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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테르테는 정말 미국 제국주의에 반대하는가?

필리핀 대통령 두테르테의 ‘반미’ 행보는 정말 종잡을 수 없다. 두테르테는 대선 유세 동안에 미국에 강한 불신을 드러냈다. 2002년 자신이 시장으로 있던 다바오 시의 한 호텔을 폭파한 미국인 테러 용의자가 피신하도록 미국이 도와 줬다고 의심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버락 오바마는 두테르테 당선을 가장 먼저 축하했다. 그러다가 두테르테의 ‘마약과의 전쟁’을 미국이 비판하자, 둘 사이의 관계는 악화됐다. 우익 포퓰리스트인 두테르테는 범죄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기반으로 정치적 경력을 쌓았다. 대통령 취임 후 두테르테는 경찰이나 자경단을 동원해 마약 매매에 연루된 3천6백 명을 살해했다.

미국의 비판에 두테르테는 주필리핀 미국 대사를 “후레자식”이라고 했을 뿐 아니라 오바마한테도 비슷한 욕을 했다. 10월 18~21일 중국 방문 때 두테르테는 “이제 미국과 작별을 고할 시간”이라고 선언하고 미군의 재주둔을 허용하는 군사협정이나 미국과의 군사훈련을 포함한 일체의 군사 활동을 “모두 중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두테르테는 남중국해 스카보러섬(중국명 황옌다오)에 관한 상설중재재판소(PCA)의 유리한 판결에도 불구하고 중국과 필리핀 사이의 영토 분쟁을 논의할 의사가 있음을 드러냈다. 또한 10월 25일 두테르테는 ‘마약과의 유혈 전쟁’ 등 자신의 정책을 우려하는 미국 투자자와 기업이 있으면 짐을 싸서 떠나라고 주장했다.

두테르테의 ‘반미’ 행보를 두고 중국 언론은 ‘가짜 이혼’이라고 의심하지만, 전통적 친미 국가였던 필리핀에서 전례 없는 일이다.

두테르테의 ‘반미’에 다급해진 미국은 국무부 차관보 대니얼 러셀을 필리핀에 급파했고, 필리핀의 친미 야당 인사와 자본가들은 국익을 위태롭게 한다며 두테르테에 반발하고 나섰다. 전 대통령 피델 라모스도 두테르테 정부의 특사직에서 사임했다.

ⓒ출처 필리핀 정부

마약과의 전쟁

필리핀에게 미국은 일본에 이어 둘째 가는 교역국일 뿐 아니라 투자국이다. 특히 2015년 미국의 필리핀 투자액은 7억 3천만 달러로 일본의 갑절에 달했고, 필리핀의 수출에서도 미국 시장이 일본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2016년 상반기 필리핀 경제는 6.9퍼센트의 고속 성장을 했는데, 이런 경제성장을 이끈 미국과의 교역이나 미국인 투자를 중단시킬 만큼 두테르테가 어리석지 않을 것이다. 〈파이낸셜 타임스〉에 따르면, 미국과 일본이 필리핀의 주요 해외투자 원천이고, 이 점에서 중국은 부차적 구실만 한다.

이 때문에 두테르테는 한번 내지르고는 다시 거둬들이는 행보를 반복하고 있다. 중국 방문 직후 두테르테는 “내가 말하려고 했던 것은 외교 정책의 분리”라며 “우리의 정책이 미국의 외교 정책과 딱 들어맞을 필요는 없다”고 해명했고, 외무장관 야사이는 두테르테가 말한 ‘결별’이란 ‘자주 외교’를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국방장관 델핀 로렌자나는 중국을 견제하는 성격의 연례 합동 상륙작전을 중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과 필리핀의 방위협력확대협정(EDCA)은 지킬 것이라고도 못 박았다. 방위협력확대협정(EDCA)은 2014년 4월에 체결된 것으로 필리핀이 군사기지 5곳을 10년간 미국에 제공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두테르테는 “외국 군대가 2년 안에 필리핀에서 나갔으면 좋겠다”며 EDCA을 폐기할 듯했지만, 중국 방문 직후 일본을 방문했을 때에는 “미국과의 군사동맹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필리핀 좌파들은 두테르테의 ‘반미’ 행보에 기대와 환상이 있다. 마오주의 정치를 표방하는 필리핀공산당은 두테르테가 좌파로 돌아섰다고까지 주장했다. 두테르테는 농업개혁부와 사회복지부 장관에 필리핀공산당 인물을 임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두테르테의 이런 태도를 반제국주의적인 것으로 봐야 할까? 앞서 지적했듯이, 두테르테 정부는 미국과의 관계를 위험에 빠뜨리고 싶은 의도는 없다. 무역장관 라몬 로페즈는 이렇게 말했다. “필리핀은 미국과의 교역이나 투자를 중단시키지 않을 것이다. 두테르테도 [미국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한편 중국이나 아세안 지역과의 연계를 다시 형성하고 싶어 한다.”

예리한 논평가들은 두테르테가 ‘반미’ 발언을 과장스레 말하지만 미국과의 군사 협정은 전혀 손대지 않은 채 중국에게 원조 약속을 받는 등 실익을 챙기고 있다고 지적한다.

반제국주의?

미국과의 동맹 관계를 끊을 생각이 없는 두테르테가 ‘반미’ 발언을 내뱉는 이유는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미국에 자신의 국내 정책, 즉 마약과의 전쟁에 간섭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다. 미국으로서는 고속 성장하는 지역을 놓치고 싶지 않고 또 중국을 견제하려면 필리핀이 필요하다는 점을 두테르테가 활용하고 있다.

둘째, 중국 등에 필리핀은 경제적으로 개방돼 있으며 누구라도 환영한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다. 중국은 두테르테에게 마약 재활 치료 프로그램을 위한 1천5백만 달러의 차관 말고도 90억 달러를 저리로 제공하기로 약속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두 정부가 1백35억 달러의 경제 협력에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두테르테는 경제 개발에 중국 자금을 끌어들이길 원한다. 또한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을 위한 투자도 유치하고자 한다. 그래서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을 통해 인프라 건설을 위해 12억 달러를 필리핀에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두테르테의 ‘반미’ 행보가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원칙 있는 입장에서 비롯한 것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두테르테는 남중국해 지역에서 가장 강력한 두 강대국 사이에서 책략을 부려 실익을 얻고자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행태는 한계가 분명한 데다가 위험할 수도 있다. 두테르테 자신이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힘의 균형추가 이동함에 따라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미국은 친미 국가인 필리핀의 유력 가문들을 통해 두테르테에게 압력을 넣을 수 있고, 자신의 지배력을 재확인하기 위해 필요한 수단을 동원할 것이다.

필리핀을 비롯한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중국과의 관계에서 인프라 투자 등 경제적 이익을 원한다. 그러나 중국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바람이 충족되지 못할 공산이 커지고 있다. 게다가 남중국해에서 악화하는 영토 분쟁, 중국의 군사적 부상은 필리핀 등 동남아 국가들로 하여금 자국의 군비 증강과 함께 미국과의 전통적 안보 동맹을 다시 부여잡게 만들 것이다.

지금 두테르테는 외부의 자금 조달과 투자를 통해 필리핀에서 신자유주의 의제(자유무역지대 확대, 투자 유치를 위한 법인세 감면 등)를 강화해 자본 축적을 가속화하고 또 노동자 계급의 희생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고자 한다. 그리고 억압적인 사회 질서를 뒤집어엎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안정시키기 위해 노동자 대중, 좌파, 차별받는 집단을 잔혹하게 대한다. 필리핀 좌파는 두테르테의 오락가락 행보에 뭔가 환상을 품을 게 아니라 그 정부와 독립적이고 또 그에 반대하는 세력을 건설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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