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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 이후 문재인 정부 노동정책:
신자유주의 규제완화 + 노동유연화

문재인 정부가 6·13 지방선거 직전부터 ‘혁신 성장’에 강조점을 두기 시작했다.

정부는 “3개월 내에 혁신 성장을 위한 돌파구를 찾겠다”며, “당분간 규제 완화와 이를 통한 혁신 성장 가속화에 정부 역량을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6월 26일에는 ‘소득 주도 성장론’의 주창자인 청와대 홍장표 경제수석을 해임했다. 최근 취업률, 청년 실업률 등이 악화하자, 이 책임을 물어 경질된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대신 문재인 정부는 윤종원 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사를 경제수석으로 임명했다. 신임 경제수석 윤종원은 기획재정부 출신으로 “‘혁신 성장’을 내걸고 노골적인 친 기업, 친 재벌 행보를 노골화하고 있는 김동연 라인과 연결하는 인사”이다.(민주노총 성명)

그동안 우파들은 홍장표 경제수석의 경질을 요구해 왔다. 최저임금 인상, 노동시간 단축 같은 소득 주도 성장 정책이 오히려 저임금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영세 자영업자들을 어렵게 만든다고 공격하며 말이다. 결국 우파들의 바람대로 된 것이다.

이런 상황은 문재인 정부가 ‘소득 주도 성장’을 내팽개치고 ‘혁신 성장’으로 옮겨 갔음을 보여 준다.

물론 문재인 정부는 개혁 염원 지지층이 이탈할 것이 두려워, “소득 주도 성장, 혁신 성장, 공정 경제라는 현 정부 3대 경제정책 기조는 유지”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 〈한겨레〉, 〈경향신문〉 등의 사설도 이를 그대로 받아 적었다. 그러나 정부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것은 문재인 정부를 방어해야 한다는 생각에 눈이 멀어 현실을 직시하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은 문재인 정부가 노무현 정부의 전철을 밟는 것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도 출범 열 달 만에 진보적 교수 출신인 이정우 청와대 정책실장을 경질했고, 이후 급속하게 노골적인 신자유주의로 전향하면서 개혁 염원 대중을 실망시킨 바 있다.

말잔치로 끝난 소득 주도 성장

물론 문재인 정부가 소득 주도 성장을 추진하기는 한 것인지, 과연 추진할 의사는 있었는지도 따져 물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에 최저임금 인상이 결정된 직후부터 ‘줬다 뺏는’ 제도 개악(산입범위 확대)을 추진했고, 5월 말에는 이를 밀어붙였다.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 무력화라는 판을 깔아 주자 사용자들도 제도 개악 전부터 성과급·복리후생비를 기본급으로 바꾸고, 노동시간을 축소하고, 노동강도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최저임금 인상을 무력화했다. 정부 안에서 최저임금 인상 ‘속도조절론’이 공공연하게 나온 지 오래라서, 내년 최저임금 인상률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대표적인 일자리 정책인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도 “쭉정이”가 됐다. 전환 제외자가 많았고, 전환된 노동자들도 대부분 제대로 된 정규직이 아니라 무기계약직이나 자회사로 고용된 것이라 임금·노동조건 개선은 거의 없었다. 게다가 정부는 전환자들을 저임금에 고착시키는 임금 체계를 제시했다.

이처럼 문재인 정부는 개혁을 추진하면서 사용자들이 빠져 나갈 길도 함께 만들어 줬다. 결국 문재인 정부가 임금과 일자리를 늘려 노동소득 몫(특히 저임금 노동자들의 소득)을 끌어올릴 의지도 없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더 근본에서 보자면, 소득 주도 성장론 자체가 모순을 갖고 있었다.

‘소득 주도 성장’론은 노동자들의 소득이 늘어나면 소비가 증가하고, 생산성이 향상돼, 수요가 늘고 경제가 성장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소득 주도 성장론이 단지 신자유주의로 심화된 불평등을 해소하자는 정책이 아니라 ‘성장론’이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노동소득을 늘렸는데도 경제가 성장하지 않으면, 노동소득 증대를 계속할 수 없다는 점을 깔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소득 몫이 늘어나면 자본소득 몫(즉 이윤)은 줄어야 한다. 지금과 같은 장기불황기에 임금을 늘려 이윤에 타격을 주면, 투자가 줄면서 경기 침체가 벌어지기 쉽다.

게다가 최근 미·중 무역 갈등, 중동 내 갈등 등으로 한국의 수출 확대 전망이 점점 불확실해지고, 석유값 상승과 신흥국 통화 위기 등으로 세계경제가 요동칠 가능성이 커졌다.

문재인 정부가 1년여 만에 더 확실하게 사용주들의 이윤을 보호하는 편에 선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혁신 성장’이란 이름의 신자유주의적 노동정책 ⓒ출처 청와대

‘혁신 성장’이 뜻하는 것

6월 27일 청와대는 여러 정부 부처가 참여하는 규제 혁신 점검회의를 돌연 취소했다. 대통령이 여러 차례 강조했는데도 준비가 미흡하다는 이유로 말이다.

문재인은 규제 혁신 회의를 취소하면서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규제개혁의 성과를 반드시 만들어 보고해달라”고 거듭 강조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정부는 대한상공회의소 등 사용자 단체들과 간담회를 하며 그들의 요구를 듣고 있고, 적폐로 지목돼 해체 논란이 벌어진 전경련과도 간담회를 추진하고 있다. 문재인·김동연 등이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이라고 말할 때 국민은 바로 이런 기업들을 뜻하는 것이다.

때마침 경총은 혁신 성장을 위한 규제 개혁 과제라며 9가지 과제를 최근 내놨는데, 이 중 4가지가 영리병원과 원격의료 허용을 포함해 의료 영리화·민영화와 관련된 것들이다.

게다가 문재인 정부 주요 인사들은 박근혜가 추진해 온 규제 완화 법률인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규제프리존법 통과를 공공연히 주장해 왔다. 국무총리 이낙연과 경제부총리 김동연은 이미 규제프리존특별법 찬성 견해를 밝혔고, 공정거래위원장 김상조는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통과를 공공연히 주장했다.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은 의료 민영화를 열어 주는 것으로, 이미 박근혜 정부의 대표적인 ‘적폐’로 지목된 바 있다. 규제프리존법은 박근혜 정부 시절 기업주들의 규제 폐지 청원을 집대성한 ‘최순실법’으로 알려져 있다.

덴마크식 ‘혁신형 고용안정 모델’

한편, 문재인 정부는 ‘쉬운 해고’도 혁신 성장 과제 중 하나로 포함했다. 박근혜가 추진했던 ‘저성과자 해고제’와는 다른 방법이긴 하지만 말이다.

경제부총리 김동연은 혁신 성장을 위해 “‘혁신형 고용안정 모델’을 구체화해 조만간 발표할 계획”이라며, “고용시장에 신축성을 제고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결국 문재인 정부는 그동안 추진해 온 임금체계 개편, 유연근무제 확대에 더해, ‘쉬운 해고’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기재부에 따르면 ‘혁신형 고용안정 모델’은 덴마크 모델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한다. 덴마크는 기업들의 해고를 쉽게 할 수 있게 풀어 주되(유연성), 해고된 노동자들에게 직전 급여의 최대 90퍼센트까지 실업 수당을 지급하고 있다는 것이다(안정성). 또, 재교육·재취업을 위한 서비스(적극적 노동시장 정책)를 제공한다고 한다.

최근 문재인 정부는 사회안전망 강화를 위해 자발적 실업자라도 6개월 이상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실업 수당을 지급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는데, 이것도 ‘혁신형 고용안정 모델’을 염두에 두고 추진하는 듯하다. 대신 구직 활동 입증을 강화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덴마크 모델은 신자유주의 시기에 실업수당을 줄이고 그 수급을 까다롭게 만든 것으로 유럽 복지국가가 후퇴하면서 나타난 정책이다.

1970년대 말과 1990년대 초 경제 위기로 덴마크에서 실업이 급증하자, 1993년 집권한 사민당은 실업수당을 받으려면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구직, 직업훈련 등)에 참여할 것을 의무화했다. 실업자가 소개받은 일자리나 직업훈련을 거부하면 실업수당 지급을 중단한 것이다.

1970년대에 거의 무제한에 가까웠던 덴마크의 실업수당 수급 기간은 꾸준히 단축돼 4년으로 줄었는데, 이를 다시 2년으로 줄이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그러나 실제 이렇게 오랫동안 실업수당을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실업수당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이 점점 더 까다로워졌기 때문이다. 주당 최소 사용자 4명과 인터뷰해야 하고, 직업훈련을 받아야 하며, 취업설계사와 면담을 해야 하고, 거주지와 직종을 바꾸는 것도 받아들여야 한다.

결국 덴마크 모델은 “실업자들이 까다롭게 굴지 않으면서 가능한 한 빨리 재취업하도록 하려는 술수인 것으로 판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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