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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총장과의 대화’는 한 편의 사기극이었다

지난 8월 21일 최경희 총장은 이화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총장과의 열린 대화”를 정례화하겠다고 밝혔다. 최 총장은 그 첫 자리로 8월 24일 오후 3시 ‘학생과 함께하는 소통의 장’을 열었다.

그러나 ‘열린 대화’는 기만적인 ‘쇼’였을 뿐이다. 지난 2년간 최경희 총장은 ‘불통’ 행보를 밟아왔다. 대학 기업화 부추기는 학과 구조조정(프라임·코어 사업 등), 대학 상업화(파빌리온 사업 등), 장학금 축소 등 많은 학생들의 불만을 사는 정책들이 정신없이 추진됐다. 이에 대해 학생들이 대화를 요구하고 항의도 숱하게 했지만 최경희 총장은 단 한 번도 귀 기울인 적이 없다. 최경희 총장은 8월 3일과 8월 10일 1만 명에 가까운 학생들이 사퇴를 요구하자 그제서야 다급해져서 ‘대화’를 하자고 나선 것이다. 결국 ‘열린 대화’는 언론 홍보용 행사에 불과했다

당연하게도 총학생회 중앙운영위원회와 본관 농성 주도 학생들은 기만적인 총장과의 대화 자리에 불참을 결정했다. 노동자연대 이대모임은 ‘총장과의 대화’ 장소 입구에서 팻말 시위를 하며 “단 한 명의 학생도 참석하지 말자, 최경희 총장의 연극에 ‘들러리’로 이용되지 말자” 하고 주장했다. 일부 학생들은 행사장을 찾아왔다가 팻말 시위를 보고 돌아가기도 했다.

총장 사퇴를 요구하는 노동자연대 이대모임 학생들 ⓒ사진 성지현

이날 행사는 최경희 총장이 얼마나 인기 없는지 보여 줬다. 학교 측은 널찍한 공간에 2백 개는 족히 넘는 의자를 마련해 뒀지만 고작 20명 남짓만이 앉아 있었다. 그마저도 학내 언론사와 교직원 등을 빼면 재학생으로 보이는 사람은 십여 명 정도인 듯했다. 총장 사퇴를 요구하는 시위에 1만 명 가까이 모인 것과 완전히 대조적이었다.

최경희 총장은 전에 한 주장들을 똑같이 반복했다. 자신이 경찰 투입을 요청한 것은 인정하면서도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했다. 성적장학금을 일방적으로 폐지해서 장학금을 줄인 것도 잘못이 아니라는 입장이었다. 시일이 지나면 자신의 진의를 깨닫게 될 날이 올 것이라고도 했다.

총장 사퇴를 요구하며 28일 동안 본관 농성을 하고 있는 학생들과 대규모 시위를 벌인 학생들을 모두 무시하는 모습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행사가 시작되자 노동자연대 이대모임은 행사장에 들어가 대화 자리는 기만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최경희 총장이 민주주의를 따른다면 학생들 다수가 원하는 대로 사퇴해야 한다고 항의하고 퇴장했다.

최경희 총장은 행사장 입구 앞에서 팻말 시위를 하던 학생들조차 눈치채지 못 할 정도로 후다닥 입장하더니, 퇴장할 때도 허겁지겁 달아났다. ‘열린 대화’는 항의하는 학생들은 최대한 피하고 ‘대화’ 모양새를 보여 주려는 요식행위였을 뿐이라는 점이 명백했다.

따라서 수백 명의 학생들이 저지 행동에 나서 이 행사의 본질을 폭로하고 아예 무산시켰더라면, 총장 사퇴 운동의 기세를 올리고 운동이 전진하는 데에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사실, 본관 농성 조직자들은 이 행사에 대응하려고 일부러 하루 전 날 ‘대(大)만민공동회’를 열었다. 그 회의에서 본관 농성 주도 학생들이 총장과의 대화 저지 시위를 벌여 무산시키자고 결정했다면 적어도 수십 명은 모였을 것이다. 어찌된 일인지 이 핵심적 안건은 온라인 익명 게시판의 의견 수렴을 거쳐 몇 시간 일찍 열린 저녁 회의에서 논의하는 것으로 대체됐다. 그리고 당일에는 본관 농성자들 중 6명 정도만이 행사장 앞에 나와 항의 시위를 했다. 8월 1일 같은 자리에서 최경희 총장이 농성자들을 비난하는 기자회견을 할 때는 1백여 명이 시위를 벌인 바 있다.

행사장 앞에 온 본관 농성자들은 “8일째 기다립니다. 서면질의 답해 주세요. 형식적인 답변 아닌 진실해명 요구합니다”, “1600 경찰 학내 투입 상처받은 학생들에게 면대면 대화 강요함은 대화 아닌 폭력입니다”라고 적힌 팻말을 들었다.

그러나 사퇴 요구가 적힌 팻말은 들지 않았다. 학생들의 사퇴 요구를 총장이 ‘대화’로 받아 치는 상황에서 ‘서면질의’든 ‘면대면 대화’든 사퇴 대상인 총장과 대화한다는 건 모순이다.(대화라는 건 타협의 여지가 있을 때 의미 있는 것이다.)

항의 시위를 한 본관 농성자들은 "우리는 어떠한 정치색도 띄지 않습니다" 하는 팻말도 함께 들었다.(이들이 주된 소통 수단으로 삼고 있는 온라인 익명 게시판에는 학교 문제에 노동자연대가 무슨 상관이냐는 주장이 올라온다.)

행사장 앞에서 항의 시위를 하는 본관 농성 참가자들 ⓒ사진 성지현

비정치? 반정치?

개량주의자들은 ‘정치’를 매우 협소한 개념으로 이해한다. 국회와 국회의원들, 선출된 공직자들이 하는 활동으로만 환원하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정치는 훨씬 폭넓은 것을 뜻한다. 정치는 사회의 권력을 획득하기 위해 벌이는 활동, 주장, 조직 등을 의미한다. 사실상, 사회가 어떻게 운영되거나 변화돼야 하는지에 관련된 모든 것이다. 선거는 이를 위한 한 수단일 뿐, 전부가 아니고, 또 가장 중요한 수단도 아니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자들(자본가들, 국가 관료들, 장성들)이 정치에 관여하는 방식을 보라. 그러나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해 거리 항의 시위에 나서는 것도 정치 행위의 일부다.

박근혜 정부 교육 정책의 일부를 반대하고 이를 추진한 인물을 사퇴시키려고 농성을 하는 것도 정치 행위다. 이화여대 총장은 단지 개인이 아니라 박근혜 정부의 교육 정책을 추진하는 권력층의 일부다. 따라서 이화여대 총장 사퇴는 더 나은 교육과 더 나은 사회를 위한 운동의 일부다. 총장 사퇴를 지지하는 학생·교수들이 있고 그에 대립되는 세력이 있다는 것도 이 운동이 비정치적인 척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보여 준다. 심지어 수십 개 대학 총학생회가 자발적으로 이화여대 점거 농성 지지 성명을 발표하는 한편, 〈동아일보〉 같은 우파 언론이 학생들을 비난하는 것을 보라.

따라서 운동의 목적을 공유하는 운동 지지자들이 운동의 수단과 지향성에 대해 자유롭고 공개적으로 의견을 내놓고 말할 자격과 권리, 의무도 있다. 이화여대에 다니는 노동자연대 회원인 학생들도 당연히 총장 사퇴에 대해 말할 자격·권리·의무가 있다.

본관 농성자들은 자신들은 정치색이 없는 세력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다양한 정치적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총장 사퇴’라는 하나의 요구 아래 공존하고 있다는 보는 것이 정확하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정치적’ 견해를 배제하거나 은폐하려는 시도는 위선이거니와, 민주적 토론과 의사결정을 방해하는 효과만 낼 뿐이다. 견해 차이는 운동 과정 속에서 서로 다른 정치적 입장들이 서로 경합해 나가면서 어떤 입장(제안)이 더 효과적인지 실천에서 입증해 나가면 될 문제다.

졸업식 날 행동하자!

1차 대화가 완전한 실패로 끝났는데도 학교 측은 자화자찬 식의 보도자료를 낸 데 이어, 8월 26일에는 ‘졸업생과 함께하는 소통의 장’을 열 예정이다. 이 또한 한 편의 사기극일 것이다.

졸업식 때 항의 행동을 벌여 그날 저녁에 있을 기만적인 졸업생과의 대화도 무산시켜서 총장 사퇴 요구를 지지하는 졸업생들의 자신감을 높이고 총장의 입지를 더욱 군색하게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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