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는 박근혜를 탄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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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절 우익 총동원 집회에 10만~20만 명이 모이자, 예상대로 청와대는 탄핵 찬반 여론이 반반이라느니, 3월 4일 집회도 기대한다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그 자신이 조종하고 독려한 시위로 여론 운운하는 것을 보니 가소롭다. 박근혜는 삼일절 우익 총동원 집회을 앞두고는 박사모에게 직접 격려 메시지를 전했다. 국회의 탄핵소추 이후 박근혜가 표명한 입장들은 탄핵 반대 집회의 명분과 논리가 돼 왔다. 새누리당(자유한국당)과 박근혜 변호인단은 이 집회의 단골 연사들이다.
친박 우익 단체들을 청와대 행정관이 관리하고, 삼성과 전경련이 자금을 대 왔다는 의혹이 강력하게 제기된 지 한참이다. 미르·K스포츠재단 만들고 돈 모으는 일에서만 박근혜와 전경련이 한통속인 게 아니었던 것이다.
진정한 바닥 민심이 아니라 위에서 조직한 운동이었으므로 삼일절 ‘옹박(擁朴)’ 집회가 성공했다고 해서 ‘열에 여덟’이 박근혜 퇴진을 바라는 여론 지형을 바꾸지는 못했다. 퇴진 운동의 삼일절 집회 규모는 주말 집회보다 크게 줄었어도, 여전히 매주 평균 70여만 명이 참가하는 이 운동에 우익 집회를 들이댈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열에 둘(우익)’이 넋 놓고 있는 것과 총력 동원을 하며 기를 살리려는 것이 다른 것도 사실이다. 이 과정에서 박근혜 측이 불공정 시비와 세 과시로 헌법재판소를 압박한 것은 평결 지연이라는 일말의 가능성을 시험해 본 것이었다. 밑져야 본전이니 말이다.
그리고 이는 그들로서는 최악의 경우(탄핵 인용)에도 자기 대오를 유지하고 결속시킬 명분을 만드는 것이다. 다음 정권이 경제 회복에 실패하고, 경제 위기 고통전가 정책 등을 펴다가 인기가 떨어지면 우파에게도 재기의 기회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직 정권의 임기가 남은 동안 그 힘을 이용해 최대한 자기 세력을 결집해 다음 기회를 엿볼 태세를 갖추려는 것이다. 최악의 경우를 대비한 박근혜식 ‘질서있는 퇴각’ 계획인 것이다.
적폐 청산
게다가 너무 부패하고 민망한 실상 때문에 박근혜 제거에는 동의한 지배계급의 일부(아마도 상대적 다수)도 박근혜의 적폐 정책들까지 버릴 생각은 없다.
경제 위기 고통전가, 블랙리스트 통치로 민주적 권리 옥죄기, 한일 ‘위안부’ 합의나 사드 배치 같은 친제국주의 정책 펴기 등으로 노동자·민중을 무시하고 못살게 구는 일들 말이다.
(박근혜가 자신이 사익을 추구하지 않았다고 강변한 것은 순전한 거짓부렁이지만) 그의 부패는 기업주들과 공모해 벌인 것이지, 기업주들을 괴롭히거나 이윤 추구를 방해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박근혜와 거리를 두는 우익 언론들조차도 지금은 촛불 운동과 좌파, 노동운동을 비난하는 데 더 열중한다. 황교안이 권한대행으로 박근혜가 없는데도 박근혜 정부처럼 유지하는 것에 호의를 보낸다.
또한 이 운동의 발전 수준 때문에 아직은 정치적 헤게모니가 주류 야당에 있다는 약점을 이용하려고 야당 대선 후보들을 흠집 내는 데 신경 쓴다. 또한 마치 탄핵 찬반 의견이 팽팽한 것처럼 호도하며 우익 결집을 일부 돕는다.
저들은 사람(박근혜)은 미워해도 (박근혜) 정권은 미워하지 말라고 우리에게 삿대질을 하는 것이다.
실제로 황교안 내각은 노동개악도 포기하지 않았고, 사드 배치와 국정교과서 실시를 강행했다. 국가보안법 탄압도 벌였다. 삼일절에 한일 ‘위안부’ 합의를 존중하라고 도발했다. 경찰은 삼일절에 교묘하게 퇴진 집회를 방해하며 우익 집회의 기세가 돋보이도록 유도했다.
이런 동향 때문에 헌재의 탄핵심판 전망이 퇴진 지지 측에 다소 유리해 보인다고 해서 결코 방심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게다가 2월 말 3월 초에 퇴진 운동의 방심과 주류 야당의 기만 때문에 우익의 책략이 일부 성공해 그들의 기를 살려줬다. 특검 연장 무산이 대표적이다.
야당은 아직 특검 연장 결정 시한이 일주일가량 남았던 2월 23일에 국회 처리 무산을 선언해 버려 결과적으로 특검 연장을 거부하려는 황교안의 부담을 덜어줬다. 결국 황교안이 27일에 특검 연장을 거부하자, 이번에는 특검법 개정의 국회 처리를 무산시킨 요인들(자유당의 반대,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거부)이 하나도 바뀌지 않았는데도 황교안 탄핵이니 특검법 개정이니 믿기 힘든 ‘뻥카드’만 날리면서 면피를 하려 했다. 야당을 압박하되, 믿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아래로부터의 투쟁
퇴진 운동은 처음부터 박근혜 1인 제거가 아니라 정권 퇴진 운동이었다. 노동자·민중의 대다수는 정권 퇴진을 통해 부패한 인물들을 처벌하고, 가진 자들만 대변하는 정책들을 중단시키고 싶어서 이 운동에 매주 참가하고 열렬한 지지를 보낸 것이다.
그러려면, 헌재 평결 이후에는 아래로부터의 운동을 억제하고 정치 체제의 안정을 재구축하고 싶어 하는 지배계급의 나머지와도 싸워야 한다.
주류 야당이 특검 연장을 진지하게 추진하기보다 쇼만 하고 그만둔 것만 봐도 그렇다. 최근 민주당의 우클릭에는 단지 중도보수층 표를 얻을 계산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그들도 기성 체제를 지지하는 야당으로서 지난 다섯 달간의 정치 상황을 정리하는 것에는 이해관계를 같이하기 때문이다. 주류 야당들은 운동이 자신들에게 도움이 될 정도로만 얌전하게 유지되길 바란다.
또한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통한 자진 사퇴(항복)와 달리, ‘탄핵 인용’으로는 박근혜 정부가 곧바로 끝나지 않는다. 별다른 일이 없는 한 박근혜 정부는 황교안(혹은 그 후임) 같은 자들의 통솔 아래 조기 대선이 끝나는 날까지 유지된다.
따라서 퇴진 운동은 계속 힘의 우위를 유지하려 해야 하고, 탄핵이 인용돼도 조직을 유지하고 시위를 계속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향후 진행될 검찰 수사와 재판에도 압력을 가해야 하지 않겠는가? 또한 우익 결집에도 맞서야 한다. 그래야 지배계급이 운동을 함부로 다루지 못할 것이다.
박근혜 퇴진(탄핵)이라는 1차 목표를 이룬 자신감으로 적폐를 유지하려는 구체제의 인물·정책들에 맞서 곳곳에서 싸우도록 고무해야 한다. 노동자·민중이 벌이는 아래로부터의 투쟁만이 개혁과 변화를 이끌어 낼 진정한 동력이기 때문이다.
이미 퇴진 운동의 전진이 미친 영향들이 조금씩 엿보인다. 학생들이 대학본부의 친기업화 정책에 맞서 점거농성을 벌여 온 서울대에서 비학생조교들이 부당한 해고에 항의하는 농성을 시작했다. 이화여대 경비 노동자들은 노동조건 후퇴에 본관 점거로 맞서 승리했다. 경북 경산에서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국정교과서를 채택한 학교 관리자들에 맞선 교사와 학생들의 저항이 거세다. 입학식이 무산될 정도다. 이런 일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 특히, 조직 노동계급의 파업과 시위가 많아져야 한다.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은 헌재 평결을 전후로 헌재 앞 대규모 집회를 열어야 한다. 탄핵 기각(또는 각하)은 결코 수용할 수 없고, 그럴 경우 더 격렬한 저항으로 박근혜를 직접 끌어내리겠다고 강조하고 준비도 해야 한다. 탄핵이 인용돼도 퇴진행동은 해산하지 말고, 조직 명칭과 투쟁 기조를 유지하며 주말 집회를 이어 가야 한다.
또한 지금보다 더 전진하고 싶어 하는 퇴진 운동 참가자들은 지금보다 더 급진적이고 계급적인 전망과 정치가 필요함을 이해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