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로 개강 연기 :
학생과 교·강사에게 고통을 떠넘기는 정부와 대학 당국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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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급속히 확산하면서 전국 4년제 대학 대부분이 개강을 2주 연기했다. 3월 16일부터 2주간은 온라인으로 비대면 강의를 진행하고, 실제 등교일은 3월 말이 될 전망이다. 3월 10일 서울여대는 코로나19 사태가 안정될 때까지 온라인 강의를 진행하겠다고 발표했다. 아예 1학기 전체를 온라인 강의로 진행하는 방안까지 검토 중이라고 한다.
올해 대학에 입학한 20학번 새내기들은 고등학교 졸업식과 대학교 오리엔테이션‧엠티의 추억도 없다. 가뜩이나 학점‧스펙 경쟁으로 힘든 대학 생활에서 이 시기 선배·동기들과의 교류가 ‘그나마’ 추억일 텐데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와 대학 당국이 온라인 비대면 강의가 제대로 이뤄지도록 전반적 지원을 해야 마땅하지만 교육부와 대학 당국들은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당장 다음주부터 온라인 비대면 강의를 시작하는데, 시스템이 제대로 구축돼 있지 않아 수업을 어떻게 진행할지 학생도, 교수도 모른다. 학생들이 교육의 질 저하를 우려하는 것이 매우 합당하다.
서울시립대에 다니는 한 학생은 이렇게 말했다.
“저는 이번 학기에 15학점을 들어요. 2주간 온라인 비대면 강의를 한다고 해서 이를 위한 준비를 해야 하는데, 1주일도 안 남은 지금까지 구체적인 공지가 없습니다.”
교‧강사들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다. 온라인 비대면 강의에 능숙한 게 아니라서 이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도 필요하지만 그러기는커녕 장비 구입까지 각자에게 내맡기는 곳들도 있다. 온라인 비대면 강의에 필요한 카메라를 교‧강사가 직접 구입하는 경우도 있다.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한국어학당 강사들은 강의가 축소돼 임금이 삭감됐다. 그러나 아무도 책임져 주지 않는다.
학생들의 원성도 자자하다. 학과, 수업별 수업 내용과 방식에 따라 ‘온라인 비대면 강의’로는 원활한 수업이 가능하지 않은 경우가 있다.
홍익대 건축학과 학생은 이렇게 말했다.
“도면을 그리면 교‧강사가 대면해 비평을 해줘야 하는데, 온라인으로 하면 설령 1대 1로 하더라도 사실상 수업이 불가능해요. 게다가 학교 당국은 우리 과의 등록금이 타 과보다 비싼 이유가 기계 사용‧유지비 때문이라고 말해요. 그럼 수업을 한 달간 안 하니 등록금도 삭감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실습 과제도 줄여야 하고요. 안 그러면 학생들은 코로나19에 생계, 학업 걱정으로 개인이 겪을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닐 거예요.”
명지전문대학 뷰티매니지먼트과 학생은 이렇게 말했다.
“이론만 배우는 학과가 아닌데 온라인 강의로 수업이 원만하게 진행될지 불안하고 답답합니다. 그런데 학교에선 방학 중 ‘집중 수업’을 해 대체하겠다고 합니다. 많은 뷰티과 학생들은 방학 때 자격증을 따기 위해 학원이나 학교에서 하는 자격증 반을 다니기 때문에 어려운데, 대체할 다른 방법이 있으면 좋겠어요.”
농학생(청각 장애인)을 위한 수어 통역 시스템이 마련된 곳도 거의 없다. 교육부는 “장애 대학생이 원격 강의를 듣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지원”하겠다고 했지만 이것도 말뿐, 관련 예산도 배정해 두지 않았다.
학과별 수업 내용에 맞게 보완 방식을 채택하게 하고, 그에 맞게 정부와 대학 당국이 재정적‧물질적 지원을 해야 한다.
수업은 줄었는데 등록금은 그대로
개강이 연기되고 제대로 된 수업을 들을 수 있을지도 불확실하지만 학생들의 등록금 부담은 그대로다. 대부분의 대학생들이 가뜩이나 높은 등록금(2016년 기준 OECD 국가 중 사립대 등록금 4위, 국립대 등록금 6위)을 내놓고도 한 달 가까이 수업을 제대로 못 듣는다. 대학 시설(도서관, 자치 활동 공간 등)도 사용할 수 없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등록금을 일부 반환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총학생회‧학생회 40여 곳이 모여 있는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가 1만 2000여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는데, 83.8퍼센트(1만 570명)가 ‘등록금 반환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청와대 국민 청원에 ‘대학교 개강 연기에 따른 등록금 인하 건의’가 올라왔는데, 일주일 만에 7만 명 가까이 여기에 동참했다.
2월 28일, 교육부는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 활동가들과의 면담 자리에서 “법적으로 등록금 반환은 어렵다”고 말했다. “현행법상” 월 단위부터 환불이 가능한데, 2주가량 온라인 비대면 강의를 하니 환불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코로나19로 수출 기업들의 경영이 악화하자 정부가 신속하게 3조 1000억 원을 추가해 총 260조 원가량의 정책금융을 지원하겠다고 나선 것과는 대조적이다. 기업들의 이윤 피해에는 민감하게 반응하며 곳간을 내어 주면서, 등록금과 생활비를 버느라 허덕이는 학생들을 지원하는 데는 이토록 인색한 것이다.
더군다나 교육부와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코로나19를 이유(계기)로 법정 수업 시수를 원격 수업으로 대체할 수 있게 관련 법 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러한 법 개정은 손 쉽게 결정하면서 등록금 반환을 위한 법 개정은 왜 안 되는가. “현행법상” 환불이 불가능하다는 답변이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겨지는 이유다.
매해 수업료(‘인건비’)와 교육 인프라 구축을 이유로 등록금 인상을 시도하던 대학 당국들은 수업도 학교 시설 이용 보장도 안 되는 상황이 닥치자 등록금은 한 푼도 돌려줄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학교가 멈춰서 시설·관리·운영 등에 드는 비용은 대폭 준 반면에 수입(등록금)은 그대로니, 이대로라면 오히려 대학들은 돈을 더 버는 격 아닌가?
그런데도 대학 당국들은 ‘등록금이 동결돼 만성적으로 재정이 어려워 (등록금) 반환이 불가하다’, ‘교수‧직원 월급을 줄일 순 없지 않냐’며 뻔뻔하게 굴고 있다. 학생들의 등록금을 올렸다고 노동자들의 임금을 인상해 준 적도 없으니 순전한 거짓말이다. 그동안 쌓아둔 돈은 풀지 않고, 회계 비리를 저질러 돈을 줄줄 새게 하고, 노동 조건과 학습 조건을 공격해 온 대학 당국들의 전형적인 이간질이기도 하다.
정부와 대학 당국들의 이런 결정은 학생들의 고통은 안중에도 없는 처사다.
2018년 한국 청소년 정책 연구원의 조사를 보면, 만 19~29세를 대상으로 채무 발생 이유를 물었을 때 72.2퍼센트가 학자금 마련 때문이라고 답했다. 생활비 부담도 만만치 않아서 많은 대학생들이 길게는 하루에 십수 시간씩 아르바이트에 매달린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이마저도 위협받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노동 상담 센터들엔 코로나19로 인한 청년들의 해고‧휴업 상담이 줄 잇고 있다고 한다.
준정부기관인 한국장학재단이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아르바이트 자리를 알선해 주는 ‘국가 근로 장학생’들의 처지도 별반 다르지 않다. 서울 소재 대학에 재학 중인 한 학생은 이렇게 말했다.
“저는 지역 도서관에서 일하는데 코로나19로 출근이 미뤄졌어요. 그만큼 돈도 안 준다고 합니다. 국가 근로 장학금은 한국장학재단에서 선정한 장학생들에게 주는 제도라 이미 장학금이 배정돼 있어요. 그런데 저의 책임도 아닌 ‘국가 비상 사태’로 일을 못 하는데, 돈도 안 주다니 막막합니다. 그런데 등록금도 안 돌려준다니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어요.”
정부가 얼마 전 발표한 추경안 11조 7000억 원은 지역 사회를 방역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보완하기에 턱 없이 부족한 액수다. 심지어 이 추경안에는 대학 교육과 관련된 예산이 하나도 없다. 7조 8260억 원(2018년 기준 사립대학들의 적립금) 이상을 쌓아 놓고 있는 대학 당국들도 돈을 풀지 않는다.
코로나19사태에서도 학생들의 필요와 양질의 교육보다 대학 당국들의 이윤 보전이 우선되고 있다. 정부와 대학 당국들은 학생들과 교·강사들에게 부담을 떠넘기지 말고 제대로 된 지원에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