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노조, KBS노조 총파업 선언:
“공정 보도와 방송독립 쟁취를 위해 투쟁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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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노동자들이 지난 5년 동안의 어둠을 몰아내겠다고 일어섰다. 전국언론노동조합 문화방송본부(이하 MBC노조)가 9월 4일부터 사장 김장겸과 방문진 이사장 고영주 퇴진을 요구하면서 총파업에 돌입한다. MBC노조가 8월 24일부터 실시한 총파업 찬반 투표에 전체 조합원 중 95.68퍼센트(1천7백58명 중 1천6백82명)가 참여하고 이 중 93.2퍼센트(1천5백68명)가 찬성해 압도적 찬성률로 파업 찬반 투표가 가결됐다.
MBC노조는 “필수 인력을 전혀 남기지 않고 예외 없이 전 조합원을 참여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방송에서 ‘필수 업무’인 송출직도 모두 파업에 동참할 것임을 뜻한다. 지난 2012년 파업 당시에도 ‘블랙아웃’만은 안 된다는 정서가 있었는데 이번에는 이런 예외를 두지 않겠다는 것이다. 9일부터 시작된 제작 거부가 확산되면서 일부 라디오 프로그램은 음악만 나오거나 TV 뉴스 보도가 축소되고 있는데, 파업이 전면화하면 이런 상황은 더욱 빠르게 확대될 듯하다. 당장에 인기 프로그램인 〈무한도전〉이 2주 후부터 결방되는 등 일부 예능, 드라마 프로그램도 미리 제작해 둔 분량이 떨어지면 파업의 효과는 더욱 가시화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언론노조 KBS본부(이하 KBS새노조)도 사장 고대영과 이사 이인호 퇴진을 요구하면서 9월 4일 파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두 언론사가 공동 파업에 돌입하는 셈이다. MBC노조와 마찬가지로 KBS노조도 ‘유보 조합원’(부서장, 인사·노무·총무·비서 등)까지 예외 없이 파업에 동참할 것이라 밝혔다. 이미 8월 30일 오전부터 전국 KBS PD들이 제작 거부에 돌입했다.
공범자들
사측과 자유한국당은 블랙아웃을 걱정하고 나섰다. 노조가 파업을 예고하자 민·형사상 책임 운운하면서 조합원들을 위축시키려던 사측은 “이번 파업은 정치권력의 부추김에 고무된 거대 언론노조 MBC본부가 정치권력과 손잡고 방송을 장악하기 위한 정치 행위에 불과하다”면서 “정치권력의 ‘입맛에 맞는 경영진’을 구성하겠다는 정권의 요구에 부응하는 것”이라고 맞서고 있다. 그동안 정권의 입맛에 맞게 언론을 주물러 온 장본인들이 뻔뻔하기도 하다. 지금 MBC는 삼성 장충기의 인사 청탁을 받았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장충기 문자’는 사측이 정치권력만이 아니라 기업과도 끈끈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는 증거다.
언론이 정권의 나팔수가 되자 진실은 감춰지고 노동자들은 숨통이 막혔다. 세월호 참사 보도, 박근혜 게이트 축소 보도, 대량 해직으로 드러난 언론 장악은 박근혜 퇴진 운동에서 대표적 적폐로 꼽혔다.
MBC 뉴스가 박근혜 퇴진 운동 국면에서 사실상 박근혜를 비호하는 보도를 하고 촛불 집회를 축소 보도한 것은 유명하다. 당시 MBC 보도·취재센터장은 검찰이 박근혜와 최순실을 공범으로 발표한 뒤인데도 “최순실 게이트”로 용어를 통일하라고 했다. 박근혜 비리 의혹이 쏟아지기 시작하던 11월 말에는 돌연 특별취재팀을 해체해 버렸다. 한 기자는 “우리 뉴스는 대통령과 대통령의 사람들을 성역으로 취급해 왔다”고 비판했다.
MBC 뉴스 차량은 집회 현장에서 참가자들에게 항의를 받고 쫓겨나기 일쑤였다. 결국 MBC 로고를 떼거나 집회 장소 근처 건물에서 몰래 중계해야만 했다. 당시 촛불 집회를 촬영한 카메라 기자는 “현장에만 나가면 수백 명이 꺼지라고 외치니, 심장이 벌렁거려 카메라를 꺼내지도 못하겠다”면서 ‘국민의 공분은 어떻게 감당해야 하냐’고 개탄했다.
반대로 다뤄져야 할 일들은 뉴스에서 밀려났다. 백남기 농민 사망이나 이대 총장 최경희 사퇴는 단신 처리됐다. 대선 기간 홍준표의 “돼지흥분제” 발언 기사는 MBC 뉴스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다. MBC 뉴스 시청률은 3퍼센트대로 급락했다. 한국기자협회의 매체 신뢰도 조사에서는 10위에도 들지 못했다. 한 기자는 당시 “MBC 기자라는 사실이 시대의 죄인이 된 기분”이라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반면 탄핵 반대 우익 집회는 충실하게 보도했다. 심지어 탄핵 당일에는 “대통령 퇴진을 막지는 못했지만” “새바람”을 일으켰다고 평가했다. 탄핵을 다룬 〈MBC스페셜〉은 결국 불방되고 담당 PD는 다른 부서로 쫓겨났다.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한다는 자부심이 강했던 언론 노동자들이 자존감에 상처를 입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우리의 씨를 말리려는 듯했다”
이 같은 보도 통제는 철저한 노동자 통제 속에서 가능했다. 지난 2012년 파업 이후 사측은 “MBC의 DNA를 바꾸겠다”고 선언하고는 전방위적 탄압을 자행했다. 한 노동자는 지난 9년 동안 사측이 “씨를 말리려고 작정한 것 같다”라고도 표현했다.
파업 기간 대체 인력으로 계약직 노동자들을 채용했던 사측은 이후 경력직을 계속 채용했는데 그 수가 2백 명이 넘었다. 그리고 이들이 주요한 보도 부서에 배치됐다. 사측은 이들이 친사측 성향의 제3노조로 가입하도록 종용해 노동자들 사이에서의 갈등을 키웠다. 블랙리스트가 폭로된 영상카메라 부문의 경우, 아예 부서가 공중분해됐다. 사측이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블랙리스트’에서 최하등급인 X등급으로 분류된 기자들은 대부분 아예 보도국 밖으로 밀려났다. 승진에서도 철저히 배제돼 자동승급조차 하지 못한 기자도 있다. 한 카메라 기자는 “노동자들이 뭉쳐 있어야 대응을 할 수 있는데 개개인이 부당한 조처에 맞서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고 지적했다.
사측은 변호사와 노무사를 더 많이 고용해, 사측에 저항하는 노동자들에게 징계를 서슴지 않았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하에서 MBC 노동자 10명이 해고됐고, 1백87명이 부당 전보를 당했다. 부당 징계도 71건에 달한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위험 보도를 한 〈PD수첩〉 제작진에 대한 공격은 탄압의 서곡이었던 셈이다. 법원 소송을 통해 복귀하더라도 조합원들은 다시 본래 업무와는 상관없는 업무로 내쫓겼다. PD를 심의국이나 시설관리직으로 보내는 식이었다. 아나운서들은 라디오 방송에서도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사측은 라디오국 캐스터를 별도로 뽑아 철저히 아나운서들을 고립시켰다. 한 때 사측은 노조에 1백95억 원 손해배상을 청구하기도 했다. (이후 사측은 법원에서 패소했다.)
사무실 내 CCTV가 설치되는 등 노동자들은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하는 분위기 속에서 일해야 했다. 일부 노동자들은 SNS도 가명으로 써야 했다고 한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징계와 인사상 불이익으로 돌아오는 분위기에서 노동자들은 스스로 머릿속을 검열하고 긴장된 상태에 놓이게 됐다.
KBS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KBS 취재진은 박근혜 퇴진 촛불 집회에서 “너희도 공범”이라는 조롱과 항의를 들어야 했다. KBS 뉴스도 박근혜 게이트를 축소 보도하면서 조합원들의 반발이 커졌다. 박근혜 정부의 KBS 보도 통제 시도는 이미 전 보도국장 김시곤의 폭로로 만천하에 드러난 바 있다. 2014년 세월호 보도 참사를 참지 못한 KBS 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서면서 결국 사장 길환영이 해임됐지만 이후 박근혜 정부는 다시 자신의 입맛에 맞는 고대영을 사장으로 앉혔다. 당시 노동자들이 부적격 1위 인물로 꼽은 자인데도 말이다. 고대영은 보도 통제만이 아니라 긴축과 임금 삭감, 임금피크제 도입을 밀어붙이더니 올해는 성과평가제를 도입해 비용을 줄이고, 노동자 통제 강화를 시도하고 있다.
이미 법원은 2012년 MBC 파업이 정당하다고 판결하면서 공정 보도를 노동조건이라고 인정한 바 있다. 부당하게 해직되고 자리에서 쫓겨난 노동자들이 제자리로 돌아오고, KBS, MBC 사장과 공범들은 모두 물러나야 한다. 이후 제작과 편성에서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반영돼야 한다. 오랜 탄압 속에 저항에 어려움을 겪어 온 MBC 노동자들은 지난 퇴진 운동의 여파와 정권 교체 상황 속에서 자신감을 회복하고 있는 듯하다. 공영방송 정상화 문화제에서 MBC노조 김연국 위원장은 1987년 명동성당 앞 집회 취재 중 “땡전 뉴스”라고 쫓겨났던 MBC가 1987년 투쟁의 여파 속에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싸우면서 신뢰받는 방송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노동자들이 권력자들의 손에서 언론을 되찾을 수 있도록 파업에 지지와 연대를 보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