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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총학생회 탄핵안’에 대한 추가 반박:
시국선언 추진 과정에서 민주주의를 훼손했다?

이 글은 10월 31일 노동자연대 고대모임이 발표한 성명서이다.

총학생회장단 탄핵을 주도하는 학생들은 주로 시국선언을 문제 삼았던 자신들의 주장이 반박을 당하자, 이제 와서 슬그머니 쟁점을 이동하고 있다.

탄핵 서명 관련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우리가 탄핵안을 발의한 사유가 시국선언문을 작성함에 있어서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황당한 얘기가 들리고 있습니다”는 글이 올라 왔다. 마치 자신들이 탄핵을 발의한 주된 이유가 시국선언문 때문이 아니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이다. 시국선언문에 고(故) 백남기 농민 관련 내용이 포함됐던 것이나, “운동권 단체”와 함께 했던 점, 심지어 시국선언 발표가 늦었다는 앞뒤 안 맞는 모순된 주장까지 탄핵 발의 서명 내용에 버젓이 표현돼 있는데 분위기가 좋지 않자 이제 와서 발뺌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태도야 말로 학우들을 기만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최근에는 애초에 주로 제기했던 논점들은 거의 언급하지 않으며 총학생회의 소통 부재가 핵심이라며 강조하고 있다. 학생회의 대표성이나 민주주의 문제를 언급하는 것도 눈에 띤다.

그러나 총학생회장단을 탄핵해야 할 만큼 심각한 민주주의의 문제가 있었는가?

우선 진행 과정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사실관계부터 설명해야겠다. 애초에 고려대 시국선언 준비는 한 학생(동아리연합회 인문과학분과장)의 발의로 시작됐다. 박근혜 퇴진 여론이 거세지는 상황에서 고려대에서도 시급하게 시국선언을 해야 한다는 발의를 10월 25일에 이 학생이 했고, 이 학생이 시국선언을 같이 준비해 볼 만한 학생 단체들에게 연락해 회의가 소집됐다. 그래서 총학생회와 고려대 평화나비, 고려대 학생행진, 노동자연대 고려대모임, 민중연합당 흙수저당 고려대분회, 정치경제학연구회 수레바퀴, 한국근현대사연구회가 시국선언을 초동 발의하기로 했고, 초동 발의를 시작으로 더 많은 단체들로 시국선언을 확대해 10월 27일에 기자회견을 하기로 결정했다. 논쟁이 벌어지는 와중에도 연서는 확대됐다.

탄핵 발의자들은 이렇게 시국선언이 준비된 과정이 총학생회가 탄핵돼야 할 심각한 문제라고 본다. 심지어 “일부 단체가 시국선언문 작성에 '적법한 절차 없이' 개입한 경위가 있음이 밝혀”졌다며 마치 시국선언을 초동 발의한 사람과 단체들이 불법을 저지른 것처럼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황당한 주장이다. 한 학생이 고려대에서도 하루 빨리 시국선언을 발표하자며 제안한 것이야 말로 사회 문제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려는 올바른 태도이고 용기 있는 행동이다. 박근혜의 여러 문제에 맞서 싸워 왔던 학내 단체들과 총학생회가 이 학생의 올바른 제안에 동참한 것이야 말로 민주적으로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려는 자세이다. 빠르게 시국선언을 하기 위해서 행동에 나서자고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모인 것을 중앙운영위원회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논의와 추진이 올바랐음은 전국적 상황이 입증한다. 10월 28일까지 전국 30여 개 대학에서 시국선언이 있었다. 그러나 고대는 그 명단에서 빠져있다. 수치스러운 일 아닌가?

이렇게 초동 회의를 거친 이후에 시국선언을 발의한 학생이 초안을 써서 연명 단체를 확대하기로 했다. 그리고 초안이 나온 이후 총학생회는 전학대회 구성원들과 동아리, 학회, 소모임들에 제안해 연명을 받고, 제기되는 의견들도 피드백을 받았다.

물론 총학생회가 26일 시국선언 관련 첫 게시물을 올릴 때 시국선언 연명을 확대해서 받는다는 점을 명확히 쓰지 않았던 것은 실수였다. 그러나 곧 연명을 확대한다고 수정 공지를 했다. 따라서 총학생회가 ‘박근혜 퇴진 기자회견’을 준비하면서 소통 창구를 폐쇄적으로 닫아놓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사실관계를 완전히 왜곡하는 것이다. 의견이 있다면 연서 단위에 추가적으로 들어오면 되는 일이었다. 참여를 밝히고 의견을 개진했다면 내용 수정을 위해 민주적인 토론을 벌일 수 있었을 것이다.

총학생회가 입장을 낼 때 항상 중운위 회의를 거쳐야 하는 것도 아니다. 긴박한 상황일 때는 회의가 아닌 의견 공유를 통해서 동의를 얻을 수 있고 총학생회장은 중운위의 카카오톡 방을 통해 공지를 했다. 탄핵을 발의한 학생들 스스로가 시국선언을 더욱 미뤄지게 발목을 잡아 놓고도 시국선언 발표가 늦은 것을 총학생회장단 탄핵 사유로 제출했듯 당시 상황은 누구나 시국선언을 긴급하게 발표해야 한다고 생각하던 때였다.

매우 부차적인 실수가 있었다 할지라도 이번 시국선언 추진 과정에서 총학생회장단이 탄핵돼야 할 문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제대로 시시비비를 가리기 보다는 인터넷 여론에 무원칙적으로 타협하며 준비해 오던 시국선언을 연기하고 총학생회장이 사과문을 발표한 것이야 말로 아쉬운 일이다.

총학생회가 이번 시국선언에 대해 중운위의 의결을 거치지 않았고 소통의 문제가 있었다며 탄핵을 추진하는 것이야 말로 현 사안의 시의성이나 정당성을 훼손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그래서 진보적인 사람들 사이에서 “고대가 맛이 갔다”, “박근혜 편이냐” 하는 욕을 듣고 조선일보에 댓글을 다는 보수적인 사람들 사이에서나 칭찬을 들은 것이다. 탄핵안 서명을 주도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우익을 이롭게 한 것이나 박근혜 편을 든 것이 아니라고 하지만 자신들이 한 일이 사회적으로 어떤 효과를 냈는지 봐야 한다. 명백히 이들은 시국선언을 발목 잡으며 박근혜를 이롭게 하는 일을 한 것이다.

학생회라는 대의 기구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다. 총학생회를 비롯해 모든 학생회는 학우들의 손으로 직접 선출된다. 그렇게 대표성을 획득한 대의기구는 100퍼센트 의견이 합치되지 않는 구성원들의 의견을 어떻게 대표할 것인지 어려움에 부딪힌다.

그래서 학생회장들은 특정 쟁점에 대한 주장을 펼칠 때 좁게는 과나 단과대, 넓게는 고려대 학생들의 전체 논의 지형을 파악해 지형의 다수를 대변하는 방식을 선택하도록 압력을 받는다. 양극단으로 논의 지형이 펼쳐지는 듯 보일 때는 ‘기권’을 선택하기도 한다.

학생회가 학우들의 의견을 신경 쓰고 압력을 받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논의 지형만큼이나 학생회장 개인의 판단도 매우 중요하다. 대의체계 속에서 대표성, 정당성을 인정받은 학생회장은 학우 전체의 의견들 중 다수만을 대변하는 게 아니라 ‘어떤 의견을 대변해야 하는가’ 선택해야 한다. 이때 사회의 정의와 진실을 지지하는 입장을 선택하는 것이 진정으로 소신있는 학생회 활동가의 자세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학생회가 개인의 의견과 다른 주장을 펼친다고 해서 학생들을 제대로 대표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말할 수는 없다. 100퍼센트로 의견이 합치될 때까지 토론만 할 수는 없는 일이지 않은가. 그리고 고대 학생 전체가 100퍼센트 동의하는 입장이 있다고 가정하는 것 자체가 완전한 몽상아닌가?

탄핵안 추진자들은 디럭스 문제 등도 제기하고 있다. 이건 탄핵안 발의를 위한 꼬투리 잡기로 보인다.

물론 이 문제에서 총학생회의 일 처리에 안타까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사과할 부분은 사과해야 한다. 그러나 디럭스 문제 외에 중앙광장 열람실 축소 문제를 공지하지 않았다거나 학사제도 개악안에 대한 학생들의 의견 수렴이 부족했다는 것은 사실과도 다르다. 이렇게 아니면 말고 식으로 제기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우리는 어떤 사안이 진정으로 총학생회를 탄핵할만한 수준의 것인지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 2014년 말 폭로된 ‘고대공감대’ 총학생회 선거 부정이나 2010년 벌어진 ‘소통시대’ 총학생회의 학생 사찰 문제 등이야 말로 학생 사회의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문제였고, 탄핵감이었다.

이번 탄핵안은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사안을 꼬투리잡기 식으로 제기한 것일 뿐이다. 오히려 지탄받아야 하는 사람들은 총학생회장단이 아니라 총학생회 탄핵을 주도한 학생들이다.

지금 총학생회장단 탄핵 서명을 주도한 학생들은 탄핵 반대 서명을 발의한 개인에 대한 신상 털기를 하기도 했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자신과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기자회견을 연기하도록 만들고 신상 털기를 하는 행동이야말로 토론을 가로막고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일 아닐까?

지난 토요일(10월 29일) 진행된 “내려와라 박근혜 시민 촛불”(민중총궐기 투쟁본부 주최)에는 4만여 명이 참가해 현 정권에 대한 분노를 표현했다. 총학생회가 급하게 참가 공지를 했지만 고려대 학우 70여 명이 총학 깃발로 모이기도 했다.

집회에서는 세월호 참사 유가족이 올라와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는 시국선언을 낭독했고 백남기 농민 투쟁본부 대표의 발언도 있었으며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하는 이화여대 학생의 발언도 있었다. 이 발언들은 모두 집회 참가자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집회가 끝난 직후에는 자정이 넘도록 수많은 시민들이 거리를 활보하며 박근혜 퇴진을 외쳤다.

이번 집회는 고려대 총학생회와 단체들이 준비했던 시국선언이 옳았음을 입증했다. 민중총궐기 투쟁본부가 세월호와 백남기, 공공파업을 이야기한다고 고려대 일부 학생들은 11월 12일에 있을 민중총궐기에 참가하지 않을 것인가? 아니다. 오히려 쟁점을 좁히라고 말하지 말고 박근혜 정권의 여러 약점들을 모두 언급하며 박근혜 퇴진에 힘을 싣고, 집회에 나가야 한다.

오늘 7시 임시 전학대회가 예정돼 있다. 시국선언을 빌미로 한 총학생회장 탄핵안은 지금 박근혜만 도와줄 일이다. 따라서 가장 효과적인 것은 전학대회 자체가 무산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만약 전학대회가 성사된다면 탄핵안 상정 자체를 막아야 하고, 상정된다면 부결시켜야 한다.

10월 31일

노동자연대 고대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