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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부에게는 교섭이 전술에서 전략으로 격상돼 있습니다”

전노투가 사회적 교섭에 반대하는 핵심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처방으로 도입된 신자유주의는 노동의 유연화가 그 핵심이었다. 이를 위해서 노동자들의 양보가 필수조건이었고, 그 수단으로 사회적 협약을 체결하기 위해 사회적 교섭을 통한 양보와 합의가 필요했던 것이다.

이것을 우리는 사회적 합의주의로 보는 것이며, 민주노총의 사회적 교섭 방침은 그 자체로 양보를 통한 사회적 합의가 전제될 수밖에 없다고 보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이다.

지난 몇 차례의 대의원대회가 무산된 책임이 전노투의 민주적 절차를 무시한 폭력에 있다는 비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오히려 그 책임은 민주노총 지도부에 있다. 그런 사태가 예상됨에도 굳이 안건을 상정하여 밀어붙이려는 저의가 무엇인가를 되물어야 한다. 민주노총 역사에서 어떤 의제를 놓고 그렇게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되어 대의원대회가 무산된 사건이 있었는가?

민주적 절차와 다수결 원칙은 존중돼야 하지만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되는 상황에서는 다수와 소수의 차이가 현격히 확인된다 하더라도 지도부는 조직의 단결을 더욱 중시해야 한다. 그래서 충분한 토론을 보장하고 절충을 위한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한다.

지도부가 안건을 발의하여 상정했더라도 그렇다. 2월 1일 대대회에서 회의를 진행한 이수호 위원장이 충분한 토론을 보장했다고 생각하는가? 대의원들의 질문에 대해서 지도부가 객관적으로 성실한 답변을 했다고 보는가? 대회를 이끌어가는 지도부가 조직의 단결을 중심에 두고 운영했다고 보는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지도부는 3월 15일 대대회에도 전혀 변함없는 똑같은 안건을 상정함으로써 대대회 자체가 무산되는 사건에 직면했던 것이다. 민주적 절차를 무시한 폭력으로 매도하는 것은 오히려 민주를 가장한 독재를 자행하고 있는 지도부가 그 책임을 전가하고자 하는 행위에 불과하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투쟁과 협상을 병행할 것이라고 말하는데, 어떻게 보는가?

“투쟁과 협상을 병행한다”, “투쟁과 교섭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말들을 지도부는 유독 강조한다. 투쟁보다는 협상에 무게중심을 두기 때문이다. 투쟁을 중심에 놓고 판단한다면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상대에게 우리의 나약한 모습을 보일 뿐이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사회적 교섭은 전술일 뿐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신자유주의 정책의 핵심인 사회적 합의주의임을 애써 감추고자 하면서 반대 견해를 가진 동지들을 설득하기 위한 얄팍한 애걸일 뿐이다. 그렇다면 애초부터 사회적 교섭 방침안은 독립적으로 제출할 필요도 없었다. 이미 확정된 노자/노정/산별교섭만으로도 충분하다. 따라서 독립적으로 제출된 사회적 교섭 방침안은 마땅히 폐기돼야 한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힘이 없으니까 일단 교섭이 필요하다’면서 사회적 교섭으로 우리의 요구를 사회적 쟁점화·의제화할 수 있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패배주의 관점이다. 조직력이 상당히 이완돼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 상황에서 갈수록 자본의 이데올로기에 포섭돼 가는 대중을 투쟁으로 떨쳐 일으켜 세우기가 쉽지는 않다. 하지만 “힘이 없으니 교섭을 통해 요구를 쟁점화하면 투쟁동력이 올라올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투쟁보다는 교섭을 통해 ‘문제 해결’에 접근하겠다는 발상일 뿐이다. “힘이 없다”고 판단한다면 왜 그런가를 진단해야 한다. 만약 ‘처방’이 ‘교섭’이라면 오히려 조직력을 갉아먹는 효과를 낳을 것이다.

사회적 교섭이 미조직된 89퍼센트를 대변하는 통로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는데.

대리주의적이며 관료적인 발상이다. 그들이 민주노총에 자신의 문제를 위임이라도 했단 말인가?

대중의 직접행동을 엄호하면서 조직하겠다는 발상으로 다가서야 한다.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은 국회에 머물면서 또는 사회적 교섭을 통해 미조직 노동자들을 대리·대변하겠다는 발상보다는 그들의 삶과 투쟁의 현장에 항상 존재하면서 그들과 함께 투쟁해야 한다. 지금은 현장에서 투쟁을 조직하고 엄호해야 할 시기이지, 결코 정부 관료들과 자본가들을 만나서 이야기할 때가 아니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노사정위원회의 위상과 성격을 개편하고 노사정위에서 논의된 것을 대의원대회를 거쳐 결정하면 된다고 말하는데.

‘기업별 노조와 산별노조의 단체교섭과 투쟁 협약 체결’ 메커니즘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다. 이는 노사정이 사회적 대화에 항상 함께하는 메커니즘으로서, 노동운동 전략 수준의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것을 단순히 “교섭 전술이다” 하고 주장하는 것은 기만에 다름아니다.

사회적 교섭에 들어가도 국회에서 비정규직 개악안이 통과되면 즉각 철수해서 총파업에 들어가면 되고, 비정규 개악안 통과는 1996년 말 노동법 날치기 통과처럼 조합원들을 들고 일어서게 만들 것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것도 사회적 교섭 방침 반대파를 설득하려는 논리로 제기된 것이다.

1996년 말에 날치기 통과한 노동법은 정리해고를 법적으로 제도화하는 것이 핵심이었으며 ‘날치기’로 말미암아 전체 노동자들의 불만을 증폭시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번 비정규직 개악안은 전체 노동자들이 직접적인 위기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 노무현 정권은 바로 이 점을 노린 것이다.

우리의 예상대로 민주노총 지도부는 ‘법안 철회’ 요구에서 ‘국회에서 논의할 수 있다’는 태도로 후퇴하면서 민주노동당에 모든 것을 위임한 듯한 태도이다. ‘양보’를 전제로 한 ‘합의’가 가능하게 되는 수순이다.

노무현 정권은 절대로 날치기 통과하지 않는다. 지도부는 사회적 교섭 방침을 포기하려면 그 근거를 정부에서 찾지 말고 조합원들의 반대 견해에 따라 방침 폐기를 결정해야 한다. 그것이 그나마 민주노총의 단결력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사회적 교섭 찬성파는 전노투를 ‘패배주의와 대안 부재’라고 비판하는데.

그렇다면 신자유주의 정권의 의도에 영합해 들어가는 사회적 교섭은 대단한 대안인지 되묻고 싶다.

민주노총 지도부도 전노투도 양쪽 다 문제라는 양비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자신의 입장이 분명하지 않고 애매할 때 양비론이 제기된다. 아니면 사회적 교섭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대한 차이 때문일 것이다. 양쪽이 다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다른 입장을 제출해야 하고 선동해야 한다. 그러나 양비론자들의 태도는 “사회적 교섭을 반대는 하지만 단상 점거는 너무한 것 아닌가?”라는 말뿐이었고, 그런 양비론적 태도는 사실상 사회적 교섭을 찬성하는 쪽에 힘을 실어줬을 뿐이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지금부터 준비해서 2006년에 “세상을 바꾸는 총파업”을 하겠다고 하는데, 어떻게 보는가?

“세상을 바꾸는 파업을 하겠다”는 의지와 계획을 갖는 것 자체는 훌륭한 발상이며 의미있는 계획이다. 그러나 그 계획 속에 사회적 교섭이라는 ‘전술’은 옥의 티로 작용하고 있다.

그런 계획을 성사시키기 위해서라도 심각한 반대에 부딪힌 사회적 교섭 방침을 폐기하고 전술을 수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고서는 내부의 갈등이 여전하고 타협의 가능성을 늘 쫓아다니게 되므로 세상을 바꾸는 파업은 불가능하게 된다.

이수호 위원장이 4월 1일 기자회견에서 노사정 대화를 전제로 정부의 비정규 법안 폐기 방침을 바꿔 단병호 법안과의 절충 의사를 비쳤는데, 어떻게 보는가?

결국 우려했던 대로 비정규직 법안을 “국회에서 논의할 수 있다”는 선까지 양보하고 말았다. 더욱이 ‘노사정 대표자들이 사회적 대화를 정착시켜 활성화해 나가기로 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민주노총이 견해 차이를 극복하고 비정규 법안 개악에 맞선 총력 투쟁을 건설하기 위해서 지금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사회적 교섭 방침이 재고돼야 한다. 오히려 지도부에 의해서 노사 협조를, 투쟁보다는 대화를 강요받고 있는 현장에서 불만이 커지고 있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한편, 민주노총 지역본부별 계획들을 적극 배치함으로써 전국 전선이 형성·유지되게끔 해야 한다.

나아가서는 힘겹게 투쟁하는 단위들의 투쟁을 엄호하기 위한 지역 총파업 등 연맹별 공동 행동들을 적극 계획해야 한다.


* 해방 60년 기획 연재는 필자의 사정으로 이번 호는 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