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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디스 오어 방한 특집:
섹슈얼리티와 투쟁

보통사람들에게 진정한 성 해방을 이룰 힘이 있다고 주디스 오어는 주장한다. 주디스 오어(사진)는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 SWP의 중앙위원이고, 여성 해방사, 낙태, 이혼에 대해 많은 글을 썼으며 《여성차별과 자본주의》(노동자연대)와 《마르크스주의와 여성해방》(책갈피, 근간)의 저자이다. 그는 방한해 7월 21~24일 노동자연대 단체가 주최하는 맑시즘2016에서 ‘마르크스주의는 차별을 설명할 수 있는가?’, ‘여성 차별과 해방’, ‘오늘날 제국주의와 전쟁’ 등을 주제로 연설한다.

어떤 사람들은 진정한 성 해방이 불가능하다고 여기는데, 이는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그러나 뒤틀린 성 관념은 허공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다. 그런 관념은 계급사회의 일부인 차별에 뿌리를 두고 있다.

섹스는 인간에 고유한 본성의 일부이다. 섹스는 누구와 어떻게 하든 즐길 수 있어야 하고, 우리 삶의 긍정적 요소가 돼야 한다.

그러나 자본주의에서 섹스는 뒤틀리고 소외된 것이 됐다.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가 여성에게 떠맡기는 역할 때문에 섹슈얼리티는 중요한 전장이 된다.

여성은 아이를 낳고 기르는 사람으로서 가족 안에서 핵심 구실을 한다. 지배계급은 가족을 이용해 현 상태를 존속시키려 한다. 그래서 가족에 대한 문제제기는 위협으로 여겨진다. 바로 이 때문에 성소수자들이 차별을 당한다. 또, 바로 그 때문에 특히 여성의 섹슈얼리티는 매우 엄격한 감시를 받는다.

이에 맞선 투쟁들이 있었고, 그 투쟁들은 성적 개방과 자유를 확대해 왔다. 그러나 자본주의에서는 그 성과들도 온전한 모습을 유지하지 못하고 뒤틀린다.

그래서 우리의 몸은 그 어느 때보다 노골적인 방식으로 대상화되고 있다. 여자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여성이 이룰 수 있는 가장 큰 성취는 성적 매력이라고 배운다. 여성은 자기 몸을 째고 깎아서라도 이상적으로 여겨지는 몸매를 가져야 한다는 스트레스를 받는다.

자본주의에서의 성 상품화는 여성 몸의 이미지를 왜곡시켜 평범한 여성들이 도달하기 어려운 외모를 이상화하고 여성들에게 강요한다. ⓒ출처 grubby mittz

그러나 사회주의 운동과 급진적 운동들은 성 해방을 이루는 것이 가능함을 보여 줬다. 1960년대와 1970년대 많은 여성들은 여성해방 운동에 참가했다. 그 여성들은 앞 세대 여성과 남성들이 쟁취하기 위해 싸웠던 사상 ─ 스탈린주의의 악영향 하에 짓눌려 있던 ─ 을 재발견했다.

역사학자 쉴러 로보섬은 19세기 영국과 미국에서 성 해방을 위해 분투한 여성들의 가슴 떨리는 투쟁에 대해 썼다.

그 여성들은 여성을 수동적인 남성 성욕 배출 대상으로 보는 인식에 맞섰다. 그 여성들은 남편이 아닌 상대들과도 성관계를 맺고, “합리적 의상”[꼭 끼는 코르셋을 배제하고 자전거 타기 등에 적합한 활동적 옷]을 입었다. 어떤 여성들은 다른 여성과의 사랑 속에서 행복을 발견했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혁명가들과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여성 노동자들을 사회주의 운동의 일부로 조직했다.

그런 혁명가들 중에는 러시아의 알렉산드라 콜론타이와 독일의 클라라 체트킨이 있다. 콜론타이와 체트킨은 여성 대중이 해방되려면 여성 차별이 뿌리 내리고 있는 물질적 토대를 분쇄해야 한다고 봤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난 뒤의 급선무는 반혁명을 물리치고 궁핍한 대중에게 필요한 물자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혁명은 짧았을지언정 새 생활방식을 실험하는 무대이기도 했다. 여성들의 삶이 빠르게 달라졌다.

혁명 전에는 농민 가정에서 남편이 부인에게 채찍질하는 것이 합법이었다. 그러나 혁명 뒤에는 결혼과 이혼이 마음만 먹으면 곧바로 할 수 있는 일이 됐다. 낙태가 합법화됐다.

콜론타이는 이렇게 말했다. “섹스는 부끄럽거나 죄스러운 일이어서는 안 된다. 섹스는 건강한 유기체의 다른 필요와 마찬가지로 자연스러운 일이어야 한다. 배고픈 사람이 밥을 먹고 목마른 사람이 물을 마시듯이 말이다.” 보육시설과 공공식당이 문을 열어 개별 가족이 짊어지던 부담을 일부 가져갔다.

혁명이 패배하자 여성은 다시 사사화(私事化)된 가정으로 떠밀렸다. 섹스는 즐거움이 아니라 다시 출산을 위한 행위가 됐다.

여성들이 오래된 낡은 성관념에 문제를 제기한 것은 혁명 때만이 아니다. 역사의 모든 시기에 그랬다.

양차대전이라는 사회적 격변은 여성의 삶을 크게 바꿨다. 그전에는 남성의 전유물이었던 일자리를 여성도 가질 수 있게 됐다. 일자리를 갖게 된 여성들은 금전적으로 독립하게 됐고 또 다른 변화의 가능성도 느끼게 됐다.

양차대전 사이 동안, 혼인 관계에 있지 않은 상대와 섹스하는 사람이 급증했는데, 종전 후에도 그 비율은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1945년 태어난 아이의 3분의 1이 비혼모에게서 태어난 아이들이었다. 섹스와 피임에 관한 책자와 정보를 공공연히 이용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많은 기혼 여성에게 섹스는 해마다 임신하고 출산하는 일이었다. 구술사 서적에는 자녀를 많이 둔 노동계급 여성이 “이제 남편이 너무 자주 괴롭히지 않아서 안심”이라고 말하는 대목들이 기록돼 있다.

비혼모는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았다. 그 여성들은 자녀를 “아비 없는” 자식 만들지 말고 입양 보내서 자신의 “망측한” 성행위를 숨기라는 압박을 받았다.

1960년대 말 여성 대중은 믿을 만한 피임 도구를 이용하고 안전한 낙태 시술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이는 획기적 진보였다.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들은 원치 않는 임신 걱정 없이 섹스를 즐길 수 있게 됐다. 이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여성운동과 동성애자 운동의 부상은 사람들이 또 다른 기대를 품었음을 보여 줬다. 성 해방을 위한 투쟁은 제국주의, 빈곤, 인종차별에 맞선 투쟁의 일부가 됐다.

이 투쟁들이 힘겹게 권리를 성취한 덕분에 오늘날 우리는 그 권리를 누리고 있다. 그러나 성 해방을 이루려면 차별에 의존하는 시스템을 제거해야 한다.

대중적 항쟁이 벌어지면 제 아무리 뿌리 깊은 편견이어도 도전을 받는다. 혁명가 칼 마르크스는 체제를 타도하려면 혁명적 투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노동계급 자신이 “오래된 오물을 털어 내고 새 사회를 건설하기에 적합한 존재”가 되기 위해서도 혁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즉, 진정한 해방을 이루려면 보통사람들이 자신들의 삶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투쟁은 수많은 보통 사람들의 자신감과 창의성을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크게 만들 잠재력이 있다.

이런 변화는 사람들이 무슨 옷을 입고 무슨 글을 읽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개인의 생활방식 문제도 아니다. 차별은 사람들의 머릿속이 아니라 사회의 물질적 조건에 뿌리 내리고 있다. 마르크스가 다음과 같이 말한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해방은 역사적 행위이지 정신적 행위가 아니다.”

사회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의 관계가 어떻게 변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사회주의자는 지령을 내리는 사람들이 아니다. 사회주의자는 인생을 살고 사람을 사랑하는 데서 단 하나의 이상적 방식이 있다고 보지 않는다. 사람들이 정말로 무언가를 선택할 수 있게 되면, 여러 가지 많은 관계가 생겨나 발전할 것이다.

사회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은 모두 복합적이고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을 표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차별이 영원히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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