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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방송(iTV) 노동자들의 언론 개혁 투쟁
지난 12월 31일 오전 11시, 마침내 iTV(경인방송)의 전파 송출이 차단됐다.
이 날 iTV 사측은 “조합원과 비조합원의 충돌이 우려”된다며 사옥 정문을 굳게 잠근 채 고별방송마저 취소했고, 같은 시각 조합원들은 그 앞에서 눈물의 고별행사를 했다.
iTV 노동자들은 지난 11월 15일부터 ‘공익적 민영방송 쟁취’를 내걸고 40여 일 간 전면파업을 벌였다.
‘공익적 민영방송’이란 소유·경영·편성을 분리해 지배주주의 간섭을 막고 프로그램을 민주적으로 편성하는 것을 말한다.
iTV 지배주주인 동양제철화학은 건물과 토지 임대료 2백50억 원과 매년 운영자금 수십억 원에 대한 이자를 꼬박꼬박 챙겨갔지만, iTV에는 7년 간 3백60억 원을 투자했을 뿐이다.
결국 iTV는 자본잠식 상태에 이르렀고 12월 21일 방송위원회는 iTV의 재허가 추천을 거부했다. 방송을 운영할 자격이 없는 동양제철화학이 재허가에서 탈락한 것은 당연한 결과며, 이것은 재허가 추천 거부를 요구해 온 iTV 노동자들의 승리다.
그러나 이틀 뒤 iTV 이사회는 이를 악용해 폐업을 결정하고 고용계약을 해지하겠다고 밝혔다. 〈조선일보〉는 “노·사·지배주주 갈등이 방송 중단[을] 초래”했다고 본질을 왜곡했고, 〈국민일보〉는 “노조의 강성 이미지는 향후 새로운 사주를 찾는 과정에서 걸림돌이 될 것”이라며 사태의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돌렸다.
12월 29일 긴급토론회에서 언론노조 양문석 정책위원은 “방송법에서 제시하는 언론의 공공적 기능을 실행하려고 했던 것이 iTV 노조의 공익적 민방”이라며, “소유구조 개편, 방송사 내부의 민주적 경영, 지역성 강화를 제창하고 선도적으로 실천한 노조가 도대체 뭘 잘못했다는 건가?” 하고 반박했다.
iTV 사태는 논란 끝에 조건부 재허가 추천 결정에 이른 SBS, 강원민방과 함께 지난 10여 년 간 정부가 추진해 온 방송 사유화 정책의 실패를 입증하는 사례다. 그런데도 열린우리당은 언론 개혁 요구를 외면하고 언론사 소유지분 축소 조항을 삭제해 버렸다.
전북대 김승수 교수는 방송위가 뚜렷한 대안도 없이 iTV의 전파 송출 차단을 결정한 것에 대해 “지배주주 퇴출을 방송 중단으로 연결하는 건 방송을 주주의 사유물로 취급하는 데서 비롯된 잘못”이라고 비판했다.
방송위는 청산 후 지역방송 불허, 전국을 권역으로 하는 제2의 SBS, 외주전문채널로의 전환, 새 사업자 선정 등을 놓고 논의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 가운데 어느 것도 ‘공익성 강화’를 염두에 두고 있지는 않다.
iTV 노동자들은 사측의 손배·가압류에 걸려 1백억 원에 이르는 퇴직금조차 돌려받지 못하고 있지만, ‘공익적 민영방송’을 위해 ‘경인지역 지상파 방송 재탄생 서명운동’ 등을 펼치고 있다. 인천의 많은 시민들도 iTV 노동자들과 함께 방송 재개에 필요한 조치를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배수현·박종호
한진중공업
한진중공업에서 비정규직 노동자 김춘봉 씨가 2004년 12월 27일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 김춘봉 씨는 2003년 4월까지 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다가 구조조정 과정에서 명예퇴직 후 촉탁직으로 일하고 있었다.
명예퇴직 당시 회사측은 고용보장을 약속했지만 헌신짝처럼 저버리고 해고통지를 했다. 한진중공업은 2002년부터 2003년까지 생산직 노동자 6백여 명을 정규직에서 계약직으로 전환시키면서 노동자들을 벼랑으로 내몰았다.
김춘봉 씨는 유서에서 “비정규직이란 직업이 정말 무섭다”며 “나 같은 사람(비정규직)도 인간 대접받을 수 있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민주노동당 단병호 의원은 “정부가 주장하는 비정규직 확대, 노동유연성 증대는 정규직을 비정규직화하고 이들을 고용불안정에 시달리게 하고 죽음으로 몰아넣는 것을 의미한다”며 노무현 정부를 규탄했다.
민주노동당은 한진중공업을 항의방문했고 민주노총은 ‘고 김춘봉 노동자 대책위’를 구성해서 재발방지와 대책마련을 요구했다.
이런 강력한 항의와 정규직 노조의 파업 위협 등의 결과 한진중공업은 촉탁직 노동자들의 고용을 정년 시까지 보장, 신규인력은 모두 정규직 채용,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노조활동 보장, 불법파견노동 금지 등을 받아들였다.
민주노총은 김춘봉 씨 죽음을 계기로 1월 중순 ‘고 김춘봉 노동자 추모 및 비정규노동법 개악철회, 권리입법 쟁취 노동자대회’를 개최하기로 했다.
최영준
장애인 이동권 투쟁의 성과
지난 2004년 12월 29일 민주노동당의 발의로 ‘교통약자편의증진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장애인의 이동 편의를 도모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정부와 지자체는 법이 시행되는 내년부터 5년 단위로 ‘교통약자편의증진계획’을 수립하고, 저상버스를 의무적으로 도입해야 한다.
내년부터 향후 10년 간 4천7백40억 원을 연차적으로 지원, 전국 시내버스의 30퍼센트인 8천9백39대의 저상버스가 도입될 것으로 예상된다.
‘버스타기’는 엄두도 못 내던 중증장애인들에게 더 수월한 이동수단이 제공될 수 있게 됐다.
이동권연대는 그 동안 지하철 선로 점거, 버스 점거, 서울역 천막농성, 국가인권위 점거 단식농성, 40회에 걸친 ‘장애인도 버스를 탑시다’ 투쟁, 55만 4천 명에 이르는 대국민 서명운동 등 치열한 싸움을 전개해 왔다.
이번 법률 제정은 노동자와 소수자 인권을 위해 전력해 온 민주노동당의 첫번째 입법사례라는 점도 의미가 있지만 이처럼 이동권을 쟁취하려는 장애인 당사자들의 직접 투쟁이 뒷받침된 결과다.
리프트를 타다가 목숨을 잃어도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했던 장애인들에게 피해를 구제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비로소 마련된 것이다.
그러나 편의 증진 계획이 장기적인 데다 예산 범위 내에서 지원이 가능하도록 단서 조항을 달고 있어 반쪽짜리 입법으로 판단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중증장애인의 경우 대중교통수단까지 이동할 수 있도록 전동휠체어를 지원하고, 활동보조서비스 등 이동 약자의 이동 보조에 대한 실질적인 조치들이 빠져 있어 상당한 보완이 요구된다.
홍이선
신세계 이마트 계산원 노동자들의 투쟁
2004년 12월 21일 신세계 이마트 수지점에서 “경기지역일반노조 용인지부 이마트 수지분회”가 결성됐다. 캐셔(계산원) 56명 가운데 22명이 노조에 가입했다.
이건희의 여동생 이명희가 최대 주주로 있는 신세계 이마트는 삼성가의 기업답게 노조 결성 직후 조합원들을 감금·미행·협박하고 노조 탈퇴를 강요해 3∼4일만에 18명이 탈퇴서를 작성토록 했다.
이마트는 부당노동행위가 알려지자 오히려 ‘민주노총의 지시로 위장취업을 했다’고 음해하며 이종란 조합원을 해고했다.
이마트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한 이유는 최저수준의 임금과 비참한 노동조건 그리고 비인간적인 대우에 있었다.
“식사시간도 실제 밥을 먹을 수 있는 시간은 10분에서 15분 가량이에요. 너무 오래 서있다 보니 저는 다리에 실핏줄이 터져 흉해서 쳐다보지도 못할 정도예요.”
“잠깐 쉬는 시간에 다리가 너무 아파 휴게실에서 긴의자에 다리를 올려놓고, 잠시 눈을 감고 있곤 했어요. 그런데 관리자들이 그걸 보고는 의자를 빼가고 휴게실 벽에 ‘눈을 감지 마세요’하고 붙여 놓는 거예요.”
노동조합을 없애기 위해 사측은 조합원들을 계속 강제 탈퇴시키고 있다. 기자와 인터뷰 도중에도 남아 있던 4명의 조합원 중 1명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자신이 탈퇴했음을 전화로 알렸다.
그러나 사측의 노조 파괴 공작에도 최옥화 분회장의 노동조합 사수 의지는 단호했다.
“조합원들이 강요에 의해 탈퇴서를 썼지만 전 그들이 아직 조합원이라고 생각해요. 모두 탈퇴해도 그들의 마음은 저를 지지하고 있으니까요.”
전국에 70여 개의 점포를 거느리고 있는 국내 1위의 할인점이라는 신세계 이마트의 신화는 고된 노동을 참으며 묵묵히 견뎌 온 노동자들의 피와 땀의 다른 이름에 불과하다.
주수영
파병 연장 반대 집회
지난 2004년 12월 30일 ‘파병동의안 국회 통과 반대, 자이툰 부대 철수 결의대회’가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렸다. 추운 날씨였는데도 3백여 명의 집회 참가자들은 ‘파병 강행 국회 규탄’, ‘파병 연장 동의안은 살인 동의안’이라며 자이툰 부대 주둔을 하루도 연장할 수 없다는 뜻을 소리 높여 외쳤다.
그 외침은 개혁의 무늬마저 닦아내고 있는 열우당에 대한 분노였다. 민주노동당 이정미 최고위원은 “국가보안법을 대체 입법이라는 더러운 법으로 합의하고 파병 연장안을 처리하는 열우당의원들 중 자신을 개혁 의원이라고 (말)한다면 재봉틀은 물론 그보다 더한 것으로 틀어막아야” 한다는 발언으로 참가자들의 큰 박수를 받았다.
또한 다함께 활동가 김덕엽 씨는 “지난 21일 주 이라크 대사가 기자회견을 통해 밝힌 바에 따르면 자이툰 부대원 20여 명이 한국 대사관에 대한 경비를 서고 있다”며, 자이툰 부대는 이라크 저항세력 진압과는 무관하다고 주장하는 정부의 대국민 사기극을 폭로했다.
이 날 모든 연사들은 분노와 결의를 담아 힘있는 목소리로 파병연장안이 통과하더라도 투쟁은 계속될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 집회가 도심에서 개최됐더라면 분노와 결의의 주장이 더 많은 청중을 얻을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웠다.
우리는 집회의 결의를 되새겨야 한다. “우리는 주저앉지 않을 것입니다. … 투쟁은 다시 시작됩니다. 오는 3월 20일 이라크 전쟁 2주년을 계기로 미국의 이라크 점령을 종식시키고 자이툰 부대를 철수시키기 위한 … 새로운 반전평화의 봄을 준비할 것입니다.”
김세원
경찰청 고용직 노동자 투쟁
김 씨가 고3이 될 무렵, 양친 모두가 중병을 앓게 됐다. 갑자기 밀려든 집안 사정의 악화로 그녀는 교복을 입은 채 강원도 한 경찰서에 이력서를 냈다.
그녀의 첫 출근지는 작은 파출소였다. 당직실의 재떨이를 비우는 일부터 시작해, 순경들의 옷을 빠는 일, 밥을 하고 책상을 닦고 세차를 하고 야근자를 위해 라면을 끓여 주고 겨울이 되면 직접 김장을 담그는 일뿐 아니라, 공문을 직접 작성해 주는 일 등이 모두 그녀의 몫이었다. 시위 진압으로 다쳐서 돌아온 의경에게는 약을 발라 주기도 했다.
그렇게 파출소에서 5년을 일하고 본서로 들어왔지만 1백만 원도 채 안 되는 월급 봉투와 “김 양” 이라는 호칭은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6년을 더 일한 지금 그녀는 경찰청의 일방적인 직권면직으로 일자리마저 잃을 처지에 놓여 있다.
현재 그녀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경찰청 고용직 공무원이 모두 5백87명에 이른다. 이들은 정년도 43세에 지나지 않는다. 자신보다 나이 어린 여경 앞에서 “이 년은 인사도 제대로 못 한다”는 욕설을 들은 노동자도 있다.
기능직 공무원으로 전환된다는 희망을 갖고 저임금과 차별적 환경을 감내하며 근속년수 평균 10여 년 이상이 될 때까지 일해 온 이들이 지금 생존의 막다른 길에서 노동조합을 결성해 경찰청을 상대로 투쟁하고 있다.
이들은 2004년 12월 22일부터 단식과 삭발 농성에 들어갔다. 하지만 경찰청은 미행·회유·협박 등 파렴치한 탄압으로 일관하고 있다. 또 자진 퇴직서를 쓴 후 일용직으로 전환할 것을 강요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와 경찰청의 탄압을 막아내고 직권면직을 철회하기 위해 경찰청 고용직 노동자들은 질긴 싸움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김승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