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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편지 서평 《아픔이 길이 되려면》:
건강과 사회의 관계를 밝혀 자본주의 체제의 해악성을 들추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김승섭 지음, 동아시아 출판)은 건강과 질병의 근원을 사회적 원인으로부터 찾고 사회구조적 해법을 모색하고자 하는 책이다. 저자는 의학 수준이 눈부시게 발전하는 시대에 의료 기술만으로 과연 건강을 위한 충분한 해법이 될 수 있는지에 의문을 던진다. 저자는 건강과 질병의 근본적인 원인을 더 잘 이해하려면 사회구조적 원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 - 정의로운 건강을 찾아 질병의 사회적 책임을 묻다》 김승섭 지음 | 동아시아 | 2017년 | 320쪽

이러한 관점으로 건강을 연구하는 학문인 사회역학(Social Epidemiology)은 ‘질병의 사회적 원인을 찾고, 부조리한 사회구조를 바꿔 사람들이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라고 정의될 수 있다. 저자는 다양한 사례를 제시해 건강과 사회가 맺는 밀접한 관계와 제도가 사회적 약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설득력 있게 설명한다.

루마니아에서 시행된 낙태금지법 사례는 낙태의 경험이 결코 평등하지 않다는 점을 보여 준다. 낙태금지법으로 합법적이고 안전한 임신중절수술을 받지 못하게 됐을 때 가장 큰 피해를 받는 대상은 경제적으로 어렵고 피임에 충분히 접근하기 어려운 가난한 여성들이다. 그들은 법을 우회하려다 비위생적인 불법 수술, 유산 시도와 같은 위험한 방식에 내몰린다. 결국 전 세계적으로 매년 여성 수만 명이 목숨을 잃고 있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건강 연구’에 대한 사례는 해고와 고용불안이 당사자와 가족의 건강에 얼마나 해악적인지를 극명하게 보여 준다. 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걸프전에 참전한 군인들보다 쌍용차 노동자들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유병률이 훨씬 더 높았다. 수많은 해고노동자와 가족들이 뇌졸중, 심장마비, 자살로 삶을 마감하기도 했다.

저자는 실업의 짐을 온전히 자신과 가족에게 짊어지도록 만드는 정부의 소극적인 재취업 프로그램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한국과 같이 실업자의 재취업을 위한 실질적 지원이 없고 그들이 기댈 수 있는 공적 안전망이 취약한 사회에서 ‘해고는 살인’이 되기도 합니다.” 해고노동자의 상처와 아픔에는 사회구조적 문제가 깊게 자리 잡고 있다.

저자는 글로벌 기업의 ‘위험의 외주화’가 위험한 일터를 가난한 사람들에게 떠넘긴다며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외주화가 지속되고 확대된다면, 규제의 손길이 닿지 않는 국내 하청기업의 비정규직 노동자나 인도나 중국의 누군가는 제2의 황유미, 제2의 이숙영[‘삼성 백혈병’ 피해 노동자들]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금도 삼성과 같은 글로벌 기업들은 베트남, 인도,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노동자들의 피를 양분삼고 그들의 고통을 발판삼아 이윤을 극대화하고 있다.

이 책은 동성결혼 불인정과 성소수자 건강의 관계도 보여 준다. 미국에서 동성결혼을 인정하는 주(州)와 그렇지 않은 주에서의 성소수자들의 정신건강 상태는 확연히 달랐다. 동성결혼을 인정하지 않는 주에 거주하는 성소수자들은 인정하는 주의 성소주자들보다 불안장애, 정동장애 유병률이 훨씬 높게 나타났던 것이다.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차별과 낙인은 성소수자들을 정신적·심리적으로 위축시키고 정신건강을 병들게 한다.

인종차별은 우리 몸에 깊은 상처를 남긴다. 나오미 아이젠버거 박사의 실험 논문에 따르면 사회적 따돌림은 뇌 전두엽의 전대상피질 부위를 활성화시킨다. 이 곳은 인간이 물리적으로 통증을 느끼면 활성화되는 뇌의 영역이다. 즉, 사회적 따돌림은 물리적 폭력과 동등한 고통을 준다. 몇 년 전 벌어진 예멘 난민에 대한 혐오 조장이나 지금도 우리 삶에 스며들어 있는 온갖 인종차별들은 난민과 이민자들에 대한 실질적 폭력과 다르지 않다.

이러한 사회구조적 문제에 대한 분석이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은 다소 아쉽다. 해고노동자들에게 적절한 재취업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등 제도를 개선하면 상황이 더 나아질 것이다. 하지만 노동자들을 착취해 작동하는 자본주의 체제의 온갖 문제들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이런 아쉬움이 있지만, 실증적인 사례와 분석을 통해 이 체제가 노동자·대중들을 얼마나 아프고 병들게 하는지를 보여 준다는 점에서 이 책이 시사하는 바가 결코 작지 않다.

혁명적 좌파는 이러한 실증적 연구 사례들을 통해 자본주의 체제가 얼마나 해악적인지를 낱낱이 폭로하고 체제에 대해 더욱 근본적으로 도전해야 한다. 착취와 소외, 억압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에서만이 진정으로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 아픔이 진정으로 길이 되려면 자본주의를 타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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