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21》:
현대화폐이론 비판: 정부는 정말 화수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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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마르크스21》 30호(2019년 5~6월호)에 실린 글이다. 《마르크스21》 편집부의 양해를 얻어 본지에 게재한다.
개혁적인 정치인이 야심만만한 공약을 내놓을 때 닳고 닳은 노회한 동료 정치인들이 하는 말이 보통 이렇다. 공약은 좋지만, 예산을 어떻게 확보할 건데? 필자가 2000년대 초반 민주노동당에서 활동할 당시 무상교육, 무상의료를 외치면 여러 시민들이 이구동성으로 한 말이 바로 재원, 즉 돈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였다.
최근에 유행하고 있는 현대화폐이론(Modern Monetary Theory, 이하 MMT)에 따르면, 1 이제 이런 골치 아픈 문제에 직면하지 않고서도 많은 사람들이 바라는 복지 정책을 마음껏 펼칠 수 있게 됐다. 정말 화수분河水盆 2 이라도 발견한 듯하다.
2016년 미국 대선후보 경선 때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현대화폐이론을 언급하며 ‘정부의 지출 확대’를 강조했다. 그의 경제 보좌관 역할을 했던 스테파니 켈튼 뉴욕주립대 교수가 MMT의 주창자 중 한 명이다. 또 최근 미국 정치계의 샛별처럼 등장한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즈 하원의원은 온실가스 배출을 제로로 만들기 위해 전력 수요를 전부 재생에너지로 대체하자는 ‘그린 뉴딜’을 내세우고 있다. 그는 MMT에 근거해 정부가 돈을 찍어내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영국 노동당수 제러미 코빈도 확장적 재정정책을 주장하며 MMT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인다. 미국의 민주사회주의자DSA 단체나 영국 노동당이 MMT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으로 봐서 한국의 정의당도 이 대열에 합류하지 않을까 예상해 본다.
한편 정부가 거둬들이는 세수稅收 이상을 지출하면 안 된다며 균형재정론을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신자유주의 진영에서는 MMT가 무슨 해괴한 논리냐며 적극 반박하고 나섰다. 이는 여느 케인스주의와는 다르게 자신들의 경제적 근본을 뒤흔드는 요소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MMT에 따라 다양한 주장들이 펼쳐지고 있지만 핵심 내용은 세 가지이다.
첫째, 정부가 조세를 특정한 증표로 납부하도록 함으로써 그 증표가 화폐가 된다. 둘째, 정부가 재정지출을 통해 화폐를 창출하고 조세 징수를 통해 창출된 화폐를 거둬들인다. 셋째, 정부는 화폐 발행을 통해 정부 채무를 모두 상환할 수 있다.
모든 이론이 다 그러하듯이, MMT도 그 발생 과정을 살펴보면 이 이론의 내용과 특징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위의 세 가지 특징에서 알 수 있듯이, MMT는 두 가지 경제 이론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하나는 케인스주의이고 다른 하나는 지금은 잊혀진 이단적 화폐경제 이론인 크나프(1842~1926년)의 ‘국정화폐론’이다. 그래서 사실 현대화폐이론이라고 하지만 결코 ‘현대’적이지 않다.
국정화폐론
크나프는 《국정화폐론》The State Theory of Money 의 첫머리에 이렇게 주장한다. “화폐는 법의 창조물이다. 그러므로 화폐 이론은 법률의 역사와 함께 다뤄야 한다.” 3 크나프의 국정화폐론은 고전파를 계승한 주류 경제학이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과는 확연히 다르다. 주류 경제학은 화폐가 교환으로부터 출현하는 매개 수단이라고 봤고, 마르크스주의는 화폐를 다른 상품의 가치를 나타내는 일반적 등가물로서 상품화폐라고 여겼다. 이에 반해 크나프는 국가가 화폐의 법적 유효성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크나프는 국가만이 화폐를 발행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단지 국가가 무엇을 세금으로 납부하도록 하고 또 부채의 지불수단으로 사용하도록 하는지가 중요하다고 봤다. 예를 들어 어떤 증표는 가치 있는 무엇으로 만들어졌거나 시장에서 그만한 가치로 인정받기 때문이 아니라 법률로 강제하기 때문에 가치를 표현하는 것으로 봤다. 4 은행의 신용이나 채권도 국가에 의해 조세 납부나 채무의 지불 수단으로 인정받기 때문에 화폐가 된다는 논리다. 그래서 크나프는 증표token를 의미하는 라틴어 카르타charta를 사용하여 화폐를 ‘증표적인chartal 지불수단’이라고 규정했다. MMT는 이런 배경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증표화폐론chartalism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크나프가 국정화폐론을 주장하던 당시 독일에서는 역사학파가 우세를 보이던 시기였음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당시 영국과 프랑스에 비해 후발 산업화를 추진하던 독일은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보호무역주의를 견지하고 국가의 경제 개입을 통해 경제발전을 추진했는데, 이런 독일의 처지를 이론화하고 또 정당화한 것이 역사학파였다.
역사학파는 영국의 고전파 경제학이 받아들이고 있었던 화폐수량설을 거부했다. 1922년 독일이 하이퍼인플레이션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와중에도 독일 제국은행 총재 하베르슈타인은 오히려 충분히 빠른 속도로 화폐를 찍어 내지 못해서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그는 이미 끔찍한 인플레이션이 나타나는 상황인데도 화폐를 더 찍어내면 인플레이션이 더 악화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조금치도 하지 않았다. 그는 “엄청난 은행권 발행으로 통화량이 불어나게 된 것은 마르크 가치 하락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라고 주장했다. 이는 고전파 경제학이 가르쳤던 것처럼 화폐량이 가격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가격이 화폐량을 결정한다는 믿음이었다. 5
이런 믿음은 분명 화폐수량설을 뒤집는 논리였다. 화폐수량설에 따르면, 화폐량과 그 유통속도가 주어지면 실물에서 생산되는 재화와 서비스의 수량과 가격이 결정된다. 그래서 완전고용이라는 조건에서 화폐량의 증가는 가격 상승, 즉 인플레이션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경제가 이미 완전고용을 이루고 있는 상황에서 국가가 화폐를 경제 내부로 과다하게 투입하면 실물경제의 확장은 일어나지 않고 다만 인플레이션만 나타난다는 것이 화폐수량설의 주장이다. 이 때문에 국가가 명목화폐를 발행함으로써 가치를 창출한다는 크나프의 국정화폐론은 화폐 발행으로 물가가 상승하고 이것이 사회 불안정의 원인이 된다는 점 때문에 주류 경제학자들로부터 맹비난을 받았고, 결국 이단적 이론으로 매도됐다.
밀턴 프리드먼 같은 통화주의자들이 화폐수량설을 굳게 견지하고 있었지만 그 이론적 맹점은 이미 마르크스가 지적한 바 있다. 마르크스가 비판한 핵심은 화폐량과 유통속도가 상품의 가격과 수량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라는 점이었다. 지난 2008년의 경제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주요 국가들이 양적 완화를 통해 많은 화폐를 경제에 공급했지만 인플레이션은 나타나지 않았다. 실물경제가 침체해 있었기 때문에 화폐 수요도 높지 않았다. 실물경제에 사용되지 않은 화폐는 축장hoarding됐기 때문이다.
케인스와 마르크스
크나프의 국정화폐설은 케인스에 의해 부분적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케인스는 고전파 경제학 체계를 비판했지만 그 비판을 끝까지 밀어붙이지 못하고 중도에서 멈춰버렸다. 그의 화폐론도 크나프와 같은 명목화폐론과 고전파 경제학의 신용화폐론 6 을 절충하는 입장이었다. 케인스는 투자와 저축이 사전에는 불일치할 수는 있지만 사후적으로는 일치한다고 주장했고, 화폐 또한 장기적으로는 실물경제에 영향을 미치지 않고 중립적이라는 입장으로 후퇴했다. 그 덕분에 케인스주의 경제학은 고전파 경제학의 내용을 많이 수용하면서 ‘신고전파 종합’을 이룰 수 있었다.
그럼에도 케인스는 고전학파 경제학자들처럼 화폐가 실물경제를 단순히 반영만 한다는 화폐 중립성을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이 때문에 케인스는 저축된 자금이 투자로 이어지지 않을 때(유효수요가 부족할 때) 재정정책과 더불어 통화정책을 추구하면 인플레이션을 유발하지 않고서도 완전고용을 이룰 수 있다고 봤다.
그리고 금본위제나 금환본위제가 물러나고 불환지폐가 대세인 요즘 화폐는 하나의 증표나 상징이라는 증표화폐론의 주장이 오늘날의 현실을 잘 반영하는 듯이 보인다. 7 하지만 이것은 세 가지 점에서 잘못됐다.
첫째 증표화폐론에 따르면 국가가 가치(또는 가격) 척도의 기능을 하는 계산화폐를 발행하는 유일한 주체이기 때문에 국가가 모든 상품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예를 들면 A라는 상품의 가격이 500원이지만 현재 유통 중인 화폐량만큼 새 화폐를 발행하면 그 가격이 1000원이 된다. 그러나 (대외무역을 제외할 때) 국가가 가격을 결정하는 데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상품의 가치를 결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국가는 상품과 불환지폐의 비율을 결정할 뿐이다. 앞에서 예로 든 A라는 상품이 4시간의 사회적 필요노동이 투입돼 만들어진 것이라고 할 때 국가가 불환지폐를 얼마나 많이 방출하는지와 상관없이 A라는 상품은 늘 4시간의 사회적 필요노동이 들어간 재화가 된다. 다만 4시간의 사회적 필요노동이 이전에는 500원의 가격으로 표현됐다면 이제는 1000원으로 표현될 뿐이다.
이런 점은 둘째 문제로 연결된다. 설사 국가가 계산화폐를 발행하는 유일한 주체라 할지라도 국가는 조금의 가치도 창출하지 못한다. 정부가 많은 돈을 찍어내면 8 그 화폐가 계산화폐로서 다른 가치 있는 상품을 살 수 있기 때문에 부富가 증대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회 전체의 부는 동일하고 다만 사회 구성원 사이에서 부의 재분배가 있었을 뿐이다. 단순하게 말해서 사회 전체에 유통되는 화폐량만큼 신규로 발행한다면 민간에서 보유하고 있는 화폐의 구매력은 절반으로 줄어들 것이고 국가가 그 절반을 가져가게 된다. 9
그렇다면 가치는 어디서 생겨나는 것일까 하는 것이 세 번째 문제다. MMT 이론가들은 국가가 화폐를 발행하는 것에서 논의를 시작하지만 그것은 부의 재분배일 뿐이다. 부의 재분배가 아니라 부가 만들어진 곳에서 시작하려면 생산의 지점으로 돌아가야 한다. 생산은 두 가지 점에서 중요하다. 노동자들이 모든 가치를 생산하지만 생산 과정에서 그 일부를 착취당하고, 자본가들은 이윤을 위해 생산 과정에 자본을 투자한다.
그런데 자본가들은 자금이 많다거나 금리가 낮다고 해서 투자하지는 않는다. 2008년 이래로 장기불황을 겪고 있는 세계경제에서 양적완화로 화폐가 늘어나고 제로금리 수준임에도 투자가 활발하지 못하다. 자본주의에서 투자가 활발하고 고용이 증대해 완전고용에 이르도록 하는 추동력은 근본에서 금리 수준이나 정부의 경기부양책(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이 아니라 바로 이윤율의 수준이다. MMT 이론가들은 자신들의 이론 속에 내포돼 있는 케인스주의 요소 때문에 이런 점을 보지 못한다. 경기 불황기에 케인스주의가 효과가 없었다는 사실은 비단 2008년 이후의 장기불황에만 그치지 않는다. 1933년 대통령이 된 루스벨트가 케인스주의적 뉴딜정책을 추진했지만 1937~1938년에 다시 심각한 공황에 접어들었다. 또한 장기호황이 끝나고 1970년대 중반부터 세계경제가 장기 불황기에 접어들면서 많은 국가들이 케인스주의적 경기부양책을 실시했지만 모두 효과가 없었다. 이들 사례는 케인스주의의 실패를 나타낸다. 10
조금은 학술적이지만 이론적으로 중요한 점은 MMT 이론가 중 한 명인 랜덜 레이가 화폐는 생산과 교환의 필요 때문에 생겨난다는 내생적 화폐이론의 전통에서 벗어나 화폐를 외부에서 주입되는 것(외생적 화폐이론)으로 후퇴했다는 점이다.
화폐수량방정식을 사용해 내생적 화폐이론과 외생적 화폐이론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화폐수량방정식은 MV=PY인데, 이 때 M은 화폐량, V는 화폐의 유통속도, P는 가격(또는 물가), Y는 생산된 상품(의 거래량)이다. 이 때 주류경제학과 특히 통화학파의 화폐수량설은 P와 Y보다 M이 주된 요소라고 본다. 이들은 완전고용을 가정하기 때문에 Y가 증가하지 않는 상황에서 M이 증가하면 (V가 일정하다는 전제 하에) P만 상승한다는 것이다. 이 때 국가가 외부에서 화폐를 경제 내부로 주입한다는 의미에서 외생적 화폐이론이라고 한다.
이에 반해 마르크스주의는 M이 아니라 Y와 P가 먼저 결정되고 나서 M이 결정된다고 본다. 그래서 Y와 P의 규모에 따라 M이 결정되기 때문에 양적완화처럼 많은 화폐가 시중에 주입됐다 할지라도 실물경제가 불황이면 시중의 화폐는 축장되어 유통되지 않는다고 본다. 그래서 양적완화 때에도 인플레이션은 나타나지 않고 오히려 실물경제가 수축하는 디플레이션을 우려했다. 상품의 생산과 유통 과정에서 화폐가 생겨나기 때문에 경제 내부에서 화폐가 만들어진다고 보는 이론이 내생적 화폐이론이다.
외생적 화폐이론은 경제 외부에서 화폐가 주입되는 것으로 보기 때문에 화폐를 제거하면 자본주의의 문제점들이 사라질 수 있다는 환상을 품을 수 있다. 소부르주아 유토피아를 주장했던 피에르조지프 프루동이 화폐의 폐지를 통해 자본주의를 철폐할 수 있다고 주장하자 마르크스는 가톨릭은 그대로 둔 채 교황만 없애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랜덜 레이는 화폐가 자본주의적 상품생산과 유통에서 비롯된 것이란 점을 무시하고 국가와 민간 사이의 사회적 관계에서 생겨난 것으로 보았기 때문에 결국은 외생적 화폐이론과 같은 지점으로 귀착했다. 그래서 그는 이론적으로는 하이만 민스키와 포스트케인스주의 입장에서 더 후퇴한 셈이었다.
결론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들이 지고 있는 엄청난 부채 때문에 장기불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어쩌면 또 다른 심각한 위기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진단이 널리 퍼져 있는 상황에서 MMT 이론가들은 파격적이게도 국가가 아무리 많은 재정적자를 지더라도 파산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은 최근 장기불황에 직면해 경기부양책을 써야 할 상황이지만 많은 국가부채 때문에 망설이고 있는 정책 입안자들에게는 구미가 당길 만하다. 또 국가가 대규모 경기부양책으로 헬리콥터에서 돈다발을 뿌리듯이 시중에 돈을 주입하면 주가가 상승할 것으로 기대해 월가에서도 MMT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11
MMT 이론이 맞다는 사례로 일본이 언급되자 일본의 정관계 인물들이 MMT를 공부한다고 난리법석이다. 2018년 기준으로 일본 정부의 부채는 GDP 대비 240퍼센트로 OECD 국가 중 1위인데, 지금보다 정부의 빚을 3~4배 더 늘려도 된다니 올 여름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있는 아베로서도 솔깃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은 MMT가 틀렸음을 나타내는 사례다. 아베 신조는 엔화를 무한정 풀어서 일본 상품의 수출 경쟁력을 높이고 물가를 2퍼센트대로 끌어올리려 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국가가 화폐를 무한정 방출했지만 실물경제는 살아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MMT 이론가들이나 케인스주의 모두 자본주의를 추동하는 동학이 화폐량과 금리가 아니라 이윤율이라는 점을 이해하지 못한 소치다.
다른 한편 국가가 재정적자를 지더라도 통화를 발행해 상환하면 된다는 논리가 모든 나라에 적용되지는 않는다. 대표적인 사례가 자국 통화가 아니라 유로화를 사용하는 그리스다. 그리스 같은 국가는 국가의 대외 부채를 유로화나 달러화로 갚아야 하지만 자체적으로 유로화를 발행할 수 없기에 파산할 수 있다. 그리스처럼 화폐통합에 포함돼 있지 않은 한국 같은 국가들도 자국 화폐를 대외 채무 상환에 사용할 수 없다. 1997년 IMF 위기 때 한국이 채무불이행 상황에 처했던 것을 떠올려 보면 알 수 있다. 그래서 일부 비평가들이 MMT가 미국 제국주의의 이데올로기라고 지적했다. 미국은 세계화폐인 달러화를 무한정 찍어낼 수 있는 지위에 있기 때문이다.
불황기에 국가가 일자리를 보장하고 최종 고용자가 돼야 한다는 취지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또한 재정적자를 감수하더라도 복지 예산을 늘리는 정책에 대해서는 지지를 보내야 한다. 그럼에도 MMT 이론가들이 주장하는 이런 정책은 자본주의 체제에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 그 결과를 약간 개선하려는 개혁주의적 대안이라는 점에서 한계에 부딪힐 것이다. 이런 개혁주의 대안은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 기반하고 있다.
일자리를 늘리고, 복지 예산을 증대하며,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하고, 더 나아가 기후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고, 미세먼지를 억제하는 생산 방식을 도입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MMT와 같은 개혁주의 정책에 환상을 가질 수 있다. 사회주의자들은 이들의 바람을 충분히 공감하면서도 진정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진정으로 개혁을 이루려면 부자 증세 등을 통해 지배계급의 부를 빼앗아 와야 하고, 더 나아가 자본주의의 근본적 변혁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참고 문헌
레이, 랜덜 2017, 《균형재정론은 틀렸다: 화폐의 비밀과 현대화폐이론》, 책담.
잉햄, 제프리 2011, 《돈의 본성》, 삼천리.
캘리니코스, 알렉스 2019, ‘세상이 돈으로 움직이는가’, 〈노동자 연대〉 278호. https://ws.or.kr/article/21780.
하먼, 크리스 2010, 《부르주아 경제학의 위기》, 책갈피.
Henwood, Doug 2019, Modern Monetary Theory Isn’t Helping. Jacobin. https://www.jacobinmag.com/2019/02/modern-monetary-theory-isnt-helping.
Knapp, Georg Friedrich 1924, The State Theory of Money, Macmillan & Company Limited.
Moseley, Fred 2011, The Determination of the “Monetary Expression of Labor Time” (“MELT”) in the Case of Non-Commodity Money, Review of Radical Political Economics, 43(1).
Roberts, Michael 2019, ‘Modern monetary theory – part 1: Chartalism and Marx’, ‘MMT 2 – the tricks of circulation’, ‘MMT 3 – a backstop to capitalism’ https://thenextrecession.wordpress.com.
주
- MMT를 가장 효과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사람은 포스트케인스주의자인 랜덜 레이다. 그의 최근 책(레이, 2017)은 MMT의 교과서라 할 만하다. 반면 MMT에 대한 체계적 비판을 한 사람은 더그 헨우드(Henwood, 2019)와 마이클 로버츠(Roberts, 2019)를 들 수 있고, 핵심적인 내용을 간략하게 지적한 캘리니코스(캘리니코스, 2019)도 볼 만하다. ↩
- 중국 진시황이 만리장성을 쌓을 때 군사 십만 명을 시켜 황하黃河의 물을 길어다 큰 구리로 만든 동이河水盆를 채우게 했다. 그런데 그 물동이가 얼마나 컸던지 한번 채우면 아무리 써도 없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생겨난 말이 화수분인데, 나중에는 그 안에 온갖 물건을 넣어 두면 새끼를 쳐서 끝없이 나오는 보배의 그릇을 뜻하게 됐다. ↩
- Knapp 1924, p1. ↩
- 크나프는 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능력(가치를 나타내는 기준이자 가치 척도의 기능이며, 케인스는 이를 계산화폐라 불렀다)과 가치를 구분했다. 그래서 아무런 가치도 없는 종잇장이 구매력을 가지는 것은 국가가 그 종잇장에게 가치 평가 능력 또는 법적 유효성을 제공했기 때문이라고 봤다. ↩
- 잉햄 2011, p109. ↩
- 화폐가 본체이고 신용은 화폐에 기초해 생겨난다는 이론이다. 이에 반해 화폐신용론은 화폐가 하나의 신용에 지나지 않는다는 명목화폐론의 입장이다. 신용화폐론은 고전파 경제학이 수용했고, 화폐신용론은 크나프나 역사학파가 받아들였다. ↩
- 불환지폐가 통용되는 사회에서도 노동가치론이 적용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프레드 모슬리(Moseley, 2011)의 ‘비상품화폐의 경우 “노동시간의 화폐적 표현 ↩
- 이 때 중앙은행과 정부 사이의 회계처리에 대해서는 논의하지 않기로 한다. 이 문제에 관심 있는 사람은 《균형재정론은 틀렸다》의 제3장 국내통화시스템을 참고하라. ↩
- 이를 화폐주조 차익 또는 시뇨리지라고 한다. ↩
- 하먼 2010, pp42-69. ↩
- 블랙록 최고경영자 래리 핑크나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는 MMT를 “미친 소리”나 “쓰레기”라고 비난했지만 골드만삭스의 얀 해치우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MMT의] 몇몇 아이디어가 유용하다고 판단한다”고 말했으며, 투자리서치 웹사이트 GMO의 제임스 몬티는 “MMT는 신고전주의를 수월하게 완파할 것을 장담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