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 전쟁:
경제 불황 속 격화되는 지배자들 간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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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 전쟁으로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6월 1일 미국이 EU·캐나다·멕시코산 철강에 25퍼센트, 알루미늄에 10퍼센트 관세를 부과했다. 그러자 이에 대응하는 보복 공격들도 확대되고 있다.
6월 22일 EU는 미국의 오토바이·위스키·청바지 등에 최고 25퍼센트의 보복 관세를 부과했다. 미국은 이를 철회하지 않으면 자동차와 자동차 부품에 관세 20퍼센트를 부과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EU의 대미 자동차 및 관련 상품 수출량은 철강과 알루미늄의 4배에 이른다.
중국과의 무역 갈등은 이보다 규모가 더 크다. 미국은 중국의 수출품 500억 달러어치에 7월 6일부터 관세 25퍼센트를 매기겠다고 했다. 중국도 이에 맞서 미국산 수출품 500억 달러어치에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미국은 만약 중국이 관세를 부과하면 추가로 2000억 달러어치에 관세 10퍼센트를 부과하겠다고 을러댔다.
트럼프의 보호무역 정책은 많은 자본가들에게 “충격과 공포”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현재 미국 기업들의 총 이윤에서 해외 투자 기업의 이윤이 차지하는 비율은 40퍼센트에 이른다. 이처럼 생산이 국제적으로 복잡하게 얽힌 가운데 무역 갈등이 심화된다면 기업들의 이윤 타격이 상당할 것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트럼프의 관세 위협이 엄포에 그칠 것이라고 관측한다. 그러나 일시적 봉합 가능성이 있다 하더라도 통제하기 힘든 경쟁 압력 속에 국가 간 대립이 더욱 치달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면 안 된다.
갈등의 배경 ― 경제 위기
트럼프의 보호무역 정책은 이단아 또는 독불장군 같은 그의 개성 때문이 아니다. 장기 불황 상황에서 미국 자본주의의 이익을 위해 타국에 경제 위기의 고통을 전가하려는 시도로서 추진되는 것이다. 근린궁핍화라고도 불리는 이런 정책은 2008년 경제 공황 이후 심화해 왔다.
2008년 위기 이후, 타국 경제를 희생시키고 자국 산업을 보호하려는 정책은 “환율 전쟁”이라는 간접적인 형태로 추진됐다. 각국 정부가 경기 부양을 위해 시중에 막대한 돈을 푸는 양적완화 정책을 시행했는데, 이는 자국의 화폐 가치를 떨어뜨려 수출 경쟁력을 높이려는 조처이기도 했다.
그러나 막대한 경기 부양책을 썼음에도 10년이 지나도록 경제 회복은 미약하다. 그래서 트럼프 정부는 더 공격적인 보호무역 정책을 쓰며 세계 무역 질서를 미국에 유리하게 재편하고 싶어 한다. 1930년대 경제 대불황 당시에도 선진국들은 자국 기업 이윤을 지키는 방책으로서 보호무역 정책을 강화했다.
이처럼 트럼프 정부의 정책에는 미국 자본주의에 대한 위기감이 반영돼 있다.
미국 경제 회복세는 여전히 미약하다. 미국의 고용율(15세 이상 인구 중 고용된 사람의 비율)은 60.4퍼센트로, 위기 전의 63~64퍼센트 수준을 회복하려면 아직 멀었다. 트럼프는 강력한 보호무역 정책과 함께, 이민자를 쫓아내어 미국인에게 일자리를 주겠다는 우익 포퓰리즘적 선동을 하며 당선됐는데, 약속과 현실은 차이가 큰 것이다.
2008년 위기 이후 10년이 됐지만 G7 국가들의 평균 수익률은 위기 전보다 더 낮은 상태에 머물러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기업·가계 부채의 총액은 사상 최대치다. 낮은 수익률과 부채 위기 때문에 세계경제는 취약한 상황이고, 이는 최근 세계경제의 약한 고리인 신흥국 위기로 터져 나오고 있다.
미국 경제의 상대적 위상이 장기적으로 하락해 온 상황에서 중국의 부상은 미국 지배자들에게 큰 위협이다. 미국은 제2차세계대전 직후 세계산업생산의 50퍼센트를 차지했지만 1980년대에 그 비율은 25퍼센트로 하락했다. 1991년 냉전 종식 이후에 미국은 잠시 유일 초강대국으로 군림했지만 경제적 지위의 상대적 하락은 계속됐다. 미국은 그것을 만회하려 이라크 전쟁을 비롯한 여러 시도를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반면 중국은 지난 30년 동안 급성장하며 부상했다. 중국이 세계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980년대에 1.72퍼센트에 불과했는데 2016년에 13.9퍼센트로 상승했다. 이제 중국의 GDP는 미국의 60퍼센트 수준이다.
중국 경제는 급성장했지만 선진 경제 일반에 견줘 생산성은 여전히 낮다. 그래서 중국은 경쟁력 강화를 위해 “중국제조 2025”라는 정책을 추진해 왔다. 이는 로봇공학, 반도체, 항공, 정보 산업 등에서 중국 기업들이 세계 최고가 되는 것을 목표로 경제 선진화를 추구하는 정책이다.
트럼프 정부는 “중국제조 2025”에 제동을 걸려고 한다. 그래서 관세 대상 품목에 관련 상품들이 대거 포함됐다. 또, 중국 기업들이 미국의 첨단 산업 분야에 투자하는 것을 제약해서 기술 유출을 차단하고 싶어 한다.
무역 전쟁으로 미국 경제도 충격을 받겠지만, 트럼프 정부는 무역 흑자에 더 의존하는 타국 경제가 더 큰 충격을 받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이를 통해 미국에 유리한 방식으로 경제 질서를 재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트럼프는 트위터에 무역 전쟁이 “식은 죽 먹기”라고 썼다.
불확실성 낳는 치킨 게임
이처럼 ‘치킨 게임’으로 상대방에게 더 큰 피해를 입혀 미국 패권을 공고히 한 일은 과거에 종종 벌어져 왔다.
냉전 시절에 소련과의 군비 경쟁은 미국 경제에도 상당한 부담이었다. 그런데도 1980년대 미국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은 군비 지출을 늘리며 소련과의 신냉전을 부추겼다. 미국보다 경제력이 약했고, 내부적으로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던 소련은 이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붕괴했다. 1980년대 신냉전은 미국이 제국주의 세계 체제 안에서 최강대국의 입지를 다시 강화한 게임이었다.
트럼프 정부는 경제적 타격이 일시적으로 있을지라도 중국이 더 성장하기 전에 기선을 제압하는 것이 미국의 장기적 이익을 위해 필요하다고 본다. 또, 독일 등 미국에 수출해 득을 보고 있는 국가들과의 무역 관계를 미국 기업들에 더 유리한 방식으로 재편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트럼프 정부가 원하는 수준으로 사태가 전개될지는 알 수 없다. 역사를 보면, 경쟁이 지배자들의 의도를 벗어나는 사태가 전개되는 경우도 많았다. 제1·2차세계대전은 자본주의 국가들의 경제적 경쟁과 지정학적 경쟁이 맞물리며 벌어졌다. 누구도 먼저 발 빼기 힘든 소용돌이였다.
가뜩이나 취약한 세계경제가 다시 추락하는 위기로 치달을 수도 있다.
최근 중국 경제에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중국 증시는 올해 초 대비 20퍼센트 하락했고, 회사채 디폴트(채무불이행)도 지난해에 견줘 3배 증가했다. 중국의 GDP 대비 국가·가계·기업의 총 부채는 2008년 금융위기 전 160퍼센트에서 260퍼센트로 증가했다. 그래서 부채 위기가 터질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6월 25일 중국사회과학원 산하 국가금융발전실험실은 웹사이트에 중국이 ‘금융 패닉’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하는 보고서를 올렸다가 곧바로 삭제했다.
무역 전쟁 와중에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의 금융 위기가 확산된다면, 그 여파가 서방 경제에도 미쳐서 세계경제가 심각한 위기로 빠질 수도 있다.
세계경제의 장기 불황 속에서 자기 몫을 더 키우려고 이전투구를 벌이는 지배자들 사이의 갈등은 체제를 더한층 불안정한 상황으로 몰아넣고 있다.
한국은 수출 의존도가 매우 높기 때문에 세계 무역 전쟁에 더욱 취약하다. 이 때문에 문재인 정부는 ‘혁신성장’이라는 이름으로 규제를 완화하고 노동자를 공격하는 정책에 속도를 높이려 한다. 경제 위기 고통 전가에 맞서 노동계급의 투쟁과 연대가 강화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