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줬다 빼앗기 개악:
문재인 “노동 존중”의 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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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8일 최저임금법 개악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상여금뿐 아니라 식대, 숙박비, 교통비 등 복리후생비도 최저임금 산정에 포함하는 개악이다. 내년부터 월 최저임금의 25퍼센트를 초과하는 상여금, 7퍼센트를 초과하는 복리후생 수당이 최저임금으로 포함되고, 산입 범위를 매년 늘려 나가 2024년에는 모든 상여금과 복리후생수당이 최저임금에 포함되도록 했다. 즉, 최저임금을 올려도 무용지물로 만드는 ‘줬다 뺏기’ 개악인 셈이다.
2018년 최저임금(월 157만 3770원)을 기준으로 하면, 당장 내년부터 월 상여금 중 39만 원, 복리후생비 중 11만 원을 뺀 나머지를 최저임금에 산입할 수 있다.
예컨대, 월 기본급 157만 원, 상여금 50만 원, 복리후생비 20만 원으로 월 227만 원을 받는 노동자의 경우, 상여금 11만 원, 복리후생비 9만 원이 최저임금에 산입돼, 기본급 20만 원이 깎이더라도 최저임금법 위반이 아니게 된다.
기본급은 최대한 적게 주고 그 대신 상여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연장근로수당 등을 삭감해 온 대기업들은 앞으로 몇 년간 최저임금이 올라도 기본급을 올리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정부와 국회는 연소득 2500만 원 안팎의 저임금 노동자를 최대한 보호했다며, 저임금 노동자 중 최대 21만 6000명(6.7퍼센트)만 최저임금 인상 혜택을 못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고용노동부가 내놓은 근거는 2016년 임금 자료와 2019년에 인상될 것으로 예상되는 최저임금액을 비교한 것이다. 지난해와 올해 최저임금이 오르는 동안 이미 임금이 오른 저임금 노동자가 꽤 될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2019년 최저임금 인상분만큼 임금이 오르지 않을 저임금 노동자는 훨씬 더 늘어날 것이다.
민주노총이 조합원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산입 범위 확대로 저임금 노동자의 30퍼센트가 임금 인상에서 손해를 본다. 교육공무직본부는 교육공무직 노동자 14만 명 중 절반 이상이 2024년까지 임금 인상에서 손해를 볼 것으로 내다봤다.
실제로 현재 매월 급식비 13만 원, 교통비 6만 원을 받는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매월 8만 원, 연간 96만 원 상당의 최저임금 인상 효과를 빼앗기게 된다.
저임금 노동자들이 최저임금 수준의 기본급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한 임금을 식비, 교통비 등 각종 복리후생수당과 상여금으로 충당해 온 현실을 감안할 때 노동자들의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다.
또, 고용주가 3개월 혹은 6개월 단위로 지급하던 상여금을 1개월 단위로 나눠서 지급하려 할 때, 노조나 과반수 노동자의 동의를 받지 않아도 되는 부칙도 덧붙였다. 취업규칙을 노동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려면 과반수 노조 내지 노동자 과반수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근로기준법 상 최소한의 방어조항조차 무력화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상여금 쪼개기’를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여기에 더해 임금을 삭감하려는 온갖 불법과 편법이 난무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분노가 커지다
문재인 정부는 “노동 존중”, “소득 주도 성장” 등을 표방하면서, 최소한 저임금 노동자들의 처지는 개선해 줄 것처럼 주장해 왔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노동시간 주 52시간 단축 등을 누더기로 만들더니, 최저임금마저 개악해 임금 인상 효과를 무력화해 버렸다. (관련 기사: 본지 242호 ‘문재인 정부 개혁의 성격 ― 누구를 위한 어떤 개혁인가?’)
이런 개악을 밀어붙이는 것은 지방선거에서 중소 상공인을 비롯한 사용주들의 지지를 얻기 위한 의도가 있을 것이다. 개악은 찰떡 궁합으로 해 놓고도 보수 야당의 개혁 방해 프레임은 유지하는 것은, 개혁 염원 지지층이 이탈하지 못하게 하려는 술책이다.
더 근본에서는 2017년에 회복되는 듯했던 한국 경제가 최근 다시 ‘침체 논란’이 벌어질 정도로 악화했기 때문이다. 미·중 무역 갈등, 중동 내 갈등 등으로 한국의 수출 확대 전망이 점점 불확실해지고, 석유값 상승과 신흥국 통화 위기 등으로 세계경제가 요동칠 가능성이 커졌다. 그래서 더 확실하게 사용주들의 이윤을 보호하는 편에 선 것이다.
특히, 북미정상회담에 대한 대중의 지지 분위기가 고조된 상황을 틈타 밀어붙이면 큰 저항없이 노동 개악을 이룰 수 있다고 봤을 것이다. 남북 화해 국면에서 노동운동 지도자들이 포퓰리즘 정치 때문에 문재인의 개악에 일관되게 반대하지 못할 것도 계산에 넣었을 것이다.
정부와 사용자들은 저임금·비정규직의 임금 인상을 억제했기 때문에 고임금 노동자들을 고립시키는 공격도 더 강화할 수 있다. 개악안이 통과되자마자 〈한겨레〉는 다음날 사설에서 금융공기업의 고임금을 문제삼았고, 경총은 직무급제 도입에 매진하겠다고 밝혔다.
노동자들은 배신감을 느끼며 분노를 드러내고 있다. 민주노총은 노사정대표자회의와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최저임금위원회 참가 중단을 선언했다. 그리고 6월 초 규탄대회, 100만 서명운동, 6월 30일 전국노동자대회 등의 투쟁 계획을 공표했다. 한국노총도 개악안 통과 다음 날 최저임금위원회의 소속 노동자위원 전원이 항의하며 사퇴했다.
양대노총과 진보정당들은 문재인에게 대통령 거부권 행사를 요구한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적극 나서 최저임금 개악을 촉구하고 집권당이 국회에서 밀어붙인 지금, 이는 실현 가능성이 희박해 보인다.
지금 중요한 것은 민주노총이 노사정대표자회의 등에 불참을 선언한 만큼, 그에 걸맞게 투쟁을 조직하는 것이다.
그동안 민주노총 집행부는 사회적 대화 성사에 집착하면서 예상되는 최저임금 개악에 맞선 투쟁을 조직하는 데 소홀했다. 개악이 임박해서야 민주노총은 파업 지침을 내리고 5월 28일 전국에서 5만여 명 규모의집회를 열었다. 아쉽게도 그 파업은 2시간 파업에 그쳤다.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 개악과 ‘노동 존중’ 정책 폐기에 대한 노동자들의 분노가 커진 지금, 실질적인 투쟁을 벌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