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폭로된 정유라 비리 한 눈에 보기:
부패한 박근혜 정부와 이화여대의 ‘부당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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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라의 이름도 몰랐다”(최경희 전 총장)
“정유라라는 이름조차 생소하다”(김경숙 전 학장)
최근 특검을 통해 이화여대 정유라 비리가 더 선명하게 윤곽을 드러내면서, 그 동안 국정조사에서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거짓말한 교수들이 줄줄이 구속되고 있다. 이화여대 당국은 특혜는 없었고 우연의 일치일 뿐이었다고 변명해 왔지만, 정유라를 위한 특혜는 입학 전부터 주도면밀하게 기획됐다.
승마 전형 확대
마침 정유라가 입학할 때 이화여대에 승마 전형이 추가됐다. 2013년 4월 체육과학부 교수회의에서 김경숙 전 신산업융합대학 학장이 체육특기자 종목 확대를 추진했기 때문이다. 김경숙 전 학장은 승마협회를 통해 정유라에게 특혜를 줬던 전 문체부 차관 김종과 돈독한 사이로 이화여대에서 정유라에게 특혜를 주는 데 핵심적 구실을 했다. 그는 최순실이 유일하게 친하다고 한 이화여대 교수다.
최순실, 김종이 이화여대에서 김 전 학장을 고리로 정유라 부정 입학을 추진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이를 뒷받침하듯 정유라가 이화여대에 원서를 지원한 2014년, 김종 전 차관이 김경숙 전 학장에게 ‘정유라가 이화여대에 지원하니 신경 쓰라’고 요구했다는 관계자 진술이 특검 조사에서 나왔다.
입학
정유라가 원서를 낸 후, 김경숙 전 학장은 남궁곤 입학처장에게 정유라의 지원 사실을 흘렸다. 국정조사에서 남궁곤 교수는 "김경숙 학장이 느닷없이 승마 얘기를 꺼내서 직접 인터넷 검색을 해서 정유라가 지원한 걸 알게 됐다"고 했다. 남궁곤 입학처장은 정유라가 정윤회의 딸이라고 최경희 전 총장에게 보고했다. 국정조사에서 최경희 전 총장은 자신은 정유라가 누군지도 몰랐고 공정하게 면접을 진행하라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 특검 조사에서 최경희 전 총장이 정유라 비리의 관제탑이었다는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최근 특검 조사에선 아예 최경희 전 총장이 "조건 없이 정유라 씨를 선발하라"고 직접 지시했다는 진술이 당시 면접위원들 사이에서 나왔다. 또한 최경희 전 총장은 정유라 입학 3개월 전인 2014년 12월 ‘예체능 회의’를 열어 정유라에게 특혜를 줄 방도를 논의했다고 한다. 당시 회의에는 김경숙 전 학장과 면접 당시 정유라를 뽑으라고 바람을 잡은 박승하 교수도 참가했다.
입학 후에도 최경희 전 총장은 자신의 최측근 이인성 교수(의류산업학과)에게 “정유라 학점을 신경 쓰라”고 말했다. 그 외 교수 2명에게도 정유라를 챙기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노웅래 더민주당 의원은 박근혜가 직접 최경희 전 총장에게 전화해서 정유라 입학을 부탁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박근혜가 삼성 이재용을 독대해 정유라 지원을 요구한 것을 본다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문제는 애써 승마 전형을 확대했지만, 정유라가 말을 잘 못 탔다는 점이다. 정유라는 지난 3년 동안 세계 대회 입상 경력이 없었고, 서류 평가에서 하위권이었다. 그래서 김경숙 전 학장은 체육특기자 입학 면접 서류 평가 채점기준 자체를 정유라에게 유리하게 바꾸려고 시도했다. 국제대회 성적과 국내대회 성적에 동등한 점수를 주는 안으로, 국제대회 수상기록은 하나도 없었던 정유라에게 유리한 채점기준을 마련하려 한 것이다.
이는 관철되지 않았다. 그러나 김경숙 전 학장과 남궁곤 입학처장은 면접위원들에게 개입했다. 남궁곤 입학처장은 면접위원들에게 “금메달 가져온 사람을 뽑으라”고 지시했고, 정유라가 입학 원서 제출 이후 딴 아시안게임 단체전 금메달을 면접장에 반입하도록 허락해 줬다.
김경숙 전 학장은 학장 권한으로 체육특기자 면접위원 2명을 추천했는데, 그가 뽑은 체육과학부 교수 2명이 정유라에게 면접 점수를 몰아 주고, 정유라보다 서류 점수가 높았던 2명에게 낮은 점수를 줘야 한다고 주장한 교수들이다.
이로써 정유라는 자신보다 성적이 좋았던 2명을 제치고 유유히 이화여대에 입학할 수 있었다.
학점
그러나 ‘말을 물가로 끌고 올 순 있어도 물을 먹일 수는 없다’는 말처럼, 입학을 했지만 바닥을 기는 학점이 문제였다. 정유라는 입학 후 단 두 번밖에 학교에 가지 않았는데, 와서 한 일도 교수 7명을 만나 학점을 잘 받는 법을 코치 받는 등 특혜 누리기였다.
김경숙 전 학장은 정유라가 아예 학교에 나오지 않고도 학점을 받을 수 있도록 학칙 개정에 착수했다. 당초 학칙은 2016년 9월 1일부터 실행될 예정이었는데, 최경희 전 총장과 전 기획처장, 전 교무처장의 제안과 동의 속에 3월 1일로 소급 적용됐다(이사회 감사). 이 때문에 정유라 성적은 급 상승해 제적되지 않을 수 있었다.
김경숙 전 학장은 류철균(필명 이인화, 박정희를 찬양하는 소설을 썼다)에게 정유라 학점 특혜를 사주했고, 류 교수는 2016년 1학기 ‘영화 스토리텔링의 이해’에서 정유라가 대리 출석을 하고 시험도 보지 않았는데도 학점을 줬다.
또한 김경숙 전 학장은 이원준 체육과학부 학부장에게 정유라에게 낙제점을 주지 말라고 압력을 넣었다. 그리고 이 학부장은 정유라가 수강한 체육과학부 수업 담당 교수를 불러 학점 특혜를 지시했다. 그 중엔 지위가 불안정한 초빙교수와 강사도 포함돼 있었다.
이인성 의류산업학과 교수는 정유라의 과제물을 아예 대신 작성해 내줬고, 이인성 교수의 직속 제자 유진영 교수의 수업에서 정유라는 한 번도 출석하지 않고 학점을 받았다. 김경숙 전 학장은 2015년 9월 15일 체육과학부 수시전형 실기 우수자 학사관리 내규(안)도 만들었다. 이는 입학시 C급 대회실적(하계 동계 전국체육대회, 협회장기대회, 문화체육관광부장관급 대회 3위 이상)만 있어도 장학금을 지급하는 파격적인 내용이었다. 학점도 절대평가로 부여하도록 하면서 "실적과 과제물 평가를 고려하여 학점을 최소 B 이상 줄 것"이라고 명시했다. 수많은 이화여대 학생들이 상대평가에 고통 받는 상황에서 정유라는 놀고 먹으면서 학점을 딸 수 있게 해 준 것이다.
정유라를 위한 일련의 학칙 개정은 정유라 특혜가 학교 권력자들 사이에서 조직적으로 진행됐음을 보여 준다.
정유라를 고리로 이화여대가 받은 특혜
정유라는 이화여대가 박근혜 정부와 유착해 이득을 얻는 한 ‘고리’였다. 정유라 외에도 이화여대는 각종 끈들을 이용해 박근혜 정부와 유착하려 애썼다. 이전 국정조사에선 이화여대 여성최고지도자과정 '알프스(ALPS)'가 ‘비선 실세 인재풀’이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화여대에 1억 원을 기부한 전 민정수석 우병우의 장모인 삼남개발 회장 김장자, 청와대 비서실장 한광옥 과 전 국무총리 내정자 김병준의 부인이 모두 이 과정 동문이다. 우병우 장모 김장자는 최경희와 자주 골프를 치며 친분을 다지던 사이라고 한다.
이렇게 정권 실세들과 연결된 수천 가닥의 끈을 통해 이화여대를 운영한 비리 교수들은 이득을 취할 수 있었다.
1) 정부 재정지원 사업 ‘싹쓸이’, 비리 교수들이 얻은 특혜
이화여대는 2016년 교육부가 시행한 재정지원사업 9개 중 8개에 선정됐다. 특히 박근혜 정부 들어 신설된 6개 신규 지원 사업에 모두 선정된 대학은 이화여대가 유일하다. 재정지원사업은 아니지만 이화여대는 2016년 학군단(ROTC)도 유치했다. 국방부는 여대에 학군단을 추가 선정하지 않겠다는 기존 입장을 뒤집고 이화여대를 선정했다. 이 때문에 여기에도 최순실의 입김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비리 교수들이 받은 특혜도 상당하다. 김경숙 전 학장은 2014년부터 2016년 4월까지 정부 연구과제를 8건이나 수주했다. 연구 과제가 적은 체육계에선 이례적 실적이다. 이인성 교수는 2015년부터 2016년까지 총 3건의 정부 지원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연구비 총액이 55억 원에 이른다. 게다가 그는 한국연구재단의 연구과제 기획위원으로 참여해 놓고, 자신이 그 과제를 신청해 8억 원가량의 연구비를 수주하는 특혜를 받았다.
류철균 교수는 2014년 대통령 소속 문화융성위원회 위원으로 위촉돼 차은택과 함께 활동하고, 2015년엔 노동계 ‘미르재단’으로 불리는 청년희망재단의 이사로 선정돼 특혜를 받았다.
2) 미르재단–이화여대 산학협력단 케이밀(K-meal) 사업 비리 의혹
2016년 초 이화여대 산학협력단은 박근혜 정부가 한국 식품의 우수성을 알린다며 진행한 케이밀 쌀 가공식품 사업을 수주했다. 그런데 케이밀 사업이 진행되기 전부터 미르재단이 2015년 이화여대 산학협력단 소속 박모 교수에게 쌀 가공식품을 개발해 달라고 요청했다는 게 드러났다. 미르재단이 뒤에서 기획하고 박근혜 정부가 정책으로 추진해 미르재단이 돈을 따내는 다른 사업들과 고스란히 같은 방식이었다. 이런 과정에서 이화여대가 어떤 부당한 이익을 취했는지 밝혀져야 한다. 이 의혹은 정유라 학사 비리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드러난 부분이지만 속히 드러나야 한다.
3) ‘정유라 특혜’ 건물 설립 시도 / 미르재단-이화여대 프랑스 요리학교 분교 설립 논의
이화여대 이사회는 이화여대 부속 유치원을 옮기고, 2015년 11월부터 그 자리에 대규모 ‘스포츠·예술 컴플렉스’를 세우려 계획했는데, 이 사업이 추진된 시기가 정유라 입학 시기와 맞물리면서 최순실과의 연결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이 건물에 신산업융합대학 건물이 들어갈 예정이었다는 점에서 정유라에게 특혜를 준 신산업융합대학 비리 교수들의 이해관계와도 맞물려 있을 수 있다.
또한 최근엔 그 건물에 미르재단과 계약을 한 프랑스 요리 학교 ‘에콜 페랑디’ 분교를 설립하려고 한 계획이 드러났다. 그리고 이 논의를 위해 차은택이 이화여대 본관에서 최경희와 함께 회의를 했다는 게 드러났다. 논란이 일자 이화여대 이사회는 2016년 12월 중순 사업을 중단한 상태다. 그러나 유치원 부지 이전 사태는 이화여대 이사회가 정유라 비리와 연계됐을 수 있음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정유라 비리가 보여 주는 것
덴마크 법정에서 정유라는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엄마가 다 했다’, ‘나도 학점이 왜 나왔는지 모르겠다’고 천연덕스럽게 얘기했다. 그러나 정유라는 이 판의 능동적 플레이어였다. 정유라는 즉각 송환돼 처벌받아야 한다.
정유라 비리는 전형적인 ‘권학유착’을 보여 준다. 최순실도 정유라를 ‘명문대’에 입학시켜 개인적 욕심을 채우려 했지만 이화여대 당국도 정유라를 정권에 잘 보일 수 있는 ‘기회’로 여겼을 것이다. 이를 통해 개별 교수들은 사적 이익을 챙겼다. 결국 그들은 ‘윈-윈’하는 게임을 했다. 쓰라린 모멸감은 경쟁에 짓눌린 평범한 학생들의 몫이었다.
이 같은 부패·비리는 부도덕한 개인의 문제였을 뿐 아니라 구조적으로 조장된 것이기도 하다. 돈으로 대학을 길들이는 방식의 정부 재정지원사업은 이런 부패를 강화하는 데 일조했다. 정부가 막강한 권력을 쥐고 대학들을 줄 세우며 채찍질한 대학 구조조정은 대학들이 정부와 더욱 유착하게끔 하는 압력으로 작용했다.
따라서 이런 문제를 조금이라도 완화하려면 대학들을 경쟁시켜 정부가 선발해 지급하는 식의 재정지원사업은 중단돼야 한다. 대신 고등교육을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는 관점으로 전체 대학에 균등하게 재정을 지원하는 것이 의무화돼야 한다. 또한 정부가 막강한 권한을 쥐고 신자유주의적 대학 구조조정을 강요하는 것도 중단돼야 한다. 물론 소수가 권력을 쥐고 있고, 대학이 위계적으로 서열화돼 있는 자본주의에서 이와 같은 부정부패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겠지만, 제도 개선을 통해 이런 문제를 강화한 원인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화여대에서 정유라를 통해 권력 유착 비리가 명백히 드러난 만큼 재발 방지를 위해서도 책임자를 철저히 처벌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화여대 이사회는 ‘조직적 비리는 아니었다’며 비리 교수들에게 면죄부를 줬고 여전히 어물쩍 상황을 넘기려 하고 있다. 심지어 총장 사퇴에 반대하며 “무슨 부패라도 있다면 모를까”라고 말하던 송덕수 부총장을 총장 대행으로 앉혔다. 그는 총장 사퇴 이틀 전까지 “열심히 잘 해 왔는데 특혜라니 답답”하다고 언론 인터뷰를 한 자다.
정유라를 즉각 송환하고 비리 교수들을 철저히 처벌하는 것이 이런 비리를 뿌리 뽑는 첫 발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