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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난민87》 :
난민들의 진짜 이야기

《난민87》 엘르 파운틴 지음, 박진숙 옮김 | 내인생의책 | 2019년 | 296쪽 | 15000원

“제로보다 약간 더 높은 확률에 내 인생을 건다”. 난민들의 처지를 명확하게 표현한 부제다. 《난민87》은 평범한 사람들이 왜 난민이 될 수밖에 없는지, 왜 죽음의 확률에 목숨을 걸 수 밖에 없는지를 생생하게 다룬다.

저자 엘르 파운틴은 3년간 에티오피아에 직접 체류하며 난민들의 이야기를 소설로 썼다. 저자는 소설의 배경이 되는 나라의 국명을 서술하지 않았는데, 소설 속 이야기가 시리아, 미얀마, 그리고 다른 여러 나라 난민들의 경험을 함께 상기시키고, 어느 한 나라의 정치적 상황에 이야기를 함몰시키지 않기 위함이라고 밝혔다. 《난민87》은 세계 곳곳의 수많은 난민들의 이야기인 것이다.

《난민87》은 출간 즉시 아마존 청소년 문학 부문에서 1위에 올랐고, 초판 5천 부가 3일만에 매진되기도 했다. 우파와 정부·언론들이 인종차별을 퍼트리며 난민을 범죄자 취급해도, 대중들은 난민의 삶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 준다.

험난한 여정

《난민87》의 주인공 시프는 아프리카의 평범한 청소년이다.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며 더 나은 미래를 꿈꿨다. 하지만 시프의 아버지가 정부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납치됐고, ‘반역자’의 가족들은 군대에서 평생을 복무하거나 금광에서 강제노동을 할 운명에 처하게 됐다. 나라를 떠나지 않으면 시프에 미래는 없었다. 시프는 같은 처지인 비니와 나라를 떠나기로 했지만, 이내 정부에 발각돼 납치를 당한다.

시프와 비니가 수감된 수용소는 사막 위의 선박용 컨테이너였다. 컨테이너는 해가 뜨면 지옥불처럼 달궈졌고, 해가 지면 냉기를 뿜어냈다. 식사는 하루에 한 번 제공되는 딱딱한 빵과 진흙수프가 전부였다. 하루에 단 10분 컨테이너 밖을 나가 하늘을 볼 수 있었고, 그것이 시프를 더욱 괴롭게 했다.

그 안에서 만난 사람들은 고문으로 다리를 절름거리거나 팔다리가 이상하게 휘어 있었다. 끔찍한 환경 속에서 몸은 앙상하게 말랐고, 기침이 끊이지 않았다. 그 사람들도 시프처럼 군대를 피하거나 다른 나라로 탈출하려다가 잡혀 온 사람들이었다. 한 사람은 20년간 전역하지 못한 사람들을 보고 탈영했다가 잡혀 왔다고 이야기했다. 정부 비판을 하다가 15년째 수감 중인 저널리스트 요나스도 있었다. 그는 시프와 비니의 탈출을 도울 테니 수용소와 수감자들의 존재를 세상에 알려달라고 했다. 요나스는 탈출을 설득하며 말한다. “너희를 석방시켜 줄 확률은 제로야. [탈출할] 확률은 그것보다는 살짝 더 높아.”

시프와 비니는 수용소를 탈출하지만, 비니는 교도관의 총에 맞아 유명을 달리했다. 시프는 국경을 넘었지만, 그 나라의 언어도 못하고 아는 사람도 없었다. 그 나라에선 범죄 조직들이 난민을 납치해 금품을 요구하고 노예로 팔았다. 브로커들은 유럽으로 가길 원하는 난민들을 속이거나 팔거나 죽이기도 했다. 시프는 그 나라에서 살 수 없었다.

가까스로 동향인인 메스핀을 만나 도움을 얻었지만, 유럽을 가기려면 돈이 필요했다. 메스핀의 딸인 알마즈는 국경보안대에게 돈을 주고 국경을 넘었다고 이야기했다. 돈이 많으면 국경을 지나 해안으로 바로 갈 수도 있었다. “돈이 모든 일을 결정했다.”

시프는 큰 돈을 지불했지만 60~70명이 함께 타는 낡은 트럭에 한 자리를 얻었을 뿐이다. 그 트럭은 도중 전복돼 수많은 부상자를 만들었다. 부상자와 어린이가 있는 가족들은 사막에서 낙오됐다. 시프가 지중해를 건널 배는 지붕도 없는 낚시배였다. 난민 수백 명이 낚시배 하나에 목숨을 걸고 유럽을 향했다. 결국 배는 파도에 잡아먹혔다. 구조 헬리콥터가 오지 않았다면, 모두 죽었을 것이다.

시프는 유럽을 향하며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 중 유럽까지 다다른 사람은 시프와 알마즈뿐이다. 이 책은 중동과 아프리카의 수많은 난민들의 여정이 얼마나 위험하고 비극적인지를 세밀하게 보여 준다.

진정한 범죄자

난민들이 이토록 위험하고 성공 가능성이 낮은 유럽행을 택하는 것은 다른 선택지가 없기 때문이다. 독재 정권뿐 아니라 전쟁과 경제 붕괴, 환경 파괴 등으로 삶의 터전을 잃은 난민들은 삶을 위해 떠날 수밖에 없다. 누구도 난민이 되길 원하지 않았다. 살기 위해 국경을 넘는 것은 범죄가 아니다.

진정한 범죄자들은 중동과 아프리카를 생지옥으로 만든 제국주의 국가들과 다국적 기업들이다. 20세기 초 제국주의 국가들은 중동과 아프리카를 편의대로 식민지 분할했고, 종족 간·종교 간 갈등을 부추기며 지금의 비극을 만들었다. 식민 지배 이후에도 친제국주의 독재 정권을 후원하며 민중들의 삶을 억압했다. 테러와의 전쟁을 운운하며 이라크·아프가니스탄 등지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제국주의 국가들은 아랍 혁명을 분쇄하는 데도 앞장섰다. 다국적 기업들은 석유와 첨단산업에 꼭 필요한 지하자원을 위해 중동과 아프리카를 여전히 쥐고 흔들려 한다. 그 결과로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수단, 콩고, 예멘 등지에서 수많은 난민들이 발생한 것이다.

시프는 지중해에서 구조된 뒤, “두 번째 삶을 살 기회를 얻”었음에 안도한다. 하지만 그 삶은 여전히 험난할 것이다. 난민 발생에 책임이 있고, 난민을 받아들일 능력이 있는 수많은 국가들이 책임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자국의 일자리와 복지, 범죄 문제를 난민들의 탓인양 떠넘긴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난민에게 아무 죄가 없음을. 한국을 찾는 난민들도 마찬가지다. 항구가 아니라 여객터미널에서 만날 뿐이다.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의 희생양인 모든 난민들을 환영하자. 난민 쟁점에 관심 있는 독자들에게 이 책을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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