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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편지 한 기아차 여성 노동자의 투쟁 경험기:
여성 노동자 처우 개선을 요구해 성과를 내다

요즘 젊은 청년들이 제일 가고픈 직장 순위 3위가 기아자동차라고 한다. 그런데 3년간 이 곳에서 일하면서 느낀 점은 여성 노동자들을 위한 복지 수준이 아주 낮다는 것이다.

나는 기아차 화성공장의 한 청소업체에서 일한다. 먼지와 담배 연기가 자욱한 화장실에서 청소를 하다 보면, 대·소변으로 범벅이 된 각종 오물과 세제가 두 손과 눈·입 등으로 여기저기 튄다. 물 청소를 하다 보면 작업복이 젖어 온 몸에 땀과 물과 퀘퀘한 냄새가 뒤엉켜 흘러내리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다.

그런데 청소 노동자들은 마땅히 쉴 곳을 찾기가 어렵다. 변변한 샤워장이나 화장실도 마련되지 않은 공장·부서들이 대부분이다. 그나마 운이 좋아 냄새 나는 화장실 한 켠에 공간을 마련해 사용하는 동료들도 있다.

남자 화장실 안에 한 칸 있는 여자 화장실 지독하게도 여성차별적인 기아차 공장. ⓒ사진 제공 기아차 노동자

나는 씻고 싶었다. 피곤한 몸을 쉬고 싶었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비단 나만이겠는가.

1년이 넘게 휴게실을 마련해 달라고 원청과 업체 관리자에게 호소를 해 봤지만, ‘여태껏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다’, ‘내줄 공간도 예산도 없다’며 서로 책임을 떠넘기기 일쑤였다. 지난해 매출액이 50조 원 가까이 되는 기아차에서 말이다!

나는 지난달 초에 간절한 마음을 담아, 여성 노동자들에게 휴게실과 샤워장, 화장실을 마련해 달라고 호소하는 대자보를 기아차 화성공장 곳곳에 부착했다.

공장 곳곳에 부착한 대자보 많은 노동자들이 관심을 보여 줬다. ⓒ사진 제공 기아차 노동자

코웃음을 치던 원청 관리자들은 비정규직, 그것도 청소하는 아줌마가 시끄럽게 만드는 것에 불쾌감을 드러내며 내가 속한 업체에 압박을 가했다. 사측에 영향을 받는 일부 노동자가 내가 쓴 대자보를 찢기도 했고, 반장은 ‘시끄럽게 해 회사를 망하게 하는 여자’라며 조합원 자격을 박탈하라는 악의적인 서명을 받기도 했다.

12월 초에는 원청 관리자가 나와 내 동료에게 와서 우리가 사용하고 있던 일반직 여성직원 휴게실에서 나가라고 했다. 이 여성직원이 나 때문에 몸이 아플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았다며, 문제를 여성직원과 나 사이의 갈등으로 몰아가려고 악의적인 유언비어를 퍼뜨리기도 했다.

아쉽게도 분회 간부는 적극 문제 해결에 나서기보다 요구를 자제하라는 식으로 대했고, 한 좌파 활동가는 ‘지지가 많지 않으니 적당히 끝내는 게 좋겠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그러나 실제로 많은 노동자들은 내가 쓴 대자보에 관심을 보이고 지지를 보내 줬다. 일부 여성 노동자들은 잘 되었으면 좋겠다며 응원을 해 주고 대자보를 같이 붙여 주기도 했다.

현장의 주요 좌파들이 모인 ‘현장공동투쟁’이 리플릿에서 여성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을 촉구했고, 몇몇 현장 모임들이 독자 리플릿과 대자보를 내기도 했다.

이런 속에서 최근 지회 집행부는 자신이 책임지고 전 공장 실사를 통해 여성 휴게실과 화장실, 샤워장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나와 내 동료의 휴게실도 3개월 내에 마련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아직 이런 약속이 이행된 것은 아니지만, 소중한 성과를 냈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여러 비난과 압박 속에서 나는 때로 목이 메어오고 울분이 터져 나오고 다리에 힘이 풀렸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노동자연대 기아차모임에서 동지들과 함께 토론해 올바른 방향을 모색했다. 동지들은 내 마음을 굳건하게 세워주기도 했다.

우리는 이 문제를 개인의 휴게실 마련이 아니라, 또 일반직 여직원과 나 사이의 갈등 문제가 아니라, 기아차 전체 여성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 문제로 제기했다. 그래서 내가 일하는 사업부, 업체를 뛰어넘어 많은 노동자들의 지지를 모을 수 있었다.

이번 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도 여러 탄압과 두려움에 굴하지 않고 당당한 노동자로 투쟁을 함께해 나가리라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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