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사법 개정안이 폐기돼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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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방 국립대학교에서 계약직 비정규 교수로 일하고 있다. 앞으로 연구교수 일을 그만두게 되더라도 시간강사로서 강의는 계속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입법 예고된 강사법 개정안을 보면 이 기대가 어그러질지도 모르겠다.
강사법 개정안은 그동안 시행이 세 차례 유예된 기존 강사법을 일부 수정한 것이다. 11월에 통과되면 2018년 1월 1일부터 시행된다. 조합원 대다수가 시간강사인 한국비정규교수노조는 강사법 개정안을 반대하며 폐기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교육부는 강사법 개정안이 시간강사에게 교원 신분을 부여하고 1년 이상 임용을 보장해, 시간강사들의 처우를 개선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시간강사들은 4~6개월씩 단기 계약을 하고 있다.
그러나 강사법 개정안으로 시간강사들의 처지가 개선될 것 같지는 않다. 시간강사에게 법적으로 교원 지위를 부여한다지만, 기존 전임 교원들과 달리 공무원연금과 사학연금은 주지 않는다.
기존 강사법에 ‘교육 또는 연구’로 규정돼 있던 시간강사의 임무가 개정안에서는 ‘학생 교육’으로 축소됐다. 교육부는 시간강사들의 부담을 줄이는 조처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전임 교원 자리에 지원하거나 시간강사로서 재고용되기 위해서는 연구 실적이 필요하고, 그러려면 연구비가 필요하다. 강사의 임부 변경은 연구비를 지원하지 않으려는 꼼수에 불과하다.
개정안은 기존 강사법의 핵심 내용이었던 ‘1년 이상 임용 규정’조차 후퇴시켰다. 원격대학 강사, 공동 수업 강사, 계절학기 수업 강사의 경우에는 1년 미만 임용을 허용한다는 단서 조항이 들어간 것이다.
반면, 전임 교원들의 법정 수업시수를 시간강사에게도 적용하려 한다. 현행 교원관계법은 대학 전임 교원의 수업시수를 주당 9시간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현재 대학 시간강사들은 보통 한 대학에서 3~4학점을 맡는다. 주당 수업시수는 3~4시간이다. 이런 상황에서 개정안이 통과돼 시간강사들이 전임 교원과 마찬가지로 주당 9시간 수업하게 되면, 현재 시간강사 절반이 해고될 위험에 처한다. 그래서 한국비정규교수노조는 시간강사의 수업시수를 주당 6시간 이하로 제한하라고 요구해 왔다.
게다가 개정안에는 1년 임용 후에는 당연퇴직한다는 조항도 새로 포함됐다.
즉, 강사법 개정안은 시간강사의 처우 개선 효과는 미미한 채 대량해고를 양산할 법안인 것이다.
교육의 질
박근혜 정부의 교육부는 강사법 개정안을 통해 대학 교육의 질을 높이겠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왜 교육부는 대학들이 시간강사를 대거 채용하는 것을 못 본 척했는가? 대학들은 교육자의 ‘내공’이 더욱더 필요한 기본 과목(경제학원론, 글쓰기 수업, 철학 및 역사 입문 강의 등)을 왜 시간강사들에게 내맡겨 왔는가?
시간강사들은 콩나물 시루를 방불케 하는 대형 강의를 맡으면서 시험지 채점하느라 며칠씩 밤을 샌다. 시간강사들은 방학은 물론, 채점 및 성적 산출 기간에도 강의료가 나오지 않아 힘겨운 시간을 보낸다. 내가 강의하는 대학에서는, 수년 동안 외국어 교양 과목을 강의한 여성 비정규 교수가 1백20명이 넘는 학생들의 시험지를 채점하다가 실신한 적도 있다. 사실 이런 일은 비일비재해서 열거하기조차 힘들다.
교육부와 대학당국은 비용 절감 효과를 노리는 것일 게다. 비판적 논쟁과 토론, 다양한 이론과의 만남과 토론, 추상과 구체의 그 오밀조밀한 씨줄과 날줄, 수천 년 전 지성인들의 물음과 마주할 수 있게 할 속삭임들, 엄숙한 지성의 깊이와 그 정화의 힘 … 그 따위가 도대체 뭐 중요하겠는가? 그 힘에 힘입어 현실을 냉철하게 볼 수 있는 게 뭐 그다지 중요하겠는가?
어디 돈 때문만이겠는가? 대학의 강의 인력들을 갈수록 1년 이하의 비정규직으로 채우게 됐을 때 지배층이 얻게 되는 진정한 효과가 무엇일지 한번 생각해 봤다. 대학의 자율성이 망가질 때 그 부정적 파급효과를 기뻐할 자들은 누구일까?
나는 개정안이 통과되면 인문사회 계열에서 공부하는 대학원생들의 미래는 더욱 어두워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대학 구성원들이 이미 이를 실감하고 있다. 이공계의 실정은 잘 알지 못하지만, 적어도 내가 속한 인문사회 계열의 대학원생들은 내가 그랬듯이 졸업 후 강의 한 두 과목 맡을 희망으로 버틴다. 그러나 개정안이 통과되면 그 희망조차 꺾일 것이다.
개정안으로 피해를 입을 사람들은 단지 시간강사만이 아니다. 시간강사들의 불안정한 처지는 전임 교수들에게 가해지는 압박도 키울 것이다. 연구비 지원도 없이 더 많은 강의를 하게 된 시간강사들이, 그것도 해마다 가슴 졸여야 하는 시간강사들이 학문적 깊이를 심화시키기는 더 어려워질 것이다. 그 피해는 강의의 질 하락으로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전가될 것이다.
‘교권 파괴 교수계약제’, ‘상호 약탈적 성과연봉제’, ‘줄 세우기식 대학평가정책’, ‘대학구조개악법’으로 대학은 명실상부한 돈 버는 기업이 돼 가고 있다. 교육부는 대학 구성원들이 서로 힐난하게 만드는 온갖 비교육적 정책들을 대학에 강요하고 있다.
강사법 개정안은 폐기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