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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강력한, 그러나 위기를 겪는 조직 좌파

학생회 선거가 다가오면 어김없이 ‘학생운동 위기’론이 유행한다. 물론 늘 보수 언론의 과장이 섞인다. 그럼에도 위기를 부정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1990년대 후반부터 제기된 위기론은 아직도 뚜렷한 해결책이 나오지 못한 채 학생 활동가들의 머리를 짓누르고 있다.
학생운동의 사회적 파급력이 전보다 약해졌다는 점, 학생들 사이에서 학생운동 조직들이 부분적으로 지지를 잃었다는 점, 학생운동 조직들이 활동가 재생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 등이 위기론의 내용들이다.
학생운동 위기의 원인은 두 측면에서 접근해 볼 수 있다. 먼저 기존 학생운동의 이데올로기 위기를 들 수 있다.
학생운동의 주요 정치경향 중 하나이던 PD 경향은 애초 소련을 모종의 ‘사회주의적’ 대안으로 삼고 있었는데, 1990년을 전후로 소련·동구권이 몰락하자 위기를 겪게 됐다.
1970년대 서구의 급진 좌파들이 스탈린주의에 환멸을 느끼면서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전환한 것처럼, 소련·동구권 몰락 이후 PD 경향은 ‘정체성 정치’를 포함해 다양하게 분화해 간다.
PD 경향 중 연대회의는 기존 PD가 “노동자계급이라는 ‘자명한 주체적 환상’”에 빠져 있었고, “계급투쟁 중심성에 대한 선험적이고 기계적인 승인”을 갖고 있었다고 자기 비판하며 노동계급(투쟁) 중심성을 버렸다.
그리고 “투쟁은 하나가 다른 하나로 환원될 수 없다”면서 신자유주의에 피해를 보는 세력의 “다차원적인 투쟁”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대장정》 34호, 2001년 3월).
전학협의 전신 학생연대는 “자유로운 인간들의 공동체”를 지향하면서 마르크스주의를 반권위적 아나키즘에 가깝게 해석했다.
그 영향을 받은 전학협은 2002년 사회당 대선 패배 뒤 급속히 자율주의로 기울어졌고, 올해에는 급기야 전학협을 해체하고 각 학교에서 소규모 자율주의 토론그룹으로 남게 됐다.
한편, 주체주의자들이 지도한 NL 경향은 소련 몰락 후에 PD만큼 큰 위기를 겪지는 않았다. 이들이 대안으로 삼던 ‘우리식 사회주의’ 북한이 소련과 동구권이 몰락했는데도 건재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주체주의가 민족주의를 전폭 수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NL 경향은 한반도에서 제국주의적 억압 경험으로 말미암은 대중의 좌파 민족주의 정서와 상당히 융합할 수 있었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1990년대 대부분 동안 NL 경향이 다수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 들어 가시화한 북한의 식량난과 경제위기 때문에 NL 경향 내에서도 북한을 대안으로 삼는 것에 대한 회의가 자라나기 시작했다.
이른바 남한 운동의 주체적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고개를 들면서, NL 경향 내부에서 분파들이 생겨났다(가령 사람사랑 분파 출현).
주체주의자들이 학생들 사이에서 다소 지지를 잃은 것은 정권의 탄압과 마녀사냥 탓이 컸지만, 이렇듯 이들이 추구하는 대안이 많은 학생들에게 설득력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편, 학생운동 위기의 다른 한 원인은 학생들의 객관적 처지 변화와 관련돼 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심화된 경제 위기의 영향으로, 학생들이 불안정한 노동시장에 종속되면서 원자화한 점을 들 수 있다.
이는 주로 학생회 위기로 드러났다. 취업 준비, 학점 경쟁, 아르바이트 등 때문에 학생운동이 주된 영향력을 행사해 온 학생회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과 참여가 떨어졌다.
물론 학생회 위기를 전적으로 객관적 한계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학생들의 원자화는 일면 현실 순응적 태도로 드러났지만, 실제로는 만연한 청년실업, 등록금 인상, 교육 서비스 하락 등 때문에 커다란 불만을 잉태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소련·동구권 몰락 뒤에 지적 회의주의가 풍미했음에도, 1990년대 후반부터 학생과 청년들 사이에서 서서히 급진화가 진행됐다.
IMF를 경험하면서 미국에 대한 반감이 증대했고, 대선에서 ‘진보적’ 후보에 대한 지지가 꾸준히 증가했다. 대학에서 홍세화, 진중권 등 사회비판적 지식인들이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기존 학생운동 조직들은 스탈린주의적 관성 때문에, 급진화하는 개인들을 개방적으로 대하려 하지 않았다.
학생회 집행부를 자신의 정치 조직의 강령에 동의하는 사람들로만 구성한다든가, 학생회를 학생들의 의사와 무관한 자신들의 정치 투쟁 일색으로 운영한다든가 하는 오류를 범했다.
사실, 기존 운동권의 비민주성은 정치적 대안의 문제점과 떼어 내어 생각할 수 없다. 기존 운동권은 스탈린주의라는 자신들의 정치적 대안이 설득력이 없게 되자, 비정치적이거나 비민주적인 방식으로 학생들을 만나게 됐다.
가령 한총련 공식 행사에서 문화제나 장기 자랑 등이 주종을 이루고, 기존 학생운동 조직이 주도하는 연합체에서 토론보다는 형식적 규율이 강조되는 것은 이와 연관돼 있다.
이 때문에 우리는 몇 년 전부터 학생들의 급진화가 종종 기존 학생운동 조직의 영향력 밖에서 표현되는 것을 보게 됐다.
가령 여중생 촛불 시위나 탄핵 반대 시위 등에서 많은 학생들이 학생운동 조직 좌파가 운영하는 학생회와 별도로 개별적으로 참가했다.
작년과 올해 서울대 총학생회는 소위 ‘비운동권’을 표방했는데도, 반전 운동에 다른 어느 운동권 총학생회 못지 않은 열의를 보였다.
이는 학생운동 위기론이 일면적이라는 사실을 보여 준다. 기존 운동권의 정치적 위기가 자신들의 영향력을 축소시키긴 했지만, 새로운 급진화 분위기가 나타나고 있다.
물론 학생들의 의식 급진화가 곧바로 행동으로 표현되지는 않고 있다. 이는 학생들을 짓누르는 사회적 압력이 경제 불황 때문에 매우 커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급진화는 폭발적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우리는 여중생 촛불시위나 탄핵 반대 시위 등에서 언뜻 이런 잠재력을 보았다.
새 세대 학생운동은 반전·반자본주의·반우익 운동의 성장을 고무하는 데에 얼마나 더 굳건히 나서느냐에 성패가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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