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마르크스주의 - 왜 인종차별에 맞서 싸워야 하는가?
〈노동자 연대〉 구독
사회주의는 노동자들이 내부 분열을 극복하는 것에 달려 있다. 이런 분열 가운데 가장 해로운 것이 온갖 종류의 인종차별이다.
1940년대에 히틀러와 나찌의 인종차별 때문에 수많은 유대인과 집시가 조직적으로 학살당했다. 인종차별이란 무엇인가?
근본적으로 인종차별은 사람들 사이의 신체적·문화적 차이를 들어 그들을 달리 대하는 것을 말한다. 피부색이나 언어나 종교가 여기에 포함될 수 있다.
정치적으로, 인종차별은 언제나 반동의 토대였다. 인종차별은 사람들이 문제의 진정한 원인을 보지 못하게 만들고 다른 집단에서 “속죄양”을 찾도록 만드는 방법이다.
나는 최근 맨체스터 북부에서 [나찌인] 영국국민당(BNP)이 돌린 리플릿을 보았다. 그것은 BNP 지도자 닉 그리핀이 쓴 논설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그것은 인종차별을 선동하는 고전적 리플릿이었다.
그 리플릿은 열악한 주거 환경과 빈곤에 시달리는 한 여성 연금생활자를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런 연금생활자들이 있는가? 아주 많다.
그러나 그 리플릿이 열악한 주거 환경과 빈곤의 원인을 비판하는가? 이 사회에 만연한 불평등을 비판하는가? 연금 인상을 제안하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렇기는커녕 그 가난한 연금생활자도 난민과 같은 대우를 받을 수만 있다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양 주장한다. 그리고 정부가 난민을 우대하는 양 줄기차게 떠들어 댄다.
물론 BNP의 리플릿은 난민들이 노동권을 거부당하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말하지 않는다. 또, 정부가 난민들을 완전한 궁핍 상태로 내몰거나 그들의 자녀들을 빼앗아가겠다고 위협하는 것에 대해서도 아무 말 하지 않는다.
BNP의 리플릿이 의도하는 바는 무엇인가? 일부 빈민이 다른 빈민을 원망하고 적대하도록 자극하는 것이다.
그 리플릿은 연금생활자들의 곤궁한 상태를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얘기는 전혀 하지 않는다. 그들을 동정하는 척하지만, 사실은 이방인에 대한 증오심을 부추길 뿐이다.
BNP의 주장으로 이득을 보는 세력은 누구일까? 분명히 연금생활자들은 아니다. 그들에게는 연금의 대폭 인상이 필요한데, 그러려면 부자들에게 과세해서 재정을 마련해야 한다.
그런 개혁을 성취하려면 강력하고도 단결된 노동계급 운동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것은 파시스트 조직 BNP가 가장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것이다.
BNP 같은 파시스트들은 최악의 인종차별주의자들이지만 그들만이 인종차별주의자인 것은 아니다.
내무부 장관 데이빗 블런킷은 파시스트는 아니다. 그러나 그가 난민을 끊임없이 공격하는 것은 철저하게 인종차별적이다. 사실, 그런 공격이야말로 BNP를 도와주는 것이다.
인종차별은 노동 대중 사이의 차이점을 이용해 그들을 분열시킨다. 인종차별은 이를 통해 보호받는다고 생각되는 “특권” 집단에게도 이롭지 않다.
예컨대, 미국에서 인종차별이 가장 심한 주(州)들은 백인 노동자들의 임금이 가장 낮은 주들이기도 하다. 물론 흑인 노동자들은 말할 것도 없다.
미국의 인종차별에서 누가 이득을 보는가? 인종차별적인 남부 대기업가들이다.
근대의 인종차별은 자본주의와 함께 등장했다. 대서양의 강대국들은 노예제와 식민주의를 정당화해야 했다. 그들은 이른바 “인종들” 사이의 “생물학적” 차이를 이용해 아프리카인과 아시아인에 대한 백인의 지배를 정당화했다.
오늘날 인종차별은 자본주의 체제에 얽매여 있는 전 세계의 노동 대중을 분열시키는 데 이용된다. 그들이 공통의 착취자에 대항해 단결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싸우도록 만든다.
더 교활한 핑계가 더 흔해졌다. 인종차별주의자들은 “상이한 문화”를 가진 사람들은 서로 섞일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 전체는 완전히 정반대 사실을 보여 준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그 기원이 서로 다른 온갖 언어의 혼합물이다. 우리의 문화는 다른 문화들과 상호 교류하면서 끊임없이 풍부해졌다. 그것이 기술이건, 음식이건, 음악이건, 복식이나 장식물이건 말이다.
사회주의자들은 인종차별의 분열과 증오에 대항해 언제나 피억압자들의 연대와 노동계급의 단결을 호소해 왔다.
인종차별은 지배자들에게만 이로운, 계급 사회의 풍토병이다. 그러나 인종차별에 맞서 싸우는 것은 가능하다.
소규모의 조직된 파시스트들을 제외하면, 오늘날의 인종차별은 천박하고 모순적이다.
똑같은 사람이 하루는 인종차별적 발언을 했다가 다음 날에는 난민 방어 탄원서 ― 그 주장이 인도주의적이라면 ― 에 서명을 한다.
일상적 인종차별은 대부분 보편적인 것으로, 그 바탕은 〈데일리 메일〉이나 〈선〉 같은 [우파] 신문들이 퍼뜨린 이미지들이다.
BNP 지지표의 상당수가 우리가 사는 도시 외곽 변두리에서 나온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그런 곳은 흑인과 아시아인을 좀체 보기 힘든 지역이다.
노동계급 내에는 끊임없는 투쟁이 있다. 한편에는 분열적 사상이 있다. 우리와 지배자들을 연결시키고, 우리를 나약하고 가망 없는 겁쟁이라고 느끼게 만드는 사상 말이다.
그러나 다른 한쪽에는 변혁을 위한 연대와 희망의 사상이 존재한다. 사회주의자들은 언제나 그런 주장을 펴는 사람들이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