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시즘2016: 중요한 건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 폐막:
‘세월호 세대’의 진중한 대안 탐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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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4일 폐막한 ‘맑시즘2016: 중요한 건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의 전반적 분위기를 한마디로 요약하라면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세월호 세대’의 진중한 대안 탐색.
그만큼 학생과 청년 참가자가 많았다. ‘416학번’이라고도 불리는 새내기를 비롯해 많은 대학생과 청년이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정치화하고 있고, 그들은 ‘세월호 세대’라고 불린다.
학생과 청년만 ‘세월호 세대’인 것은 아니었다. 세월호 참사의 충격은 40~50대의 적지 않은 나이의 성인들에게도 있었다. 그들은 ‘“세월호 세대”가 말하는 세월호 참사의 의미’ 같은 주제의 워크숍에 참가해 생각과 경험을 공유했다. ‘자본주의, 재난, 규제 완화’를 주제로 연설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우석균 정책위원장의 이 말이 그들을 대변하는 듯하다. “옛날에는 ‘20대에 사회주의자가 아니면 문제지만 40대에도 사회주의자이면 그것도 문제’라는 말이 있었다. 나는 40대가 사회주의자가 되지 않으면 정말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토록 많은 재난을 봤고 하나도 나아지지 않은 것도 봤을 테니 말이다.”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악·구조조정 공격에 맞서는 노동자들도 많이 참가했다. 어떤 노동자들은 오후 회의 일정을 취소하고 저녁까지 워크숍에 참가했다. 약 7백 명이 등록한 맑시즘2016에서 참가자들은 세대와 직업 등을 가리지 않고 한데 어울려 토론했다. 서로 다른 부문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은 각자의 투쟁 경험을 공유했다.
학생, 청년, 노동자 등이 함께 토론할 수 있는 드문 자리를 제공하는 ‘맑시즘’은 올해로 16년째 열리고 있다. ‘맑시즘’이 ‘3일간의 토론광장’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시작된 2000년에 네 살배기 꼬마였던 사람이 올해 대학생 새내기가 돼 아버지, 할아버지와 함께 참가할 정도로 짧지 않은 세월이다. 그동안 ‘맑시즘’은 우리 나라에서 마르크스주의를 알리고, 여러 사상이 교류하는 장을 마련하고, 이론을 혁신하고, 투쟁의 무기를 발전시키는 데 작지 않은 공헌을 했다.
맑시즘2016은 많은 지지와 연대를 받았다. 2백19개 단체가 후원하고, 고려대학교 문과대·정경대·자유전공학부 학생회가 공동주관에 참가하고, 총학생회 등 많은 학내 단체가 도움을 준 덕분에 맑시즘2016은 차질 없이 열릴 수 있었다.
‘중요한 건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라는 부제가 보여 주듯이, 맑시즘2016은 단지 학술 행사가 아니었다. 현실의 투쟁과 연결된 포럼이었다. 박근혜 정부의 공격에 맞서 싸우고 있는 민주노총의 연대사가 그것을 잘 보여 줬다. “민주노총은 지금 노동자 권리와 민주주의를 감옥에 가둔 박근혜 정권과 절박한 한판 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소리 없이 죽어가는 비정규직, 5백만 최저임금 노동자, 구조조정-성과 퇴출, 노조 파괴, 법외노조화. 숨가쁘게 몰아치는 탄압 속에서도 새로운 세계를 위한 전망을 세우는 일은 멈춤이 없어야 합니다. 경험을 돌아보고, 지금을 분석하고, 새로운 전망을 찾는 토론의 장, 맑시즘2016 개최를 축하드립니다.”
또, 맑시즘2016 참가자들은 사드 배치 반대 서명, 세월호 참사 특별법 개정 촉구 서명, 구의역 참사 재발 방지를 위한 서명, 세종호텔 투쟁 지지 모금 등에 참가했다.
69명의 연사들은 성실히 준비해 명쾌하고, 풍부하고, 힘과 투지를 일으키는 연설을 했다. 연사들이 얼마나 열심히 준비했는지, 맑시즘2016 조직자들과 진행팀은 자료를 복사하고 프레젠테이션 기기를 준비하는 등 “즐거운 중노동”에 웃으며 비명을 질렀다고 한다. 폭염 속에서도 궂은 일 마다하지 않은 진행팀의 기여도 맑시즘2016의 성공에 한몫했다.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의 중앙위원이자 ‘전쟁을 중단하라’ 반전 운동 연합(Stop the War Coalition)의 운영위원인 주디스 오어는 세심하면서도 날카롭고, 방대하면서도 쉽고, 뭉클하면서도 재치 있는 연설로 참가자들에게 큰 감명을 줬다.
‘마르크스주의는 차별을 설명할 수 있는가?’, ‘여성 차별과 해방’, ‘오늘날 제국주의와 전쟁’에 대한 오어의 연설을 들은 사람들은 “마르크스주의의 입장을 잘 이해할 수 있게 됐다”는 반응을 가장 많이 보였다. “논리적으로는 [차별에 대한] 마르크스주의 입장이 이해되면서도 분리주의적 사상도 받아들이고 있었는데, 그게 상당 부분 심정적인 것이었음을 깨닫게 됐다”는 대학생의 말이 대표적이었다.
자본주의 체제와 지배자들의 악행·위선을 신랄하게 꼬집은 오어의 연설에 참가자들은 때로 울컥했다. 경제 위기에 내핍 강요로 고통을 받는 그리스에서 부모들이 돈이 없어 자기 자녀를 고아원에 맡긴다는 얘기에 통역자가 눈물을 터뜨려 연설이 잠시 중단됐다. “전 세계에서 하루에 9백 명의 아이들이 깨끗한 물이 없어서 죽고 있습니다. 맑시즘2016이 열리는 나흘 동안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죽었을까요? 그런데 지배자들은 사람을 더 잘 죽이는 무기를 개발하고 사는 데 수백조 원을 쓰고 있습니다. 사회주의 건설을 위한 투쟁이 이토록 절실했던 적도 또 없었습니다”는 말도 참가자들을 울렸다. 이에 몇몇 참가자들은 주디스 오어에게 주디스 ‘오열’(嗚咽)이라는 별명을 붙이기도 했다.
맑시즘2016 참가자들은 여성 차별과 성소수자 차별 등 차별을 주제로 한 워크숍에 많이 참가했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있는 만큼 ‘민주노총 정치 방침 논의와 진보·좌파 정치의 전망’ 같은 주제도 인기 있었다. 또, 제국주의, 한국 노동계급의 상태, 세월호 참사 운동 등 현안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분석을 다룬 워크숍에도 많이 참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이제 막 정치화하기 시작한 사람들에게 고전 마르크스주의 전통과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다룬 주제들은 다소 생경하게 느껴진 듯하다. “꽤 유명한 행사인데, 처음 와 봤음. 생각보다 무섭지 않고 재밌었음”이라는 한 연사의 SNS 글에 공감하는 참가자가 더러 있었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를 한 번도 접해 보지 못했다”, “완전히 백지 상태로 왔다”고 말하면서도 참가자들의 눈빛은 워크숍 내내 또렷했다. 쑥스러워 앞에 나와 주장하거나 질문하지는 못 했어도 끝나고 연사를 찾아가 질문을 던지며 토론했다.
부조리하고 정의롭지 못한 세계에 분노하며 대안을 찾는 ‘세월호 세대’에게 맑시즘2016은 좋은 자극제였을 것이다.
맑시즘2016의 주최 단체 노동자연대는 고민을 더 심화시키고자 하는 학생과 청년들을 위한 강좌를 마련했다.
- 학생과 청년을 위한 기획 강좌(https://ws.or.kr/?page_id=19722)
- 노동자연대 지회 공개모임(https://ws.or.kr/?page_id=19745)
- 노동자연대 학생그룹과 함께하는 토론 모임 ‘마르크스주의 돋보기’ (https://ws.or.kr/?page_id=19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