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 찬반 투표 돌입하는 MBC노조:
더는 “청와데스크” 만들 수 없다
〈노동자 연대〉 구독
MBC 노동자들이 파업 태세에 돌입했다. 전국언론노조 문화방송본부(이하 MBC노조)는 김장겸 사장 퇴진을 비롯한 MBC 정상화를 요구하는 총파업 찬반 투표를 24일부터 시작할 예정이다. 이미 ‘PD수첩’을 시작으로 시사제작국 기자와 PD들이 먼저 제작 거부에 나섰다. 지역 MBC 기자들도 기사 송고를 거부하고 있다. 기자와 PD가 동시에 제작 거부에 나선 것은 MBC가 만들어진 이래로 처음 있는 일이다. 제작 거부 움직임이 점차 확대되면서 현재 3백10여 명이 제작 거부에 동참하고 있다. 이미 일부 라디오 프로그램은 음악만 나가거나 뉴스 보도가 파행·축소 되는 등 제작에 차질을 빚고 있는데 전체 조합원이 파업에 돌입하면 방송 차질은 더욱 확대될 듯하다. 파업이 계속되면 예능과 드라마 부문도 타격을 입는 것이 불가피할 것이다.
자유한국당 대표 홍준표는 “남아 있는 게 MBC밖에 없다”면서 강경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자신들이 정권을 잡았을 때 친정부 우익 꼴통들을 경영진에 앉히고 이에 저항하는 노동자들을 탄압하고도 모자라 보도를 일일이 통제해 온 자들이 이제 “방송장악저지위원회”를 꾸려 KBS, MBC 사장을 지키겠다고 나선 것은 역겹기 짝이 없다. 사장 퇴진 요구가 문재인 정부와 MBC노조의 “합작”이라는 것이다.
또한, 방통위원장이 “공영방송 정상화” 등을 언급한 것이 “노골적 탄압”이라고 비난했는데, MBC 뉴스는 이런 자유한국당의 반응을 보도해 사실상 자신들의 입장을 내세웠다.
결국, 이들이 말하는 방송장악저지는 자신들의 방송장악에 맞서는 것을 저지하겠다는 뜻이다. 사측은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적용하겠다면서 으름장을 놓고 있다.
그러나 철저히 정부와 기업의 편에 선 자들은 사장을 비롯한 요직에 앉아 철저히 자신의 입맛대로 언론을 주물러 왔다. 새누리당 정권 아래에서 승승장구해 온 김장겸은 올해 2월 사장 자리에 앉았는데 당연히 황교안의 마지막 언론장악 작품이었다.
그 사이 MBC노조 활동가들은 해고 2천 일을 앞두고 있다. 그 기간에 MBC는 철저히 정부의 “무기”로 전락했다. ‘‘뉴스데스크’’는 “청와데스크”라는 조롱을 받았다. MBC는 끝까지 최순실의 태블릿PC 진위 여부를 추궁하며 관련 폭로들을 못 믿겠다고 했다. 세월호 유가족들을 모욕했고, 세월호 특조위가 사장을 소환하자 적반하장으로 언론 탄압 운운했다. 한때 2008년 촛불 운동 참가자들 사이에서 큰 신뢰를 받았던 MBC는 박근혜 퇴진 운동에서 대표적인 “기레기” 취급을 받았다. 한 촛불 집회에서 참가자들의 항의로 MBC 보도 차량이 돌아가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만나면 좋은 친구”가 아니라 “만나기 싫은 친구”가 된 것이다. MBC 카메라와 기자들을 환영한 곳은 탄핵 무효를 외치는 우익 집회였다.
대대적 탄압
2012년 1백70일 파업이 패배한 후 MBC노조는 사측에게서 혹심한 탄압을 받았다. 노동조합 간부들 대부분이 해직당하거나 징계를 받았을 뿐 아니라 다수 조합원이 부당 전보를 당했다. 사측은 빈자리를 시용 기자들과 경력직 PD, 계약직 아나운서들로 채우면서 통제를 더욱 강화했다.
최근 노조가 폭로한 MBC 사장 면접 속기록을 보면,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고영주와 부사장 권재홍 등은 철저히 조합원들을 보도에서 배제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최순실 국정농단’이 사실이 아니라는 고영주는 편향 보도 운운하면서 조합원 배제를 정당화하려 한다. 권재홍은 “‘뉴스데스크’를 하는 기자들 90%가 비노조원, 경력 기자”라면서 “검찰팀이 9명인데 1노조(MBC노조)는 하나도 없다. … 그러니까 검찰[팀]에서 이상한 기사가 안 나오지 않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사측이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블랙리스트’는 매우 철저하게 조합원 탄압이 이뤄졌음을 보여 준다. 이 문서는 카메라 기자들의 성향을 분석해 “현 체제 붕괴를 원하는 이들”, “기회 시 변절 가능” 등 적나라한 표현을 써 가면서 등급을 매겼는데 노조에 따르면 “부서 배치와 승진 등 인사 조치 대부분이 블랙리스트에 따라 이뤄졌”다고 한다. 노조는 이 문서가 인사권자였던 당시 보도국장 김장겸(현 사장)한테까지 보고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이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파업에 참여한 조합원들은 기존 업무와는 아무런 상관 없는 부서에 배치됐다. 시사·교양 PD가 스케이트장에 배치되거나 아나운서가 심의국에 배치되는 식이었다. 법원에서 전보 무효 가처분 결정으로 복귀하더라도 업무에서 배제하는 식으로 탄압을 이어갔다.
시사교양국이 사실상 해체됐고, ‘PD수첩’ 등 대표적인 시사 프로그램에서 정부와 기업을 비판하기가 극도로 어려워졌다. ‘PD수첩’은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을 비롯한 일자리, 최저임금 등 이른바 ‘노동 문제’에 대한 보도를 준비했는데 사측은 “언론노조가 민주노총 소속이므로 이해당사자라 안 된다”는 이유를 내세워 거부했다. 제작 거부에 나선 PD들은 이런 일이 그간 누적돼 왔음을 지적한다. “그동안 몇 가지 금지어들이 있었다. … 세월호, 노동조합, 노동, 국정원 청와대, 사드 [등을] 내는 순간 이유 없이 불허됐다. 고리를 끊고 싶었다.” 이들은 진주의료원 폐업, 교과서 국정화, 백남기 농민, 4대강, 한일 ‘위안부’ 등에 관한 보도가 불허되거나 김기춘 관련 보도가 축소되는 일들이 벌어졌다고 폭로했다. 온갖 보도 통제를 자행한 시사제작국장 정연국은 나중에 청와대 대변인 자리에 올랐다.
최근 제작 거부에 동참한 아나운서 조합원들도 그간 고통에 시달렸다. 제작 거부에 동참한 이재은 아나운서는 이렇게 말한다. “‘오늘은 큐시트에 어떤 뉴스가 있을까’ 두려워했다. 뉴스를 전하는 사람으로서 확신을 가지고 사실만을 전해야 하는데, 이미 방향이 정해진 뉴스, 수정하고 싶어도 수정할 수 없는 앵커 멘트를 읽어야 했다. 아나운서들에게 언론인으로서의 역할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뉴스가 아닌 다른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아나운서들은 뉴스에 들어가게 될까봐 두렵고 무서워했다.”
공정 보도
비슷한 처지에서 고통받아 온 다른 언론사 노동자들도 투쟁에 동참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연이은 ‘낙하산 사장’ 체제에서 보도 통제에 시달려 온 KBS 노동자들이 파업 돌입을 논의 중이다. 지난 7월 초 기자협의회가 제작 거부 선언을 하면서 투쟁을 촉구한 이후 제작 거부 선언이 점차 번지고 있다. 최근 KBS 기자 5백16명은 제작 거부를 선언했다. 현재 민주노총 소속 KBS 새노조는 1노조에 공동 파업 돌입을 제안한 상태다. KBS 사장 고대영은 보도국장 시절부터 보도국 기자들 93퍼센트의 불신임을 받을 정도로 친정부적 인물이다. 2011년에는 대기업으로부터 골프 접대를 받은 일이 폭로되기도 했다. 노동자들이 뽑은 사장 부적격 1위 인물임에도 사실상 청와대가 임명을 강행했다. (문재인 정부 행정자치부 장관 김부겸이 고대영을 만나 노조의 큰 반발을 사기도 했다.)
〈연합뉴스〉 기자들도 사장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간부들이 삼성 장충기에게 보낸 문자들이 공개되면서 삼성과 전경련과의 유착 의혹도 드러나고 있다. 실제로 〈연합뉴스〉는 삼성 이건희 성매매 의혹 기사를 축소 보도했다. 지금 〈연합뉴스〉 기자들은 “삼성에 사역한 언론”을 만든 사장과 경영진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2014년 남부지방법원은 파업 참가자들에 대한 징계를 무효라고 판결하면서 “공정 방송의 의무는 근로관계의 기초를 형성하는 원칙”이라고 해 공정 보도가 언론노동자들의 노동조건임을 인정했다. 당시 재판부는 “방송의 공정성은 방송의 결과가 아니라 방송의 제작과 편성 과정에서 구성원의 자유로운 의견 제시와 참여 아래 민주적으로 의사 결정이 이뤄졌는지 아닌지에 따라 판단될 수밖에 없다”고 판결했다.
사악한 권력을 등에 업고 언론을 주물러 온 악질 경영진을 내쫓는 것은 그들이 대표해 온 언론 통제 체제를 끝장내는 것으로 이어져야 한다. 세 번이나 부당전보를 당한 MBC 이우환 PD는 〈미디어오늘〉과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단순히 김장겸 MBC 사장을 몰아내기 위해서 벌어지는 싸움은 아니라고 본다. … ‘김장겸 체제’ 이후에 대한 고민과 각성이 반영된 싸움이라고 생각한다.”
오랜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다시 투쟁을 준비하는 MBC 노동자들에게 지지와 연대를 보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