력을 ‘공공의 이익’이라고 포장하며 그에 대한 항의를 탄압해 온 것을 십 수 년 동안 지켜봐 왔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공공의 이익’이란 단 한줌밖에 되지 않는 기업의 탐욕과 권력의 억압에 맞서며 저항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정한 공공의 이익과 안녕은 검찰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 스스로 지켜나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