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 사업’은 대학과 기업 사이의 ‘인력 수급의 미스매치’를 해결하기 위해 교육의 내용을 산업수요에 맞춰 개조할 것을 종용한다. 한국의 대학들이 “심각한 청년실업을 해결”하기 위해 “초과공급되는 인문계열을 축소하고, 초과수요가 있는 공학계열을 늘”리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실업의 책임을 교육과 학생 개인들에게 떠넘기는 것이다. 지난 10년간 가장 많은 정원을 감축한 분야는 인문·사회계열이다. 동시에 공학 및 의약계열은 늘려왔다.(대학교육연구소) 하지만 그동안 청년실업은 해결은커녕 악화만 되어왔다.
이는 청년실업이 ‘인력수급의 미스매치’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청년실업의 진정한 원인은 경제위기가 심각해지면서 ‘비용 절감’에 혈안이 된 기업들이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지 않고, 기존의 노동자들을 혹사시키는 방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간기업들은 물론이고 정부도 공공서비스를 민영화하고 외주화하면서 인력부족에 허덕이는 공공부문의 신규채용을 늘리지 않고 있다. 실제로 한국 경제는 ‘고용 없는 성장’이 지속되는 추세다. 경제성장률이 1퍼센트 상승할 때 취업자는 얼마나 상승하는지 보여 주는 ‘고용탄성치’는 지속적으로 하락해 왔다.
게다가 정부는 기존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을 줄여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노동자들을 더 쥐어짜려는 노동시간 연장이나 노동강도 강화를 추진한다. 따라서 정부가 “노동개혁”을 통해 기존 노동조건을 악화시키는 것도 양질의 일자리 창출로 이어질 수 없다.
일자리 창출은 정부가 책임지고 공공부문부터 양질의 일자리를 대거 만들고, 이를 민간기업들에도 강제해야 비로소 가능하다. 진정한 문제는 ‘미스매치’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과 정부의 무책임으로 좋은 일자리의 수 자체가 부족한 것이다. 개별 취업 준비생들이 기업들이 원하는 “직무능력”을 기른다고 해서 사상 최악 수준인 청년 실업률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바늘구멍 같은 취업문은 그대로 둔 채 공학계열만 늘리는 것은 청년실업 해결이 아니라, “산업수요”에 부합하기 위한 개별 학생들과 대학들끼리의 경쟁 강화를 동반한다. 치열한 경쟁 덕분에 기업은 기업이 원하는 “직무능력”을 기르는데 들어가는 비용을 개인들에게 떠넘길 수 있다.
한편 심각한 경제위기 상황에서 “산업수요”에 대학교육을 맞추는 것은 대학 교육을 매우 불안정하게 한다. 예컨대 과거 잘나가던 해운, 철강, 석유화학 산업들이 지금은 구조조정 위기에 직면해 있다. “산업수요”에 맞는 학과를 신설해도 해당 산업이 위기에 처하면, 다시 통폐합 수순을 밟는 일이 반복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대학의 노동자들에게도 심각한 피해가 생긴다. 인문·사회·예술 계열이 줄어드는 만큼 해당 교원들에 대한 구조조정도 진행될 수 밖에 없다. 특히, 시간강사와 같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우선적으로 구조조정의 대상이 될 공산이 크다. 지난해 경희대에서는 ‘프라임 사업’에 유리해지기 위해 인문학을 가르치는 단과대의 객원교수 45명을 일방적으로 해고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정부와 대학들은 학생들의 반발을 무시하며 비민주적으로 ‘프라임 사업’을 밀어붙였다. 예컨대 서원대는 ‘프라임 사업’에 선정되고자 새학기가 시작된 지 한 달 만에 윤리교육과 등 3개 학과를 없애버려 학생들의 반발을 샀다. 신입생들은 입학하자마자 학과가 없어져버린 것이다.
선정 대학 중 하나인 이화여대는 학생들이 총장실 점거농성과 반대서명을 받으며 항의했으나, 이대 당국은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다. 그 밖에 ‘프라임 사업 ‘신청 대학이었던 인하대, 홍익대 등에서도 반대 움직임이 있었다. 일부 대학들은 ‘프라임 사업’에서 탈락해도 이런 방식의 구조조정을 지속할 것이라고도 한다.
이는 학생들이 대학에서 원하는 교육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다. 정부와 대학은 취업에 유리한 교육만 강요하며, 학생들의 교육권과 학내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있다. 학생들은 취업과 무관하게 원하는 교육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인문학, 예술계열 등을 대폭 축소시키는 것은 해당 단과대학 학생들만의 피해가 아니라, 대학 전반의 교육에서 다른 학과 학생들의 교양수업 선택 권도 박탈하는 것이다.
또 ‘프라임 사업’ 선정 기준 중에는 교육과정과 교원들이 얼마나 ‘산학협력 친화적’인지가 주요 항목 중 하나였다. 이러한 “산학협력” 속에서 대학이 이윤 창출과 밀접한 연구만 지원 받을수록 이윤 논리에 따라 연구 결과가 왜곡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최근에 수많은 목숨을 앗아간 ‘가습기 살균제’가 인체에 무해하다는 서울대, 호서대의 연구과정과 결과가 옥시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조작되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피해가족들이 해당 교수들을 대학 연구윤리위원회에 제소하기도 했다.
경제위기로 발생한 실업을 개인들에게 떠넘기고 대학이 기업화할수록 더 많은 피해 사례가 생길 것이다. 정부와 기업들이 양질의 일자리를 책임지고 창출해야 한다. 그래서 대학을 산업수요에 맞출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모두 원하는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2016년 5월 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