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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김혜숙 후보를 지지하는 이유
이화여대 총장 선거

5월 22일 이화여대 총장 선거 사전 투표가 시작됐다. 사전 투표인데도 유권자의 15퍼센트가 몰려 이화의 ‘새 출발’에 대한 기대와 염원을 느낄 수 있었다. 24일 1차 투표까지 마치면 이사회에 추천할 최종 후보 2인의 윤곽이 드러날 것이다.

최경희 전 총장을 퇴진시킨 투쟁의 결과 이번 선거에는 총장직선제가 도입됐다. 학생들은 학생, 교수, 직원의 의견이 동등한 비율로 반영되는 선출 방식을 바랐다. 그러나 최종 비율은 결국 교수 77.5퍼센트, 직원 12퍼센트, 학생 8.5퍼센트, 동창 2퍼센트로 결정됐다. 투표 비율의 아쉬움이 크다.

그럼에도 총장 선거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은 뜨겁다.

이번 선거엔 총 8명이 입후보했는데, 기호 4번 김경민 경영학과 교수가 총장 입후보자 연구 진실성 검증 결과가 나온 뒤 사퇴해 7명의 후보가 남은 상황이다.(기호 순으로 김혜숙 철학과 교수, 강혜련 경영학과 교수, 이공주 약학과 교수, 김성진 화학·나노과학 전공 교수, 최원자 생명과학전공 교수, 김은미 국제학과 교수, 이향숙 수학과 교수)

진보적 학생들은 대부분 틀림 없이 기호 1번 김혜숙 교수에게 투표할 것으로 보인다. 김혜숙 교수는 교수협의회 공동대표로 활동하며 지난 여름 학생들의 미래라이프대학 폐지-최경희 총장 퇴진 운동을 지지하고, 교수들의 목소리를 모아 내기 위해 힘썼다.

지난해 이화여대에서 최경희 총장 사퇴에 환호하며 학생들과 행진하는 김혜숙 교수(가운데)

김혜숙 교수는 정유라 비리 청문회 증인으로 출석한 바 있다. 청문회에서 본관 경찰력 진입 당시 영상을 틀자 뻔뻔하게 영상을 보는 비리 교수들과 눈물을 흘리는 김혜숙 교수의 모습이 대조적으로 비춰졌다. 이 모습은 총장 퇴진을 지지했던 학생들에게 큰 감동을 줬다.

김혜숙 후보는 그동안 정치적으로도 대체로 반(反) 우파 스탠스를 취해 왔다. 2009년 이명박 정권의 민주적 권리 퇴행을 우려하는 이화여대 교수 시국선언과, 박근혜 정권 퇴진 이화여대 교수 시국선언에도 이름을 올렸다.

이향숙 교수나 최원자 교수도 일부 공약만 보면 김혜숙 교수 못지 않다. 그럼에도 김혜숙 교수가 지난해 시위 당시 가장 앞장서 학생들의 편에 선 상징적 교수였기 때문에 변화를 염원하는 많은 학생들이 김혜숙 교수에게 지지를 보내는 것이다.

게다가 이번 선거에는 최경희 전 총장과 다를 바 없는 우파 교수와 이사회 친화적 교수들도 유력 후보로 출마했다. 지난해 시위 당시 일부 진보개혁적 교수⋅학생⋅동문 들은 최경희 전 총장에 반대하면서도 결국에는 우파적 총장이 다시 들어서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여겨 쉽사리 퇴진 요구를 내걸지 못했다. 그래서 노동자연대 이대모임도 “최 총장이 퇴임하고 나면, 최 총장 못지 않게 부패하고 정권에 아첨하는 자들이 득세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있고, 일리도 있다”며 퇴진 이후에도 투쟁을 이어 가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특히 기호 2번 강혜련 교수는 최경희 전 총장과 마찬가지로 부패하고 우파적인 권력자들과 연결돼 있다. 강혜련 교수는 뉴라이트 전국연합 공동대표 출신이고 17대 국회의원 선거 때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의 전신) 공천심사위원이었다. 2010년 강혜련 교수가 총장 선거에 출마 했을 때, 같은 친이계였던 원세훈 국정원장이 선거에 개입해 강 교수의 선거 운동을 지원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적도 있다.

게다가 우파적 교수답게 강혜련 교수의 공약은 학생들의 절박한 요구들과 대체로 충돌한다. 비민주적 등심위 개선, 등록금 인하, 시설 경비 용역 노동자 문제 해결 등에 부정적이다. 최경희 전 총장이 추진한 학군단(ROTC)을 두고는, “[학군단 반대는] 편협한 생각”이라고 밝혔다.

기호 3번 이공주 교수는 재단 친화적 후보로 의심받고 있다. 이공주 교수는 이사회의 정유라 비리 특별감사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했었는데, 이 특별감사위원회는 명백히 드러난 문제조차 축소 · 은폐해서 이사회에 면죄부를 주는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이에 대해선 〈노동자 연대〉 189호 ‘문제를 축소·은폐하는 이사회의 정유라 비리 감사 결과 규탄한다’를 참조하시오).

안타깝게도 학생들 표의 반영 비율이 매우 작아서 김혜숙 교수가 학생들에게 압도적으로 지지받아도 우파적·친재단적 교수가 당선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최경희 퇴진 운동이 만든 총장 선거에서 이런 후보들이 득세해선 안 된다.

물론 김혜숙 교수가 당선한다고 최경희 전 총장 시절의 ‘적폐’들이 자동으로 해소되진 않을 것이다. 김혜숙 교수는 전임교원 확대, 급락제(패스/논패스) 과목 확대, 상대평가 성적 기준 완화 같은 학생들의 요구를 수용한다. 그러나 등심위 개선 요구에 대해선 반쯤만 동의하고 등록금 인하와 입학금 폐지에 대해서도 “합리적 수준에서 책정되도록 노력”하겠다거나 “불합리한 점이 있다면 과감하게 개선”하며 애매모호하게 답하는 아쉬움이 있다. 김활란의 동상에 그가 친일파임을 알리는 선전물을 설립하자는 학생들의 요구에도 반대한다고 답했다.

또한 김혜숙 교수가 ‘이화브랜드위원회’를 설립해 학교의 이미지를 제고해 기업과 동창의 돈을 끌어 모으겠다는 계획은 우려스럽다. ‘브랜드 가치’ 상승을 위해서 기업과 더 유착하는 건 학문을 기업의 돈벌이에 종속시키는 최경희 전 총장 때와 같은 일을 반복하는 길이 될 수 있다.

과거 개혁적 이미지의 총장이었던 김선욱 총장 시절에도 성적 장학금 폐지가 결정되고, 새내기들의 등록금이 차등 인상된 경험을 비춰 볼 때, 김혜숙 교수가 총장이 돼도(혹은 다른 어떤 이가 되든) 학생들이 나서서 요구하고 투쟁하지 않으면 변화를 만들어 내기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김혜숙 교수가 총장이 된다면 수많은 학생들이 기뻐할 것이고, 지금의 보잘 것없는 교육 환경이 개혁되길 바라는 기대가 커질 것이다. 이런 개혁이 현실화될 수 있도록 학생들이 독립적으로 투쟁하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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