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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편지
축구와 정치는 분리될 수 있을까?
자유한국당의 ‘경기장 유세’ 사건을 보며

3월 30일 창원에서 열린 경남FC와 대구FC의 리그 경기에서 자유한국당이 경기장 안에 들어와 선거운동을 했다. 프로축구연맹은 ‘종교적 차별행위, 정치적·인종차별적 언동’을 금지하고 이를 위반하면 징계까지 내린다. 그래서 4월 2일 연맹은 경남FC에 벌금 2000만 원 징계를 내렸고, 경남FC는 막무가내로 밀고 들어와 선거운동을 한 자유한국당에 공식 항의했다.

축구팬들은 자유한국당을 강하게 비판한다. 축구를 이용해 정치적 이익을 취하려다 경남FC에게 민폐를 끼쳤다는 것이다. 이해할 만하다. 경남FC처럼 지자체가 운영하는 시·도민구단들은 지자체장이 바뀔 때마다 구단운영 방향까지 바뀌는 경우가 종종 있다. 특히 경남FC는 홍준표가 경남도지사로 있을 때 홍역을 치른 경험이 있다. 홍준표는 당시 구단 성적이 좋지 않자, 진주의료원을 폐원하듯 경남FC를 해체(!)하려 했다가 반대 여론에 부딪혀 구단 해체 시도를 철회했다. 대신 구조조정과 각종 비리로 팬들의 속을 뒤집어놓았다. 그런 악몽 같은 기억 때문에 경남FC 팬들을 포함한 축구팬들은 자유한국당이 경기장에서 벌인 ‘정치적 행위’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다.

그러나 축구와 정치가 분리돼야 한다는 프로축구연맹 등의 규정과 주장에는 위선이 깔려 있다. 국제축구연맹(FIFA)를 중심으로 한 축구계 지배자들은 자신들의 정치적·경제적 권력을 이용해 어마어마한 이익을 취해 왔다. 축구 산업 자체가 자본가들의 유용한 이윤추구 수단이 된 지 오래다. 자본주의 시스템 아래에서 축구판은 말 그대로 정치판이다.

그래서 기울어진 축구장에서 규정은 지배자들 입맛에 따라 그때 그때 다르게 적용되고 해석된다.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일하다 죽고 다친 노동자들의 피가 서린 경기장에서 치러지는 월드컵은 ‘세계인의 축제’고, 월드컵 개최를 위해 빈민들을 학살한 브라질 정부를 규탄하는 관중들의 구호는 ‘금지대상’이 된다.

이처럼 지배자들은 경기장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마음대로 써먹으면서 평범한 축구팬들의 입에는 재갈을 물리는 역겨운 이중잣대를 적용해 왔다.

FC바르셀로나 팬들은 전반 17분, 후반 17분이 되면 경기장 안에서 14초 동안 카탈루냐 독립 구호를 외친다. 카탈루냐가 바르셀로나 공방전에서 패해 카스티야의 지배를 받기 시작한 해인 1714년을 기억하자는 의미다. 카탈루냐의 주도인 바르셀로나의 시민들이 자신들의 홈팀 경기에서 독립을 요구하는 일종의 시위를 하는 것이다. 킥오프 전에는 카탈루냐 깃발도 흔든다. 스코틀랜드 글래스고를 연고지로 하는 셀틱FC 팬들은 홈경기에서 아일랜드공화국군(IRA)을 지지하는 구호를 외치거나 팔레스타인 깃발을 흔들기도 한다. 셀틱FC는 아일랜드 이민자들을 중심으로 창단된 팀이다.

그런데 FC바르셀로나와 셀틱FC는 유럽축구연맹(UEFA)의 징계를 받기도 했다. 축구경기장에서의 정치적 표현을 금지한다는 규정을 어겼다는 이유로 말이다. 하지만 카탈루냐 깃발, IRA를 지지하는 구호, 팔레스타인 깃발을 금지하는 것이야말로 정치적이지 않나? UEFA와 피파를 후원하는 다국적기업들은 대부분 비인간적인 노동착취를 통해 부를 쌓았다. 그런 기업들의 광고판을 터치라인에 따라 쭉 세워두고 광고해 주는 건 정당한가? 검은 돈을 써서 월드컵을 유치하고, 노동자들을 갈아 넣어 초호화경기장을 짓고 있는 카타르 왕정이 파리 생제르맹에서 저지르고 있는 온갖 불법적 구단운영을 모른 척 눈감아주는 UEFA는 비정치적인가? 4년마다 개최국의 노동자 빈민들의 희생을 발판으로 천문학적 이윤을 챙기는 FIFA와 후원기업들은 제재나 감시를 받는가?

축구와 정치는 분리되기 힘들다. 물론 인종차별, 여성차별, 성소수자 혐오, 파시즘 같은 극우 정치 표현 등 약자들을 억압하는 언행들은 문제적이다. 계급, 인종, 성별, 성적지향에 관계없이 공은 누구에게나 둥글고 그라운드는 누구에게나 평평해야 하니까. 문제는 억압받는 이들의 정당한 의사 표현까지 막는 경우다.

경기장 내 어떤 정치적 표현이 정당한지 여부는 경기장 안팎의 사람들이 판단할 일이다. 이미 정치적·경제적 힘을 휘두르며 이익을 얻고 있는 자들 멋대로 정할 일이 아닌 거다.

축구장에서의 정치적 표현을 금지하는 규정을 지지할 수는 없다. 오히려 정치적 표현이 금지돼 자유한국당이 활개 칠 수 있었던 건 아닐까? 창원의 노동계급 가정 출신의 축구팬들 수천 명이 황교안 일당을 향해 구호를 외치며 나가라고 하는 게 연맹 규정보다 더 효과적이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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