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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의 요구를 비틀고 축소하는 주류 야당들

국무총리 황교안이 우파적 행보를 이어 가며 박근혜 없는 박근혜 정부의 적폐 대행자로서의 면모를 과시하고 있다.

한일 ‘위안부’ 합의가 유지돼야 한다던 황교안은 “상황 악화를 가져올 수 있는 언행은 자제하는 것이 한일 관계의 미래지향적 발전을 위해 바람직하다”며 ‘위안부’ 합의 비판 여론을 억눌렀다.

적폐 청산은 박근혜 개악의 철회와 인적 청산을 포함한다.

뿐만 아니라 노동개악 4법 중에서 우선 근로기준법부터 통과시키자고도 했다. 노동개악 중 근로기준법 개악은 실질 노동시간이 연장되는 탄력근무제 확대가 포함돼 있다. 친기업 노동자 쥐어짜기를 중단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1월 4일 외교‍·‍안보 관련 업무보고에서는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을 “굳건한 안보”를 위한 중요한 성과로 소개하기도 했다.

이런 개악에 추진력을 얻으려고 황교안은 국회와의 협치를 강조해 왔다. 그래서 황교안은 “여야정 정책협의회를 통해 정치권과 적극 소통해달라”고 하기도 했다. 천만 퇴진 운동이 ‘황교안 사퇴’를 요구해도 모른 척해 놓고 “소통”을 강조하는 것은 참으로 역겨운 일이다.

그런데 민주당과 국민의당은 퇴진 운동이 아니라 황교안의 소통 요구에 호응하고 있다. 민주당과 국민의당은 여야정 협의회를 꾸려 1월 8일 첫 논의를 시작했다. 이미 국민의당 비대위원장 김동철은 지난해 12월에 단독으로 황교안을 만났고 “진작에 이렇게 소통했어야 한다”며 칭찬도 늘어놓았다. 김동철은 여야 4당 대표와의 ‘5자 회동’을 제안해 황교안에게서 “감사하다”는 인사까지 받았다. 민주당이 황교안을 향해 “대통령 놀이”라고 비판하기는 하지만, 적폐 공범과 “더불어” 여야정 협의를 하겠다니 그 비판이 전혀 진지해 보이지 않는다.

그래 놓고는 두 야당은 “촛불 민심”을 앞세워 개혁입법 추진을 요란스레 떠들고 있다.

민주당 원내대표 우상호는 12일 퇴진행동과의 토론회에서 “촛불 민심 실현하는 국회가 돼야 한다”며 개혁 과제 22개의 입법을 추진할 것이라 밝혔다.

그런데 지난 12월 촛불 입법 과제 29개에 이어 개혁법안 목록에도 퇴진행동이 꼽은 긴급 해결 과제들은 제대로 포함돼 있지 않다. 백남기 특검, 세월호 특별법, 사드 배치 철회, 성과연봉제 철회 등은 빠졌고, 국정교과서 중단과 언론장악방지법 두 개만 포함됐다.

코빼기

이날 우상호는 세월호 특별법은 여야 대표 회동으로, 백남기 특검은 이미 야3당 대표 합의 사항이므로, 둘 다 빠른 시일 내로 해결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어느 하나 구체적인 방안이 없다.

몇 달 내로 세월호가 인양될 수 있으니 선체 조사 등을 위한 대책이 필요하고, 박근혜가 세월호 참사 책임을 지우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으니 신속하게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수단이 마련돼야 한다. 지난해 유가족들이 직권상정을 언급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백남기 농민 사망은 국가가 저지른 범죄인데도 단 한 명의 처벌도, 제대로 된 사과도 없었다. 최근 서울대병원 측이 수시로 청와대 정무수석에게 백남기 농민의 건강 상태를 보고했다는 언론 보도도 이어졌다. 그러나 지난해 9월 국회청문회 이후 진척이 없다.

우상호는 사드 배치를 다음 정권에 넘겨 재합의하도록 할 것이라 한다. 그런데 청와대 안보실장 김관진은 미국에 날아가 사드 배치 확실히 하겠다는 약속을 하면서 신속 배치를 밀어붙이고 있다. 절박한 성주‍·‍김천 주민들과 원불교가 11일부터 당사 점거 농성을 시작했지만 민주당의 주요 인물들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다음 날 국회 토론회에서 주민들이 우상호를 붙잡아 겨우 면담을 할 수 있었지만 그마저도 불분명한 답변들만 내놓았다. 민주당은 대선을 의식해 껄끄럽고 외연 확장에 도움이 안 된다고 여기는 쟁점들에 대해서는 얼버무리려 한다.

민주당은 시민‍·‍사회단체들과 만나며 퇴진 운동과의 끈을 적당히 유지하는 모양새를 취하면서 운동의 요구는 제 입맛에 맞는 것만 각색해 내놓고 있다. 차기 대선에서 정권이 교체되더라도 자동으로 현안들이 해결되리라고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다.

따라서 의회에서의 정치 협상을 요구 성취의 주요 통로로 삼으면 우리 운동의 요구를 삭감해야 한다는 압력이 내부에서 커질 수 있다. 따라서 퇴진행동은 황교안을 인정하며 보조를 맞추는 두 야당을 강력히 비판하면서(정치적으로 독립적으로) 아래로부터의 운동을 건설해 압박해야 한다. 국회에서의 탄핵소추 가결을 밀어붙인 결정적 힘이 거대한 거리 시위였듯이 말이다.

박근혜 정권을 완전히 퇴진시키려면 거리의 운동이 더 심화되고 급진화되도록 해야 한다. 그러려면 주적이 누구인지 분명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촛불에서 제기된 요구들이 더 예리해지고 운동과 잘 결합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