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격기, 핵항모와 함께 아시아로 오는 트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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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첫 아시아 순방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그의 아시아 순방은 공공연하게 미국의 막강한 무력을 동반하고 있다. 10월 30일 미국 전략사령부는 B-2 전략 폭격기가 10월 28일 미국 본토에서 출격해 태평양 지역에서 임무를 수행했다고 발표했다. 순방을 앞두고 핵무기 탑재가 가능한 스텔스 폭격기를 전개해, 북한·중국 등에게 경고를 보낸 것이다.
트럼프가 실제로 아시아에 왔을 때는 그가 사랑하는 미 항모전단들이 서태평양에서 훈련을 하고 있을 것이다.
최근 중국 국가주석 시진핑은 공산당 당대회에서 미국에 대등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중국이 되겠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을 의식한 듯, 경제 세계화, 자유무역, 기후변화협약을 계속 옹호하겠다고도 했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는 아시아 순방에서 자신의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전략이 무엇인지 보여 주면서, 중국 견제를 위한 성과를 확실히 내고자 할 것이다.
미국 국무장관 틸러슨은 중국공산당 당대회 기간 중에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규범에 기반한 질서에 도전하고 이웃 국가의 주권을 침해하는 중국에 위축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을 위해 인도·일본·호주와의 다자 협력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틸러슨은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과 ‘일대일로’ 계획도 겨냥해 비판했다. 중국의 이런 투자 방식은 다른 나라를 빚더미에 앉게 하는 “약탈 경제”라며, 미국이 대안적 금융 조달 구조를 제공하겠다고 공언했다. 트럼프의 국무장관이 중국의 “약탈 경제” 운운하는 게 어처구니없지만 말이다.
백악관은 이번 순방에서 북핵 문제에 관한 국제 공조를 강화하는 것과 아울러, 대중국 무역에서 “재균형”을 이뤄 내겠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10월 31일 주미 중국 대사는 미국이 중국을 포위하고 남중국해 문제 등에 개입하는 것은 미국과 중국의 “제로섬 게임”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트럼프의 아시아 순방행 비행기가 이륙하기도 전에 미국과 중국의 치열한 신경전은 이미 시작됐다.
한·중 관계는?
11월 7~8일 한국에 오는 트럼프는 중국 견제를 위한 협력 강화를 문재인 정부에 요청할 것이다.
그런데 최근 사드 문제로 경색돼 있던 한·중 관계가 풀릴 조짐이 보인다. 10월 30일 외교부 장관 강경화가 국정감사에서 중국을 의식해 다음의 3가지를 말했다. 1) 사드 추가 배치 않을 것, 2) 한국의 미사일방어체계(MD) 편입 없을 것, 3)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는 한·미·일 3국 안보 협력이 군사동맹으로 발전하지 않을 것.
그 직후 한·중 양국 정부는 관계 개선에 관한 협의 결과를 발표했다. 10~11일 베트남 아펙(APEC) 정상회의에서는 한·중 정상회담을 가질 것이라고 했다.
중국과의 경제적 관계가 매우 중요한 한국의 처지에서 한·중 관계가 장기간 경색돼 있는 게 크게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청와대는 ‘대중국 투자 10조 원’이라는 선물 보따리까지 준비하며 갈등을 봉합하려고 애썼다. 중국도 미국의 대북 공세로 한반도 긴장이 매우 높아지는 가운데 한·중 관계부터 일단 풀어야 한다고 판단한 듯하다.
친미 우익들은 문재인 정부의 이런 행보가 마뜩잖다. 특히, 강경화가 말한 3가지가 향후 한·미(·일)동맹을 강화하는 데서 발목을 잡는 구실을 할 수 있다고 성낸다. 〈조선일보〉는 그것이 “주권 포기”나 다름없다고 생트집을 잡았다.
그러나 단기적으로는 한·중 관계가 풀릴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상황은 그리 녹록지 않다. 다시 말해, 강경화의 공언은 공수표가 될 공산이 크다.
우선, 강경화가 말한 내용은 대부분 그간 한국 정부가 계속 주장해 온 바다. 획기적으로 새로운 것은 없다. 예컨대 이명박·박근혜도 한·미·일 군사동맹을 위해 한·일 군사 협력을 추진한다고 얘기한 적이 없다. 언제나 “북핵 대응”을 위해 필요한 조처라고 했다.
중국 외교부는 강경화의 대중국 메시지에 대해 말보다 실천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한국 정부의 약속을 액면 그대로 믿지는 않는 것이다.
게다가 10월 30일 국방부 장관 송영무는 국정감사에서 미국 MD의 요격 미사일인 SM-3 미사일을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영무는 한국이 다층 미사일방어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주장해 왔는데, 이런 방어체계를 미국 MD와의 “상호 운용” 없이 구축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한국의 신형 이지스함에 그 미사일이 탑재될 수 있다.
정의당 김종대 의원은 국정감사에서, 한국이 미국 주도 MD 편입을 추진하고 있음을 뒷받침하는 합동참모본부(합참)의 문건 내용을 공개했다. 합참이 미국의 제안으로 한·미·일 3국의 미사일방어 지휘통제체계(C4I)를 하나로 통합하는 계획을 검토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역대 정부들(김대중에서 박근혜까지)은 모두 미국 MD에 편입되지 않겠다고 말해 왔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지난 20년 동안 한국은 미국과의 MD 협력 수준을 꾸준히 높여 왔다.
2002년 당시 김대중 정부의 고위 관료들은 미국 정부와 군수업체 고위 관계자들에게 한국이 공공연하게 MD에 참여하는 것보다 “비공식적이고 점진적인 방식으로” MD 능력을 갖추는 게 더 좋다고 말했다. 그래야 “반미 열풍의 재연”을 피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똑같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정욱식, 《MD본색: 은밀하게 위험하게》(서해문집, 2015))
문재인 정부의 행보도 본질적으로 이와 다르지 않은 것 같다. 한국의 MD 편입 문제와 이에 따른 불안정 증대 문제가 언제든 다시 불거질 수 있다.
MD 편입 문제와 연계된 한·미·일 군사동맹 문제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한·미·일 삼각 동맹 구축을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는 전략의 중요한 축으로 삼아 왔다.
10월 28일 한미안보협의회의(SCM)에서 미국 국방부 장관 제임스 매티스와 한국 국방부 장관 송영무는 이렇게 발표했다. “아태지역 평화와 안정에 기여하기 위해 [한·미·일] 3국 간 안보 협력을 증진시켜 나가기로 했다.” 한·미·일 안보 협력이 북핵 억제에 국한될 것이라는 강경화의 말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대목이다.
물론 문재인 정부는 MD를 핵심으로 한 한·미·일 협력을 강화하면서, 이것은 오로지 북한 핵과 미사일에 대한 대응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도 같은 논리로 한국에 사드를 배치하자는 미국의 제안에 동의해 줬다.
앞서 언급했듯이, 미국과 중국의 제국주의적 경쟁은 계속 점증할 것이다. 한반도는 북핵 문제, 한미동맹 등으로 그 경쟁의 한복판에 휘말려 있다. 문재인 정부는 한·중 관계 개선 카드로 무언가 큰 진전이 있을 것처럼 포장하지만, 중장기적 전망으로 보면 여전히 불안정성이 커질 것으로 보이는 까닭이다.
곧 문재인은 한국이 빈말이라도 “한·미·일 군사동맹은 없다”고 한 것을 못마땅해 할 트럼프를 만나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중국을 의식하지만 결국 “한미동맹의 요구”를 우선하며 ‘말 따로 행동 따로’의 모습을 보여 줄 것이다.
11월 7일 광화문! 8일 국회 앞!
온건진보 계열은 한·중 관계 개선을 보며 트럼프 방한 때 문재인이 다시 한 번 외교력을 발휘해 주기를 기대하는 것 같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트럼프 방한 반대”는 부적절한 요구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이미 북핵 대응에서 미국·일본과 공조하기로 선언한, 그리고 미군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 빈도와 강도를 증대하는 데 동의한 문재인이 트럼프의 공세에 과연 제대로 저항할까?
중국과 북한을 상대로 잔뜩 벼르며 올 트럼프는 국회 연단에 서서 어떤 말을 쏟아 낼까? 화염과 분노, 북한 완전 파괴 등 그동안 했던 험악한 말들을 죄다 쏟아 내며 북한을 압박하고, 한국에 (한·미·일) 동맹 강화를 주문하고 중국으로 휙 떠날 수 있다. 그 연설을 들은 국회의원들이 그를 향해 기립 박수를 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그 후 한반도에서는 어떤 상황이 전개될까?
그의 연설에 대화나 협상에 관한 말이 몇 마디 들어간들, 그게 ‘립 서비스’가 아니라는 보장도 없다.
트럼프는 여러 해외 방문 지역에서 그를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지는 것을 봐야 했다. 서울에서도 트럼프 반대 움직임이 거리에서 표출돼야 한다. 그가 아무런 저항 없이 청와대에 가고 국회에서 연설하게 놔둘 순 없다. 한반도 평화를 바라는 사람들은 7~8일 광화문과 여의도로 모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