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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반기 태풍의 눈이 될 수 있는 철도 민영화(사기업화) 반대 투쟁

하반기 태풍의 눈이 될 수 있는 철도 민영화(사기업화) 반대 투쟁

 이정원

 지난 7월 29일 1천여 명의 철도 노동자들이 서울역에 모여 '철도 순직 조합원 위령제'를 열었다.

 올해에만 벌써 12명의 철도 노동자들이 산재로 죽었다. 7명은 열차에 치어, 4명은 과로사로 사망했다. 1명은 지난 8월 8일 전차선 보수 작업 중에 감전사를 당했다.

 철도의 산업 재해 사망률은 올해부터 급격히 늘기 시작했다. 철도의 산업 재해 사망률은 일반 작업장 평균치의 세 배를 넘는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인원이 대폭 줄어 일이 엄청나게 늘었기 때문이다.

기계처럼

 1996년부터 지금까지 철도청 소속 현장 기능직은 5천 명 넘게 줄었다. 반면, 신설되는 역이 늘고 여객 수송량 역시 계속 늘고 있다. 기관차가 달린 거리를 나타내는 기관차 "키로수"는 1999년에 1993년보다 1.5배 이상이 늘었다.

 인력 감축은 남아 있는 노동자들에게 끔찍한 노동 강도 강화와 반복되는 사고를 가져다 주고 있다.

 사망 사고가 집중되는 보선 분야의 경우, 최근 6년간 37.3퍼센트의 인력이 감축됐다. 철도청은 기계화로 인력이 많이 필요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인력이 모자라 선로 보수 작업 때는 반드시 두게 돼 있는 열차 감시자 없이 작업을 하다 열차를 피하지 못해 사망하는 사고가 자주 일어나고 있다.

 철도 노동자들은 인력 감축 전부터 인력이 부족해 24시간 맞교대 근무를 해 왔다. 요즘에는 48시간 연속 근무를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철도 노동자들은 주당 67시간, 월 2백93시간을 일한다. 철도 노동자들은 한국 노동자 주당 평균 노동시간에 비해 주당 21시간, 월 94시간을 더 일해야 한다. 그나마 이렇게 오랜 시간을 일하지 않으면 생계를 꾸리기가 힘들다. 기본급이 낮아 수당으로 먹고 살기 때문이다. 수당이 높은 것도 아니다. 근로기준법이 아닌 공무원법의 규정을 받기 때문에 훨씬 열악하다.

 휴가라도 한 번 가려면 72시간 연속 근무를 서로 교대로 해 줘야 하는 형편이다. 한 철도 노동자는 끔찍한 노동 시간과 노동 강도를 "우리는 3조 2교대 근무가 꿈이다"라는 말로 표현했다.

 이 때문에 철도 노조는 미발령자 3백62명을 빨리 채용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철도청은 올해 안에 1천5백여 명 감축에 동의해야만 이 요구를 받아들일 수 있다며 미발령자들을 계약직으로 고용하려 하고 있다.

 철도청은 현장 노동자들의 고되고 위험한 작업 조건에 전혀 관심이 없다. 철도청의 한 간부는 얼마 전 심장마비로 사망한 한 노동자의 사인에 대해 "평소 비만이었던 것이 심장마비의 원인"이라며 책임을 떠넘겼다.

 한 노동자는 "철도청이 인력 산정을 하면 언제나 사람이 남기 마련이다. 그들은 우리를 사람이 아니라 기계로 본다." 하고 말했다.

누구를 위한 민영화인가?

 철도청은 인력 충원은커녕 1천5백여 명을 또 감원하려 하고 있다. 이는 철도 민영화 추진을 위한 조치이다. 정부는 9월 정기국회 때 철도 민영화 법안들을 통과시켜 2002년부터 추진할 계획을 세워 놓고 있다.

 정부는 철도가 "경영적자를 되풀이하는 만성적인 부실 기업"이라며 철도 민영화가 대안이라고 주장한다.

 정부는 철도가 매년 2∼3천억 원의 적자를 낸다고 얘기한다. 그러나 이런 적자의 가장 큰 이유는 정부의 지원 부족이다. 심지어 정부는 의무적으로 지급해야 할 공공보조금 1조 8천억 원 중 1조 3천억 원을 지급하지 않고 있다.

 정부는 민영화에 드는 비용으로 11조 2천억 원을 추정하고 있다. 민영화 비용 중 8조 원 이상이 부채 탕감에 사용될 예정이다. 이 외에도 또 다른 특혜가 기업들에 주어진다. 철도 민영화 법안은 정부가 공공보조금을 지급하지 않을 경우 영업을 중단할 수 있게 해 주고 시설 사용료도 대폭 면제해 주고 있다.

 정부는 이렇게 커다란 특혜를 제공해 철도를 '돈이 되는 사업'으로 만들어 시장에 내놓겠다는 것이다. 또, 시장에서 잘 팔리려면 고용의 유연화는 기본이다. 이 때문에 민영화는 3만 명에 가까운 철도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공격하고 있다. 민영화 법안에는 고용 승계에 대한 보장이 전혀 없다.

 결국 민영화는 대량 해고, 서비스 질 저하, 요금 인상이라는 예정된 수순을 밟을 것이다.

 영국에서는 철도 요금 인상 억제를 위해 민영화 전보다 2.5배나 많은 정부 보조금이 매년 지원됐지만 요금이 물가인상률보다 높게 인상됐다. 반면에, 영국의 철도 시설 회사는 매년 5천억 원∼1조 원의 독점 이윤을 누리고 있다. 이런 엄청난 이윤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은 시설 투자에는 인색하다. 지난 1999년 패딩턴 역 열차 사고 당시 역을 관리하는 민간회사 관계자는 "사고가 나 보상 비용을 무는 게 첨단 자동제어장치 투자 비용보다 싸게 먹히기 때문에 방치"하고 있다고 털어 놓았다. 영국의 철도 민영화 사례는 민영화의 진정한 수혜자가 누구인가를 잘 보여 준다.

민영화 반대 투쟁은 지금 시작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의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되지만은 않을 것이다. 철도 노조는 하반기에 민영화 반대 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지금 철도 노동자들의 불만은 매우 높다.

 최근 노조는 작업중지권, 보선원 단독 작업 중지, 선로 작업시 열차 감시자 배치 의무화 등과 산재 책임자 처벌, 인력 확충 등을 요구하며 임시노사협의회 개최를 요구했다.

 그러나 철도청은 노조의 대화 요구에 절차상의 여러 문제들을 제기하며 사실상 거부했다. 사측은 대화를 받아들이기는커녕 오히려 철도 노동자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철도청은 지난 8월 8일에 일방적으로 분당선의 열차 차장을 줄이겠다고 통보해 왔다. 시험 가동을 해 보고 이상이 없으면 곧바로 시행하겠다는 것이다.

 노조는 갑작스런 이 조치에 대해 "노조는 인력 감축을 합의할 대상이 아니"라는 철도청의 의지를 보여 주기 위한 '도발'이라고 여기고 있다. 그리고 이 조치에 이어 화물 열차 차장 줄이기 등의 다른 공격도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더 이상의 노동 강도 강화와 인력 감축은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은 조만간 노동자들이 행동에 나설 여지를 만들어 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민영화 법안 상정이 코앞에 닥쳐 있는 상황에서 철도청의 공격은 민영화 반대 투쟁에 기름을 붓는 구실을 할 수도 있다. 현안들에 대한 조합원들의 불만은 민영화 반대 투쟁을 시작하는 데 충분한 동력을 제공해 줄 수 있다.

 사실상 다양한 인력 감축 시도, 노동강도 강화, 빈번한 산재 발생은 민영화 추진 과정에서 비롯하는 문제들이다. 이 때문에 현안을 둘러싼 투쟁은 민영화 반대 투쟁의 일부이다.

 현안을 둘러싼 투쟁은 민영화 법안이 국회에 상정되는 것 자체를 막는 투쟁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미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된 다음에는 싸워서 되돌리기가 쉽지 않다. 민영화를 막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민영화 법안이 아예 국회에 상정되지 않도록 파업을 통해 강력한 힘을 보여 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