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임 외교부 장관 강경화, ‘사드 배치 번복 없다’ 선언:
한미정상회담은 트럼프와 문재인의 코드 맞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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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2일 한국 외교에서 예전에는 보기 힘든 일이 벌어졌다. 베트남 외교부가 대통령 문재인의 ‘베트남 참전 용사 찬양’이 “베트남 국민의 감정을 상하게 했다”며 한국 정부에 공식 항의하고 이를 자신의 웹사이트에 공개한 것이다. 앞서 문재인은 현충일 추념사에서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한국 군인들 덕분에 “조국 경제가 살아났다”며 “그것이 애국”이라고 찬양했었다.
문재인의 ‘애국’ 발언은 베트남인들에게 큰 모욕이고 상처다. 베트남 전쟁은 미국의 제국주의 침략 전쟁이었다. 그 전쟁에 동원된 한국군이 베트남인들을 학살하는 등 온갖 잔학한 짓을 벌였다. 그리고 그 대가로 한국 경제가 특수를 누렸다는 것은 아주 잘 알려진 사실이다. 문재인은 베트남인들의 피로 한국 경제를 살 찌운 과거사를 “애국”이라고 두둔한 것이다.
문재인의 ‘애국’ 발언은 우파와 미국을 의식한 행위였다. 대선 때 홍준표를 비롯한 우파들은 문재인이 대학 시절에 고(故) 리영희 선생의 베트남 전쟁 논문을 읽고 감명을 받았다고 한 점을 공격했다. 그래서 문재인은 현충일 추념식 자리를 이용해 우파들에게 ‘내 안보관은 안심해도 좋다’는 메시지를 주려 한 것이다. 동시에,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트럼프 정부에 자신이 한미동맹에 매우 충실함을 보이고 싶었을 것이다.
강경화 신임 외교부 장관
진보진영 일각은 6월 30일(현지 시각)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문재인한테 “당당한 외교를 펼치라”고 주문한다. 물론 사드와 북핵 문제 해결 등에서 좋은 결과가 나오길 바라서일 것이다. 그러나 최근 문재인 정부의 행보는 그런 기대가 공연한 환상에 가까움을 암시한다.
핵심은 사드 문제(그리고 한미 연합 군사 훈련 문제)다. 문재인은 집권 후 사드 배치 과정의 절차적 하자가 없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사드 발사대 4기에 대한 보고 누락을 조사하라고 지시했고, 환경영향평가도 제대로 실시하겠다고 했다. 올해에는 사드 발사대 1기만 배치하고 5기는 내년에 배치하는 것이 당초 한·미 합의였는데, 한국 대선 직전 급작스레 사드 발사대 4기가 성주에 배치됐다는 점을 최근 언론에 공개했다.
자민통 계열 언론 매체인 〈민플러스〉는 문재인의 이런 행보를 “절차적 문제를 제기해 … 유리한 [사드] 협상 조건을 만들려는 의도”나 “사드 배치 반대 여론을 촉진시키려는 포석”으로 본다.
그러나 ‘사드 보고 누락 사태’ 조사는 용두사미로 끝났다. 사드 발사대 배치 진행 과정을 꽁꽁 숨기고 청와대에도 보고하지 않았던 것은 고의적인 것이었고, 관련자들은 모두 감옥에 가야 할 일이었다. 그러나 청와대는 “충격적”이라고 큰소리쳤지만, 관련자 가운데 처벌받기는커녕 해고된 사람조차 단 한 명도 없다.
문재인 정부는 중국의 반발과 지지층 내의 배치 반대 여론을 의식해 시간을 끌고자 했지만, 배치 자체를 번복할 뜻이 없다는 점을 이미 여러 차례 강조했다. 물론 우파는 법률적 절차 준수조차 참을 수 없어서 호들갑을 떨지만 말이다.
6월 26일 외교부 장관 강경화도 미국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주최 포럼에서 ‘사드 배치 번복은 없다’고 못 박았다. “한국 정부는 기본적으로 한미동맹의 정신에 입각한 합의를 번복할 의도가 없다.”
그래서 환경영향평가의 목적이 사드 배치 정당성 확보임을 털어놓았다. “민주적·절차적 타당성을 확보한다면 사드 배치에 대한 국민의 지지는 더욱 강력해질 것이다.”
“주류 남성 엘리트가 아닌 비주류에 페미니스트 여성”인 강경화가 외교부 장관이 돼야 한다며 강경화를 적극 편든 세력과 개인들이 진보진영과 여성계에 있었다. 그러나 강경화는 임명되자마자 같은 여성인 성주 소성리 할머니들의 등에 칼을 꽂았다. 그리고 이토록 한미동맹이 중요하다는 강경화가 미국이 관장한 한일 ‘위안부’ 합의를 재협상할 수나 있을까?
강경화의 사드 발언은 개인적 의견 피력이 아니라 문재인 정부 자체의 견해라고 보는 게 정확한 관찰일 것이다. 앞서 6월 24일 서울 도심에서는 사드 배치 반대 집회가 열려 3천 명(주최 측 추산)이 도심을 행진하고 미국 대사관을 에워쌌다. 그 이틀 뒤에 있은 강경화의 연설은 사드 배치 철회를 바라는 사람들을 향한 문재인 정부의 답변이었던 셈이다. ‘트럼프와 사드 배치 철회 협상은 없다.’
문정인 청와대 특보
문재인 정부는 북핵 문제 등에서도 트럼프 정부와 코드를 맞추려 한다. 문정인 청와대 통일·외교·안보 특보는 방미 중에 “북한이 핵·미사일 활동을 중단하면 한미 연합 군사훈련 규모 축소 등을 미국과 논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청와대는 그를 “엄중 경고”하며 선을 긋기에 급급했다. 문재인은 미국 CBS와 직접 인터뷰하며 문 특보의 발언은 “개인적 견해”이며 “연합 훈련 축소는 고려 대상이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문재인은 말을 바꾼 것이다. 그는 대선 때 문 특보의 발언과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래서 평화네트워크 정욱식 대표는 문재인을 이렇게 비판한다. “한·미 양국이 최강의 무력을 과시하면서 북한에게 핵을 내려놓으라고 얘기하는 것은 연목구어와 같은 일이 될 것[이다.]”
문재인은 정상회담을 앞두고 CBS나 〈워싱턴 포스트〉 같은 언론과 인터뷰하면서, 남북 대화 재개와 대화를 통한 북핵 문제 해결을 소망했다. 한국이 한반도 문제 해결에서 좀 더 주도적 구실을 하고 싶다고도 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트럼프 정부와 함께 “대북 제재와 압박을 높여나가는 단계”이고, 북한에 접근하는 것도 “미국과의 긴밀한 공조 속에서” 추진돼야 한다고 했다. 개성공단 재개도 북한의 비핵화가 어느 정도 진척돼야 가능하다고 해, 남북 관계 개선도 북·미 관계의 상황에 맞추겠다고 했다.
강경화는 대북 인도적 지원과 교류도 국제적 대북 제재의 틀 안에서 추진될 것이라고 했다.
문재인 정부는 ‘한국의 주도적 구실’을 소망하는 발언을 했지만, 실제로는 한미동맹의 틀을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비판
지난달 문재인이 당선하자 진보진영의 많은 사람들은 외교·안보 분야에서도 박근혜가 남긴 적폐들이 해결될 기회가 열렸다고 여겼다. “[한반도 긴장 상태를] 타개할 유일한 주체는 문재인 정부뿐”이라는 것이었다.
사회민주주의 정당인 정의당은 사드 배치 반대가 당론임에도 사드 문제에서 문재인 정부를 거의 비판하지 않고 있다. 6월 22일 심상정 대표는 강경화를 만나서 사드 문제를 아예 꺼내지 않았다(강경화 외교부 장관 내방 대화 전문 참조). 김종대 의원은 문정인 특보 발언에 대한 청와대의 “경고”가 문재인이 아니라 청와대 안보실의 뜻이라고 헛되이 구분했다(〈통일뉴스〉 6월 25일치).
자민통계도 문재인 정부의 외교·국방 정책을 좀체 비판하지 않는다. 〈민플러스〉는 “미국과 한국 보수 집단[이] … [문재인] 촛불 정부를 길들이려는 것”이 주된 문제라고 보는 한국진보연대 박석운 대표의 인터뷰(6월 22일치)를 실었다. 박 대표는 지금은 문재인 정부가 사드 문제에서 “기회주의적 태도”를 보이지만, “촛불로 탄생한 정부이기에 국민의 생각을 완전히 외면할 순 없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사드 배치를 포함한 한미 군사 동맹 강화는 그저 미국의 압력만이 원인인 문제가 아니다. 문재인 정부가 스스로 선택한 길이기도 하다. 세계 최강 미국과의 동맹이 한반도와 그 주변의 안보 위기에 대처하는 근간이라는 데 문재인 정부 자신이 동의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를 “촛불 정부”로 보는 견해가 흔하다. 하지만 문재인은 박근혜 퇴진 운동이 정점에 올랐을 때에야 비로소 가세해, 운동 내내 그 운동의 주요 적폐 청산 요구와 거리를 뒀다. 사드 배치 철회는 촛불의 중요 요구였지만, 문재인은 대선 내내 국회 동의 절차 필요성만 말했을 뿐이었다.
6월 24일 서울에서 열린 사드 반대 집회에 모인 적잖은 사람들은 문재인 정부가 사드 배치를 철회할 거라는 기대감을 나타냈다. 그러나 기대는 빠르게 실망으로 바뀔 수 있다. 특히, 지금 문재인이 평창 동계올림픽 남북 단일팀 카드를 꺼내든 것은 한미정상회담을 계기로 기대가 실망과 분노로 바뀌기 전에 진보 측의 시선을 다른 쪽으로 분산시키려는 의도가 큰 것 같다.
이런 모순된 상황에서 사드 반대 운동을 강화하려면, 문재인 정부로부터 정치적 독립성을 확보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를 향한 “비판의 무기”를 지금 벼리지 않으면, 막상 절실할 때 녹슬어 쓰지 못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