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편지
세월호 참사 5주기 유가족 초청 간담회:
이윤보다 생명을 위한 사회를 건설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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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12일, 성공회 광주교회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5주기 유가족 초청 간담회에 다녀왔다. 이날 간담회에는 참사 진상 은폐에 맞서 46일간 단식투쟁을 하며 운동의 구심이 된 적이 있는 ‘유민 아빠’ 김영오 씨가 연사로 나섰다.
김영오 씨는 우익들의 음해와 공격에 지쳐 대인기피증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청년들의 요청에 응해 간담회 연사로 나섰다고 한다.
이날 간담회에서는 문재인 정부 시대 세월호 진상규명 운동의 방향, 참사의 원인에 대한 여러 가지 쟁점들, 그리고 김영오 씨 자신의 근황에 대한 여러 이야기가 오갔다.
문재인의 ‘소통’
김영오 씨는 박근혜 정권 시대와 문재인 정권 시대 세월호 운동이 처한 상황의 변화를 한 마디로 설명했다. 그것은 ‘불통 대 소통’이었다. 박근혜 정부는 전형적인 불통 정부였지만 문재인 정부 하에서는 유가족들과의 소통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김영오 씨에 따르면 이 정부는 ‘소통’이 되기에 오히려 싸우기가 더 어렵다. 문재인 정부에 무비판적 지지를 보내고 있는 이들은 유가족들의 절실한 요구에 “[문재인이] 다 해주고 있지 않으냐”며 불평한다. 그래서 그는 “일베·우익보다 더 힘들었던 건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이 우릴 공격할 때”라고 말한다. 문재인 정부는 “기다려달라”고 말하지만 유가족들은 벌써 5년 동안이나 “대기 상태”이다.
세월호와 국정원의 관계, DVR 조작에 대한 다양한 의혹들, 구조 방기의 이유 등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참사 책임자들에 대한 처벌 역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새 정부의 출범과 함께 새로이 구성된 2기 특조위도 수사권을 갖고 있지 않다. 김영오 씨는 수사권이 없는 이상 진상규명은 절대 불가할 것이라 주장했다. 참사 5주기를 맞은 유가족들이 특별수사단 설치를 절실히 요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진상 은폐와 구조 방기
자리가 자리이니만큼 침몰 원인에 대해서도 여러 이야기가 오갔다. 그는 내인설, 외력설 등 다양한 침몰 원인이 제기되고 있지만, 그 원인을 쉽게 단정 지을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김영오 씨는 많은 사람의 고민을 통해 그 원인이 밝혀지길 바란다고 했다. “침몰 원인을 알 수 있어야 구조 방기의 이유를 알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사실 침몰의 공학적 원인에 대해서는 다양한 말들이 오간다. 특조위는 과적과 불법 증·개축 등을 하나의 요인으로 제시했다. 그리고 ‘대해 선박설계’의 보고서는 여기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심지어 김어준 같은 형편없는 음모론자들은 ‘고의침몰설’을 주장하기까지 한다.
이처럼 침몰 원인은 아직 제대로 규명되지 못하고 있지만, 참사의 구조적 이유는 너무나 명백하다. 그것은 이 체제의 말도 안 되는 우선순위이다. 지배자들은 평범한 사람들의 생명과 안전에는 관심이 없다. 그들은 자본의 이윤과 제국주의 경쟁을 위해 수많은 사람을 희생시킨다. 이명박근혜 시절 선령 상한 제한의 완화, 무분별한 불법 증·개축과 무리한 운항, 제주 해군기지 공사를 위한 철근 수백 톤 적재 등 온갖 자본주의 모순의 단면들이 세월호라는 배 한 척에 집약돼있었다. 세월호가 아니더라도 어디에서고 참사는 벌어질 것이었고, 지금도 제2, 제3의 참사가 일어나고 있다.
기억과 투쟁
김영오 씨는 지난 2017년부터 광주에 거주 중이다. 그는 안산에서도 세월호 추모 공원이 혐오 시설로 내몰리는 것을 보며, 세월호 유가족들을 가장 뜨겁게 반겨주는 광주를 떠올렸다. 광주에서는 유독 노란 리본을 더 많이 볼 수 있는데 덕분에 힘이 난다고 한다. 김영오 씨는 광주의 5.18 유가족들에게 “절대로 분열되지 말라”는 조언을 들었다고 한다. 5월 광주가 지닌 기억과 세월호의 기억이 하나가 된 것이다.
그는 이명박근혜 정부 이래로 계속되고 있는 규제 완화를 비판하며 우리의 행동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김영오 씨는 1700만 촛불이 꺼졌다고 안타까워하며 정권이 바뀌었다고 안심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권의 배신과 무능이 입증되며 많은 사람이 대통령에게서 등을 돌리고 투쟁이 불붙을 조짐이 조금씩 보이는 지금 이 시점에 ‘촛불이 꺼졌다’는 그의 주장 자체에 완전히 동의할 수 없긴 했다. 하지만 이윤보다 생명을 위한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는 확실했다. 그리고 정권이 바뀌었다고 안심해선 안 된다는 그의 외침도 확실히 옳은 말이다.
문재인 정부와 자본주의에 맞서기
세월호 참사로부터 5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렀다. 억울하게 자녀를 잃은 유가족들의 슬픔이 분노로 바뀌고 그에 공감하는 수많은 사람이 패악한 권위주의 지배자를 무너뜨렸다. 하지만 촛불 정부를 자임하는 새 정권이 들어섰음에도 제2, 제3의 참사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김용균 씨의 죽음과 한솔제지 노동자의 죽음은 수많은 사람의 분노와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그럼에도 이 정권은 정신을 차리기는커녕 규제 샌드박스 법, 의료산업 규제 완화 시도 등을 통해 노동계급과 서민들의 생명을 끊임없이 위협한다. 이는 모두 이명박근혜 시절부터 추진돼왔던 것들이다. 노무현의 ‘설거지’를 이명박 정부가 해줬다면, 박근혜의 ‘설거지’는 문재인이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문재인 정권과 민주당으로부터 독립적인 운동 건설이 필수적이다. 문재인 정부 역시 본질적으로 자본주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친자본 정부이다. 민주당은 참사 이후 새누리당(지금의 자유한국당)과 야합해 누더기가 된 세월호 참사 특별법을 통과시키는 데 일조했다. 결국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안전사회 건설을 열망하는 사람들은 자본주의 체제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며 이를 대중적 운동으로 발전시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