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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 불평등 키울 하위권 대학 퇴출

문재인 정부의 3주기 대학기본역량진단평가(이하 진단평가)가 5월부터 8월까지 진행된다. 진단평가는 박근혜 정부가 2015년에 첫 실시한 대학구조개혁평가의 이름과 일부 내용을 약간 바꾼 것이다. 교육부는 진단평가에 따라 대학들을 분류해 재정 지원의 수준을 달리할 계획이다.

최근 교육부는 대학 18곳을 진단평가 참가 자체를 제한하는 ‘재정지원제한대학’으로 선정해 개별 통보했다. 재정지원제한대학은 두 단계로 나뉘는데, 그중 2유형이 되면 국가장학금과 학자금 대출이 모두 제한되고, 기존에 참여하던 재정지원사업도 중단된다. 교육부는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대학 지원과 등록금 마련에 유의하라고 할 뿐 어떤 대책도 내놓지 않았다.

정부는 이처럼 재정 지원을 차별해 구조조정을 촉진하려 한다. 가뜩이나 대학 입학생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정부 지원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시장 원리를 따르겠다고 하면 하위 등급 대학에 대한 퇴출 압박은 강화될 것이다. 한국 대학의 등록금 수입 의존율은 50~60퍼센트 정도이다. 실제로 지난 2주기 진단평가에서 재정지원제한 대학으로 선정됐던 동부산대와 군산의 서해대는 지난해와 올해 각각 폐교됐다.

퇴출 대상이 아닌 대학들 사이에서도 경쟁 압박이 커져 구조조정이 이뤄질 것이다. 실제로 올해 부산 신라대는 신입생 정원의 15퍼센트를 축소하고, 예술계열 학과들을 통폐합한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신라대는 재정난을 이유로 청소노동자 50여 명을 계약이 만료되자마자 내쫓기도 했다.

형편 없는 정부의 고등교육 재정 지원 정부는 재정 지원은 늘리지 않고, 수익자 부담 원칙을 내세우며 교육에 대한 부담을 학생과 노동계급에게 전가하고 있다

서열이 낮은 대학들에는 노동계급의 자녀들이 다닐 확률이 높은데, 정부가 하위등급 대학 퇴출을 유도하는 것은 계급 불평등을 키우고 노동계급의 구성원들에게 더 큰 고통을 주는 것이다.

폐교는 아무 잘못이 없는 학생들에게 멍에와 고통을 전가한다. 2017년 폐교된 한중대와 대구외대의 재적생 1493명이 갈 곳 없이 뿔뿔이 흩어졌다. 2012년 이후 재단 비리로 폐교된 명신대·성화대·벽성대의 재적 학생 중 44퍼센트만이 다른 대학에 특별편입학했다(민주당 김태년 의원실, 2014년). 학생들은 폐교 대학 출신이라는 낙인이 찍힐 뿐 아니라, 각종 증명서조차 떼기 어려운 처지다.

폐교 대학의 교직원들도 아무 대책도 없이 해고로 내몰렸다. 2018년 폐교된 서남대의 경우 151명이 직장을 잃었다. 교원들 중 전공에 맞는 학과로 이직한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주용기 교수, 2018년) 인근 대학과 통폐합해 고용을 보장하거나 국립대로 교직원 고용을 승계하면 교육의 질을 높이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을 테지만 정부는 나 몰라라 하고 있다. 임금 체불 문제도 심각하다.

지금 문재인 정부의 대학 구조조정 계획은 정부가 고등교육을 무계획적으로 시장에 맡겨서 생겨난 문제들의 책임을 대학 운영에 아무런 책임도 없는 대학 노동자들과 학생들에게 전가하는 것이다. 운영이 어려운 대학은 폐교할 것이 아니라 국공립화하고, 교육의 질을 높이도록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한다.

학령인구 감소 탓인가?

그간 정부들은 학령인구 감소를 이유로 대학 구조조정을 정당화해 왔다. 노무현 정부 때부터 박근혜 정부 때까지 대학 정원은 16만 명 넘게 줄었다. 문재인 정부는 대학구조조정이 큰 반발을 사 온 점을 의식해 평가 기준과 표현 등을 약간 바꿨지만, 하위권 대학들을 퇴출시킨다는 기본 방향은 바꾸지 않았다.

그러나 학령인구 감소가 대학에 문제로 여겨지는 데에는 그간 정부가 대학 교육을 책임지지 않고 시장에 내맡겨 온 탓이 크다. 수요자 부담 원칙의 시장주의적 교육 정책이 문제의 핵심 원인이다.

한국의 사립대 비율은 80퍼센트에 육박하고, 재정을 등록금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특히 지방의 열악한 대학들에게는 학생 수 감소가 재정난으로 직결돼 존폐 위기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정부 지원은 아주 형편없다. ‘OECD 교육지표 2020’(2017년 기준)를 보면 한국의 고등교육부문 공교육비 중 정부의 재원 비율은 GDP대비 0.6퍼센트 수준이다(OECD 평균 1퍼센트). 고등교육 투자액 중 정부 재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38.1퍼센트로 민간이 차지하는 비중(61.9퍼센트)의 절반밖에 안 된다(그래프 참조). 게다가 얼마 안 되는 정부의 재정 지원조차 상위권 대학에 집중돼 있다. 전체 국고보조금 중 34.9퍼센트가 상위 10개 대학으로 간다.

문재인 정부는 이런 상황을 개선하는 것과는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올해 1월 정부가 발표한 ‘제3기 인구정책 TF 주요과제 및 추진계획’에는 대학 구조조정 내용이 포함돼 있다.

정부는 신입생 충원, 재정 관리가 어려운 ‘한계대학’을 관리하겠다고 했는데, 이 대학들은 폐교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교육개발원(국무총리 산하)에 따르면 현재 한계대학은 84곳이고, 그중 전임 정부에서 부실대학으로 선정됐던 학교가 다수다.

정부는 산업 변화에 따라 대학 정원과 시스템을 바꾸겠다(‘첨단분야 인력수요 증가에 대응하기 위한 대학 정원제도 합리화’)고도 한다. 이것은 대학 교육도 한국 자본주의의 경쟁력 제고에 이바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 맞춤형 인력 양성이 강조되면서 지난 10년간 공대 정원은 1만 명가량, 의약계열은 2배 정도 늘었다. 반면에 인문·사회계열 입학 정원은 1만 명가량 줄어들고, 학과 통폐합이 이어져 학생들이 불안에 떨고 고통을 겪어 왔다. 문재인 정부의 계획은 이런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다.

수익성을 우선한 고등교육 정책은 교육 기회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교육의 내용도 협소하게 만든다. 교육은 자본주의 국가의 경쟁력과 기업 경쟁력을 기준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 발달을 위해 누구나 누려야 할 권리로서 제공돼야 한다. 열악한 대학들에 정부의 지원은 줄이는 게 아니라 더욱 강화돼야 한다. 그러려면 교육과 사회의 우선순위가 바뀌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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