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말 내가 속한 학과에서 학생회장을 선출하는 선거가 있었다. 매년 11월 치르는 선거 에서는 으레 고 학번 후보자가 선거유세도 하지 않고 공약도 내지 않은 채 출마해 왔었다. 과 규모가 작고 서로 다 알고 지내기 때문에 굳이 절차적 중요성을 따지지 않아도 된다는 분위기가 과거 수년 동안 팽배했었다. 올해도 다를 바 없이 과거의 분위기를 답습하는 선거가 유세도 없이 치러지고 있었고 많은 학생들은 후보자로 출마한 사람이 어떤 인물인지도 모르는 상태였다.
학생회는 학생들의 권익을 위해 의견을 모으고 실천으로 옮기는 대중기구다. 이처럼 중요한 기구의 대표를 선출하는 과정이 절차적 투명성과 정당성이 실종돼 있다면 어떻게 학생들의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었겠는가? 상황이 이러하니 투표 당일에 투표율이 저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와중에 투표율을 올리겠다는 심산이었는지 후보자와 친한 일부 학생들이 투표 현장에서 대리투표를 진행하고 있다는 소식을 한 후배에게 전해 들었다. 나는 그 즉시 제보자 등에게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노동자연대 외대모임과 상의하며 대책을 모색했다.
나는 대리투표가 이뤄졌다는 사실을 알고 분노한 과 학생들 일부에게 제안하여 공동의 행동을 모색했다. 우리는 사실관계들을 종합하여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단과대 선관위 등에 조사를 요청했다. 결국, 후보자와 가까운 일부 학생들이 해외에 거주 중인 교환학생들 명의로 찬성표를 던졌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과 선거관리위원회는 선거 기간 내내 총체적 관리감독 부실을 드러내며 학생들의 신뢰를 깎아먹었다. 심지어 사과문이라고 올린 글에서 “(대리투표 당한 교환학생들이) 먼저 나서서 제보하지 않은 점은 대리투표를 의도적으로 방관한 것 아니냐”고 비난하는 등 이해하기 힘든 모습을 보여 줬다. 결론적으로 과 비상총회가 소집됐고 선관위를 비롯한 대리투표 당사자들의 사과문 게재, 해당 후보자의 피선거권 제한 등이 표결로 결정됐다. 시험기간 직전이었는데도 많은 학생들이 참석해 대리투표를 비롯한 비민주적 선거 운영에 불만을 토로했다.
나는 사회주의자들이 일상에서 흔히 겪을 수 있는 쟁점들을 쉽게 무시하지 말고, 적절한 입장을 가지려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이번 과 내 민주주의 문제와 같이 광범위한 공분을 자아내는 쟁점이라면 말이다. 이런 문제에서 사회주의자들이 적절한 주장을 펴고 운동에 동참한다면 지지가 모이고 신뢰도 쌓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