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연대 학생그룹 성명:
한동대 당국은 동성애자 억압 중단하고, 맥락에서 떼어낸 성경 인용도 중단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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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6월 5일 노동자연대 학생그룹이 발표한 성명이다.
한동대학교 당국이 5월 24일 교내 정보 사이트에 ‘동성애에 관한 한동대학교의 입장’이라는 글(이하 성명서)을 발표했다. 한동대 독립언론 ‘뉴담’에 따르면, 성명서는 한동대 교목실이 주도해서 주요 보직 교수들이 함께 작성하고, 총장의 허락을 받아 한동대학교 전체(!)의 입장으로 발표했다.
한동대 안에는 동성애자들을 용인하고자 하는 이성애자들도 많을 것이다. 얼마 전 한동대 학보에서 동성애에 관련한 지면 논쟁이 벌어졌고, 보수 복음주의 세력이 주도하는 한동대에서도 일부 학생과 교수들은 용기 있게 동성애를 옹호했다.
그런데도 한동대 당국자들이 동성애자들을 비난하는 글을 한동대 전체의 이름으로 일방적으로 발표한 것은 비민주적이고 억압적인 처사다.
이번 입장서 발표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장순흥 총장은 이명박의 원전 수출에 앞장섰던 인사이다. 그리고 박근혜 정부 인수위에서 활동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그리스도는 이렇게 말했다.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막10:42~44)
장순흥 총장은 예수가 비난했던 권세 부리는 자들의 편에 서서 억압받는 사람들을 더욱 억압하고 있는 것 아닌가?
다른 한동대 당국자들도 자신이 진정으로 예수의 이웃 사랑 가르침을 실천하고 있는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봐야 한다.
성명서의 내용도 부정확하기 이를 데 없다. 성명서는 “동성애 행위가 성경적 진리와 윤리관에 반한다”고 주장한다. 또, 동성애는 “인간 개인과 공동체에 해와 병을 가져” 온다고 한다. 그래서 “동성애로부터 치유되도록 인도하는 것이 참 인권보호”라고 한다. 이런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성명서는 이러저러한 성경 구절들을 증거 본문으로 들이댄다.
그러나 동성 간 애정은 한동대 당국이 오해하고 있는 것처럼 “치유”돼야 할 “병”이 아니다. 동성애를 고치겠다던 수많은 ‘탈동성애’ 운동가들이 결국 ‘전환 치료’가 효과 없음을 시인했다. 2013년에는 대표적인 ‘탈동성애’ 운동단체 ‘엑소더스’가 자신의 행적을 공개 사과하고 해체했다.
그리고 성경과 19세기 중엽 이전 교회 전통이 동성 간 애정을 증오하지 않았다는 점은 존 보스웰을 비롯해, 미국 장로교(PCUSA) 총회장을 역임한 잭 로저스, 로마 가톨릭 신부이자 철학·심리학자인 다니엘 헬미니악 같은 저명한 학자들이 입증해 왔다.
특히, 그리스도교 역사 속의 동성애 문제를 연구한 존 보스웰은 역사 분야 미국도서상(ABA)을 받은 저작에서 중세 교회가 동성 간 연애를 인정했고, 한때 가톨릭 교회와 정교회가 동성 간 결합을 이성 간 결혼식과 매우 비슷한 의식을 통해 축성해 줬다는 것을 입증한다.(최일붕, ‘성서와 19세기까지 교회 전통은 동성애를 증오하지 않는다’, 〈노동자 연대〉, 제174호, 2016.05.16)
교회 전통은 동성 간 성관계에 대해 증오나 혐오를 부추기지 않았다. 중세 교회가 남성 간 성관계를 비난할 때도 생식과 관계없는 여러 성행위의 하나로 비난했을 뿐, 특별히 동성애 일반을 증오하고 혐오한 적은 없다.
중세 교회가 ‘비정상’으로 규정한 많은 것들은 오늘날 정상으로 여겨진다. 예컨대, 중세에는 남성이 자위를 해도 10일간 빵과 물만 먹는 처벌을 받았다. 임신 중인 아내와 성관계를 하면 20일간 금식이라는 처벌을 받았다. 금지된 체위로 성행위를 해도 같은 처벌을 받았다.
맥락에서 떼어 낸 증거 용 성경 구절
성적 지향을 뜻하는 ‘동성애’라는 개념은 19세기 중엽에 처음 생겨났다.(1869년이라는 연구도 있다.) 동성애 억압도 그 즈음에 비롯했다. 원활한 노동력 재생산을 원하는 자본가 계급이 ‘정상 가족’을 복구하려 애쓰면서 동성애를 억압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이전의 교회 전통과 성경이 때때로 남성 간 성행위를 비난했을지라도, 오늘날처럼 성적 지향으로서의 동성애를 비난한 것은 아니다.
동성애를 비난하는 것처럼 보이는 성경 구절들도 자세히 살펴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① 창세기 2: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2:24)
성명서는 이 구절을 근거로 “성(性)의 기능이 남녀의 부부로서의 합일을 위해 준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그러나 이 구절이 동성 간 애정을 죄악시했다는 해석은 주석(exegesis)가 아니라 해석자가 자신의 사상을 개입시킨 해석(eisegesis)이다.
② 구약의 레위기 18장 22절, 20장 13절
“너는 여자와 동침함 같이 남자와 동침하지 말라 이는 가증한 일이니라.”(18:22)
“누구든지 여인과 동침하듯 남자와 동침하면 둘 다 가증한 일을 행함인즉 반드시 죽일지니 자기의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20:13)
히브리어로 “가증하다(토에바)”는 단어는 제사 의식 상의 부정을 나타낸다(이하 최일붕, 앞서 언급한 글). 레위기는 고대 유대교 제의 절차를 다룬 것으로, ‘거룩하고 순수한 것’과 ‘부정하고 불순한 것’을 구분하고 있다. 고대 중동 사람들은 만물에는 신이 부여한 제 자리가 있기 때문에 이를 뒤섞으면 신의 노여움을 살 것이라는 믿음을 강하게 가지고 있었다.
이 때문에 당시 사람들 눈에 신이 부여한 범주를 따르지 않는 동물도 부정하다고 여겨졌다. “갑각류는 진짜 어류가 갖춰야 할 필요조건들(비늘과 지느러미)을 충족시키지 못하므로 불허(不許)됐다. 소와 달리 돼지가 불허된 건 굽이 두 쪽으로 갈라지긴 했지만 새김질을 하지 않는다는 점 때문이었다.”
정결하지 못하다는 규정은 단어의 뉘앙스와 달리 실제 위생·질병과 상관이 없었다. 예컨대, 살갗에 흰 부스럼이 생기면 부정하지만, 흰 부스럼이 살갗 전체를 덮어서 몸 전체가 하얗게 되면 정결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생살이 다시 솟아올라 얼룩덜룩해지면 부정하다고 여겨졌다(레 13:12-14).
이런 맥락 속에서 남성간 성행위 금지 구절을 보면, 당대 사람들이 여성과 남성의 성관계에 해당하는 범주를 뒤섞는다는 이유로 이를 비난했음을 알 수 있다. 남성은 성관계에서 삽입당해선 안 되는 존재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구절이 오늘날 성적 지향으로서의 동성애를 비난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 분명하다.
맥락에서 떼어 낸 레위기 해석은 돼지고기 먹지 말라는 구절을 어떻게 다뤄야 할까?
아무튼 아래에서 살펴보듯 이런 유다교의 금기는 바울에 의해 폐기된다.
③ 바울은 유다교 율법의 금기들을 비유다인이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했다.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고린도 6:9-10)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로마서 1:26-27)
먼저, 고린도전서의 “남색하는 자”는 그리스어 원문으로 ‘아르세노코이타이’(arsenokoitai)인데, “고대 그리스어 사용 세계의 문서에서 하도 드물게 발견돼, 그 의미가 무언지 학자들은 전혀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최일붕, 앞서 언급한 글). 이 단어가 남성간 성행위를 의미하는지는 전혀 불분명하다. 일부 학자들은 성매매나 학대적 섹스를 하는 남성을 뜻한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어쨌든 이 구절도 동성애를 비난했다고 보기 어렵다.
한편 성명서는 “구약의 어떤 규례는 신약에서 폐지되기도 하지만 동성애에 대한 금지의 법은 폐해지지 않았다”며 위의 로마서 구절을 근거로 든다. 하지만 바울은 로마서 전체에서 유다교 율법 자체를 상대화한다. 문제가 되는 구절은 16개 장으로 구성된 로마서의 가장 앞부분에 위치해 있는데, 당시 율법에서의 여러 금기들을 나열하는 맥락이다. 그런 금기들을 나열한 후 바울은 로마서 곳곳에서 이렇게 선언한다.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2:28~29)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10:4)
즉, 바울은 그리스도의 도래와 함께 그의 다스림으로 전과 다른 새 세계(하나님 나라)가 열렸고, 그리스도 안에서는 유다인/그리스인, 여성/남성, 노예/자유인 등 사이에 아무런 차별이 없어졌다고 선언한다.
한동대 당국이 동성애(성경 시대 사람들은 이런 개념 자체가 없었다) 혹은 동성 간 성행위를 금지하는 유다교 율법이 신약에서도 살아남았다고 말하는 건 맥락에서 떼어낸 잘못된 해석일 뿐이다. 새로운 언약이 내포하는 새로운 율법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이중 계명밖에 없다.
한동대 당국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핵발전소를 지지하고, 부패로 썩어빠져 쫓겨난 전직 대통령 박근혜를 지지한 것이야말로 이웃 사랑과 아무 관계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동성애자도 사마리아인 못지 않게 당신들의 이웃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2017년 6월 5일
노동자연대 학생그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