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외대 글로벌캠퍼스 졸업생에 대한 서울캠 졸업장 수여 논란:
글로벌캠퍼스 학생들에 대한 차별에 반대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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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외국어대학교(이하 한국외대) 당국이 2023년부터 2년에 걸쳐 서울캠퍼스·글로벌캠퍼스(용인 소재) 유사·중복학과를 통폐합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계획에 따르면 서울캠퍼스와 유사학과인 글로벌캠퍼스 내 통·번역대 8개 학과와 국제지역대 프랑스학과·브라질학과·인도학과·러시아학과 등 총 12개 학과가 폐과된다.
학교 당국은 폐과 대상 글로벌캠퍼스 학생들에게 통폐합에 따른 조처들로 아래 내용들을 제시했다. 1)폐과 대상 학과에 더 이상 신입생을 받지 않고 재적생이 0명 되면 폐과 2)폐과 대상 학과 재학생들에게는 전과 기회 1회 부여 3)통폐합 최종 완료 후 졸업생들에게 서울캠퍼스 학위 졸업증명서 발급 등.
학교 당국의 계획이 알려지자 서울캠퍼스 내 일부 학생들 사이에서 반발이 일고 있다.(논란이 커지자 학교 당국은 계획을 일방 강행하지는 않겠다고 밝혔다.)
폐과 대상 학생들의 학습권은 보장돼야 하지만, 이들에게 서울캠퍼스 학위를 부여하는 것은 공정치 않다는 것이 반발의 핵심 내용이다. 입시 성적이 다른데 어떻게 똑같은 학위를 받을 수 있느냐며 “외대에 입학하고 졸업하기 위해 한 노력을 부정하는 기만행위다”, “부정 입학과 다를 바 없다”는 얘기가 나온다.
서울캠퍼스 총학생회도 나서서 “글로벌캠퍼스 학생들에게 서울캠퍼스 학위 졸업증명서를 [폐과의] 보상으로 제공하는 것은 이원화 캠퍼스 본질에 어긋”난다며 학교의 계획을 반대하고 나섰다.
한국외대 당국은 2011년 하반기 당시 대학 평가 기준으로 ‘한 학교의 규모가 커지면 평가 순위가 올라간다’는 이유로 본·분교 통합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당시 필자를 포함한 노동자연대(구 다함께) 소속 한국외대 서울캠퍼스 학생들이 먼저 “구조조정과 차별 없는 본·분교 통합”에 지지를 보냈다. 당시 양 캠퍼스 모두에 회원이 있었던 노동자연대 한국외대모임은 양 캠퍼스에서 이런 주장을 펼쳤다. 학교 당국의 추진 목적과 무관하게 본·분교 통합이 서울과 지방 학교 사이에 차별을 완화할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 조처로 서울캠퍼스 학생들에게 불이익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한국 사회에 학벌주의, 대학 서열화, 서울과 지방 캠퍼스 간 차별이 깊숙이 아로새겨진 상황에서, 지방 캠퍼스 학생들은 취업 등에서 불이익을 받아 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분교가 본교로 통합되는 것은 분교생이라는 꼬리표를 조금이라도 떨쳐버릴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었다.
노동자연대 한국외대모임은 통합 과정에서 ‘구조조정과 차별이 없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만에 하나 학교 당국이 통합 과정에서 교직원과 행정 인력을 해고시키는 등 구조조정을 하거나 지방 캠퍼스 학생들에 대한 차별을 유지할 수 있음을 경고한 것이다.
그런데 한국외대 당국은 2014년 본·분교를 통합했지만, 형식적인 통합이었을 뿐 분교 학생들에 대한 차별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사실상 중복인 유사 과들도 유지됐고, 낙후한 교육 환경, 분교라는 낙인, 취업에서의 불이익 등은 여전했다.
사정이 이러니 여전히 많은 글로벌캠퍼스 학생들은 소외를 느끼고 심리적 위축감에 시달린다.
그런데 이렇게 차별을 감내해 온 글로벌캠퍼스 학생들을 향해 같은 대우받기 싫다고 내치는 것은 상처에 재뿌리는 격이다. 심지어 차별과 편견이 공정과 정의의 이름으로 정당화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차별에 반대하는 것이 공정과 정의를 세우는 길이다.
공정성
다른 성적으로 다르게 입학했는데 어떻게 같은 대우를 받느냐 하는 질문이 나온다.
그러나 입시 성적 하나로 차별을 정당화하는 것이 온당할까? 학벌주의는 청년들을 등급화하는 것이다. 대다수는 그것의 희생자다. 학벌 사회라는 사다리의 맨 꼭대기에 오른 극소수를 제외하면, 학생들 대부분은 학벌 때문에 상대적 차별과 무시를 당한다.
‘입시 한 방에 결정되는 인생’. 이는 우리 모두 20년 넘게 입시 경쟁에 매달리며 고통받을 때 가졌던 불만이다. 또한 생각해 보라. 같은 캠퍼스 안에서 입시 인기과와 비인기과 사이에 노골적으로 차별이 있으면 어떨지를.
과 통폐합이 되면, 서울캠퍼스 학위가 현 글로벌캠퍼스 학생들에게 부여되는 것이 당연하다.
학벌의 사다리가 존재하는 구조에서 개별 학생들은 조금이라도 유리한 위치에 가기 위해 힘겨운 노력을 한다. 그래서 일부 학생들은 자신들의 노력이 부정당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지만, 그렇다면 글로벌캠퍼스 학생들의 노력은 부정당해도 되는 것일까?
상대적으로 더 차별 받고 있는 사람들이 기대어 버티고 있는 사다리를 걷어차는 게 공정이고, 그간의 노력을 보상받는 길일까? 학벌주의의 피해자들이 또 다른 피해자들을 차별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차별과 경쟁 속에 내던져진 청년들끼리 서로 차별하며 다투는 것이야말로 학벌 사다리 경쟁 구조를 만들고 유지하고 혜택을 입어 온 사람들이 바라는 일 아닐까?
한편, 입시 성적이 순전히 개인의 노력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것도 봐야 한다.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입시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하다. 이처럼 애초에 불평등한 조건에서 벌어지는 입시 경쟁의 결과에 따른 차별이 합당한지도 생각해 봐야 한다.
취업 경쟁이 심화되고 청년들의 삶이 너무 팍팍해진 상황에서, 집단적 해결책을 통해서 사회 전체를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이 보이지 않으면 각자도생 식 대안으로 이끌릴 수 있다.
그러나 취업문이 좁아진 것도 경제 위기 하에서 고용을 늘리지 않는 정부와 기업의 정책 때문이지 청년들 서로의 탓이 아니다. 정부와 기업을 향해 양질의 일자리를 대폭 늘리라고 요구하는 것이 서울캠퍼스와 글로벌캠퍼스 학생 모두의 이익에 부합하는 일인 것이다. 이런 요구를 힘있게 하려면 학생들이 분열해서는 안 된다.
서울캠퍼스 학생들 중 일부는 안 그래도 콩나물 시루 같은 강의실이 통합 과정에서 더 대형강의가 될까 우려하기도 한다. 이런 우려는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이것이 통합에 반대할 이유는 못 된다. 학생들의 수요가 많은 수업을 더 개설하고 교강사를 늘리라고 서울캠퍼스와 글로벌캠퍼스 학생들이 함께 학교 당국에 요구해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간 비싼 등록금, 교원 부족과 커리큘럼의 불충분함 등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서울캠퍼스와 글로벌캠퍼스 학생들이 공통으로 겪는 문제였다. 이런 문제를 개선하려면 학교 당국에 맞서 서울캠퍼스와 글로벌캠퍼스 학생들이 연대해 싸워야 한다.
글로벌캠퍼스 학생들에 대한 차별에 반대하지 않고 심지어 정당화하는 것은 이런 연대를 해쳐서 양 캠퍼스 모두에서 교육 환경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차별
사실 이번 학교 측 계획의 진정한 문제는 “통합”을 말하면서도 글로벌 캠퍼스 학생들에 대한 차별은 여전히 남겨둔다는 점이다. 학교 당국이 자기 학생들에 대한 차별을 어떻게든 유지하려고 하는 셈이다.
학교 당국은 7~8년 뒤로 예상되는 폐과 대상 학과의 재학생이 0명이 되는 시점에서야 폐과 대상 졸업생들에게 서울캠퍼스 학위가 명시된 졸업증명서를 발급하겠다고 했다. 이말인즉슨, 현재 재학 중인 학생들의 대부분은 ‘폐과생’ 꼬리표가 달린 채로 취업전선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학교 측은 전과 기회를 부여하는 등으로 폐과 대상 학생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양 말하지만, 전과를 하려면 새로운 학점 경쟁 ‘전선’에 등 떠밀려 나서야 한다.
또 학교 측은 이중전공과 부전공을 이수하는 학생들이 추가로 학점을 이수하면 전공으로 인정해 주고 졸업장에 이를 명기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도 했다. 그러나 추가 학점 이수를 위해서는 계획했던 것보다 학교를 더 다녀야 하고 비싼 등록금도 추가로 내야 한다.
심지어 이런 불충분한 조처들조차 학교 측은 분명하게 약속한 바가 없다.
따라서 과 통폐합이 결정된다면, 7~8년 뒤 통폐합이 ‘완료’되는 시점이 아니라 ‘추진’ 즉시 글로벌캠퍼스 학생들에게도 졸업할 때 단일한 학위를 부여해야 한다. 폐과되는 글로벌캠퍼스 학생들이 전과 등을 하고자 하면 성적 제한 등을 두지 말고 원하는 과를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한다.
학벌 사회와 학벌에 따른 차별에 반대하는 학생들은 서울캠퍼스 학위 부여를 지지하며 과 통합 과정에서 차별이 유지되지 않도록, 통폐합이 학생들의 교육 환경과 교직원들의 노동조건의 후퇴로 이어지지 않도록 학교 측에 요구해야 한다.이렇게 서울캠퍼스와 글로벌캠퍼스 학생들 간 연대가 강화되는 방향이 차별을 없애고, 모두의 교육여건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향이다.